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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과정을 모르는 사람에겐 이 이야기가 생소하겠고, 전문가에게는 소꿉장난처럼 들릴 것이다. 그저 현장을 지켜보는 초보 건축주라는 걸 감안하고 읽어주셨으면 좋겠다.

 

 

지하옹벽을 만들기 전, CIP기둥 면을 평평하게 다듬는 작업이 끝나면 본격적으로 건물의 뼈대를 만든다. 형틀팀(목수와 철근 작업자가 속한)의 작업이 시작되는 것이다. 소장님에게 바닥도 작으니 일주일에 한 층씩 올리자고 했지만, 지하는 작업이 많아 한 달은 걸린단다. 공사 기간 길어지는 소리에 뒤로 자빠질 뻔 했으나, 어쩔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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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작업을 위해 안전난간과 사다리를 만든다. 김 사장이 지하 바닥에 먹매김(기초, 기둥, 옹벽 등을 세울 곳에 표시해두는 작업)을 한다.

 

도면을 보고 버림(=바닥 기초면, 밑창) 위에 경계선을 찾아 마킹한 다음, 먹물에 잠겨있던 실을 양쪽에서 팽팽하게 고정한다. 이 때 중간 부분을 살짝 튕겨주면 콘크리트 바닥에 길다란 선이 그려진다. 재미있어 보였지만 아무나 못한단다. 실을 잘못 당기면 건물이 기울기도 하니 전문가만 할 수 있단다. 

 

도면의 경계선이 버림 위에 그려졌다. 지하 집수정 거푸집을 설치한다. 도면을 보니 기초 콘크리트 치기 전에 바닥 단열재부터 시공한다. 지하 바닥에서 고작 1미터 아래인데 말이다.

 

단열재는 스트로폼이나 분홍색 판이 전부인 줄 알았는데, 종류가 무지 많고 가격도 다양했다. (적은 량을 자주 주문해서 운임비 부담이 컸다. 사 현장이 작아 많은 양을 들여 놓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흥정하지 않으면 뭔가 손해를 보는 느낌이다. 업체도 깎일 것을 예상해서 가격을 제시하는 눈치고. 공사비용에 정찰제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까)

 

철근은 톤 당 65~70만 원으로, 크게 중국산과 국산이 있다. 물론 저렴한 건 중국산 쪽이다. 박 소장은 예전과 달리 중국산이라고 해도 국산과 크게 차이는 없다고 한다(이전에는 구부리는 가공 과정에서 탄성이나 강도가 좋지 않았다고 한다).

 

총 필요한 철근을 보니 국산과 중국산의 차이가 300만 원 정도였다. 맘 편하게 국산을 사용하기로 결정. 

 

헌데 목수 김 사장이 “철근 강도가 왜 500이야?” 묻는다. 설계도면을 보니 강도가 500인 철근을 사용하도록 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400 사용하는데 말이다. 

 

업체에 강도 500인 철근을 요청하니 주문해야 한단다. 강도 좋은 철근으로 시공하는 자부심이 드는 것도 잠시 늘어나는 공사비가 가랑비처럼 나를 적신다. 어쩔 수 있나. 담담하게 철근을 주문했다. 장소가 좁으니 철근도 조금씩 주문한다.

 

업체에서 철근을 가져오면 대기하던 지게차가 철근을 내려주고, 크레인이 철근을 지하로 내려준다. 

 

지게차는 직영(원청)에서 지불하고 크레인은 철근팀에서 지불한다. 곰곰이 따져보면 비용 지불 주체에 대한 구분이 논리적이다. 이러한 구분은 다른 공정에서도 계속 일어난다.

 

반입된 철근으로 기초 배근, 벽과 기둥을 시공한다. 경계선을 따라 결로수 파이프도 꼼꼼히 시공한다. 철근 작업을 마치기 3~4일 전에 기초 콘크리트를 타설하기 위해 강도 270(강도가 큰 편) 레미콘을 주문한다(다른 현장에 레미콘 일정이 잡혀 있으면 주문을 받아 주지 않는다).

 

기초 콘크리트는 깊이가 90cm 정도로, 약 78입방미터의 레미콘이 필요했다. 레미콘 한 대가 6입방미터이니 13대의 레미콘 차량이 콘크리트를 쏟아야 한다. 한 대 작업하는 시간을 30분 정도로 잡으면 대략 7시간 정도 걸린다. 하루 종일 골목을 레미콘이 드나들어야 한다는 말이다. 구청에 도로점용신고를 하고 공사일정과 차량이동 안내문도 붙여놓고 준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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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펌프카(레미콘 차에서 시멘트를 받아서 건물에 뿌려주는 역할을 하는 장비. 호스 같은 역할)를 설치했다. 9시부터 레미콘 차량이 바닥을 채워 나간다. 치거덕 치거덕하는 펌프카 소리와 골목을 꽉 채운 레미콘 차량이 지나는 사람들에게 불편을 끼친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연신 고개를 조아린다. 골목 끝에 서서 지나는 사람들을 안내한다. 춥지만 앉아 있는 것보다는 움직이는 편이 훨씬 낫다. 

 

한 대의 레미콘 차량이 작업을 마치자 다음 차가 후진해서 골목으로 들어온다. 레미콘 차량은 시간 간격을 적당히 맞추면서 이어졌다. ‘절반 했네. 이제 다섯 대 남았네.’ 되뇌이며 초조하게 작업을 지켜봤다.

