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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의 자유

2009-12-10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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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16.수요일


산하


 


지금은 쓰레기통에 처박힌 지 며칠이나 지났지만 정성스럽게 타이핑된 제보 노트를 오랫 동안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북한산 아래의 주택가 속에 음습하게 숨어 있는 '한님교'라는 사이비 종교의 아지트에 사는 한 할머니가 얼굴이 시커멓게 멍든 채 살아가고 있다는 제보였지요.  그 멍든 얼굴을 하고서 할머니는 산신령 지팡이를 짚고 새벽 1시까지 탁발(?)을 다니며 시주를 모은다고 했습니다.   

한님교라는 종교를 검색해 보니 유명한 종교문제연구소의 자료에 나와 있는, 나름 유명세를 탄 종교입니다.  교주가 사기 혐의로 콩밥도 먹었더군요.  띵호와를 아멘처럼 외치고 지팡이에 신령이 깃든다고 믿는 이 희한한 사이비 종교의 신도는 딱 두 명이라고 했습니다. 할머니와 나이 마흔 가량의 남자.  그런데 교주의 집에는 한 명이 더 살고 있었습니다.  교주의 딸이었지요.  그런데 이 딸은 교주에 따르면 "예수 귀신"이 씌어 정신질환 상태였습니다.  할머니에 따르면 자신의 멍은 이 딸과 아버지 교주님의 싸움을 말리다가 얻어맞아 생긴 상처라고 합니다. 


 


탁발 다니는 할머니를 차에 태우고 "영적으로 그쪽에 관심이 많다"는 둥 "꿈에 한님을 뵈었다"는 둥 피노키오라면 코가 아르헨티나에 닿을 거짓말을 해 대며 할머니의 환심을 사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할머니의 답변은 의외로 명쾌하고, 여든을 넘은 연세치고는 놀라울 정도로 영민하셨습니다.   "신앙이란 네가 선택하는 것이요, 언제든지 문은 열려 있나니 내가 있을 때 방문하면 한님께 아뢰어 드리겠다."  그리고 여유로이 웃으시며 던지는 한 마디.  "오늘 드라이브 잘 하였구나.  고맙다. "

어찌나 기품 넘치게 대답을 하시는지 사이비 종교 교주의 꾐에 빠진 꾀죄죄하고 갑갑한 할머니를 연상하고 있던 저는 적잖이 당황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말을 더듬거리며 내일 아침에 찾아뵙겠다 했더니 할머니 어김없이 당당하게 응대하십니다.   "정성을 잊지 말아라. 한님을 뵈올 때는 정성이 필요한 거다.  얼마라고 정할 것은 없지만 성의껏 가지고 오너라." 


 



 


다음 날 아침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한님을 찾아뵈었습니다.(?)  미국의 브라운 대학(?)부터 중국의 북경대학(?)까지 종교학 박사를 땄노라는 종잇장들이 도배를 이룬 거실에 엄숙히 좌정한 단군 수염의 할아버지를 만난 겁니다.   그나마 우리는 손님이라고 거실 소파에 앉았지만 할머니는 무릎을 꿇고 할아버지 아니 한님의 말을 경청했지요. 

하지만 한님은 할머니와는 딴판이었습니다.  하는 말부터 사짜 냄새가 등천을 했고, 역시 여든을 넘은 나이라 그런지 앞뒤가 안맞고, 발음조차 여기 저기 바람 구멍이 났으니까요.  동년배쯤인 할머니가 보여 주신 그 기품어린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웠고, 더구나 그 할머니가 받들어모시는 교주의 카리스마 따위는 눈 씻고 없었습니다.  웃음을 참지 못해 킬킬거리는데 할머니가 싸늘하게 쳐다보시더군요.  "무례하다........"   

그런데 교주의 미친 딸이 갑자기 등장했습니다. 다짜고짜 제게 나가라고 아우성을 치더니 교주가 건넨 한님교 팜플렛을 내놓으라고 덤비더군요.   당신이 무슨 권리로 한님이 주신 걸 뺐느냐고 단호하게 거절했더니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 여자가 그대로 제 손가락을 깨물어 버린 겁니다.   제가 조금만 더 버텼으면 119를 부르는 사태가 빚어졌을지도 모를만큼 그 이빨은 사나왔고 사정이 없었습니다.   교주는 지팡이를 휘두르면서 딸에게 덤볐고 할머니는 그 사이에 또 끼었더군요.   저러다가 얼굴이 바다같이 검푸르게 되었었구나.....

