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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몇 달 사이 미친 듯이 바빴다. 일에 치여 살다보니 어금니도 빠지더라. 회사일이 너무 바빠 외부원고 쓰는 것도 힘겨워 하는 그때, 내 개인 블로그에 ‘댓글’이 하나 달렸다.

 

“파맛 첵스 초코가 나왔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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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이 두근거렸다. 핫식스와 몬스터에 절여진 심장의 맥이 빨라졌다. 축 처진 어깨가 바빠지기 시작했다. 검색, 검색, 검색... 그리고 회상. 이 댓글을 단 이는 아마도 나와 파맛 첵스와의 사정을 알고 있는 이인 듯하다.

 

16년 전, 난 농심 마케팅팀에게 악몽이었다. 

 

그건 바로 한 기사 때문이었다. (기사링크-현재 기사 백업이 사라진 상태라 원글 이미지를 보여주지 못해 아쉽지만, 충분히 참고가 가능할 거라 본다)

 

1. 웃자고 시작한 일이었다. 

 

시작은 간단했다. 정말 웃자고 시작했던 일이다. 미디어몹이란 회사의 뿌리가 원래 딴지 출신들이 뭉쳐서 만든 회사였다(사장, 편집장 등등 모두 다). 기억나는 게 당시 유로 2004 축구를 하는데, 딴지일보와 미디어몹 직원들이 모두 같이 죽자사자 내기를 걸었던 기억이 난다. 이 정도면 대충 회사 성향이 어떠한지는 알 거다.

 

어쨌든 이 사건의 전말은 간단하다. 농심에서 첵스초코란 걸 만들었는데, 이걸 홍보하기 위해 ‘대통령 선거’를 모티브로 한 이벤트를 연 거다. 문제는 여기서 부터인데, 하필이면 기호 1번 체키(이미 내정돼 있는 대통령)의 상대 후보가 첵스 초코에 파를 넣겠다는 차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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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심 마케팅 팀은 웃자고 이걸 만든 거였는데, 이걸 죽자고 덤벼든 이들이 있었다(실상은 같이 웃고 즐기자고, 아니, ‘엿 먹이겠다’고 덤벼든 거다). 16년 전 내 기사(?!)에도 잘 나와 있다. 분명한 사실은 그때 ‘부정’이 개입돼 있었다는 것.

 

모종의 해킹, 그리고 어른들의 ‘장난’이 개입된 건 사실이다. ‘파맛’이 선정된다면 농심은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지에 대한 궁금증이라고, 순화해서 표현하겠다(나 역시 그런 생각을 했으니 말이다).

 

초반 얼마간 체키가 앞서갔지만, 어느 순간, 그러니까 파맛에 대한 ‘호기심’ 충만한 이들이 선거에 뛰어들면서 차카가 치고 나가기 시작했다. 그 뒤는 앞에 링크해 놓은 기사 그대로였다. 부정선거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고(농심 쪽에 문의했을 때는 기사 그대로 비정상적인 접근이 있었음을 항변하고 있었다), 이게 온라인을 넘어 오프라인에까지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

 

그 시작점에 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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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나도 웃자고 시작한 일이다.

 

선관위와 소보원에 연락을 했던 건 ‘웃긴 기사’를 쓰기 위해서였다. 초창기 김어준 총수가 혼자 딴지일보 기사를 채워나갈 때와 같은 ‘병맛’에 사실을 섞는 느낌이다. 그 비율이 절묘해야 한다는 게 포인트다(막사같은 거다. 막걸리에 사이다를 얼마나 섞느냐, 그 황금비율). 

 

그냥 웃긴 일이니 달라붙었다. 선관위에 연락했을 때는 너무 진지하게 이 사안을 받아들여서 나 역시 각 잡고 녹취를 뜬 기억이 난다. 소보원에 연락했을 때는 몰랐지만, 그 후, 후속 취재를 했을 때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다. 나 같은 이들이 꽤 있었다는 거다. 농심이 부정선거를 했다며 소보원에 신고한 이들이 좀 있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농심 마케팅 팀과의 통화. 지금도 수화기 건너편 직원의 애절함과 답답한 목소리가 잡힐 듯 느껴진다. 그 목소리는 절박했지만, 나는 하나라도 더 많은 코멘트를 따겠다고 집요하게 추궁했다.

 

16년 전의 나는 악동이었던 것 같다.

 

3. 압력

 

원래 ‘파맛 첵스 사건’의 기사는 총 3편으로 구성되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 나는 상당히 길게 쓰는 버릇이 있었다(기사 한편을 a4 10포인트로 10장씩 써제끼던 시절이었다) 그런 내가 이런 사건을 기사 한 편으로 끝낼 수 있겠는가.

 

당시 기획의 마지막은 열린 우리당 의원실의 코멘트를 따는 거였다. 당시 김근태 의원, 임종석 의원, 김명자 의원 쪽에 연락을 넣어 코멘트를 따는 게 목표였다. 의원실에 가서, 

 

        “어떤 선거든 부정이 개입돼서는 안 됩니다.”

 

같은 멘트를 따내면, 이걸로 대대적으로 기사를 하나 때리려고 준비 중이었다. 지금 생각하니 미친놈 같다. 그런데 그때는 쓰고 싶었다. 재미있을 거 같으니까(그리고 재미있었다).

