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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연합뉴스


1. 합의


2015년 12월 28일, 한국 정부와 일본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대한 양국간 합의를 도출해 냈다. 일단 한국 외교부가 발표한 주요 합의 내용을 보자.




 [ 일측 표명사항 ]


일간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양국 국장급 협의 등을 통해 집중적으로 협의해 왔음. 그 결과에 기초하여 일본 정부로서 이하를 표명함.


① 위안부 문제는 당시 군의 관여 하에 다수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힌 문제로서, 이러한 관점에서 일본 정부는 책임을 통감함. 아베 내각총리대신은, 일본국 내각총리대신으로서 다시 한 번 위안부로서 많은 고통을 겪고 심신에 걸쳐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모든 분들에 대한 마음으로부터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함.


② 일본 정부는 지금까지도 본 문제에 진지하게 임해 왔으며, 그러한 경험에 기초하여 이번에 일본 정부의 예산에 의해 모든 前 위안부들의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조치를 강구함. 구체적으로는, 한국 정부가 前 위안부분들의 지원을 목적으로 하는 재단을 설립하고, 이에 일본 정부 예산으로 자금을 일괄 거출하고, 한일 양국 정부가 협력하여 모든 前 위안부분들의 명예와 존엄의 회복 및 마음의 상처 치유를 위한 사업을 행하기로 함.


③ 일본 정부는 상기를 표명함과 함께, 상기 ②의 조치를 착실히 실시한다는 것을 전제로, 이번 발표를 통해 동 문제가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될 것임을 확인함. 또한,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와 함께 향후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동 문제에 대해 상호 비난·비판하는 것을 자제함.



 [ 우리측 표명사항 ]


일간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양국 국장급협의 등을 통해 집중적으로 협의를 해 왔음. 그 결과에 기초하여 한국 정부로서 이하를 표명함.


①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의 표명과 이번 발표에 이르기까지의 조치를 평가하고, 일본 정부가 상기 1.②에서 표명한 조치를 착실히 실시한다는 것을 전제로 이번 발표를 통해 일본 정부와 함께 이 문제가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될 것임을 확인함.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가 실시하는 조치에 협력함.


②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가 주한일본대사관 앞의 소녀상에 대해 공관의 안녕·위엄의 유지라는 관점에서 우려하고 있는 점을 인지하고, 한국 정부로서도 가능한 대응방향에 대해 관련단체와의 협의 등을 통해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함.


③ 한국 정부는 이번에 일본 정부가 표명한 조치가 착실히 실시된다는 것을 전제로 일본 정부와 함께 향후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동 문제에 대해 상호 비난·비판을 자제함.





몇 가지를 살펴보자.



2. 일본의 양보


내가 이 합의문을 보고 가장 먼저 놀란 것은 일본 측 표명사항에 포함된 “당시 군의 관여 하에”라는 표현이다. 일본 정부는 이 부분을 빼고 싶어 했을 것이다.


위안부 문제가 일본 국내에서 그리고 국제사회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일본의 흔히 말하는 보수적인 입장을 가진 정치가와 국민들은 “위안부는 민간업자가 고용한 것이었다. 일본군이 직접 관여한 것은 아니다”라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어쩌면 이것이 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기나긴 대립의 가장 기이한 지점일 것이다. 양국의 국민들은 이 문제에 대해 지난 수십 년간 가장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했다.


일본의 보수적인 국민 중 다수는 위안부는 민간업자가 고용한 것이니 일본 정부는 도의적인 책임 이상을 질 필요가 없고, 그 책임도 이미 한일협정 등을 통해 모두 완수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저들과 성향이 다른 상당히 많은 수의 일본 국민과 한국 국민 대다수는 위안부는 일본 정부가 저지른 만행이라 보고 있으며, 일부의 일본 국민과 한국 국민 대다수는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에 대한 제대로 된 사과와 배상을 아직 실시하지 않았다고 보고 있다. 사과와 배상이 없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서 일본 국민의 숫자가 갑자기 크게 줄어든 이유는,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는 일본 국민 가운데서도 “하지만 법적인 배상은 이미 완료됐다. 사과도 몇 번이고 했다”라고 생각하는 국민이 많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가 직접 위안부의 징발과 운영에 관여했는가”는 바로 지난해까지도 일본 사회의 뜨거운 논쟁거리였다. 이와 관련된 결정적인 보도를 아사히 신문이 철회하고 그것이 일종의 사회문제처럼 받아들여질 정도로.


