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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강원랜드 부정 취업 사건이 벌어졌을 때 깜짝 놀랐다. 당시 여당 법사위원장이었던 권성동 의원과 염동열 의원 등이 강원랜드에 취업을 청탁했고 청탁대로 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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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MBC>

 

재판을 통해 226명에 달하는 부정 취업자가 면직되었다. 226명이 확정 면직이 됐으니 실제 부정 취업자는 그보다 훨씬 많았으리라는 걸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부정 취업 청탁의 주역 중 하나인 전 법사위원장 권성동 의원은 11명의 취업을 청탁했다는 혐의를 받았지만, 현재 2심까지 무죄를 선고받았으며, 검찰은 대법원에 상고한 상태다.

당시 2심판결에서 구회근 판사는 “검사가 법관의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증명하지 못했다”고 판결 취지를 밝혔다.

검사가 증명을 못한 건지 안 한 건 지는 잘 모르겠다. 권성동 의원은 인천지검 부장검사 출신이며, 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강원 강릉시) 출마해 당선된 4선 국회의원이다.

‘아직까지 부정 청탁이나 취업이 있구나’라는 데에도 놀랐지만, 더 놀란 건 취업 준비생들을 비롯한 청년 세대들의 반응이었다.

헬조선, 죽창 타령을 하던 청년들이 당장으로 길거리로 뛰쳐나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인터넷 커뮤니티나 트위터에서조차 극렬한 반응을 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취업이 그토록 어렵다며 헬조선에서 죽창을 들자고 하던 청년들이 명백해 보이는 부정 취업 사건에, 그것도 신의 직장이라고 말하며 가고 싶어 하던 공기업 얘기인데 좀처럼 흥분하는 취준생들을 볼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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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4분기 기준, 강원랜드 직원 연봉>

 

놀란 감정을 추스르자 감탄이 밀려왔다. 자신들이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취업 문제조차 이렇게 이성적으로 대하는 청년 세대를 보니 우리나라의 미래는 밝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성태 전 원내대표 딸의 KT 부정 취업 때도 마찬가지였다. 전직 KT 사장까지 나서서 부정 청탁과 취업을 인정했지만, 청년들은 분노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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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공기업이고 김성태는 전직 KT 노조 간부였고, 국회의원이었으니 아빠 찬스로 그것도 불법으로 취업했다고 화를 낼만도 한데 좀처럼 화를 내지 않았다.

부정한 방법으로 취업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을 했을 뿐 거리로 뛰어나와 집회하지도 않았고, 인터넷에 김성태와 그 딸의 욕을 쏟아내지도 않았다.

심지어 매우 PC(Political Correctness/정치적 정당성)하게 김성태 의원 딸의 이름조차 언급하지 않고 김성태의 딸이라고 말했을 뿐이다. 분노하고 울부짖은 것은 김성태 씨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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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청년 세대가 분노했다

세계 역사상 이렇게 이성적인 청년 세대가 있었을까? 우리나라 청년 세대와 그런 청년 세대를 만들어 낸 우리나라가 정말 자랑스러웠다. 나는 왜 20대 때 저러지 못했을까? 나는 왜 그렇게 분노를 쏟아내야만 했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 부끄러웠다. 그랬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착각임을 알게 되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왜 오르고 떨어지는지도 알 수 없는 비트코인이라는 야바위를 정부에서 규제하려 하자 왜 이 정부는 청년 세대의 미래를 막으려는 거냐며 분노했다. 온·오프를 막론하고 난리가 났다.

멍청한 정부가 국가의 미래를 막는다고 욕했다. 그 당시 JTBC에서 비트코인을 옹호하던 김진화라는 자는 위인으로 추앙받았고, 유시민은 하루아침에 멍청하고 악한 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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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바위가 자신들의 미래라니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이가 들어 잘 모르나보다 라고 생각하고 넘어갔지만, 그때도 지금도 이해가 가지 않는 건 비트코인으로 돈을 번 자들이 아파트나 땅을 샀다는 거다.

비트코인이 그렇게 미래가 밝으면 왜 부동산 투기를 하나? 비트코인을 갖고 있으면 되지. 또 이해 가지 않는 지점은 그런 자들을 보면서 자신들의 미래가 걸려있다는 청년들은 왜 분노하지 않는가 하는 점이다.

