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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02 화요일


필독


 



먼저 영상 하나 보고 시작하자. 딴지 단독 입수 영상이다. 지난 5월 30일 거행된 노무현 대통령 노제 때 서울광장에 모인 시민들이 본 공식 노제 추모영상이다. 그날 그를 떠나보내기 위해 거리에 나서지 못했던 분들은 아쉬움을 조금 달랠 수도 있겠다. 영상은 2부작으로 되어 있다. 아래의 영상은 1부이다.


 




본 이너뷰는 리뷰기사 「낮병동의 매미들은 언제쯤 울까」에서 파생된 기사로, 노무현 대통령 노제 기획 및 영상 연출 등에 얽힌 비화를 밝히기 위한 것이다. 이 비화를 이야기해주기 위해 12월 1일 화요일, 연극 <낮병동의 매미들>제작자이자 영화사 '네오무비'을 운영하는 조승현 대표, <낮병동의 매미들>의 극작/연출/주연이자 영화감독인 조영호 감독이 딴지 사옥을 방문했다. 이너뷰는 2층 편집실 테이블에서 이루어졌다.



지금껏 연극, 영화 등에서 함께 일해온 두 사람은 특이하게도 남매라고 한다. 노무현 대통령 노제 때도 둘이 함께 일했다. 일단 이 부분부터 물어보는 게 순서이지 싶었다.


 


필독 : 두 분이 남매시라고요.


조영호 : 네. 남매이자... 동지죠.


필독 : 동지적 부부는 보고 들은 적이 있습니다마는, 동지적 남매는 처음인데요.


조영호 : 우리는 우리 가족들 얘기, 제사 얘기, 명절 얘기 그런 거 안 해요. 어떻게 하면 함께 힘을 합쳐서 이 세상에 도움이 될 것이냐... 그런 얘기만 해요, 오빠랑 나는.


 


필독 : 세상에 어떤 도움을...?


조영호 : 예를 들면 쥐잡기라든지. (일동 웃음) 예술을 여러가지로 말할 수 있겠지마는 할 말은 하는 게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필독 : 그러니까 동지적 남매분들이 노무현 대통령 서거 직후에 그 '예술인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하셨는데요, 조승현 대표께서는 노제를 기획하시고 조영호님께서는 노제 영상을 연출하셨단 말이에요.


조승현 : 총 기획은 김명곤 선생님이었어요. 저는 기획자들 중에 하나였죠.


 


필독 : 어떻게 진행이 된 겁니까?


조영호 : 저희는 뭐 그냥 해피했죠. <낮병동의 매미들> 1차 공연 끝나고 나서 며칠 안 된 상황이었거든요. 공연이 너무 잘 되서 다들 업돼 있었고. 그러다 그 소식(서거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아 있는데...


조승현 : 대통령 돌아가시고 난 바로 다음 주 월요일에 김명곤 선생님한테 연락을 했어요. 저희 봉하마을 갈 건데 선생님도 가실 거면 같이 모셔가겠다고. 그런데 선생님이 그러시더라고요. 봉하마을 가지 말라고요. 지금 우리는 노제를 해야 하는데 거기 갈 시간이 어디 있냐. 눈물은 시민들이 흘리고 우리는 일을 해야 한다... 그러셨어요.


 



조승현 대표


 


필독 : 그런 식으로 투입됐군요. 자네들 이 일 해보겠나? 가 아니라.


조승현 : 네. 그냥 저희는 당연히 하는 걸로 돼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죠. 그 일을 하게 돼서 참 영광이기도 하구요.


 



김명곤 전 문화관광부 장관과 조승현-조영호 남매의 사이는 사제지간과 마찬가지라고 한다. 김명곤의 홈피에는 노제와 관련해 이런 글이 올라와 있다.


"저는 기획과 연출 분야에서 저와 호흡이 잘 맞는 후배들에게 소식을 알렸습니다. 후배들은 만사를 제쳐 놓고 참여할 의사가 있음을 알려왔습니다. ...  조영호, 조승현(영상), 배정혜(안무) 등 역전의 용사들이 속속 모여 들어 즉시 준비에 돌입했습니다."



