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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04.금요일


뚱딴지


 


먼 옛날, 진시황 시절 얘기를 하나 더하고 싶어졌다.


터덜거리며 또 가보자.



그 시절, 그러니까 전국시대 말, 중원에 전국7웅이 할거하던 때, 서역 초원지대의 유목민들, 거대한 푸른 호수를 바다인줄 알고 靑海라 부르던 사람들, 그 진나라의 무장들이 저 먼 동쪽 해가 떠오르는 곳, 황하가 흘러들어가는 곳에 있는 진짜 바다를 향해, 불로초와 신선이 있다는 동방까지 모두 점령하겠다는 꿈을 꾸며 황해의 물줄기를 따라 진격해 오던 시절, 그리하여 마침내 그 꿈을 이루었을 때, 그러니까 진나라가 중국을 일통하고 진왕 정은 최초로 황제가 되어 시황제라 불리던 시기.


 




오늘날의 그, 거시기도 토목공사를 엔간히 좋아하지만, 그래도 인류 역사상 가장 규모가 크고 왕성하게 토목공사가 벌어졌던 시기를 따진다면 아마 그때, 진시황 때일 것이다. 혹자는 이집트의 피라밋을 들고 나올 수도 있겠으나 글쎄. 애굽의 파라오들에겐 미안타만 전 중원적으로 벌어진 시황제의 토목공사에는 쬐끔 꿀리지 않을까 한다.


 


아무튼, 소위 관도라 불리는 도로망이 사통팔달로 만들어 진 것도 그때였고, 곳곳에 운하를 파 중원의 수많은 물줄기를 대규모의 교통, 운송수단으로 활용하기 시작한 것도 그때였으며, 석 달을 타고도 불이 꺼지지 않았다는 거대한 궁전 아방궁을 축조한 것도 그때였고, 인류 역사상 가장 큰 무덤이라는 진시황릉을 만든 것도 그때였다.


 


그리고 멀리 북쪽에서는, 산줄기를 따라 대규모의 성을 축조하고 있었다.



만리장성.


 




물론 이 장성이 모두 그 시대에 만들어진 건 아니다. 하지만 그때 가장 많은 구간을 축조했으며 동원된 인원도 가장 많았었다, 는 것엔 아무도 이의가 없다. 후에 사가들은, 거기 동원된 인원이 얼마이며 장성이 얼마나 긴 세월에 걸쳐 완성됐는지 등을 조목조목 따져 나열하고는 했지만, 사실 그 시대를 놓고 보면 동원된 노역자의 수나 공사기간 등은 큰 의미 없겠다. 그보다는 어떤 인간들이 동원됐으며 그 인간들은 어떻게 관리됐고, 그로 인해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를 캐보는 쪽이 더 흥미롭지 않을까?


 


일단 가장 많은 건 전쟁포로.



사실 진나라의 중국통일은 전쟁이라기보다 일방적 점령이라고 해야 옳다. 점령당할 위기에 있는 나라들은 합종해야 하느니 연횡으로 대처해야 한다느니 설은 분분했으나, 사실 진나라의 질주를 막는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자인하며, 어떻게 순서만 좀 늦출 수 있었으면, 또는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면 그게 성공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덜 맞으면 이기는 거라는, 눈물 나는 현실. 



당시의 상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팁 하나.


정복전쟁을 펼치며 진나라의 병사들은, 적의 목을 베어 수도인 함양으로 보냈다. 그럼 그 벤 모가지 숫자에 따라 병사들의 계급이 정해졌다. 우리가 무협지를 보면 흔히 나오는 말인 首級, 즉 사람의 대가리를 뜻하는 首에 級자가 붙은 것도 그때였고, 그에 따른 단계, 즉 階級이란 단어가 만들어진 것도 바로 저 진나라의 군인들에 의해서였다. 맑스가 진시황에게 저작권료를 지불했는지에 대해서는 확인 못했다.


 


암튼 그러므로, 그건 전쟁이 아니라 게임이었고, 적의 모가지는 그저 득템일 뿐이었다. 



그런 상황이니 진나라 인간들을 제외한 중원인은, 전쟁을 치르기도 전에 모두 패자였다.


 


그중 얍삽하게 진나라 만세, 시황제 짱을 외치며 커밍아웃한 인간들은 진제국의 신민으로 거듭났지만, 근성 있게 개긴 인간들은 대부분 모가지가 잘려 진나라 군인의 계급을 올리는 역할을 했고, 항복한 인물들은 전쟁포로가 되었으며, 아직 전쟁에 휩쓸리지 않은 인간들은 모두 잠재적 계급장이거나 포로였다.