조국이 장관에 임명되는 과정에서 그 딸이 고등학교 때 인턴 경력을 부풀려 대학에 진학했다는 둥 동양대라는 (청년 세대의 표현에 따르면) 지잡대의 표창장을 이용해 의전원에 입학했다는 둥 온갖 의혹이 튀어나오자 강원랜드와 KT의 취업 부정에 대해서 별 반응 없던 청년 세대와 취업 준비생들은 온갖 분노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청년 세대들의 분노가 하늘을 찔렀다. 오프라인에선 집회를 했고, 온라인에선 성토를 했다. 조로남불이니 아빠찬스니 강남좌파니 하며 세상에 조국 장관의 가족만큼 나쁜 사람이 없다고 떠들어 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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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조국 장관 후보자 사퇴를 촉구하는 서울대 학생들과 시민들>

 

의아했다. 그들의 기준에 따르면 지잡대인 동양대 표창장 ‘따위’로 최상위에 위치한 고대나 부산대 의전원 진학이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는 게 의아했다.

아무리 나쁘게 봐도 조국 가족이 저질렀다는 일이 권성동이나 김성태가 저지른 일보다 나쁜 일처럼 보이지 않는데 더 분노하는 게 이상했다.

권성동이나 김성태는 아무리 좋게 봐도 자신들의 권력을 이용해 부정을 청탁해 꿈의 직장이라는 ‘공기업’에 취업을 시켰고, 조국 장관의 딸은 아무리 나쁘게 봐도 허위 사실이나 과장을 통해 진학을 했다.

한쪽은 명시적 청탁이 있었고, 권력을 이용한 비리이며, 시행되는 즉시 금전적인 이익을 취할 수 있는 범법 사항이고, 다른 쪽은 권력형 비리라고 말할 수 없고 금전적인 이득을 당장 취할 수 있지도 않다.

‘권력형 비리’란 제도가 그 사람을 위해 움직이거나 통상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 권력에 의해 벌어져야 한다.

없었던 제도가 마련된다든지 없는 자리가 생긴다든지 하는 형태로 이대에 진학할 때 정유라를 위해 만들어진 입학제도가 좋은 예다. 정유라를 제외하면 그 제도로 진학한 학생은 한 명도 없다.

이전에도 딸의 성신여대 진학과 관련해 비슷한 문제가 있었고 당시에 조국 장관의 딸과 비슷한 문제가 제기된 나경원 씨에 대해서도 청년 세대나 취준생 중 조직적인 움직임을 보인 사람이 없었다는 점도 의구심을 자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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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의미에서 그들이 조국을 욕하는 명분으로 ‘공정’을 내세웠다는 점은 쓴웃음이 나오게 만든다.

공정이 그토록 중요하다면 욕도 공정하게 해야 하는 거 아닌지, 왜 비슷한 건을 두고 누구는 욕하고 누구는 욕을 하지 않는지, 공정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가치라고 말하면서 왜 불공정하게 욕을 하는지, 공정은 어디 갔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경원과 권성동의 범법에 대해선 너무 이성적이라 싶었던 청년들이 조국의 비리(라고 주장하는)에 대해서는 조직적으로 움직임을 보이며 분노를 표출한다. 이 선택적 분노는 대체 뭘까?

이번에 인천 국제 공항 공사 정규직 전환 건도 마찬가지다. ’서연고 나와서 뭐하냐 나는 인국공 정규직으로 간다ㅋㅋㅋ연봉 5000 소리질러‘ 라는 출처도 알 수 없는 오픈 카톡방 카톡을 보고 다들 흥분해서 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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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를 알 수 없는 오픈 카톡방 내용>
 

심지어 금융권에서 연봉 9천만 원 받는다는 사람도 난리를 치고 있다니 그 말에 더욱 분노하고 있다. 명백한 범죄를 보고도 그렇게 이성적이던 청년 세대가 출처를 알 수 없는 오픈 카톡에 광분하는 모습을 보이는 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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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중앙일보>
 

저 주장이 얼마나 허구에 가까운지 얼마나 왜곡된 건지, 잘못된 얘기와 과장된 얘기가 얼마나 많은지는 수많은 사람들이 이미 하나하나 따지고 있으니 굳이 나까지 따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하나하나 따지는 딴지기사 링크)

나는 좀 다른 얘기를 해보고 싶다. 위에 예를 든 대로 그들은 공정의 가치를 목소리 높여 얘기했지만 그들의 분노야말로 불공정하고, 선택적 정의를 욕했지만, 선택적으로 분노했다.