 

4시가 넘자 레미콘 차량 3대가 한꺼번에 도착했다. 공사가 늦어지지는 않겠지만 차가 서 있을 곳이 마땅치 않았다. 골목 진입 부근의 식품점에서 '레미콘 차가 가게를 가린다'고 했다. 레미콘 기사도 짜증을 낸다. 신호수에게 레미콘 정리를 부탁했다. 

 

보통 바쁠 때는 시간이 빨리 지나는데 이 날만은 이상하게 시간이 더디 흘렀다. 골목을 시끄럽게 만드는 죄책감이 불러오는 조바심 때문이겠지. 내가 전생에 나라를 팔아먹어서 현생에서 이렇게 댓가를 치르나보다. 기억에는 없지만 나 때문에 억울하게 핍박받고 죽어 갔을 이 땅의 수많은 조상들에게 참회하는 심정으로 연신 고개를 조아렸다. 

 

꾸역꾸역 기초 콘크리트를 마쳤다. 하루 동안 양생하면 진짜 지하층 바닥을 만들 시간이다.

 

기초 바닥에 먹줄을 놓고 CIP띠장을 해체한다. 목수 자재인 유로폼과 비계파이프, 설비자재인 소화전과 방수함 등이 들어온다. 

 

지하 옹벽 철근 작업을 하고 전기와 설비 작업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철근 작업을 마치면 목수팀이 거푸집을 설치하기 시작한다. 거푸집은 콘크리트 벽을 만들기 위한 틀로, 반생이(가는 철사), 핀, 플랫타이 같은 걸 쭈욱 연결해 벽을 만든다. 콘크리트 무게를 잘 버티도록 동바리(기둥 밑의 움직임을 방지하는 목적의 수평 연결재)나 비계로 받쳐준다. 

 

지하 거푸집 공사만 3일이 걸렸다. 거푸집이 마무리 되면 1층 바닥철근을 시공한다. 1층 바닥이기도 하고 지하 천정이기도 한 이 공정에서 설비와 전기도 작업을 한다.

 

그 다음은 지하층 콘크리트 타설. 기초 콘크리트 이후 2주 만에 레미콘 13대를 불러와야 한다는 말이다. 

 

하루 종일 지난번과 다름없는 긴장 속에 타설을 마치고 ‘지하 덮으면 공사 반은 한 거지' 생각하며 이렇게 또 한 걸음 전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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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부터는 철근 작업에 앞서 외벽 거푸집을 설치한다. 창문과 현관 위치를 확인해서 틀을 만든다. 1층 거푸집을 설치하면서 엘리베이터 양쪽 창의 위치를 잘못 만들어서 창이 어긋났다. 그냥 두기도 한다지만 그대로 볼 수가 없었다. 창문의 한쪽은 콘크리트를 깨내고 다른 쪽은 벽돌을 쌓아 위치를 수정했다.

 

1층 창은 위치 말고도 거푸집이 터져서 창의 절반이 막혔고 아래쪽 벽의 배는 불룩했다. 거푸집을 핀이나 반생이 등으로 제대로 동여매지 않았거나 동바리나 비계로 소홀히 받쳐놓은 탓이다. 

 

타설하다 거푸집이 터지면 난리가 난다. 거푸집 밖으로 삐져나오는 걸쭉한 시멘트 반죽이 더 이상 흐르지 않도록 막는 것도 힘들지만, 바닥으로 흘러나와 널브러진 시멘트를 굳기 전에 치워야 한다. 바닥의 시멘트를 덜 치워서 나중에 바닥공사 할 때 갈아낸 적도 있다. 물에 개어 놓은 시멘트는 정말 무겁다. 수습하는 작업자들 입에서 욕이 난무하는 건 당연하다.

 

2층 작업 전에 비계를 설치해야 한다. 건물 바깥에서 작업할 수 있게 난간과 발판을 설치하고 외부로 공사 파편이 나가지 않도록 망을 둘러주는 거다. 공사장에 파란 껍데기로 쌓여 있는 흔히 볼 수 그것이다. 현장에 여유 공간이 없어서 방음벽을 철거한 다음 시스템 비계를 설치, 다시 방음벽을 설치했다. 공사를 시작한 지 두 달 째인 3월 말, 겨우 땅 위로 한 개 층을 만들었다. 

 

4월에는 비 내리는 날이 많았다. 형틀 공사를 두 달 반으로 예상했지만, 한참 늘어졌다. 내가 공사를 모르거나 현장 상황이 더딘 것 같았다. 너무 느리다고 박 소장에게 채근하자 '3층부터는 같은 모양으로 쭉 올라가는 거라 좀 빠를 거'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 말대로 3층은 5일 동안 작업해 타설했고 4~5층은 4일씩 작업했다. 타설도 레미콘 5대 분량이라 오전 작업만으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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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은 빨라졌지만 봄장마가 시작되면서 2~3일 씩 비가 내렸다. 가장 답답할 때는 아침 6시에서 7시 사이에 비가 조금 내리다 그치는 경우다. 아침에 비가 내리면 곧 그친다는 예보가 있어도 작업자들은 절대 현장에 나오지 않는다.

 

비와 싸우면서 층마다 거푸집-철근-전기-설비-거푸집 과정을 반복하며 6층 바닥을 타설하고나니 형틀팀에서 문제가 터졌다. 

 

현장에서 큰 힘이 되었던 김 사장이 잠수를 타버린 것이다. “야 이 띱때꺄!”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평소 전두환에게나 하던 욕이 육성으로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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