가까스로 빠져나와 이 할머니를 어찌 구할 것인가 자문을 구했는데 전문가들의 의견은 매우 비관적이었습니다.  이 한님교 자료를 보아하니 전 재산을 다 바치고 자식들과도 인연을 끊어 버린 한 여인이 있었던 바, 이 할머니로 추정되었습니다. 할머니 자신 한님교에 입문한 지 30년이라 했으니까요.  즉 늙어서 오갈데 없어서 한님교에 몸을 의탁하는 정도가 아니라 거의 예수와 베드로의 관계로 보인다는 거지요.  대한민국에 종교의 자유가 있는 이상, 그들의 종교적 광기가 자해나 타해의 위협이 없는 이상 누구도 개입하기 어렵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했습니다.  아니 얼굴에 시커멓게 멍들어 가면서 탁발하며 교주 먹여 살리는 건 어떡하냐고 반문했더니 할머니가 치매끼도 없고, 판단 능력이 있다고 한다면 그걸 누가 말리겠나는 재반문이 돌아왔습니다.   "그렇게 살다 돌아가실 수 밖에 없다"가 공통된 의견이었습니다.   딱 하나 그 자식들이 나서면 가능하겠지만 이미 자식들이 두 손 두 발 다 든 상황일 것이 뻔하니까요. 
일종의 한계였습니다. 어찌 할 수 없는.  

평생 처음으로 원숙한 여인에게 깨물린 손가락을 움켜쥐고 그날 대학 동창 모임에 나갔었습니다.  간만의 모임이라 이게 10년만이냐 20년만이냐가 화제에 자주 올랐었습니다.  불콰하니 술이 오른 가운데 정치 얘기가 잠깐 나왔을 때. 게임 해설자로 유명하고 가끔은 거리에서 사인 요청도 받는 중문과 동기가 이런 질문을 해 옵니다.  

"야 근데 아직도 주사파가 있냐? 진짜 옛날처럼 수령님 찾고 북한의 혁명 노선을 따른다는 넘들이 지금도 있냐?"   

처음에는 웃어 넘기려 했는데 그 표정이 워낙 진지하여 녀석보다는 조금 사정에 밝은 친구들이 설명을 해 주었습니다.  진보세력이라는 담장 안에 여전히 똬리 틀고 있고, 당원 정보 긁어서 북한에 갖다바치는 만행도 저지르고 했다고.......   그 말을 들은 녀석이 더 심각한 표정을 짓더니 나는 꿈에도 몰랐던 옛날 얘기 하나를 들려 줍니다.  

"총학 선거 때였어.  재관이 때였나 영이 때였나 기억은 안나는데 NL이 선거에 졌어.  우리는 환호하면서 술 먹으러 갔고 NL 애들은 강당에 남아 있었지.   근데 내가 뭘 두고 왔었어.   그래서 술 먹다가 강당으로 돌아갔는데 야...... 난 정말 그때 그 광경을 잊을 수가 없네.    총학생회장 후보는 단상에 무슨 총통처럼 좌정하고 있고 선대위장인가 뭐인가 하여간 선배 하나가 열변을 토하고 있는데.......  우리의 정성이 부족했고 어쩌고 하면서..... 거기까진 좋아.  그런데 정말 한 백 명 되는 운동원들이 책상에 무릎 꿇고 앉아서 고개 숙이고 그 말을 듣고 있는 거야." 


 



 


설마...... 당시 꼴통 주사파들의 행동거지가 어떠하였는지, 그리고 지금도 모 사이트에서 개그맨보다 더 재미있게 해 주는 농악대 동기의 상태가 어떤지 잘 알고 있는 저도 설마 소리가 절로 튀어나왔습니다.   어찌 보면 요즘 대학생들의 선거판보다 더 믿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지금이야 총학생회장이란 것이 하나의 스팩이 된 지 오래고, 그 예산 주무르는 재미도 만만치 않으니 부정이 튀고 협박도 난무한다지만 20년 전 나름 "난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알아요 난 엥겔스도 알고요~~~"를 노래하던 자칭 지성인들이 책상에 올라가 선거 패배 때문에 준엄한 호통을 듣고 있었다? 