걍 해...


 


필독 : 다른 분들은 없었을까요?


조영호 : 저희야 뭐 김명곤 선생님이 이뻐해주시는 애들이니까. 근데 또 이유를 찾자면 이런 이유가 있었어요. 옛날에 인터넷 아이디 쌈장 하면서 나왔던 선전 있잖아요.



스타크래프트 초대 지존 쌈장 이기석... 기억난다.


필독 : 네.


조영호 : 그때 그 광고 시리즈, 거기 '코넷 아이디 육미리(yukmiri)'라고 선글라스 끼고 나와서 폼잡는 여자...


 



이 광고...


필독 : 기억나요.


조영호 : 저예요.


 


필독 : 아, 그 세계 최초의...


조영호 : 인터렉티브 영화. <영호프의 하루>였죠.


 



신기했다.


 


필독 : 그땐 참 주목의 대상이셨는데.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전국구적으로.


조영호 : 그랬는데 내가 사상이 왼쪽이랍시고 자본의 세례를 받지 못하다보니까...


 


필독 : 어느 정도는 자본과 타협해야 하는데. 박찬욱 감독이나, 봉준호 감독같은 분들 보면.


조영호 : 그런 문제가 아니고 옛날에 삼성 영상사업단에서 사십억 지원해준다고, 그때는 디지털 붐이었고 닷컴 붐이었고, 그런 쪽의 아이콘으로 점찍힌 사람들한테 무작정 자본이 몰렸으니까요. 근데 거기(삼성) 담당자랑 술집에 갔더니 거기 종업원인가 마담인가 한테 내가 돈을 얼마를 내는데 호스티스 몸매가 겨우 이 정도냐, 내가 겨우 이 정도냐, 레벨에 맞는 아가씨 대령해라 그러더라구요. 아니 내가 여잔데, 여자를 앞에 두고... 그래서 그 사람한테 넌 거울도 안보냐... 그런 식으로 성질 내고 나와버렸죠.


 


필독 : 하하. 사실 그런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죠. 내가 내는 돈의 액수보다 아가씨가 제공하는 몸의 가치가 못하면 손해다. 그걸 일종의 물물교환으로 보기 때문에.


조영호 : 뭐 그런 일 몇 번 있다보니까 주변에 서성대던 돈들이 훨훨 날아갔죠. 덕분에 연극도 하고싶은 대로 하고 영화도 찍고싶은 대로 마음껏 찍어요. 제작비 대느라 신용불량이 되긴 했는데 그것만 빼면 열라 해피해요.


 



이런 성격의 사람이다. 배우들을 휘어잡을 만하다.


 


필독 : 다시 김명곤 전 장관과의 얘기로...


조영호 : 네, 그런 과거가 있다 보니까. 아휴, 내가 그걸 한 게 언제인데. 십 년 된 얘기잖아요, 그 육미리. 그런데 나이 드신 분들은, 선생님(김명곤 전 장관)같은 분들은 제가 컴퓨터 귀신인줄 알아요. 디지털 영상의 최고 권위자, 뭔가 신기한 걸 말도 안 되게 뚝딱 만들어내는 똘똘이스머프인 줄 아신단 말이에요. 얘가 뭘 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는데 컴퓨터를 좀 만지면 뭐가 막 쏟아져나오는...


 


필독 : 나이드신 분들 그렇죠. 저는 아버지한테 인터넷페이지 하나 칼라인쇄 해드리고 어떻게 이런 걸 할 줄 아냐고 칭찬받았어요.


조영호 : 김명곤 선생님은 그 정돈 아니고...(일동 폭소) 하여간 가장 빠른 시간에 영상을 뽑아낼 사람이 필요한데, 그게 저라고 생각하신 거죠.


 


필독 : 노제 추모 영상.


조영호 : 네. 서울광장에서, 여섯 개 스크린에 걸린.


 


필독 : 시간이 얼마나 있었습니까?


