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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코파이 횡령사건

2009-12-05 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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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오겹살 추천0 비추천0

2009.12.8.화요일


그냥불패 불타는오겹살


 


졸라!




엊그제 딴지 회원으로 가입했다. 사실, 나는 딴지일보 초창기 멤버다. 총수 혼자서 좆잡고 북치고 장구치고 할 때부터 드나들었으니까. 헌데 왜 이제야 회원으로 가입했냐구? 옛날에 분명 했는데-그러니까 딴지 라디오도 받고, 부르르도 받고 그랬겠지?-엊그제 댓글을 달려니까 내 회원정보가 없다더라.


 


뭐, 이 말 하려는 건 아니고, 새롭게 딴지일보 회원으로 가입한 기념으로 처음 글쓰기를 해 본다. 요즘 딴지에 좋은 글들이 엄청 자주 올라오더라. 초창기 딴지를 보는 것 같아서 마음이 흐믓하다.


 


무슨 얘기를 할까, 잠들기 전에 잠깐 생각하다가 딴지스들에게 가장 큰 공통점은 바로 ‘군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대가 있던 방향으로는 오줌도 싸지 않는다는 인간들이 많은데, 세월 지나면 그것도 다 추억이다.


 


오늘의 이야기는 ‘대대 초코파이 횡령사건’이다.


제목을 써놓고 보니 어마무지한 사건같지만, 맞다. 영창가서 뺑뺑이 돌고도 남을만한 사건이었다. 억세게 운이 좋아서 걸리지 않았을 뿐이고, 이제는 공소시효가 지나서 말해도 될 듯하다.


 




내가 근무하던 곳은 포병 대대인데, 대대 병력이 400명 남짓했다. 나는 대대의 살림을 책임 진 군수서무병이었고, 주특기는 960이다. 아, 군대 시절 생각하니 주마등처럼 30개월이 지나간다.


하여간, 운이 좋아(?)서 포다리를 잡지 않고, - 실제 군대에서 전역할 때까지 포 한 번 만져보지 못했다 - 서무병으로 빠진 것까지는 좋았는데, 몸이 좀 덜 고될 뿐이지 군대는 다 똑같은 거 아니겠냐.


 


나는 본부포대에 소속되었고, 군수과의 서무병이었다. 군수과는 서무병 말고도 1종부터 10종까지를 취급하는 각 담당 하사관과 병이 있었는데, 내 동기놈들이 그 자리를 하나씩 차지했다. 그러니 취사부는 당연히 군수과 선임하사의 통제를 받게 되는 거고.


내 사수는 내가 자대에 들어간 지 한 달만에 전역하더라. 그동안 병력 충원이 원활하지 못해서 조수를 뽑지 못했던 거고, 급하게 충원된 인원 가운데 어리버리한 놈 하나를 데려다 쓰라고 준 것이 바로 나였다.


 


병장 말년으로 내피만 걸치고 내무반에 짱박혀 있던 고참이 어느날 예비군복을 입고 나타나 기념사진 한 방 박고는 정문 위병소를 통과해 사라져버렸다.


그 후, 고참들에게 엄청나게 까이면서 업무를 배웠다. 졸병으로 내무반 생활하랴, 업무 배우랴, 밤과 새벽에는 보초서랴, 평균 두 달에 한 번씩 나가는 훈련 준비하랴, 오줌누고 자지볼 틈도 없이 바쁜 나날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추석 명절이 다가왔다. 요즘도 군대에서 명절이 되면 특별한 음식이 나오겠지? 요즘은 어떤 것들이 나오는지 무지 궁금하다. 좀 알려줘라.


 



px차에 환호하는 군인들



내가 서무계를 하던 때-벌써 26년 전이다-는 명절 특식이 초코파이, 귤, 사과였다. 딸랑 고거?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평소에 일주일에 한 번 주는 건빵 말고 별다른 간식거리가 없던 때여서 저 정도만 해도 꽤 괜찮았다.


돈 있는 놈들이야 PX에서 과자며 훈제 닭고기며, 황도 통조림 등을 사 먹겠지만, 돈 아까워서 사 먹지 못하는 놈들이 대부분이었다.


 


추석 명절 며칠 전에 보급 수령을 나간 동기놈이 특식을 받아 왔다. 받아 온 특식은 일단 창고에 넣어 두고 배급 계획을 세우는데, 대대 인원과 받아 온 특식이 딱 맞거나 약간 남는 것이 보통이다.