"나 그때 놓고 간 물건 못 가지고 나왔어.  걔들 틈새를 비집고 다니면서 물건 찾을 엄두가 안나더라.   내 눈이 의심되더라고.  거기 나 아는 놈들도 많았잖아.  나보다 똑똑한 놈들도 많았다고......  그런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고......." 


주사파가 있건 말건 일상을 개척하고 먹고 살고 애들 키우느라 세월 보낸 것은 다 마찬가지인 모임이었고, 특별히 거기에 관심을 둘 일도 아니었지만 그 에피소드는 얘기를 듣던 모든 사람들에게 오랜만에 맛보는 경악을 안기기에 충분했습니다.  그 뒤끝에 중문과 동기가 이렇게 말을 맺었습니다.  

 
"그런데 걔들이 아직도 그러고 있단 말이냐?  정말? " 

참으로 안타까운 일은 그러고 있다는 것이 틀린 답이 아니라는 거겠지요.   당장 이 얘기를 해 주면 "무릎 꿇고 올라간 게 그게 그렇게 이상하니?"라고 눈을 등잔같이 뜰 선배도 익히 알고 있고, 당원 정보 보고서를 북으로 올려 보낸 사람이 무슨 민주화 투쟁의 순교자인양 행세하는 것도 웃기는 짜장같은 사실이고, 탈북자의 정착을 도운 것이 "조국을 배반한 자들과 부화뇌동"한 것이라 우기면서 비토를 놓는 것이 '진보'씩이나 내세우는 '민주노동당' 간부 아니겠습니까.



물론 대한민국에는 종교의 자유가 있으니 한님을 믿든 장군님을 믿든 개의할 바는 아닙니다.   한님교같이 골방에 들어앉아 교주 하나 신도 하나가 짝짜꿍하고 있다면 "그냥 그렇게 살다가 돌아가신다 한들" 그들은 행복할 겁니다.   하지만 명백히 종교인이고, 그 믿음의 불가사의함에도 불구하고 국가보안법을 숙주로 삼은 기생충으로 살면서 그 믿음을 숨기고 '진보'를 논하는 것은 실로 희극스러운 비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괜찮은 우파"를 지향하고 언젠가 그런 날이 오리라 믿고 살면서도, 본의아니게(?!) 대한민국의 현실상 어쩔 수 없이(?!)  진보정당을 지지해야 한다고 믿는 저로서,  상식을 존중하고 광신을 경계하며,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을 비웃고, 한님교에 킬킬거리는 저로서, 가장 참아줄 수 없는 것은 진보의 역량과 역사가 이 종교인들 하나 설득하거나 녹여내지 못하고 있다는 슬픔이겠습니다.   당 실컷 만들어 놓고도 밀려드는 종교인들을 배겨내지 못하고 굴러온 돌에 차여나가는 박힌 돌이 되었다가 왜 니들은 같은 돌끼리 따로 노냐는 서러운 구박에 어깨에 힘 빠지고 마는 어이없음이겠습니다.  결국 우리는 같은 돌~~~이라며 어깨동무라도 해야 하는 작음 때문이겠습니다.   


 


무릎 꿇고 강당 책상에서 패배의 책임을 묵묵히 감내하던 친구들 (제일 골 때리는 건.... 총학생회장 후보는 뭐하는 짜장이길래 한님처럼 무대에 좌정한 채 그 꼬라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는 건지)이 대학을 떠난 지도 20년 가까와 오지만, 아직도 사이비 종교가 과반을 점하고 있는 '진보'를 생각하면 웬지 부끄럽기도 하고 한심하기도 하고, 참담하기도 하고 우습기도 합니다.  한심하고 우습기만 하면 좋겠는데 부끄럽고 참담한 심정도 어쩔 수는 없더군요.  그렇게 부끄럽고 참담할 때는 내 손가락을 깨문 미친년이 부럽습니다.   손가락을 깨물어 주고 싶은 사람들이 꽤 많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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