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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11.금요일


화성


 



 


설마 하던 설마가 사람을 잡았다. 우려하던 일이 현실이 된 것이다. 엄기영 사장과 보조 세력은 남고 MBC를 움직이던 주축들의 사표는 수리되었다. 숫자로만 보면 반은 살리고 반은 죽인 셈이지만 방송의 핵심이라할 수 있는 편성,보도, 제작쪽이 통째로 날아간 걸 감안하면 이번 방문진의 결정은 공영방송을 길들이고 자신들의 꼭두각시로 만들겠다는 가카의 의지를 확고하게 드러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를 접한 국민들은 혼란스럽다. 엄기영 사장이 있어 이만큼이라도 MBC를 지킬 수 있었다고 믿었었는데... 그나마 엄기영 사장이 살아남은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하는지, 아니면 자신의 수족을 버리면서까지 살아남은 엄기영 사장의 태도를 의심해야 하는지... 사실 이번 일을 어느정도 예상했던 나역시도 속보를 접하고서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사실 엄기영 사장은 사장이라는 '어색한' 직함 보다는 MBC를 대표하는 앵커로서,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던 이웃집 아저씨 같은 친근한 이미지로 각인되어진 인물이다. 그렇기에 그 이유가 무엇이던간에 그런 사람이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며 가카의 품에 안긴다는 생각은 상상만으로도 불쾌해지는 그림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솔직히 엄기영 사장이 정연주 사장처럼 맞짱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자기가 평생을 몸담았던 MBC라는 조직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이라도 하길 바랬었다. 점령군 같은 방문진의 강압에 못이겨 중요 임원진과 함께 일괄사표를 낼 수 밖에 없었다면, 최소한 어제 방문진 이사회가 열리기 직전에라도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으니 나를 정리하는 선에서 이번 일을 처리해주기 바란다는' 간단한 성명서라도 하나 발표하면서 자신의 후배이자 자신을 믿고 따랐던 임원진을 보호하려는 노력을 기대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기대는 한 인간의 아름다운 뒷모습을 기대하는 감상적인 바람에 불과했음을 바로 깨닫게 되었다. 정치라는 흙탕물 속에서 죽고 죽이는 게임을 하는 그들을 향해 '그래도 너만은'을 외치다니. 이 나이 먹도록 철이 덜 들어 아직까지도 사람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린 탓이리라.


 


엄기영 사장은 유임되었지만 실질적인 사장으로서의 생명은 이미 끝이났고 바지사장에 불과한 그 남은 임기도 언제든 내 놓아야 하는 초라한 신세가 되어버렸다. 그래서인지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엄사장의 선택에 여전히 의구심이 든다. 그놈의 권력이 무엇이길래 평생을 몸담았던 조직에서 존경받고 국민으로부터 사랑받던 한사람을 저렇게 추한 모습으로 변질시켜놓을 수 있는건지... 한때는 고뇌와 번민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그의 흰머리가 오늘따라 '회색'으로만 느껴지는걸 보니 사람 마음이란 게 참으로 간사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다면 엄기영 사장 개인의 문제는 그렇다치고. 이번 결정을 통해서 저들이 노리는 것은 무엇일까. 이 '음모'의 정해진 다음 수순을 그려봄으로써 그 노림수가 무엇인지 살펴보자.


 


먼저 방문진은 빠른 시간내에 임시주총을 개최하여, 이번 이사진의 결정에 대한 내용을 문서화하고 엄기영사장에 대한 유임 역시 '조건부'라는 것을 각인 시켜 새로운 경영진으로 하여금 현재의 MBC를 대대적으로 손 볼 것이 분명해 보인다.


 


 



 


공정성과 객관성이라는 허울좋은 명분하에 그동안 여러차레 가카의 심기를 건드린 PD 수첩, 뉴스후, 2580 같은 시사보도 프로그램을 하나로 통폐합 시키고, 이에 반대하는 노조에 대해서도 경영권 개입이라는 구실로 기존에 체결된 단체협약를 수정하려 들 것이다. 그것만이 아니다. 방문진에서 요구하고 있는 내년도 영업이익 5% 달성이라는 목표를 위해서는 구조조정을 통한 인원 감축도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벌써부터 총파업을 말하고 있는 노조를 비롯한 MBC 내부의 저항도 심할 것이고, 야당을 비롯한시민단체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다 예견된 일이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 엄기영 사장을 유임시킨 것이다. 무슨 말이냐고?


