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6일 CNN의 보도를 보면서 조금 당황스러웠다.
“비용 절감을 위해 동물들을 순서대로 안락사시킨 다음 다른 동물들의 먹이로 공급할 계획을 준비 중이다.”
독일 북부에 위치한 노이뮌스터 동물원의 계획이다. 코로나 19 때문에 국가 단위로 봉쇄 조치가 이어졌고, 사회에서는 사회적 거리 두기 차원으로 공공장소에 사람들이 모이는 걸 국가가 통제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동물원은 ‘최악’의 위기에 빠져들게 됐다.
노이뮌스터 동물원은 국가적 봉쇄 조치 속에서 수익을 낼 수 없었다. 이렇게 되니 후원금으로만 근근이 버텨왔는데, 이걸로는 동물들 사료값 내기에도 부족했던 거다.
이 동물원에만 100여 종 700여 마리의 동물이 살고 있는데, 이대로 가다간 동물원의 모든 동물들이 굶어 죽을 수도 있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 동물원 원장이 최악의 사태를 대비한 비장의 카드를 꺼내 든 거다.
“우리는 시(市)로부터 그 어떤 지원도 받지 못했다. 주(州)에 요청했던 자금도 받지 못했다.”
추측을 해보자면, 노이뮌스터 동물원 원장은 이 ‘최종계획’을 꺼내서 언론플레이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절박한 사정임을 인정한다. 그리고 이 최종계획이 전혀 현실성이 없거나 위협용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독일’이란 나라가 이 계획을 실제로 실행할 수밖에 없을 만큼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보이진 않는다. 다만, 이 이야기의 핵심은,
“인간이 살기에 빠듯해진 상황에서 동물들은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다.”
이다. 이미 독일뿐만 아니라 수많은 유럽국가의 동물원에서 노이뮌스터 동물원과 같은 절박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동물원에 있는 코끼리는 하루 평균 100킬로그램을 먹어 치운다. 호랑이는 평균적으로 닭 2킬로그램, 소고기 1킬로그램을 먹는다. 이들 식사비가 얼마나 할지 대충 가늠이 갈 것이다. 310여 종 3,600여 마리의 동물이 있는 서울대공원의 1년 먹이 구입비가 20억 원이 넘어가는 걸 본다면, 노이뮌스터 동물원의 사정을 대충 짐작할 수 있을 거다.
코로나는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들까지도 힘들게 만들고 있다.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지금 상황이 전쟁과 너무 흡사하기 때문이다. 70여 년 전 동물들은 인류 최대의 전쟁 앞에서 지금과 같이 죽음의 위협을 느껴야 했다.
베를린 동물원의 참상
베를린 동물원은 지금도 여행객들의 명소다. 독일 최초의 동물원으로(1844년 8월 1일 설립, 1913년에는 수족관도 개관됐다) 티어가르텐(Großer Tiergarten : 베를린의 센트럴 파크라고 생각하면 된다. 원래 귀족들의 사냥터였으나 공원으로 바꿔서 일반에 개방됐다)에 있으며, 면적은 34만 제곱미터에 이르는 크기다.
그런데 전쟁이 터졌다.
1차 대전 때에는 별문제가 없었다. 베를린이 점령된 것도 아니었고, 전쟁은 프랑스 영토에서 벌어졌다. 독일군은 항복하는 그 날까지 프랑스 영토에서 싸웠다. 베를린이 위협받지 않았다. 문제는 2차 대전이었다.
1차 대전 때까지만 하더라도 2차원 공간에서의 전투가 주를 이뤘지만(물론, 비행선이나 고타 폭격기 등으로 런던을 폭격하긴 했지만, 이건 예외적인 경우였다), 2차 대전은 이야기가 달랐다. 시작은 독일이었다. 영국 본토 항공전(Battle of Britain)으로 런던을 포함한 여러 도시가 독일의 공격을 받았다. 이때가 1940년 7월 10일이었다.
그리고 3년이 흐른 1943년 11월 18일 베를린 항공전이 시작된다. 영국 폭격기 부대의 수장인 아더 해리스(Arthur Travers Harris)가 두 팔 걷어붙이고, 베를린을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공언한 거다.
함부르크, 뉘른베르크로 재미를 본 아더 해리스는 독일 제3제국의 수도 베를린을 박살 내 전쟁 자체를 끝내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밝혔다. 미국 공군만 좀 거들어 준다면 베를린을 끝장낼 수 있다며 미군을 꼬드겼다.
결과만 보자면 실패로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1943년 11월 18일부터 1944년 3월 31일까지 영국 공군은 16번의 대규모 공습을 베를린에 가했다. 그러나 베를린에 입힌 손해보다 영국 본토 항공전 당시 런던이 입은 손해가 더 커 보였다.
아울러 영국 폭격기들의 손해도 컸다(1천 대 단위의 폭격기가 피해를 입었다). 아무리 수세에 몰렸다곤 하나 독일이었다. 독일의 수도 베를린은 공격은 받을지언정 무너지지는 않았다.