 


그리고 그 포로들은, 각처의 다종다양한 공사장노역에 동원됐다. 


 


포로의 자격 또한 제네바협정이 만들어지기 훨씬, 훠어얼씬 전이었으므로 전쟁포로가 지금처럼 전쟁 참가자인 군인에만 한정된 건 아니어서, 점령지의 모든 인간이 포로였다. 그보다는 노예라고 하는 것이 더 적합할지도 모르지만, 중국은 그 다양한 국가의 흥망과 문화적 특성상 정식으로 식민지나 노예제가 존재한 적이 없었다. 그러므로 저 진나라 점령기 피지배계층 민중들의 처지를 세계사적 시각으로 구분한다면, 노예제와 봉건제의 중간정도형태, 라고 보면 적당할 것이다.



아무튼 점령지의 국민들은 누구나 노역에 동원이 가능한 노동 자원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위대한 제국을 구축해 놓은 시황제는, 므흣한 기분으로 자신의 점령지를 돌아보다가, 태산에 올라 봉선의식까지 삐까하게 치르시고는 그만, 진짜 높은 데로 올라가 버리신다. 진시황이 왜, 어떻게 죽었는지는 설이 분분하나, 아무튼 갔다. 는 것만 알고 넘기자.


 


기원전 210년 음력 9월 10일의 일이다.



이어 벌어진 일들은 앞의 이사 얘기에도 슬쩍 드러났었지만, 이게 또 몇 페이지로도 모자라는 일인지라 역시 대강 넘기고, 좀 모자라는 아들인 호해가 시황제에 이어 꼭두각시 2세 황제로 등극하시었다, 정도만 하자.



아무튼 그리하야, 때는 바야흐로 기원전 209년.



2세 황제 원년. 그해 여름 7월.


여기는 대택향(大澤鄕). 지금의 안휘성 동남이란 곳.


 



 


벌써 며칠 째 줄기차게 장맛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멀리 보이는 산기슭, 마치 거지소굴처럼 대충 쳐진 움막에, 진짜 거지처럼 쭈그리고 앉아 꾸물거리는 인간들이 있었다. 움막들은 산기슭을 빙 둘러 길게 이어져서 거지들도 한두 명이나 수십 명 정도가 아니라, 수백 명도 넘는, 어림잡아 천명 가까운, 말 그대로 ‘떼거지’였다. 중원 곳곳에서 장성으로 끌려가는 수많은 무리들 중 한 무리였다.



이 떼거지는 모두 호남성 출신으로 한 달 가까이 북쪽을 향해 행군하다 장마에 막혀 이곳에 발이 묶인 것이다. 인솔하는 진나라 병사들은, 북경 근처의 어양이란 곳으로 가 건들건들 국경이나 경비하는 쉬운 일이라고 썰을 풀었지만, 그게 곧 장성을 쌓는 일이라는 건 불문가지. 무리의 일정은 7월 안에 어양에 도착, 근무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목적지의 반도 못 온 이곳에서 이미 7월이 끝나가고 있었다.


 


그래서 떼거지들은, 졸라 불안했다.



불안한 건 떼거지뿐 아니라 인솔하는 병사들도 마찬가지였다.


 


무릇 정통성을 갖추지 못한 정권은 늘 이상한 식으로 그 정통성을 내세우고 유지하려 발광하기 마련이다. 당시 진나라도 마찬가지여서, 시황제가 죽고 반편 호해를 허수아비황제로 앉힌 환관 조고는 황권의 정통성을 입증하기 위해 시황제보다 더한 폭압정치를 행하고 있었다.


 


명령불복종 사형. 규율위반 사형. 근무지이탈 사형. 지시사항 불이행 사형. 사형에 반항해도 사형. 사형에 반대하는 자에 동조해도 사형. 사형당하는 자에게 측은지심을 품어도 사형.



그러므로 만약 정한 기일 안에 어양에 도착하지 못하면 떼거지와 그 인솔자들은, 명령불복종에 규율위반, 지시사항 불이행 등으로 따따블로 사형을 당할 운명이었다. 그렇다고 도망을 가도 마찬가지, 위 사항에 근무지 이탈이 더해져 따따따블로 사형을 당할 뿐 달라지는 건 없다.


