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2009.12.08.화요일


알려지지않은주시자


 


1. 상황정리


 


일단 기사 세 개 연달아 읽어 주셨으면 한다.


 


문제의 시발점, 중앙일보 12월 4일 톱기사  
딴지독투 정치불패의 딴지메롱님이 쓰신 기사 
이건 중앙일보의 지원사격 

딴지메롱님을 비롯한 네티즌 여러분들께 경의를 표한다. 난 다른데 신경이 팔려 그 부분은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나름 한국을 대표하는 일간지의 기사인데 서스펜스 탐정물에서나 써먹던 열차시간표 시차를 이용한 트릭을 숨기고 있었을 줄 누가 알았겠나. 이야말로 다이내믹 코리아 리바이벌. 이제 신문을 읽을때도 에거서 크리스티 소설을 읽는 것과 비슷한 긴장감을 가지고 글을 읽어야 한단 말인가...


 


양심선언부터 하고 들어가겠다. 솔직히, 중앙일보의 이번 신동문예(아직 봄은 아니지) 출품작이 거의 픽션일 거라는 심증을 가지기 전엔 이 글 쓸까 말까 꽤나 고민을 했었다. 억의 하나 사실이라면, 그 젊은 친구가 참 안됐긴 하기 때문이다. 이건 입에 발린 말이 아니라 이 나이 먹도록 학교 식당밥 먹고 있는 인간이 씁쓸한 맘에 주절대는 넉두리다. 회사를 다니면 엄청 중요한 프레젠이나 회의를 제껴도 어찌 빌어 볼 구석이라도 있겠지. 학위하나 바라보고 먹물 마시고 있는 인간들에게 '그 날'에 발생할 수 있는 각종의 다양한 사고들은 더도덜도 말고 악몽이다. 뭐, 인생사 다 외줄타기이긴 하다만.


 


이제 약간이나마 맘을 놓고 하고 싶었던 말들을 좀 해봤으면 한다. 일단은 중앙일보의 저 기사가 사실이라는 가정하에 글을 써 보겠다.


 



2. 제목은 글의 반이 아니라 90%다


 


글쟁이라면 저 아라비아 숫자 부분의 정확한 수치는 다를 지언정(대략 51-99사이의 숫자가 저기에 들어간다) 비슷한 말을 한 번 쯤은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난 아직 글쟁이라 할 만한 인간은 아니고 글쟁이 견습생쯤 된다만, 저 말은 일찍부터 들어왔다.


 


솔직히 말해서, 정말 활자중독이나 어마어마하게 공부를 좋아하는 인간을 제외하면 남이 쓴 긴 글을 좋아라하고 일일이 다 읽어줄 사람은 요즘 세상에 잘 없다. 제목과 글에 삽입된 이미지(주로 사진)을 통해서 대충 읽고 자기 맘대로 해석하곤 글 다 읽었다고 생각하는 게 대부분이지. 나라고 예외는 아니며, 그런 만큼 글을 쓸때는 언제나 제목에 신경을 쓴다. 근데, 이번 중앙일보 기사의 '제목'은 정말 걸작 중에서도 걸작이다.


 


파업으로 열차 멈춘 그날 어느 고교생 꿈도 멈췄다.


 


해석하자면, '파업 때문에, 100% 멀쩡히 운행할 수 있었고 운행 해야하며 운행하지 않으면 큰 일 날 열차가 (반복하지만, 오로지 파업 때문에) 멈췄다'. 따라서, 파업한 인간들은 한 고교생의 꿈을 짓밟은 나쁜 새끼들이고, 파업에 동조한 배부른 노동자계급도 다 쓰레기다. 너희들 모두 반성하고 돈으로 보상해라. 뭐 이런 논리 전개가 되겠다.


 




이제 기사 다시 보자. 강조는 내가 한 거다.


 


이군은 27일 오전 7시 소사역 플랫폼에서 전철을 기다렸다. 서울대 농생명공학과의 2차 전형인 면접을 보기 위해 나선 길이었다. 그는 1차전형을 통과한 상태였다. 하지만 10분, 20분, 시간은 흘러가는데 열차가 오지 않았다. 그때 ‘구로역 전동차 사고로 열차가 지연되고 있습니다 ’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구로역의 이날 사고는 철도 파업 이틀째를 맞아 투입된 대체인력인 군 기관사가 구로역의 지리를 몰라서 생겼다. 이 때문에 인천과 수원발 청량리행 모든 열차가 40~60분가량 지연됐다...이하생략 20091204 중앙일보 1면. 


 


강조한 부분 다시 한 번 인용한다.


 


구로역의 이날 사고는 철도 파업 이틀째를 맞아 투입된 대체인력인 군 기관사가 구로역의 지리를 몰라서 생겼다.



감이 오시나?


 


이날 발생한 열차 운행 중단은, '사고'로 인한 거였다. 반복한다. 사고라고.