아사히 신문의 보도 철회 사건과 요시다 증언에 대한 기사를 링크해 둔다.


 - 아사히신문 군위안부 부도 취소 파장 확산, <연합뉴스TV> (링크)


 - '요시다 증언'이 뭐기에?, <한겨레> (링크)



지난해에 아사히 신문이 지금까지 “일본군이 위안부에 관여했다”라는 주장의 중요한 증거로 받아들여지던 기사를 철회하면서, 보수적인 일본 국민들은 득의양양했다. 그들 입장에선 그럴 만 했지. 일본군이 직접 관여한 것은 아니다. 민간업자가 위안부를 데리고 군대와 함께 이동했을 뿐이다. 그러니 일본 정부는 도의적인 책임만 지면되고 그 책임은 이미 완수했다. 이들과 토론 몇 번 해 보면 싫어도 외우게 되는 논리 전개다.


이번 합의문에서 바로 그 문제에 대한 현시점의 결론이 나온 것이다. 일본 정부는 구 일본군이 위안부에 관여한 사실을 인정했다.


어제 뉴스를 보고 한국의 외교적인 패배를 일본 국민들이 비웃고 있으리라 생각하신 분들께는 의외의 소식일지 모르지만, 보도가 나간 직후 일본의 흔히 말하는 보수적인 네티즌들이 집결하는 사이트는 벌집을 쑤셔놓은 분위기였다. 그들이 지금까지 주장해온 위안부 문제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탈출구 하나를 일본 정부가 막아버린 것이다.


독자제위 가운데는 당연한 사실을 인정한 것이 뭐가 그리 대단한 거냐고 생각할 분도 계시겠지만, 나는 이 점에 대해서는 내 의견을 분명히 밝혀두고 싶다. 합의문에 저 구절이 들어간 것은 아베 정권이 적어도 지금까지 보여 왔던 강경 자세에서는 한발 양보를 한 것이다. 물론 아베 정권은 일본의 지난 정권에 비해 이 문제에 대해 꽤나 강경한 입장이었고 그러니 한발 양보해 봤자 과거 일본 정부의 입장과 큰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협상에 임한 현 정권이 자신들의 지지기반의 의견 가운데 하나를 버려버리면서 합의를 도출한 것은 틀림없이 일정한 정치적인 출혈을 각오한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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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한국이 얻은 것


내 입장에서 가장 답을 내기 어려운 것은 이 질문이었다.


기묘한 일이다. 일본 정부가 한발을 물러섰으면, 협상이란 활동에 관한 일반적인 상식에 입각해 생각하면 한국 국민들은 그 사실을 기뻐해야 한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파악하기로 어제 이 협상에 관한 뉴스를 읽고 매우 기뻐한 한국 국민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오히려 분노를 터트린 분들이 대다수 아닐까.


내가 열심히 설명한 저 ‘아베 정권의 양보’는 대다수의 한국 국민 입장에선 아마도 “지극히 당연한 사실” 정도일 것이다. 여기서 잠시 한국의 외교 당국자들의 노고를 안타까워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자. 그들 입장에선 외교적인 타협의 진수라 할 만한 한 구절이 자국 국민 입장에선 아침에 해가 뜨는 수준의 일이었으니, 이 문제의 역사적인 의의는 일단 차치하고 일을 해서 월급을 받는 노동자의 입장만을 생각하면 참 서글픈 일이라 할만하다.


그것을 제외하고는 딱히 한국이 얻어낸 성과가 떠오르지 않는다. 기시다 외무대신은 일본 정부의 법적인 입장은 변함이 없다고 못을 박았다. ‘사실상의 법적인 배상’ 같은 괴이한 개념을 새롭게 개발해 내지 않는 한 이젠 일본 정부가 이 문제에 대해 법적인 입장을 바꿀 길은 아마도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사라졌을 것이다. 총리대신이 대통령에게 전화로 사과했다. 그거야 뭐 현재 각각 양국의 국민을 대표하는 사람들이니 일본이 한국에게 사과했다고 보면 된다. 10억 엔이 큰돈인지 작은 돈인지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의견이 다를 것이다.