조영호 : 사실 영상을 찍어야겠다, 라는 결론이 나온 건 김명곤 선생님하고 연락이 되고 나서 이틀 후였어요. 제가 영상을 찍고 싶으면 찍나요. 당연히 김명곤 선생님 이하 기획자들끼리 회의가 있고 컨펌이 있어야죠. 그런데 기획을 다 하고 나니까 이미 27일 수요일. 그러니까 내일 모레 글피에 노제 현장에 영상이 올라가야 한다고 그러시는거예요. 노제가 5월 30일이었으니까.


 


필독 : 2박 3일이 떨어졌군요.


조영호 : 네. 세 편을 연출해야 한다고 그러셨어요.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뭐 막막한데, 일단 콘티부터 짜기 시작했죠.


 


필독 : 다른 사람들처럼 울 시간도 없었군요.


조영호 : 울면서 했죠. (일동 웃음)


 


필독 : 작업상황을 알려주세요.


조영호 : 일단 자료고 뭐고 아무것도 없으니까. 일단 영상에 쓸 이미지들을 인터넷에서 구하기 시작했어요. 근데 이게 서울광장에서 여섯 개의 대형 스크린에 걸릴 건데, 거기 추모하러 나온 시민들이 다 볼 건데, 당연히 인터넷에 떠있는 이미지나 영상들은 사이즈가 작단 말이에요. 당연이 그 소스들의 원 소스, 사이즈가 큰 소스들을 찾아야 하는 거에요.


 



여기서부터 비화가 시작된다.


 


조영호 : 상황이 시간적으로 너무 급박했기 때문에 오빠(조승현 대표)는 여기저기 불려다녀야 하는 상황이었고. 저는 혼자 사이즈에 맞는 소스를 구해야 하는데 여기에 필요한 게 두 가지죠. 일단 소스 자체. 그리고 그 소스를 편집할 편집실. 저는 육미리가 전공이니까 육미리 데크가 있었으면 했는데, 아는 분이 육미리 데크를 확보하고 계신 분이 있어서 그걸 간신히 쓸 수 있었어요.


 


필독 : 그걸 정부에서 지원을 못 받았단 말입니까?


 



예상은 했지만, 역시 귀로 확인하니 씨바스럽다.


 


조영호 : 네. 행안부는 겉으로는 지원을 해 주겠다고 말은 해요. 그런데 말만 해요. 만들던지 말던지 상관도 안 했고, 실제로는.


 


필독 : 아마 못 만들길 바랬겠죠.


조영호 : 저는 거기(편집실)서 주둔을 하고 있었죠.


 


필독 : 소스가 올 때까지?


조승현 : 네. 그 소스는 제가 구하고 뛰어다녔고. 문제는...


 


조영호 : 소스를 안 줘요. 아무도.


승현 : 방송국도 신문사도, 아무도 안 주려고 해요. 당장 그게 없으면 영상이 안 나오고 노제가 망가져버리는데, 그냥 주기만 하면 되는 소스를 안 주는 거에요.


 


필독 : 이유가 뭘까요? 노제가 뭐 어디 대학교 축제도 아니고, 충분히 공공성을 띤 국민적 행사였는데.


조승현 : 공포죠. 물론 위에서의 압력도 있었을 거라고 봐요. KBS나 SBS는 그랬겠죠. 하지만 MBC조차도 꿈쩍을 안 하니까... 다들 공포에 눌려 있었어요. 나중에 보복당하는 게 아닐까... 전직 대통령조차도, 그런 분조차도 보복을 해서 돌아가시게 만든 자들인데 나는...? 하는. 그런 공포가 곳곳에 만연해 있었어요.


 


필독 : MBC가 그랬단 말이죠. 지금이야 거기도 외부 바이러스에 슬슬 감염되어가는게 눈에 보입니다마는, 당시에는... 게다가 노무현 대통령 서거 직후였는데 말이죠.


조승현 : 누구의 책임으로 소스를 제공하든, 그 책임자는 반드시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심리가 누구한테나 있었고. 신문사, 방송 통틀어서 그 수백 번의 거절을 당하고, 수모를 당하고...


 


필독 : 어떻게 거절하던가요? 예를 들면.