 


여기서 국어사전 뒤져서 사고의 정의까지 따지지 않아도 될거다. 이제 이 사건을 상식적인 수준에서 다시 정리해 보자.


 


'열차노조의 파업이 진행중이던 어느 날 아침, 파업중이지만 고객불편을 최소화 하기 위해 열차는 기본적인 운행은 하고 있었다. 다만 대체인력의 지형에 대한 인지도가 기존 노동자에 비해 떨어지기는 했다. 그러던 차에, 사고가 발생했다'.


 


이걸 찬찬히 분석하면 이런 이야기가 된다. 즉, 그 날 발생한 사고는 파업중이던 노조가 철로를 끊어놓거나 열차를 뒤집어놓아서 생긴 게 아니란 거다. 대체인력이 구로역의 지리를 몰라서 생겼다는데, 이런 평가는 적어도 일간지 기자가 덤덤하게 쓸 수 있을 정도의 문장은 아니다. 해당 열차를 운전한 기관사가 저런 '변명'을 한 건지, 아니면 지리만 잘 알고 있었다면 100% 회피할 수 있었던 사고라고 증명을 하던지, 최소한의 인과관계는 밝혀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냥 이런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열차노조 파업이 매우 맘에 들지 않던 차에, 마침 사고가 발생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네. 어라? 대체인력이 열차를 운행하고 있었군. 보나마나 지리를 잘 몰라서 이런 일이 벌어졌을 거야. 아무렴, 숙련된 노동자들이 닥치고 일하고 있었으면 이런 일이 생길 리가 없지. 역시 파업은 나쁜거야. 기사 써서 칭찬 받자'


 


우린 이런걸 '주관적인 판단을 객관적인 사실과 섞어서 여론을 조작한다'라는 긴 표현을 써서 부르며,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이런 행위를 매우 싫어라 한다.



 



3. 언론 플레이


 


중앙일보는 이런 사실들을 당연히 알고 있었을 거다. 설마 전원 다 나보다 바보로 구성된 언론사가 한국에 존재하진 않겠지. 노조가 철로를 끊은 것도 열차를 뒤집은 것도 아니오 그냥 사고로 열차 운행에 차질이 생긴 거라면, 이건 그들이 주장하고 싶은 '파업 때문에 인생 끝장나는 사람들도 있다'는 식의 여론몰이에 써먹기엔 좀 약한 떡밥이라는 거다.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그날 아침시간에 마침 이제 처음으로 혼자 근무를 돌기 시작한 비숙련 기관사가 그 열차를 운행하다 똑같은 사고를 냈을 수도 있고, 숙련된 기관사가 잠시잠깐 실수를 범해 똑같은 사고를 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게 '사고'라면 말이다.


 


그리고 이것도 매우 당연한 소리다만, 해당 열차를 운행한 군 기관사가 운 좋게(혹은 다행히) 실수를 하지 않았다면 이번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을 거다. 그를 탓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만, 자격이 있는 기관사가 운행을 하고 있었으니 아아주 약간의 행운만 따라주었다면 정상적인 운행을 했을 확률이 매우매우 높았을 거라는 건 누구나 동의하지 않을까. 결국, 이 모든 변수를 따진다면 사고는 어차피 발생할 수도 있었고 발생하지 않을 수도 있었단 말이 된다. 다만 확률이 많고 적고의 문제일 뿐이지.
 
근데 그들은 가히 노벨 문학상을 받아도 될만한 제목, '파업으로 열차 멈춘...'이라는 타이틀로 한 방에 논리적 열세를 뒤집어 엎어버렸다. 제목을 저렇게 적으면 그냥 저 말이 사실이 된다. 그 날 한 학생이 청운의 꿈을 품고 서울대를 향해 타고 갔어야 할 열차는, '파업만 하지 않았더라면 100% 발생하지 않았을, 그리고 100% 파업 때문에 발생한' 사고 때문에 멈춰버린 것이다. 난 중앙일보 기자 중에 지인은 없지만 그들 중 한 분이 키우시는 개 이름은 알 거 같다. 아마 '인과관계'일거다. 요크셔 테리어 일려나.


 



 


이 기사 맨 처음에 링크한 기사들 중에 세 번째 지원사격 기사를 다시 한 번 읽어봐 주시길 바란다. 첫 기사가 나가고 22시간 정도가 지나서 나온 기산데, 그 사이 참 많이도 취재 하셨다. 손배소송을 내겠다는 변호사... 배포가 대단하신 분이시다. 내가 저 위에서 지적한 인과관계를 증명하실 자신이 있으신가 보군. 나머지 분들은 그렇다 치고, 내가 참 재미있게 생각하는 건 이 지원사격 기사의 첫 부분이다.