헌데 어찌된 영문인지, 다른 것들은 수량이 조금씩 남았는데, 초코파이 개수가 애매했다. 본래 1인당 2개씩 돌아가야 맞는데, 1인당 2개씩 계산하니까 몇 십 개가 부족한 것이다. 사단 보급창에서 주는 놈이 잘못 줬거나, 받는 놈이 잘못 받아왔거나 둘 중 하나가 틀림없었다.


 


이 상황은 군수장교도 모르고, 군수과 선임하사도 모르고, 딱 둘, 서무병인 나와, 보급병인 동기놈만 알고 있었다.


우리 둘은 할 수 없이 머리를 맡대고 고민을 하다가 결론을 내렸다. 대대 병력에게 초코파이를 1개씩만 주기로.


1개씩만 주기로 하고나니, 반대로 300여 개의 초코파이가 남게 된 것이다. 이런 쉣따빡. 한편으로는 졸라 심장이 뛰고, 내장이 오그라들 것처럼 겁이 나기도 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꿈속에서나 먹어보던 초코파이의 산더미를 보며 침이 마구 넘어가는 기쁨을 느끼기도 했다.


 


남은 초코파이 박스를 들키지 않게 하려고, 2종 창고 천정에 숨겨두었다. 명절 특식은 우리가 계획한대로 나눠주었고, 다행히 우리를 의심하는 놈들은 아무도 없었다.


분명 우리 옆에 나란히 있는 대대에서도 똑같이 명절 특식을 나눠주었을텐데,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어처구니 없는 짓을 멍청하다 못해 뻔뻔하게 저질렀던 것이다.


 


그 뒤로, 동기놈과 나는 300여 개의 증거(초코파이)를 인멸하기 위해 눈물나는 노력을 했다. 일단 한 박스는 취사부 고참에게 상납하고, 남은 물량은 동기놈과 내가 밤에 보초를 나갈 때 몇 개씩 가슴에 품고 나가서 먹어치운 것이다.


대대 울타리를 따라 초소가 있는데, 둘이 서는 경우는 거의 없다. 위병소에만 둘이 있고, 나머지는 혼자 서는 초소여서 늦은 밤이나 새벽에는 좀 무섭기도 하지만 - 실제로 귀신 비슷한 형상을 본 적도 있었다 - 그보다는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물도 없이 초코파이를 꾸역꾸역 먹어치워야 하는 시간이 더 괴로웠다.


 



 


맛있는 초코파이를 괴롭게 먹었다는 것이 어불성설이지만, 그것도 많이 먹으니까 좀 질리더라. 아무리 군대라고는 해도. 하여간 거의 매일 밤마다 동기놈과 둘이 초코파이를 꺼내 먹어치우다 보니 어느날 초코파이가 동이 났다. 아쉬움보다 기쁨이 더 컸다.


 


그 사건이 있은 지 벌써 26년이 지났다. 이제는 공소시효도 지났을 거라 생각하고 뒤늦은 자백을 하니 마음이 시원하다. 몇 년 전에 군수과 선임하사로 함께 근무했던 분의 따님 결혼식이 명동성당에서 있었는데, 이 양반이 마당발이라 비록 하사관 출신이지만 군바리 하객이 엄청나게 많이 왔다.


내가 현역으로 있을 때 모셨던 대대장 두 분을 비롯해, 당시 하사관들-중사, 상사-이 거의 다 한 자리에 모였다. 2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났어도 찬찬히 보니 모두 낯익은 얼굴이더라. 그때는 말 한마디에 원산폭격을 하고, 쪼인트를 까였지만 시간이 지나니 감정도 많이 누그러지고, 미운정도 정이라고 다들 반갑기만 하더라.


 


사병출신으로는 우리 군번들 뿐이었는데, 우리 4월 군번들이 그래도 장교며 하사관들과 잘 어울리고, 전역하고 나서도 계속 만났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군대가 좋았다거나 뭐 그런 건 아니고, 국가에 의해 끌려가기는 했지만, 거기도 다 사람 사는 곳이라서, 기쁘거나 슬픈 추억들이 있을 수밖에 없지 않겠냐는 생각에 가볍게 끄적였다. 젊었던 시절에 겪은 빛바랜, 그러나 소중한 추억이다.


 


 


그냥불패 불타는오겹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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