 


만약, 이번에 엄사장을 해임시키고 새로운 사장이 임명하여 똑같은 일을 진행시켰다고 가정해보자. 그렇게 되면 이건 정권이 방송을 장악하려는 의도가 그대로 노출되어서 정권과 노조, 정권과 야당 및 시민단체의 싸움이 된다. 그리고 그 여파는 지난번 KBS에서 김제동을 퇴출시켰을 때처럼 국민들의 반대 여론에 부딪히게 될 것이고 지방선거를 앞두고 또다시 커다란 정치적인 부담을 안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엄사장을 유임시킴으로써, 앞으로 불거져 나올 모든 문제는 'MBC 내부 문제'로 만들 수 있게 되었다. '경영진과 노조의 지엽적인 문제'로 말이다.


 


사실, 이런 경우를 우리는 계속해서 보아왔다.


 


미디어법 문제는 기존의 거대 방송국과 신규로 방송사업에 진입하려는 기업들간의 문제로, 용산 참사는 재개발업체와 철거민의 이권 싸움으로, 세종시 문제는 수도권과 충청권의 지역 이기주의 문제로, 철도 파업 문제는 안정된 직장에서 일하는 귀족 노조의 한심한 밥그릇 타령으로...... 한마디로 말해서 자기들이 계획한 싸움에서 자기들은 쏙 빠진 상태에서 '내부 분열에 의한 그들만의 싸움'으로 만들어 국민 여론을 호도하겠다는 고도의 술책인 것이다.  


 


따라서 어떠한 일이 있어도 엄기영 사장에게 화살을 겨누어서는 안된다. 엄밀히 말하면 엄기영 사장도 이번 일로 인한 피해자에 불과하기 때문이고,  그런 그를  배신자로 낙인찍어 적으로 규정하는 것이야 말로 저들이 노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사태 후 엄기영 사장이 아닌, 김우룡 이사장과 여권 이사들의 퇴진을 위해 적극 나설 것이라고 밝힌 노조의 입장은 분명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본다. 물론 그동안 MBC를 함께 버텨온 한 축을 잃어버린 마당이기에 지금보다 더 힘겨운 싸움이 될 것이 분명해 보이지만...


 



 


지방 선거가 다가오면서 가카의 방송장악 음모는 더 노골화 될 것이다. KBS와 YTN에 이어 MBC까지 접수한 그들은 이제 그 방송을 무기로 국민의 눈을 가리는 데 만족하지 않고, 4대강 삽질을 비롯해 가카가 벌이는 사업을  알리기 위한 홍보방송으로 만들 것이다. 그리하여 가카가 존경하는 우리 국민들은 전국의 산과 강으로도 모자라 이젠 안방에서도 TV만 켜면 삽질하는 모습을 어느 채널에서든 보게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개같은 꼴을 보기 싫다면 이젠 국민들이 직접 나서는 수밖에 없다고,  MBC노조가 아무리 KBS와는 다른 강성이라 할지라도 국민들의 힘과 성원이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한낱 힘없는 일개 노조에 불과할 뿐이라고, 어,어 하면서 뒷걸음질만 쳐오다가 두 명의 전직 대통령까지 잃은 마당에 우리에게 더이상 물러설 곳이란 없다고......  그렇게, 그렇게 힘주어 말하고 싶지만...


 


과연 현실은 어떠한가. 저들의 아전인수식 방법을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50%에 가까운 가까운 가카의 지지율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대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놈의 무력감과 패배감은 또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80년대 불렀던 운동가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조금만 더 쳐다오, 시퍼렇게 날이 설 때까지...'


 


지금 우리에게 대안은 없다. 그렇다고 제2의 노무현이 나타나주길 기대해서도 안 된다. 또 누굴 죽이려고...  너도, 나도 저들이 망나니처럼 휘두르는 칼날에 목 내밀고 당하고 또 당하면서, 어디가 바닥인지도 모를 저 깊은 수렁의 끝에서 다시 모여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수밖에.


 



 


인간 엄기영에게 돌을 던지기 전에 전에 너와 나를 한번 뒤돌아보자. 시발아, 저들이 그의 옆구리에 칼을 들이대는 걸 지켜 보면서 너는 그시간에 과연 뭘 했니. 소녀시대의 허벅지나 곁눈으로 훔쳐본 주제에...  


 


절망은 이제부터 시작이니 희망은 아직 멀고 멀었다.


 


 


화성(mungtung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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