 


'철도노조 파업으로 열차가 멈추는 바람에'


 


두 번째 기사부터 이런식으로 인용을 해 버리면, 그 다음 부터는 그냥 읽는 사람 책임이다. 만약 이 기사부터 읽은 사람이라면 노조가 철로 위에 들어눕거나 열차 바퀴를 빼 버리는 장면부터 먼저 상상하지 않을까?



 


4. 상식을 이야기 하자


 


(1)이 군의 안타까운 사연이 100% 사실이라고 전제를 한다면, 내 입장은 이렇다.


 


그 젊은 친구의 사정을 생각하면, 정말 말로 표현하기 힘들 만큼 안타까운 일이다. 뭐라 드릴 말씀이 없다. 파업이 없었다면 사고가 발생할 확률도 줄었을 거라는 말을 하신다면,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은 딴지일보를 통해서 나에게 메일이라도 주신다면 담에 한국 들어갈 때 밥이라도(아직 미성년자시니 술은 안 되고) 한 끼 사 주겠다는 말 밖엔 없다. 하지만, 희망만은 아직 버리지 않아 주셨으면 좋겠다. 남들보다 5년 이상 늦게 학교를 다니고 있는 못난 넘 입장에서 이야기 해 주자면, 인생은 한 번의 불행으로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릴 만큼 깨지기 쉬운 유리병은 아니다(그럴 거였으면 난 이미 4번 정도 부활했어야 한다). 남들보다 재능이 있고 남들보다 수십배 노력해 오신 분일테니, 꼭 좋은 결과로 보답을 받으실 날이 있으실 거다.


 


하지만, 그걸 이딴식으로 이용한 중앙일보의 행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댁들은 이 청년의 불행이 안타까워서가 아니라 그저 '잘 조작하면 이용해 먹을 수 있는 떡밥이니' 언론플레이 한 번 해 본거다. 어떻게 같은 신문사의 다음날 기사 부터 '사고' 이야기를 이렇게 삭제하고 자기들 원하는 방향으로 편집할 수가 있나. 언론인의 가장 기본적인 양심도 잊어버린 건가.


 



(2)만약 이것이 중앙일보의 소설이었다면, 일단 딴지 DB에서 시벌교황님의 옥음을 파내어 풀코스로 들려준 뒤에, 이렇게 이야기 하고 싶다.


 


프랑스 언론 같은 수준은 바라지도 않는다. 노동자의 기본권이 왜 중요한지, 왜 근대 이후의 여러나라 헌법이 노동자에게 단결권과 단체교섭권을 보장하고 있는지 고찰한 뒤에, '원래 파업은 사람들 불편하라고 하는 거다. 그래야 노동자와 노동의 중요성을 깨닫고 고용주들도 정신 차려서 제대로 노동자들 대접하지 않겠나. 노동자가 자발적으로 쉬는데 세상에 불편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그런 건 파업이 아니라 파산이라고 한다'같은 알기 쉬운 기사를 쓰라는 건 아니란 말이다. 댁들이나 우리나 장사 하루이틀 하는 것도 아니고, 서로 알만큼 알지 않나.


 


솔직히 조중동에게 언론인의 양심을 이야기하는 건 20년전 형사드라마의 대사 같은 거라는 걸 나도 알고 잘 있다. 도둑을 쫓으며 형사가 외친다. '거기 서!!!' 이영도 님은 명저 '폴라리스 랩소디'에서 이와 비슷한 장면을 이렇게 묘사하셨다. '서란다고 진짜 서면, 아마 서라고 외친 너도 깜짝 놀랄걸'.


 


내가 여기서 '니들도 언론인 어쩌고 이전에 글 써서 밥먹고 사는 사람들이니, 글쟁이로서 최소한의 양심은 가져봐라'라고 해서 진짜 내일부터 조중동에 상식적인 기사가 올라오기 시작하면 아마 이 글 쓴 내가 제일 깜짝 놀랄거다. 내가 그런 기적을 바라는건 아니다. 하지만 말이다...


 


좀 쿨하게 놀아보자. 쪽팔리지 않나? 서울대. 사립대는 등록금 비싸서 못가요. 전교 1등이예요. 자가용 없는 부모가 죄인이죠. 교장 선생님도 걔는 꼭 붙었을 거라고 이야기 하셨어요. 요즘 중학생이 싸이월드에 단편소설을 써도 이거 보단 잘 쓰겠다.


 


이런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이건 정말이지 불가항력이니 교통기관의 책임자가 발급하는 '지연증명서'같은 걸 개찰구에서 나눠주고 그걸 가져가면 각급 학교나 법인도 지각을 인정해 주는 사회 시스템 마련이 시급하다는 이야기는 그냥 우리가 기사로 쓸 게. 니들은 소설이나 좀 더 챙겨보고 기왕 소설 쓸 거 좀 잘 써 봐라. 사람이 반론할 맛도 좀 나게.


 


언제까지 저런식으로 살건지, 좀 궁금해지긴 한다. 씁쓸한 노릇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