 


말하자면 그들은, 어차피 떼거지로 죽을 떼거지였다.



떼거지에게도 질서는 필요하므로 일종의 소대장에 해당하는, 둔장(屯長)이란 직책의 조금 덜 거지같은 인물들이 있었다.


 


그중 하나는 진승(陳勝), 어려서는 섭(涉)이라고도 불린 인물. 다른 하나는 오광(吳廣), 화투의 오광과는 다르지만 아무튼 오광. 떼거지에 비해 좀 덜 거지같은 그 둘이 거적대기 움막에 웅크리고 앉아, 추적추적 내리는 빗줄기를 보며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비가 오도다. 비가 오도다...


우린 죽도다. 우린 죽도다......



노래의 끝부분이 흐려지며 진승의 목은 왼쪽으로, 오광의 목은 오른쪽으로 서서히 돌아갔고, 동시에 둘의 눈이, 마주쳤다. 둘은 각자, 상대의 눈이 약간 젖어 있으며, 자신의 눈 또한 그러리라는 걸 직감했다. 그와 동시에 둘의 어금니가 앙다물어 졌고, 갑자기 눈알의 습기가 제거되었으며, 둘의 시선이 부딪치는 부분의 허공에서, 번개도 치지 않았는데 파지직, 정전기가 발생했다.


이어 둘의 입에서 동시에 같은 말이 튀어나왔다.


  


조또, 어차피 뒤질 거!



두 둔장은 떼거지 중 평소 말 잘 듣던 똘마니들을 조심스레 모아 똥꼬를 간질이며 블라블라 설득 대거 포섭한 후, 일시에 떨쳐 일어나 인솔하던 병사들을 죽여 버리고 떼거지의 독립과 해방을 선포했다. 병사들을 죽이기 전, 쫄아서건 아니면 정치적 지향이 맞아서건 간에, 진나라 시황제는 나쁜 시키다. 그러니 진승, 오광 니들이 짱 먹어라! 며 커밍아웃하는 놈들은 모두 포용했다.


암튼 간에 그래서, 반역을 일으킨 것이다.


 


그때 주동자인 진승은, 추적추적 내리는 빗속에 우뚝, 죽은 병사들의 피가 고여 질척이는 땅을 우뚝 밟고 서서, 두 주먹 불끈 쥐고, 이마로 흘러내리는 빗물을 주먹으로 훔쳐내며, 역사에 길이 남을 명연설을 한다.  


 


[王侯將相寧有種乎?!]



궁금해 딴지 번역기에 넣고 돌렸더니 아래 문장이 나오더라.


 


“아놔 씨발, 언놈 좆물엔 왕후장상의 씨라고 써져있냐?”


 


이에 대한 호응은, 초대박이었다.


 


일단 떼거지들은 말할 것도 없고, 떼거지에게 죽는 것보다는 살아남는 게 이익이라 판단하고 항복해 한편이 된 진나라 병사들로부터, 인근의 농투성이들, 머지않아 전방으로 끌려갈 자식새끼들, 그 자식새끼들을 둔 에미 애비들, 그 자식새끼들을 손자로 둔 노땅들, 진나라땜시 졸지에 실직위기에 처하게 된 망한 나라의 관료들, 그 관료들의 정부나 애인들, 그 관료들에게 빌붙어 먹고살던 찌질이들. 그 찌질이들의 따까리들, 아무튼 너도나도 모두 진승과 오광 편에 나래비를 섰다. 


  


중국 최초의 농민봉기였다.


 


졸라 스피디하게 일단 결론부터 말하자면, 실패했다.


 


진승이나 오광 둘 다 왕 소리를 듣긴 했지만, 봉기한지 겨우 1년 좀 넘는 기간 동안 활약한 뒤 둘 모두 내부의 변절자에 의해 죽는다.


 


그러나 그 1년은 결코 역사에서 지워질 수 없는 강렬한 자취를 남긴다.



먼저 진승과 오광의 난은, 그에 고무된 중원의 수많은 떼거지 포로들, 또는 잠재적 포로들에게 기발한 아이디어를 제공한 셈이 됐으며, 각처에서 수많은 농민봉기가 들불처럼 일어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들불은 초나라의 항우와 한나라의 유방에게까지 영향을 끼쳐 결국 초강대국 진나라를 아작내 버렸으며, 우리에게 초한지라는 즐거운 읽을거리를 만들어 주는 알찬 토양이 되었다.



