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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분노 후에

2009-10-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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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분노 후에

 

2009.10.26.화요일
산하
  

 

좀 기구한 내용의 프로그램을 제작하기 위해 교도소를 방문한 적이 있다. 왕년에 돌 던지다가 빵잽이가 된 친구들 만나느라 교도소 면회실 구경해 본 적은 더러 있지만 그 육중한 철문을 넘어 교도소 안을 거닐어 본 것은 처음이었던지라 이것저것 신기한 것도 많았다. 궁금했던 것 중의 하나는 그곳에 있던 사형수들의 면면이었다. 혹시 한때 세상을 뒤흔들었던 끔찍한 사건들의 주인공이 바로 근처에 있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이라고나 할까. 그때 한 명의 이름이 귓전을 흔들었다. 박한상이라는 이름이었다.

 

부유한 집 아들로 태어나 미국 유학까지 마치고 돌아왔지만 막대한 도박 빚을 지고 있었고, 유산을 물려받을 욕심에 부모 모두를 살해하고 범행 은폐를 위해 불까지 질렀던 엽기적인 사형수. "전생에 원수였다는 말 밖에는 해명이 안 된다"는 담당 수사관의 말까지 생생한 그 무시무시한 남자가 지금 내가 바라보고 있는 건물에서 사형수의 붉은 명찰을 단 채 11년째 생활하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도 담당 교도관 말씀으로는 일점 죄책감도 없는 듯 보이고, 수용자간에 벌어지는 싸움질에도 빠지지 않는 이른바 꼴통이라고 했다. 설명 끝에 교도관은 야멸찬 어조로 한 마디를 걸어 놨다. "조선 시대 같으면 벌써 능지처참을 했을 놈이죠. 요즘 법이 물러서 그렇지."

 

 

 

하긴 그렇다. 조선 시대라면 죄인은 때를 기다리지 않고 죽이고(不待時速斬), 그 고을 사또는 파직을 당하며, 범인이 살던 집은 파헤쳐서 못을 만들어 버렸을 것이다. 절도를 하면 이마에 경을 쳤고, 간통을 저지르면 곤장 수십 대에 초주검이 되어야 하는 시대였으니 패륜 범죄에야 오죽 준엄했으랴. 그런데 그리도 무르지 않고, 살벌하기까지 한 법 집행 덕에 범죄가 줄어들었을까, 과연 그 시대의 교도관(?)들은 할 일이 없어 음풍농월이나 하고 한세월 보냈을까.

 

 

 

폭력 추방을 모토로 삼는 <긴급출동 SOS 24>의 첫 회 아이템 중 하나는 엄마를 때리는 패륜아였다. 엄마에게 시옷자 지읒자 들어가는 욕설을 서슴지 않고 퍼붓고 주먹질은 기본이고 발길질도 서슴지 않는 모습은 시청자들의 격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징역 1년 정도를 선고받았었는데, 사람들은 그 형량이 터무니없다고 분통을 터뜨렸고, 후일담 방송에서 아들이 엄마에게 보낸 사죄 편지 중 장사 밑천을 대 달라는 부탁을 한 구절이 발견되었을 때는 어떻게 이런 작자가 반성을 했답시고 방송에 소개할 수 있느냐는 분노의 화살이 제작진을 향해서도 퍼부어졌다.

 

 

 

나는 그 의로운 분노를 수긍한다. 인지상정으로 가질 수 있는, 아니 가져야 마땅한 감정일 것이다. 병역 이행 기간보다도 짧은 징역 1년으로 어미를 쥐 잡듯이 잡은 죄악이 어찌 사해질 수 있을 것이며, 그 죄를 제대로 뉘우칠 수 있겠는가. 그런데 4년이 흐른 요즘, 우리 팀에서는 "자식이 부모를 두들겨 패는" 케이스를 굳이 다루려 하지 않는다. 솔직히 말하면 너무나 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솔직히 말하면 시청자들에게 더 이상 쇼킹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 하는 분노보다는 심각하긴 하나 보기 싫은 불쾌감을 자아낼 뿐인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부모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아이들을 무시로 만났다. 방송을 통해 소개하지 않은 케이스를 합하면 열 손가락을 서너 번 구부려야 셈할 정도다. 가정의 테두리 내에서는 폭군이었지만 집 밖에서 그들은 허약하고 무시 받는 존재들이 대부분이었다. 학교에서는 문제아로 찍혀서 울타리 밖으로 쫓겨나기 일쑤고, 그들의 성장 환경에는 가정 폭력이나 아동 학대 등의 시커먼 그늘들이 드리워지지 않은 경우가 드물었다. 덩치는 커져 가지만 그에 상응하는 정신세계는 황폐해져 갈 뿐인 아이들의 위안처는 컴퓨터였고, 가장 만만한 상대는 부모였던 것이다.