조승현 : "일 주일 기다렸다가 비디오테이프를 사가세요."


 


필독 : 푸하하. 하루 이틀 있으면 노제를 하는데 일 주일 기다렸다가... 왜 일주일입니까?


조승현 : 저작권법이라든지, 관례라든지 그런 시스템으로 되어 있다고 하니까.


 


필독 : 비디오테이프를 살 돈은...?


조승현 : 안 왔죠, 행안부에서. 돈만 안 온게 문제가 아니라 도대체 공문이 안 오는 거에요. 공문이 와야 그 공문을 가지고 정식으로 소스를 받을 게 아닙니까. 그러니까 애초에 야매로 소스를 구할 수밖에 없었어요. 결국 여기저기 전화해서 사정하는 수밖에 없는데 계속 거절당하고.


 


조영호 : 그래서 공문을 위조하려고 했죠.


 


필독 : 푸하하, 위조를...



조영호 : 어떡해요 그럼, 당장 다음날 서울광장에서 영상이 돌아가야 하는데.



조승현 : 그런데 결국 위조는 못했어요. 김명곤 선생님이 총 책임자시다 보니까, 이분이 전직 장관이시란 말이에요. 저사람들이 죽인 노무현 대통령님 정권에서 장관 하던 분이란 말입니다. 유시민 장관님 사무실도 탈탈 털었잖아요? 먼지 하나 안 나왔지만. 김명곤 선생님한테 누를 끼치면... 그 책임을 누가 지냐, 저희는 안 집니다. 저흰 조무래기거든요.


 


필독 : 김명곤 전 장관님은 탐스러운 제물이겠죠.


조승현 : 그렇죠. 그래서 그런 짓을 할 수가 없었던 거에요. 결국 이 방송사 저 신문사 전화 돌리면서 사정을 하는 수밖에 없었어요. 그게 비굴하건 어쨌건.
일단 신문사의 사진 소스. 전화를 하고 하고 또 해서... 어떻게 도와줄 수 있다는 분이 하나 걸렸어요. 그런데 그 사람 통해서 다른 사람, 또 다른 사람... 이렇게 비상연락망처럼 연결이 돼서 청와대 출입기자분 하나와 닿을 수가 있었어요.


그 분이 기자협회 서버를 잠깐 열어줬어요. 닥치는 대로 후닥닥 다운로드받았죠. 그 분도 다운로드 증거를 남기면 안 되니까, 적어도 그때에는 안 된다고 생각했으니까, 그게 임시 아이디로 열어준 거였어요. 지금은 당연히 그 아이디로 안 되구요.


 



사진자료 좀 받겠다는데 이런 짓을 해야 했단다. 레지스탕스가 따로 없다.


 


조승현 : 그 다음엔 봉하마을 쪽에 연락이 됐는데, 노무현 대통령 사진을 계속 찍어오던 분이 있었어요. 그 분이 사진을 올린 웹하드를 잠깐 열어주셨어요.
그 다음엔 방송. 결국 후배를 조졌는데... MBC PD수첩에 후배가 있어요. 대통령 돌아가시고 난 직후, 이십 삼, 사, 오일의 영상이 필요한데 원칙적으로는 일주일을 기다려야 한다... 당연히 데스크의 허락은 못 맡은 상황이고. PD수첩이 그네들답지 않게 겁을 냈고 안 냈고를 떠나, 지금 이 정권에 꼬투리 하나만 잡히면 날아가는 상황이라는 거죠.


 


필독 : 그야 사이가 안좋으니까... 아까 말한 일주일이 그 일주일이었군요.


조승현 : 그래서 이건 허락을 받고 뭐 할 시간이 아니다 싶어서... 당장 노제가 초단위로 다가오니까... 그냥 DVD를 들고 나왔죠.


 


필독 : (폭소) 훔친 거군요?


조승현 : 훔친 건 아니고, 후배가 나중에 상부에 잘 이야기해보겠다고 했죠.


 


필독 : 푸하하, 사후보고. 사후보고의 결과가 어땠답니까? 그 후배분.