다음, 그들로부터 시작된 민중봉기는 중국역사에 하나의 옵션으로 굳어져, 이후 이어진 중국의 거의 모든 왕조 쇠퇴기에는 여지없이 농민항쟁이 일어났고 그 여파로 왕조가 교체되곤 했다.


 


진나라를 망하게 하고 세워진 유방의 漢나라도, 경제와 문화에서 가장 뛰어났었노라 일컬어지는 唐왕조도, 몽고인들이 세운 元나라도, 농민운동에 의해 탄생된 明정권도, 마지막 전제왕정을 이끌었던 淸朝까지 모두 농민봉기가 원인이 되어 무너진 것이다. 물론 이는 무너질 때가 되니까 농민봉기가 일어난 것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어쨌든 농민봉기는 늘 왕조붕괴의 도화선이거나 결정타였다.


 




가히 신종플루를 몇 배 능가하는, 막강하고 장구한 농민봉기바이러스라고 할 수 있겠다. 



이어 저 진승의 때깔 나는 명연설의 아우라.


 


왕이라 해봤자 사실 좆도 아니며 그 종자, 즉 권력의 유전자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민심을 얻고 운만 따라주면 누구든지 왕이 될 수 있다는 말. 이 어마어마한 각성은 중국역사를 일직선으로 관통, 마오의 대장정을 거쳐 지금까지도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고 할 수 있다. (고 하지 않을 수도 있다만)


그리고 이 중화의 역사는 당연히, 우리에게도 작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멀리는 망이, 망소이의 난으로부터 가까이는 동학농민전쟁까지, 물론 그 규모나 영향력에서는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동학이 태평천국과 무관하지 않듯, 모든 농민항쟁들은 저 진승과 오광의 봉기와 면면히 이어져있는 것이다.


 


이제 마무리 들어가자.


역사는 그렇다 치고 지금, 현대의 각성과 봉기는 어떻게 일어나고 진행되는가.



그런 험난한 역사를 거쳐 지금은, 명색은 민주주의에 살고 있으며 농민봉기나 민중봉기까지는 필요하지 않은 세상이 되었다. 농민들은 농사짓다가 힘들면 봉기를 하는 게 아니라 자기 농산물을 파 엎어 버린다. 노동자든 농민이든 항의는 하지만 봉기 수준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 농민이나 노동자, 또는 그 아들이든 딸이든 누구나 통치자 될 자격이 있고 될 수 있는 세상, 권력의 유전자가 따로 없다는 것을 모두가 아는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각성이나 봉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방식과 규모가 변화되었을 뿐. 지금의 각성이나 봉기는 거의 여기, 인터넷 공간에서 이루어진다. 아고라와 딴지, 또는 카페나 블로그에서, 각성하고 학습하고 봉기하고 그 결과를 공유한다. 그 봉기의 에너지가 차고 넘치면 밖으로 튀어나간다.


 


그것이 2008년, 광장의 촛불이었다.  


 


씨바 그런데, 그렇게 봉기가 일어났으면 왕조가 무너졌어야 하는 건데 왜 저 설치류와 딴나라 정권은 무너지지 않는 거냐?


 


쟤들이 뭐 왕조냐? 무너지게. 라고 누군가가 하는 소리 들리는데, 쟤들 왕조 맞다.


 


마빡이 하는 형식이나 꼬라지 보면 딱 왕조 아니냐? 옆에 찰싹 달라붙어 블라블라 하는 똥파리들도 그렇고. 자신이 열심히 해서 잘 먹고 잘 살게 해 줄 테니 찍소리들 말고 믿고 기다리라는 식. 니들은 날 몰라. 니들은 못해도 나는 할 수 있어. 니들이 뭐라든 난 우스울 뿐이다. 내가 많이 벌어서 좀 풀어주면 다들 헬렐레 할 것들이. 그러니 모가지 빼고 나의 거룩한 시혜를 지둘리고 있어 이 없는 것들아!


 


딱 이게 마빡가카의 마인드다.



하지만 걱정들 마시라. 가카가 왕조를 계속 고집하듯, 우리의 봉기 역시 아직 실패하거나 끝난 게 아니다. 그리고 지금 곳곳에서 수많은 진승과 오광이,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딸딸이를 치며, 뽀대나는 사자후를 다듬으며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다.


 


그들이 떨쳐 일어서는 그날이 오면, 딴지에선 삼겹살이 아닌 집단 떡돌림 테러를 할 것이다.


 


암!


 


뚱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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