합의안의 첫 구절에서 얻은 충격이 가라앉고 난 다음 내가 느낀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자면 다음과 같았다.



 “이걸 위해 지난 수십 년간 싸운 건가”



내 부족한 견해로는, 이 정도의 결론과 합의는 5년 전에도 10년 전에도 15년 전에도 가능했다. 역대 일본 정권 가운데 현재의 아베 정권보다 한국에 우호적인 정권은 얼마든지 있었고, 그들과 합의를 했으면 이것보다는 더 전향적인 합의문을 만들어냈을지도 모른다. 물론 한일관계가 최악의 상태로 치달은 상황에서 미국이 한일 양국의 관계 개선을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다는 씁쓸한 국제정세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국 관계의 골을 이렇게나 깊게 만들고 무엇보다도 위안부 피해자 여성들을 이렇게 오랜 시간 기다리게 한 문제의 최종적인 합의 내용이 딱 이만큼이라는 사실은 지나치게 씁쓸하다.



4. 승패


그래서 결국 이 외교전의 승자는 누구인가라고 묻는다면, 안타깝지만 나는 일본이라고 대답하겠다.


이유는 간단하다. 일본은 이 문제에 관한 그들의 최종적이고 궁극적인 목표를 달성했다. 한국이 더 이상 위안부 문제를 국제사회에서 거론하지 않는 것. 목표가 명백했던 만큼 일본은 전략을 짜기도 쉬웠을 것이다. 그것을 위해 아마도 현 정권 입장에서 양보라 할 만한 제스처를 통해 내줄 것은 내주고, 가장 얻고 싶어 하던 것을 얻은 것이리라. 실제로 합의가 이행되면 한국은 적어도 정부의 입을 통해서는 이 문제를 언급하며 일본을 비판하는 것은 사실상 힘들어진다.


반대로 한국은 궁극적인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그리고 여기서 비판을 각오하고 지적하고 싶은 것이 있다. 내가 보기에 한국의 궁극적인 목표는 일본의 그것에 비해 지나치게 추상적이었고, 그래서 국민적인 합의도 한국 국민들이 생각하고 있던 것만큼 명확하지도 않았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이 협상에서 한국이 얻어내고 싶어 했던 것, 즉 궁극적인 목표는 일본 정부의 사죄와 배상이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더 이상 이 문제를 거론하지 않도록 유도한다”라는 일본의 목표에 비해 “사죄와 배상을 받아낸다”라는 한국의 목표는 세부적인 사항에서 의견 차이가 날 여지가 너무 많았다.


무엇을 진정한 사과라고 할 것인가. 총리대신이 한국에 와서 무릎을 꿇어야 하나. 일본 국회의원들이 모두 속죄의 뜻을 담아 배편으로 한국으로 들어와 피해자 여성 한 명 한 명 앞에서 울며 사죄하는 것을 사과라고 할까. 일본 국민 전원이 한 명당 A4 다섯 장씩 반성문을 쓸까. 피해자 전원이 동의해야 하나. 국민투표를 통해 한국 국민 과반수가 “이것은 우리가 받아들일 만한 사과다”라고 동의할 때까지 사과를 반복해야 하나. 아니면 총리대신이 대통령에게 전화 한 통 하면 되는 것인가.


무엇을 진정한 배상이라고 할 것인가. 계산법은 각자 차이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국민 대다수가 합의하고 있던 ‘정확하게 한국 돈으로 얼마’라는 기준은 있었는가. 97억 원이면 충분한가.


바로 이 점에 대해서 한국은, 한국 국민과 언론과 정부는 명확한 기준이라 할 수 있는 합의를 만들지 못한 채 협상에 돌입했다. 그런데 연내 타결이라는 목표가 갑자기 나와 버렸으니, 사죄와 배상 모두 모호하게 받아낸 것은 안타깝지만 당연한 수순이었다. 정확하게 이런 행동까지 해야 사죄다, 정확하게 얼마 이상은 어떤 형태로 받아내야 배상이라 할 수 있다는 합의가 모호하니 외교를 맡은 정부 입장에선 “너희들이 우리에게 표를 줘서 정권을 맡겼으니 우리의 판단이 국민의 판단이라고 일단 생각해 두마”라는, 이 또한 안타깝지만 민주주의의 원리에 입각해 보면 그리 틀린 말도 아닌 전제 아래 판단을 내린 것이리라. 총리대신이 사죄하고 일본 정부의 자금을 받아내는 것이 사죄와 배상이라고.