조승현 : 뭐 엄청 깨졌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그 저작권이 MBC에 있다면 MBC도 줬겠죠. 그런데 이 저작권은 노무현 대통령님의 영상의 저작권은 그분한테 있는 거거든요. 이런 미묘하고 세세한 문제들, 잘 처리되지 않으면 먼지가 되고, 그 먼지 (정권에 의해) 털리면서 본진 털리는 거거든요.


 


필독 : 그렇게 있었군요. MBC 관계자들은 외려 앞으로 더 싸우기 위해 조심했던 측면도 있었던 거군요.


조승현 : 그런 태도들이 이해가 가죠. 어쨌든 저희나 김명곤 선생님이나 MBC나... 모두의 '안전'을 위해 모든 절차들이 합리적으로 처리가 되어야 하니까. 결국 유시민 장관님을 찾아갔지요.


 


필독 : 그때 유시민 전 장관님도 제정신이 아니었을 텐데.


조승현 : MBC측은 유시민 장관님한테 영상을 드렸고, 유시민 장관님은 저한테 주신 걸로 해서 마무리를 지었어요.


 


조영호 : (조승현 대표에게)이거 유시민 장관님한테 피해 가는 거 아냐?


조승현 : (조영호 감독에게)장관님이 이런 거 두려워하실 분이 아냐.


 



뚜껑이 슬슬 열린다. 추모 영상 찍겠다는데 신변을 걱정해야 하고, 후일을 위해 전직 장관까지 나서야 한다. 그리고 그 전직 장관까지 걱정해야 한다.


 


필독 : 뭐라십니까? 유시민 전 장관님이.


조승현 : 그냥 고맙다고, 수고하라고... 굉창히 초췌한 모습으로요.


 


필독 : 그래서 소스를 모았는데... 필요한 소스를 다 모은 시점이 어떻게 되죠?


조영호 : 대략 전날 열 시. 다음 날 30일이 노제고 그날 아침 7시가 리허설인데, 29일 밤 열 시에 소스가 다 모였어요.
문제는 사진을 받고 영상을 받는다고 바로 편집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제가 그걸 봐야 되잖아요. 봐서 추려야 된단 말이에요. 사진이 몇 천 장인데 그걸 하나하나 다 봐야 했고. 원하는 건 딱 바늘인데 그거 찾으려고 지푸라기를 다 확인해야 하고. 동영상은 더 심했죠. 이건 시간으로 보는 수밖에 없는 거니까.
이걸 어떻게 했는지 저도 모르겠는데, 어쨌든 노제 당일날 새벽 네시엔 편집에 들어갈 수 있었어요. 사진이야 어떻게 콘티와 비슷한 것들을 골라서 할 수 있었는데, 동영상은 너무 내 머릿속 그림과 다른 거에요. 조악하고.


 



 '작품에 알맞는' 동영상을 구한 게 아니라, '입수할 수 있는' 동영상을 구하다 보니.


 


조영호 : 그래서 저는 새벽 네 시부터 편집작업에 들어갔죠.


 


필독 : 노제에 걸린 영상 말고, 노제 자체를 조직하기도 힘들었다고 하던데. 이를테면 어떤 트러블이 있었습니까?


조승현 : 국립창극단하고 국립국악단이 오기로 되어 있었어요. 그런데 국립극장에서 안 보내준거예요.


 


필독 : 이유가 뭡니까? 지들도 핑계는 있었을 텐데요.


조승현 : 그 핑계라는 게... 단원들이 개인 스케쥴이 있다. (일동 폭소. 멀찌감치에서 문서작업중이던 너부리 편집장까지도 웃었다.)


 


필독 : 푸하하하. '국립'예술단체의 장이 한다는 말이, 단원들이 각자 '개인적' 스케쥴이 있다고요. 남이 내 개인 스케쥴을 대신 말한다라...


조승현 : 또 다른 핑계는 이거였어요. "단원들이 거부한다." (일동 또 폭소.)


 


필독 : 이건 스케쥴보다 더 심한데요. 국립단체의 단원이... 아니 월급을 받는 조건이... 공적인 일을 거부하면 거부가 되는 겁니까? 푸하하하.