도서관에서 조용히 하라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사람이나 어디서 욕을 하고 지*이냐며, 미친*끼 개새*라고 욕을 하는 사람처럼 앞뒤가 맞지 않게 분노했다.

어떤 사람들은 자못 이성적인 척 하며 뭐가 잘못됐는지에 대해서 조목조목 얘기하는 척한다. 얘기하는 ‘척’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살펴보면 다 무논리이기 때문이다. 이게 왜 무논리인지 또한 나 말고도 수많은 사람들이 분석했으니 생략하고 분노에 대해서만 살펴보도록 하겠다.



그들 분노의 특징

이 분노가 가진 몇 가지 특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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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불의에 둔감하고 불이익에 민감하다.

자신이 손해 봤다고 생각하는 일이나 자신에게 벌어질 수도 있는 손해에는 극도로 민감하지만 나와 관계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무관심하다. 회사에서 부당하게 해고를 당해도 골리앗 크레인에 올라 고공농성을 할 일은 없어 남일일 뿐이니 무관심하지만, 직장 상사나 백화점 손님의 갑질 문제에는 민감하다.

둘째, 사소한 부정에는 민감하지만 큰 범죄에는 너그럽다.

이재용이 상속을 하는 과정에서 벌인 온갖 범죄는 어차피 나와 관계없고 권력자들, 부자들에게만 벌어질 일이니, 무관심하지만, 진학이나 취업 과정에서 벌어진 사소한 부정에 대해서는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분노한다.

셋째, 배고픈 건 참아도 배 아픈 건 못 참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정규직인 상황일 때는 그러려니 하다가 누군가가 정규직이 되면 왜 쟤만 정규직이 되냐, 쟤는 정규직이 될 자격이 있냐 없냐며 따지기 시작한다.

우리나라에 비정규직은 96년 신한국당 노동법 날치기 때부터 생겼다. 모든 제도는 생기면 바꾸는 게 참 어렵다.

한꺼번에 모두를 정규직으로 만들 수 없다면 차례차례로라도 정규직이 되는 편이 낫지만, 그게 내가 아니라면 모두 다 비정규직인 편이 낫다는 식으로 말한다.
 
넷째, 우리나라에 명백한 계급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며 그를 용인하고 계급 내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서는 관대하지만, 계급 간의 이동 문제에 대해서는 굉장히 엄격하다.

입시비리나 비정규직이 정규직이 되는 문제에는 굉장히 민감하지만, 자본가들의 상속 같은 문제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입시나 취업 등은 신분이나 계급이 바뀌는 문제지만 상속은 계급이 바뀌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섯째, 판을 깔아주지 않으면 분노하지 못한다.

조국, 윤미향에는 분노하면서 나경원, 권성동, 김성태에게 분노하지 않는 데는 언론의 영향도 있다. 언론에서 판을 깔아주며 ’니들 여기서는 화내도 돼 니들이 화내는 게 잘못된 게 아니야‘ 라며 공정과 위선이라는 포장지로 감싸주자 그들은 마음껏 분노했다.

동의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잘 보시라. 정의당 류호정 의원 롤대리 문제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류호정 의원과 관련된 모든 사안은 그들이 분노’해야만 하는‘ 사안이었다.

그들의 기준에 따르면 류호정 의원은 불공정한 방법으로, 그것도 공기업 정규직 정도가 아니라 국회의원이 되었다. 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분노했었나? 전혀 아니다.

그 이유는 언론이 판을 깔아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분노조차 체제 순응적이다. 슬픈 얘기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하면 그들은 굉장히 체제 순응적이다. 그들이 주장하는 것은 공정한 카스트 제도이지만 실제로 원하는 것은 자신에게 유리한 도박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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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가 공정한지 아닌지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그 제도의 운용이 공정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실상을 살펴보면 관심은 자신의 이익과 부합하느냐 아니냐이다.

비트코인 때도 그랬다. 이들은 세상이 도박판이며 도박판의 룰이 공정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주장을 살펴보면 모두에게 공정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만 특히 공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의 분노는 자신보다 윗 계급에 있는 자에게는 향하지 않으며, 이들의 공정은 자신보다 아래 계급에 있는 자에게 적용되지 않는다.

그들의 정신세계를 가장 잘 알 수 있는 것은 각종 등급표다. 서고연포카로 시작하는 대학 등급표부터 명품시계 등급표, 거주지 등급표 등 온갖 것들에 등급을 먹이고 나눈다. 이 등급을 먹이는 것도 자신들의 기준이 아니라 철저히 사회의 기준에 따른다.