일본의 목표는 분명했다. 아마 어제 한없이 투덜거린 보수적인 국민들도 “하지만 이걸로 한국이 위안부 문제를 두 번 다시 국제사회에서 거론하지 않는다면, 그걸로 참고 넘어가 주마”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앞으로 확산될 것이라 생각한다. 어찌 됐든 목표를 이룬 것이다.


한국의 목표는 일본에 비해서는 명확하지 않았다. 그리고 딱 그만큼의 모호한 합의안을 마주 보게 됐다. 나는 그 사실이 매우 안타깝다.



5.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세상에 100%라는 것은 좀처럼 없는 법이니, 아마 어제의 합의안을 보고 “이것으로 충분하다”라고 생각하신 분들도 계실 것이다. 그들도 한국 국민이고 그 의견도 존중받아야 할 국민의 의견이다. 나는 그것을 무분별하게 비판하는 것은 합당한 태도가 아니라고 본다.


하지만 그들과 의견이 다른, 어제 발표된 합의안에 동의할 수 없는 분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 대답은 각자가 찾아야 하겠지만, 나는 한 가지를 주장하고 싶다.


 '한국 정부와 대화하자'


현실은 현실이다. 어제 발표된 협상안은 한국 정부와 일본 정부가 합의한 것이고, 앞으로 그 방향으로 양국 정부는 움직여 나갈 것이다. 나는 이 시점에서 실제 위안부 피해 여성 이외의 분들이 “한국 국민의 이름으로 일본 정부에게 이것 이것을 요구한다”라고 밝히고 주장하는 것은, 매우 실례지만 그다지 실효성은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피해 여성 본인들의 법적인 권리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여러 가지 의견이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일본 정부 입장에선 한국 국민 모두의 대표인 한국 정부와 대화해 합의를 이끌어낸 것이다. 이 이상 한국 국민 개개인이 일본 정부에 무언가를 요구한다고 해도 일본 정부 입장에선 대답할 길도 없고 의무도 없다. 한국 정부도 이번 합의안을 도저히 수용 못 하겠으니 철회하라고 주장하는 일본의 시민단체가 만약 존재한다 해도 그들을 상대하지는 않을 것이니.


한국 국민 입장에서 합의안에 불만이 있다면, 이젠 한국 정부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 하다못해 설명이라도 요구해야 하고. 피해 여성들에 대한 지원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면, 이젠 정부에 대책 마련을 요구해야 한다.


만약 현재의 한국 정부가 대화가 통하는 상대가 아니라고 생각하신다면, 자신들이 지지하는 정당과 대화해야 한다. 지금 이 상황에서 피해 여성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야당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묻고, 만약 표를 주면 앞으로는 무엇을 더 해낼 수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


안타깝게도 외교는 끝났다. 이제 남은 것은 정치다. 부디 이 분야에서만이라도 실수가 적기를 빌 뿐이다.



6. 마치면서


합의안의 의미를 한일관계라는 관점에서 살펴보느라 정작 가장 중요한 위안부 피해 여성 여러분들의 심경에 대한 언급은 거의 하지 못했다. 합의안을 보고 실망하신 분들이 많으리라 생각한다.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아베 총리대신은 어제 “우리들의 자녀와 손자 손녀 세대에게 계속해서 사과를 해야 하는 숙명을 지울 수는 없다”라고 밝혔다. 아베 신조라는 정치인을 가볍게 보고 계신 한국 국민들이 계시다면, 부디 이 기회에 관점을 조금 달리해 보시길 권한다. 그는 한국 입장에서 마음에 들고 안 들고를 떠나 절대로 경시할만한 정치인은 아니다.


이것은 내 개인적인 예상이지만, 소녀상은 현재의 자리를 지키지 못할 것이다. 아마도 그리 멀지 않은 시일 내에 다른 장소로 옮겨질 것이다. 재단이 설립되고 재단을 위한 건물이 확보되면 그 건물 주변으로라도 옮길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다른 장소로 옮겨질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알려지지 않은 주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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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딴지일보 coco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