 

어쨌든 기획 기사를 3개로 치겠다고 했다. 당시 최 모 편집장은 별 생각이 없었던 거 같다. 글도 쓸 줄 알고, 취재도 할 줄 알고, 빨리 쓰는 녀석이니 어련히 알아서 잘 하겠거니 했던 것 아닐까. 반응도 좋았다. 문제는 여기서 생긴다. 편집장이 날 찾은 거다.

 

“어이, 펜더. 그거 첵스 후속 기사 쓰지 않으면 안 돼?”

 

“에? 왜요?”

 

“...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타인이 글을 쓰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것도 편집장이.

 

힘겹게 입을 연 편집장의 말은 의외로 싱거웠다.

 

         “... ... 마케팅 책임자가 내 친구야.”

 

노파심에서 말하지만, 당시 최모 편집장이 어떤 외압이나 압력 같은 ‘느낌’으로 내게 그런 말을 한 건 아니다. 편집장이 그럴 사람도 아니다.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지만 내가 좋아서 쫓아갔던 사람이다. 딴지 시절부터 새벽에 전화해 몇 시간 안에 기사 하나 써달라고 매번 부탁하던 사람이다(이 청탁의 역사가 죽지않는돌고래 편집장까지 20년간 이어질 줄 몰랐지만 어쨌든). 정이야 쌓일 때로 쌓인 상태라는 말이다.  

 

편집장은 쑥스러운 듯 부탁했다. 알고 보니 마케팅을 준비한 쪽이 꽤 곤란한 처지에 놓인 것 같았다(안 그러면 그게 더 이상하지).

 

생각해 보겠다고 했지만, 이 아이템을 놓치기 싫었다. 그때부터 사장과 편집장을 설득하기 위해 뛰어다녔다. 사장이,

 

“야, 너 진짜 미친놈 같다.”

 

라면서 이 첵스 사건(!?)에 매달린 날 품평할 때, 편집장은 다른 제안을 했다.

 

“같이 술이나 한잔 하자, 펜더.”

 

“네?”

 

“그쪽에서 너 만나고 싶대.”

 

“누가요?”

 

“내 친구.”

 

첵스 마케팅을 하는 쪽에서 날 찾은 거였다. 이런 걸 접대라고 해야 하나? 술이 아니면 커피라도 좋으니까 우선 만나자고 했다. 그쪽도 내 글에 불만이 있다는 말을 전했다. 최소한의 취재윤리는 지켜야 하는 거 아니냐고.

 

(첵스 마케팅팀과의 통화는 내 신분을 밝히지 않고, 익명의 소비자로 통화한 거였다. 이 부분에 대해서 간접적으로 항의를 받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첵스 마케팅을 담당한 쪽과의 미팅은 없었다. 편집장에겐 미안하지만 아예 거절했다. 이유는? 나는, 기사가 너무 쓰고 싶었다.

 

편집장은 안 쓰면 안 되냐고, 정말 미친놈처럼 어떤 짓을 저지를지 모를 놈이라고 판단을 내린 상황에서 첵스 대통령 선거는 계속 진행되었다.

 

(여담으로 故 김근태 의원이 보건복지부 장관되기 바로 직전, 인터뷰를 했던 적이 있다. 국회 검색대를 통과할 때, 가방에서 칼 비슷하게 나왔다며 국회 경위들이 내 가방을 검사했는데... 야근할 때 신은 양말과 팬티가 끝도 없이 나오는 통에 국회 들어갈 때부터 망신살이 뻗쳤고, 인터뷰할 때도 김근태 의원에게 '죽고 난 뒤에 어떤 평가를 원하는가'라는 생뚱맞은 질문을 던져 분위기를 쏴하게 만들었던 기억이 난다. 젊은 시절엔 여러모로 좀 이상했다고, 반성해 본다).

 

4. 16년 전 나오지 못한 3번째 기사

 

결국 3번째 기사는 나가지 못했다. 당시 준비했던 3편의 기사 중 나간 건 2편인데, 2편을 2개로 쪼개 총 3편의 기사로 마무리졌고, 공개되지 않은 1편의 기사는 이런저런 인터뷰를 준비하다가 손을 놓았다. 편집장의 부탁 때문은 아니다. 청개구리라 하지 말라면 더 하는 성격인데, 이때는 기운이 쭉 빠졌기 때문이다.

 

왜? 기호 1번 체키가 대통령으로 당선됐기 때문이다.

 

2번째 기사에서,

 

“하다못해 첵스초코에 무파마라도 하나 붙여주는 성의라도 보여줘라!”

 

라고 열변을 토했는데 체키가 대통령이 되고 나서 체념했다. 그 상실감을 무엇으로 표현하랴(지금 생각하면 그냥 웃긴 일이지만 난 정말로 큰 상실감을 맛보았다). 당시 3번째 기사의 핵심은 국회의원과 식품영양학과 교수 등등의 인터뷰를 중심으로 파맛 첵스의 시대적 당위를 말하는 거였는데, 이미 파토난 통에 그걸 기사로 마무리 지을 기운이 나지 않은 게다.   

 

딴지 독자들은 나를 군사전문가로 기억할지 모르지만, 내 인생에서 가장 후회하는 건 그 3편을 준비한 채 쓰지 못했다는 거고 지난 세월동안 굴종하며 체키 대통령 치하해서 살았다는 거다.  

 

방금 전 죽지않은돌고래 편집장이,

 

“벌써 16년이나 됐네.”

 

란 말에서 다시 한번 세월을 절감한다. 

 

16년 만에 정의가 바로 선 지금에 감사하고 있다.

 

빛은 어둠을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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