조승현 : 나중에 사정을 알고 봤더니, 그리고 단원들을 직접 만나보니, 사실은 위에서 압력이 내려왔다고 하더라고요. 허락을 안해줬대요. 사실은 대부분의 인원이 참여를 하고 싶어했더라고요. 그러고 나서 상부에서 우리한테는 그렇게 핑계를 댄 거죠.
그런데 국립극장 노조에서 폭발을 한 거에요. 우리도 가만 안 있겠다, 이렇게 충돌이 일어나고... 결국은 스무 분이 오시게 됐죠.


 



이런 말 또 하면 입 아프지만, 참 더럽고 치사하다.


 


필독 : 왜 노제 하는 걸 그렇게 괴롭혔을까요?


조승현 : 노제의 경우 자기네들이 완전히 컨트롤할 수 없다는 점을 매우 껄끄럽게 생각했겠죠. 또 하나. 이 정부가 친기독교적이잖아요. 그런 얘기가 있어요. 이 사람들이 노제라는 게 너무 싫으니까. 노제니까, 노'제'.


 


필독 : 그보다는 그냥 정치적으로 찌질한 거 같은데. (웃음)


조승현 : 저도 그렇게 믿고 싶어요. 그런데... 문화관광부의 실세들이 다 기독교인들이라고 하는데, 그게 증거나 수치가 있고 없고를 떠나 이 문화 바닥에서 공공연하게 도는 얘기예요.


 



그래서 노제를 방해했다는 설이 실제로 있다고 한다. 


필독 : 그래서 노제는 어떻게 치러졌습니까?


조영호 : 저같은 경우는... 일단 삼부작으로 기획된 영상을 이부작으로 줄여서 완성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리고 리허설에 영상이 올라가지 못했고. 그 시간에 미친듯이 작업을 하고 있어야 하니까. 김명곤 선생님이 화가 엄청 나셨어. 너 대체 뭐하고 있는 거냐고 노발대발 하시고... 저는 삼박 사일동안 잠도 못 자고 얼굴이 하얗게 떠 있는데, 그러면서도 선생님한테 너무 죄송하고.


 


조승현 : 동생은 렌더링하고 있고, 저는 일단 렌더링 된 것만 가지고 편집실 있는 양재동에서 서울역까지 차 막히는 한남대교 넘어서 가는데... 십 분 걸렸어요. 이백 키로로.


 


조영호 : 나중에 딱지가 따다다다다... 대량발송됐죠.


 



그 왕복을 하루에 몇 번을 했으니. 얼마를 물었을 지 짐작도 안 간다.


 


조영호 : 영상 랜더링 딱 끝나서 상연 가능하게 됐을 때가, 노제 시작 딱 20분 전이었어요. 참 다행스러운 건, 원래 영상이든 뭐든 대규모 행사는 리어설을 꼭 거쳐야 해요. 리허설에서 아귀가 안 맞는게 많이 걸리거든요. 그걸 다 수정하는 게 기본 과정인데... 이 영상은 리허설에서 빠졌는데도, 기적적으로 실수가 없었어요. 자칫 하나라도 실수가 있었으면 내가 큰 죄를 지을 뻔했는데.


 


필독 : 노제에 나온 연예인들. 기획 측에서 섭외를 했을 텐데.


조승현 : 안치환님한테 전화를 거니까 이런 저런 설명 없이 이렇게 말하더라구요. 뭐 부르면 되냐. 양희은 선배님은 몇 곡 부르면 되요? 이렇게 말씀하시고. 참 고마운 분들이죠. 김제동씨도 당연한 듯이 나와주셨고. 윤도현씨의 경우는 매니저가 전화를 받았는데, 매니저가 말하기로는 잠시 생각을 해 봐야 한다... 그렇지만 윤도현씨 자신의 결정으로 결국 나와주셨고. 그런데 윤도현씨랑 김제동씨랑 같은 소속사예요. 이 소속사 사장님이 제 지인인데... 나중에 조사를 받으셨죠.