이들이 자신의 판단 없이 사회에서 정해놓은 분류대로 따른다는 건 오픈 카톡방에 쓰여 있던 서연고 나와서 뭘 하나라는 말을 다들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다.

이들은 자못 준엄하게 말한다. 자기가 낀 도박판에서 슈킹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하지만 이들은 자기보다 판 돈을 적게 가진 사람이 그 판에 들어오려고 하는 것에 화를 내고 누군가 자기보다 훨씬 많은 판돈을 들고 같이 도박하는 것에 분노한다.

또한, 저쪽에 있는 다른 도박판에서 큰손들이 벌이는 진짜 큰 판에선 어떤 슈킹이 벌어지더라도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 판에서 큰손들이 자신들의 미래를 판 돈 삼아 도박을 하고 있는데도 그 판에서 벌어지는 일에는 관심이 없다.

이재용이 세금을 딸랑 16억 내고 삼성전자를 물려받았건, 오로지 상속세를 아끼겠다고 말을 뇌물로 주고 국민 전체의 돈이 들어간 국민연금을 삥땅 쳤건 관심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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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에게 공정이란

이들의 관심사는 ’눈앞에 보이는‘ 자신의 이익뿐이다.

또한, 모든 인간은 자신의 이익에만 관심이 있다고 믿는다. 다른 사람을 위해 특히 자신보다 약자를 위한다고 하는 사람들을 모두 위선자라고 믿으며, 그 믿음이 확인되기를 원하고 그 믿음이 확인되었다고 생각하면 열광한다.

조국과 윤미향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었을 때 그들은 그 믿음을 확인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열광했다. 자신의 믿음을 확인하는 건 기쁜 일이다.

이들은 조국과 윤미향에 대해 날마다 터져 나오는 수많은 기사를 보며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은 없다는 믿음을 강화하는 데 성공했고 분노하는 척하며 즐거워했다.

어떻게 보면 그들이 그러는 것도 당연하다. 난 나밖에 모르는데도 이따위로 사는데 누군가가 남을 위해서 사는데도 잘살고 있다면 자신의 처지가 너무 비참하지 않은가.

이게 그들이 말하는 공정의 실체다. 이것은 공정이 아니다. 배 아픔이다. 노력하라고 하는 꼰대가 싫다면서 내가 이렇게 노력했는데 라고 말한다.

잘못 생각하고 있다고 지적하면 꼰대라며 혀를 찬다. 누군가 맞장구쳐주고 동조해주면 신나서 좋아한다. 혼자서는 분노할 줄 모르고 숫자가 좀 많아지면 무서운 게 없는 양 행동한다.

꼰대라는 소리 듣기 싫어 나이 든 사람들은 입을 다물고, 문재인 정부의 정규직 전환속도가 늦다는 기사를 쓰던 언론들은 자신들의 이익에 따라 청년들의 배 아픔을 공정으로 포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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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월 27일 이데일리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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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6월 23일 이데일리 기사>

 

이걸 그냥 놔두면 우리 사회가 망가진다. 그러니 꼰대 소리 듣기 싫다고 외면하면 안 된다. 니들이 잘못하고 있다고 꾸짖어야 한다.

라떼는 젊은 사람들이 학벌보다 그 사람의 능력을 봐야 하는 거 아니냐며 학벌 사회를 성토했었던 거 같은데 학벌이 능력이라는 주장이 받아들여지는 걸 보면 시대가 바뀌긴 바뀌었나 보다.

이 글을 마치며, 시 하나 소개하겠다.



김수영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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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王宮)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오십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 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20원을 받으러 세번씩 네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유하고 이제 내 앞에 정서로
가로놓여 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부산에 포로수용소의 제14야전병원에 있을 때
정보원이 너어스들과 스폰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경찰이 되지 않는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
너어스들 옆에서

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은 이 스폰지 만들기와
거즈 접고 있는 일과 조금도 다름없다
개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 비명에 지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놈의 투정에 진다
떨어지는 은행나뭇잎도 내가 밟고 가는 가시밭

아무래도 나는 비켜 서 있다 절정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 서 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 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 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 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이십 원 때문에 십 원 때문에 일 원 때문에
우습지 않으냐 일 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작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난 얼마큼 작으냐
정말 얼마큼 작으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