 

만나서 그 황당함을 실감하긴 했지만 방송 부적격을 이유로 더 이상 만나지 못했던 그 아이들도 언젠가는 그들을 품고 있는 부모들의 울타리를 넘어 밖으로 나와야 할 때가 올 것이다. 사회로부터 격리되고 스스로도 사회를 외면한 채, 집 안에서 사람 죽이고 피가 튀기는 폭력적 게임에 밤을 지새우는 아이들이, 심지어 장바닥에서 병아리나 강아지를 사 와서 심심파적으로 그 목숨을 거두는 것을 재미로 삼기도 하는 아이들이 사회에 나올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리고 우리의 할 일은 거기에 책임을 묻고, 어떻게 이런 인간들이 사회에 발붙일 수 있을까 분노하며, 극형에 처하라고 외치는 것에 그쳐야만 할까.

 

나영이 사건 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다. 나 자신 그런 일을 당한다면 어떤 선택을 할 지 장담할 수 없다. 아마 무슨 수를 쓰든 사적인 복수를 감행할 지도 모른다. 범인은 그의 행동을 통해 나영이를 한 인간으로, 인격체로, 자신만큼이나 소중한 생명으로 전혀 보지 않고 있음을 처절하게 증명했다. 그런데 그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을까? 원래부터 범죄의 유전자를 물려받았고, 그 피에는 유독한 기운이 흐르는 것일까? 그래서 그런 부류의 인간들은 사회로부터 원천적으로 격리하고 극형에 처하면 되는 것일까? 그렇다고 단언하는 것은 쉽지만 무책임한 일이고, 간단하지만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드는 길이 아닐까.

 

 

한때 유행처럼 번지고, 숱한 영화의 소재로 쓰였던 "사이코패스". 인간의 탈을 쓴 외계인처럼 설명되고, 뇌 구조가 이리저리 다른 별종처럼 받아들여졌던 기괴한 존재에 대해서 수십 년간 연구해 왔던 로버트 드 헤어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상대방을 이해하는 마음 없이 경쟁만 강조하는 사회, 이기는 자만이 추앙받는 사회에서 사이코패스는 필연적이다."

 

 

분노의 화살을 시위에 재는 것은 좋다. 뻔뻔하고 잔악한 범죄를 저지른 이의 심장에 과녁판을 그려놓고 그곳을 겨냥하는 것까지도 좋다. 그런데 과녁이 고슴도치가 된 뒤, 우리들의 화살은 어디로 향해야 할까. 분노해야 할 때 분노하는 것은 정당하다. 하지만 무엇이 문제인지에 대한 진지하고도 실질적인 관심으로 승화되지 못하는 분노는 급속히 그 영양가가 떨어질 것이다. 아무리 의롭고 마땅한 분노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4년 전, 어머니를 사정 돌보지 않고 폭행하던 스물 청년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나는 모르겠다. 그 청년의 행동에 치를 떨던 사람들의 분노는 어디로 갔을까. 글쎄 모르겠다. 인두겁을 쓰고는 도저히 저지를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른 짐승 같은 범죄자들을 대통령 말씀대로 "사회에서 격리"하면 분노의 근원 역시 우리로부터 분리될까. 허허 모르겠다. 과연 조선 시대처럼 그런 놈들을 때를 기다리지 않고 참해 버리면 박한상 같은 이들이 절멸될 수 있을까. 분노가 모자라서, 처벌이 미치지 못해서 그런 이들이 나타나는 것일까. 정말 모르겠다. 우리가 할 일이란 우리의 분노를 고스란히 퍼다 부을 수 있는 괴물의 등장을 기다리는 것뿐일까. 근데 그건 아닌 것 같다.

 

 

 

산하(nasanha@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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