 


필독 : 당연히 노제에 소속 연예인들 보내서, 라는 이유는 아니었을 테고.


조승현 : 그렇죠. 세무 관련이라든지 하는 전혀 다른 사안으로. 이 정권의 전형적인 보복 방법이잖아요. 보복의 심증은 물씬물씬 풍기는데 어쨌든 물증은 없는 뻔뻔한 방법.


 


조영호 : 어떻게든 맘에 안 드는 사람들, 영웅이 아니라 일반범죄자로 만들려는 거죠.


 


조승현 : 노제 하는 날 정말 기분나빴던 것이, 전경들이 쫙 깔려서 광장 안팎을 틀어막고 있었으니까. 노제 시작하면서 슬그머니 빠지긴 했지만, 그 직전까지 깔려 있었다는 거죠.


 


필독 : 기 죽이기.


조승현 : 그렇죠. "지켜보고 있다." 또... 노제 할 때 만장의 대나무 깃대를 가지고 이거 폭력시위용으로 쓰일 수 있다고, 죽창으로 쓰일 수 있다고 정부에서 난리 치는 바람에 결국 PVC 파이프로 다 교체가 됐잖아요. 사실 PVC파이프로 맞으면 안 다치나요?


 


필독 : 나름의 논리는 있어요. 대나무는 더 아프고 결이 갈라지면 전경의 눈을 찌르게 되고 하는... 문제는, 폭력시위가 일어날 것이라고 미리 전제를 했다는 거죠. 거기 울러 간 사람들을 잠재적인 폭력범 취급을 했다는 겁니다. 울러 간 사람들 이코르 정권의 반대자,


조승현 : 반대자는 곧 범죄자.


 


 



 



권력자들이 이런 졸렬한 방법까지 써서 노제를 훼손시키려 했고, 또 훼손시켰다는 게 문제일 것이다. 아마 모양이 떨어지게 만드는 게 목적이 아니었을까. 전직 대통령을 추모하는, 수많은 시민이 모인 자리에 대나무가 아니라 PVC파이프라니. 엘리자베스 여왕의 머리에 문방구에서 파는 플라스틱 왕관을 씌우는 격이다. 이건 노무현 개인이 아니라 대통령 '직'에 대한 모욕이다.


 


필독 : 조영호 감독님은 편집작업을 고등학생과 하셨다고요?


조영호 : 예. 영화 일 지망하는 어린 친구가 있었는데, 제가 그애한테 농담조로 이렇게 말했어요. 너는 고등학생이니까 청와대에서 안 건드릴 거다. 건드리면 괜히 난리가 나니까... 그래서 우리가 노제 일로 탄압을 받게 되면 국정원에는 니가 가는 걸로 하자...(일동 폭소)


또 우리 극단 배우들 중에 <낮병동의 매미들>에서 '배 나온 경비원' 역 하는 애. 걔가 정치적인 색깔이 전혀 없는 애에요. 털어서 나올 빨간 먼지가 없으니까, 걔한테도 우리 연극이 수사의 대상이 되면 국정원에는 니가 가는 걸로 하자...(일동 또 폭소)


 


필독 : 386식 표현으로는 그걸 '지도력의 보전'이라고 하더라고요?


조영호 : 예. 대가리는 남아 있어야 하니까. 근데 사실 농담이죠. 작품은 같이 만드는 거에요. 윗사람이 비겁하면 아랫사람한테서 작품이 안 나와요. 사실 미리 말은 해 뒀어요. 중딩도 싸대기를 때리는 놈들인데 너라고 무사하겠냐... 그래도 고문까지는 하지 않을 거다...


 


필독 : 고등학생이라면, 대학입시에서 불이익을 주는 게 지금 정권의 스타일이죠. 경제적, 사회적으로 부모님을 괴롭히거나. 뭔가 선이 굵지 않아요. 비겁하고 졸렬한 방법이 아니면 안 된다고 믿는 것 같아요.


조영호 : 그 레벨이죠, 얘네들은.


 


필독 : 참. 행안부에서 돈, 줬습니까?