이 당시 독일은 동부 전선에 있었던 항공 세력들까지 가지고 와 본토 방어에 나섰다.
베를린 공습에 열 받은 히틀러는 베를린 동물원 자리에 ‘동물원 대공포탑Flakturm Tiergarten’을 세웠다. 고층빌딩을 올렸다고 해야 할까? 철근 콘크리트를 쳐 바른 이 건물은 12,8cm FlaK 2연장포 4문을 포함해 각종 구경의 대공포로 휘둘러 쳤다.
베를린 공방전 당시 이 대공포 덕분에 제국 의회 의사당을 공격하던 숱한 소련군 전차들이 당했다. 제국 의회 의사당을 함락할 수 있었던 건 이 동물원 대공포탑이 4월 30일 날 항복을 했기 때문이다. 놀라운 건 이 동물원 대공포탑을 해체하기 위해 연합국이 꽤 고생을 했다는 거다.
전쟁이 끝난 후 소련군이 한 번 철거를 시도했으나 실패했고, 영국 기술자들이 다시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결국 콘크리트 내 외벽에 4백 개 이상의 구멍을 뚫고, 약 35톤의 다이너마이트를 채워 넣고 나서야 간신히 무너뜨릴 수 있었다.
문제는 베를린에 있었던 동물들이다. 2차 대전 당시 베를린 동물원에 있던 동물들은 3,715마리였다. 이들 대부분이 베를린 폭격으로 죽었다. 이들은 폭탄의 직접적 폭발, 폭발에 의한 건물 붕괴, 화재, 화재에 의한 질식 등으로 죽게 된다.
그리고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동물들이 91마리였다. 이 중 몇 마리는 훗날 베를린 공방전 당시 티어가르텐 이곳저곳을 뛰어다니게 된다.
베를린 공방전 당시 소련군은 브란덴부르크 문을 거쳐 제국 의회 의사당을 점령하기 위해 모든 전력을 쏟아부었다. 이때 베를린 동물원에서 뛰쳐나온 사자와 호랑이를 목격했다는 ‘전설’이 지금도 흘러나오고 있다.
전쟁 후 베를린 동물원은 다시 문을 열게 된다. 그것도 2개나 말이다. 동독과 서독이 경쟁하듯이 동물원을 지었던 거다.
그리고 통일이 됐고, 독일의 베를린 동물원은 전 세계 동물원 중 가장 많은 종을 보유한 동물원이 됐다. 지금은 1,500여 종 1만7천여 마리의 동물을 사육하고 있다.
<현재 독일 베를린 동물원 입구>
여기까지만 보면 해피엔딩이라 말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전쟁과 동물원은 상당히 ‘불편한 관계’다. 앞에서 잠깐 언급했지만, 베를린 공방전 당시 티어가르텐 이곳저곳을 맹수들이 뛰어다녔다는 전설. 이걸 보고 뭘 느끼는 게 없는가?
“우리 안에 있는 맹수는 동물이지만, 우리 밖으로 뛰쳐나온 맹수는 야수가 된다.”
전쟁 통에 우리가 박살 나면, 이야기가 상당히 복잡해진다. 아울러 동물들의 ‘사료’ 문제도 고민해 봐야 한다.
전쟁 통에 어지간한 나라들도 배급제를 하는데(영국 같은 경우엔 전쟁이 끝나고도 한참 동안을 배급제로 연명했다), 동물들에게 돌아갈 고기가 얼마나 될까? 전시에 동물원의 동물들은 애물단지가 될 확률이 높다. 아니, 애물단지가 맞다. 만약 폭격으로 동물원 우리가 박살 나면?
지금으로부터 꼭 15년 전인 2005년 4월 20일 어린이 대공원의 코끼리 6마리가 탈출해 일대를 난장판으로 만든 사건이 있다. 우리 속의 동물이 언제 야수로 돌변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물며 평시에도 이런데, 전시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자꾸 동물원의 동물에 대해 비판적인 이야기를 하는 거 같아 미안하지만, 이건 전시 상황을 상정한 이야기다. 자연재난 상황에 버금가는, 아니, 그 이상의 재난이 벌어지는 게 전장 환경이다.
폭격으로 인해 동물들이 죽으면 그나마 나은 거다. 만약 동물을 가둬놓은 우리가 박살 난다면? 그다음은 인간과 동물들 간의 전쟁이 벌어지는 거다. 이걸 막기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은 동물원을 없애는 거다. 동물들은 자연으로 돌려보내면 되는 거다. 동물 복지를 위해서도, 혹시 모를 이상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서도 최선의 상황이다.
2차 대전 당시 독일과 함께 추축국의 한 축을 맡았던 일본. 이 일본의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일본은 독일과 다르게 냉정하게 동물과의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일본은 다른 여타의 전쟁 당사국과는 달리, 전혀 색다른 해결방법을 들고나왔다.
이런 ‘현실적 고민’을 실천적으로 해결한 나라라고 할까? 아니, 윤리관이나 생사관이 서양의 그것과는 전혀 다르다고 해야 할까? 일본의 전대미문의 해결책은 이후 두고두고 회자되게 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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