조승현 : 그게 참 웃긴게... 팔월 말인가, 구월 초인가에 들어왔어요. 영상 만들고 어쩌고 하느라 외상을 지고 빚을 진 거를 그걸로 갚았죠.


 


필독 : 왜 애초에 안 줬을까요? 얘네가 국민의 세금을 아까워하는 애들은 아니고(웃음). 노제 끝나고 바로 정산해 주는 방법도 있었고요.


조승현 : 못 만들길 바란 거죠. 뭔가 트러블이 생기고 돈에 몰리고 그러면서 붙잡을 만한 꼬투리를 흘려주길 바랬겠죠.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든 만들어서 노제 했고, 또 지금까지 멀쩡하게 잘 버티고 있으니까, 준거죠. 어쩌면 부채 때문에 저희 회사나 극단이 넘어가길 원했을 수도 있고. 근데 사실 놀랐어요. 시기가 문제가 아니라 줬다는 사실 자체에.


 


조영호 : 정말 놀랐죠.


 



그들에게 이명박 정권의 신뢰도는 딱 이 정도였다. 필자에게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필독 : 노제 기획 및 연출에 참여하신 소감은?


조승현 : 자기 검열. 나도 모르게 스스로를 감시하게 되는 것에 무척 놀랐죠.


 


조영호 : 이 영상을 이렇게 찍어도 내가 무사할까 하는 공포. 결국 계획한때로 깡으로 찍었지만... 그러니까 말하자면, 찍고 싶은 대로 찍는데 깡이 필요해야 하는 현실.


 


조승현 : 심지어 어떤 일이 있었냐 하면, 노제 시작되기 전까지 여섯 개 스크린(조금 있으면 추모동영상이 나올 스크린)에 뭔가를 틀어놓아야 하는데, KBS를 틀었어요. MBC가 아니라. 이것도 꼬투리를 잡으려면 잡을 수 있거든요. 국민적 행사를 하는데 왜 공영방송을 틀지 않냐 하는. 별의 별 생각이 다 드니까 우리도. 사실 전략적인 측면도 있었고.


 


필독 : 전략적인 측면이요?


조승현 : 당연히 시민들이 반발할 테니까요. 시민분들이 화가 나서 "엠비씨! 엠비씨!..."외쳤고. 그러고나서 됐다 싶어서 MBC를 틀었죠.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가장 슬픈 이야기일 것이다. 자연스럽게 이너뷰의 결론이 도출되었다.


 


필독 : 자기검열이 가장 무서운 거겠죠. 정치적인 현실에 관련하여, 앞으로의 계획을 밝힌다면 무엇입니까?


조영호 : 우리는 조무래기란 말이에요. 쟤네들(MB정권)이 조무래기까지 다 밟아가면서 권력을 잡고 있을 순 없어요. 연극판이건 어디에서건 할 말은 할 거예요. 결국 중요한 건 개개인의 힘이잖아요? 우리가 지치지 않고 싸우고, 또 우리 같은 사람들이 늘어나면, 언젠가는 우리가 승리할 거라고 봐요.


 



무엇을 대상으로 한 승리인지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필독 : 개인들이 일어서면 백 중에 하나 밖에 밟히지 않는다. 뭐 그렇다고 쳐요. 그런데 그게 조영호 연출님, 조승현 대표님이 될 수도 있거든요. 게다가 다른 사람보다는 가능성이 크죠. 노제에 참여했고 이름과 작품이 알려진 문화예술인이니까. 동서고금 어디의 역사를 봐도 권력의 입장에서는 예술가야말로 참 밟기 좋은 존재들이에요. 밟기 쉽고, 밟으면 적당히 소리도 나고. 


조영호 : 밟히면, 밟히는 거에요.


 



그렇단다.


다른 사람들의 눈물을 위해 정작 자신들은 울 시간도 없었던 사람들이 있다. 세상이 상식을 거스르기에, 짧은 동영상 하나나마 우여곡절 끝에 나올 수밖에 없었다. 추모영상 2부와 함께 이상 이너뷰 기사를 끝마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