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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 118번 환자

 

7월 7일 오전 9시 경, 전남 영광군의 공사현장. 코로나19 광주 118번 확진자가 경찰에 의해 발견됐다. 65세로 알려진 이 남성은, 전날 밤 11시에 확진 통보를 받고서 휴대폰을 끄고 잠적했다. 그는 확진 사실을 통보하는 보건소 관계자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격리되면 일 못하잖아요. 나가서 벌어야 해요.”

 

광주 118번 확진자는 일용직 노동자였다. 잠적 후 발견된 영광군의 공사 현장에서도 그는 돈을 벌고 있었다. 생계 유지를 위해 숨어서라도 일을 해야했다는 그의 사연이 알려지면서 동정의 목소리가 높아지기도 했다. ‘아내가 암투병 중이다’라는 확인되지 않은 풍문이 떠돌았다. 그는 ‘주말까지 지인에게 100만 원을 갚아야 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있지만 그게 사실인지 거짓인지는 알 수 없다.

 

광주 118번 확진자의 사정과는 별개로 그가 잠적한 10시간 동안 방역당국과 경찰은 한바탕 난리를 치렀다. 잠적한 시간이 길어질수록 잠재적 접촉자 수도 늘어날 것이다. 자칫하면 광주 118번 확진자가 또다른 집단 감염의 도화선이 될지 모르는 일이었다.

 

7일 오후, 이용섭 광주 시장은 코로나19와 관련한 방역 수칙과 행정 수칙 위반에는 ‘무관용 원칙으로 일벌백계할 것’임을 강조하며 광주 118번 확진자를 경찰에 고발 조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코로나19가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사회 전반에 파괴적인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 이러한 행정 조치를 매정하다고 비판할 수는 없다. 피치못할 사정이 있었다해도 지금은 개인의 일탈이 사회 전체에 입힐 수 있는 피해를 더 경계해야 할 때다. 그런데,

 

이걸로 끝일까. ‘사정이야 딱하지만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고도 방역 수칙을 지키지 않았으니 벌은 받아야한다’가 광주 118번 확진자 사례를 접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전부일까. 생활고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떠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가 확진 판정을 받고도 50km가 넘게 떨어진 지역으로 이동하여 아침부터 공사 현장에서 일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를 통하여 우리는 확실히 알게 되었다.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고도 생계를 위해 치료를 포기한 채 법을 어겨가면서까지 돈을 벌어야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비슷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 모두 광주 118번 확진자와 같은 선택을 하지는 않겠지만 다른 곳에서도 누군가가 이런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확진 판정을 받지 않은 훨씬 많은 사람 중에는 코로나19 감염 위험을 감수해가며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집 밖으로 나가 타인과 접촉하는 모든 행동이 코로나19 감염 위험을 감수한 행동이지만, 하는 일과 환경에 따라 노출되는 위험의 정도는 엄연히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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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 오토바이

 

언젠가부터 운전을 하다 배달 오토바이 때문에 식겁하는 일이 잦아졌다. 사거리에서 직진 신호를 받고 출발한 차 앞을 다른 쪽에서 달려오던 배달 오토바이가 쌩하고 지나가거나 사각에서 갑자기 배달 오토바이가 튀어나오거나 할 때면 입에서 튀어나오는 욕지거리를 참기가 어렵다. 코로나19 때문에 사람들이 배달앱으로 음식을 시켜 먹는 횟수가 폭증했다던데 운전 중에 식겁하는 횟수도 확실히 늘어난 것 같다.

 

몇 주 전에 배달앱으로 치킨을 주문했는데 예상 소요 시간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었다. 더 기다릴까 전화를 해볼까 고민을 하고 있었다. 딱 5분만 더 기다려보기로 마음 먹었을 때 치킨집에서 전화가 왔다. 우리집으로 배달을 떠난 오토바이가 사고를 당했다며 죄송하지만 기다려 달라는 내용이었다. 정말 사고가 난 것인지 나지도 않은 사고 핑계를 댄 것인지, 사고를 낸 것인지 당한 것인지, 얼마나 다쳤는지 확인할 길이 없었지만 걱정이 되어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근래에 본 기사들이 떠올랐다. 배달앱 플랫폼과 도급 계약을 맺은 배달 기사들이 출퇴근 시간까지 감독을 받아가면서 일하는데도 개인 사업자로 분류되어 있어 오로지 배달 건수로만 수당을 받는다는 것이다. 일이 없어도 정해진 시간 동안은 반드시 대기해야 하지만 정작 콜을 기다리는 시간은 책임져주지 않는다.

 

도급계약을 맺지 않고 원하는 시간만 자유롭게 일하는 배달 기사들도 배달 건 수가 곧 자신의 능력이자 돈인 것은 마찬가지다. 콜이 몰릴 시간에 최대한 많이 소화해야 더 돈이 되는데, 이 능력이라는 것은 '최대한 사고가 나지 않고 단속에 걸리지 않는 선에서 빠르게 많은 콜을 소화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올해 1월에서 6월(22일)까지 일어난 이륜차 교통사고 사망자 수가 작년 같은 기간 보다 12% 증가했다는 기사도 있었다. 사망자 수가 이렇게 증가했다면 사고 수 또한 증가폭이 작지 않을 것이다.

 

더 많은 콜은 더 많은 수익을 의미한다. 얼핏보면 코로나19로 인한 배달 주문 증가가 배달 기사들 앞에 놓인 기회로 비춰질 수도 있다. 코로나19로 일자리를 잃거나 생계가 곤란해진 많은 사람들이 오토바이 배달에 뛰어들고 있다는 점, 더 많은 콜은 위험에 노출되는 횟수의 증가를 의미하기도 한다는 점을 빼놓고 생각했을 때 그렇다.

 

물론 오토바이 배달 중에 일어나는 교통사고가 배달 기사의 교통 법규 위반이나 과실에 있다면 책임의 상당 부분은 오토바이 운전자 본인에게 있다. 아무도 배달 기사들에게 안전을 포기하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로 인하여 끊임없이 사고가 일어나고 있고 건수가 계속 증가하는 추세라면 더 이상 배달 기사 개인의 준법 의지와 안전 의식에만 기댄 채로 문제의 해결을 바랄 수는 없다. 사회, 경제적 구조와 환경이 이들에게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더 많은 콜을 소화해내도록 강요하고 있지 않다고 누가 자신있게 말할 수 있나. 살기 어렵기로는 IMF 때 보다 더하다는 이런 코로나 시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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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팡 물류센터

 

지난 3월,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쿠팡에서 먹거리까지 주문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얼마 안가 쿠팡에서 주문하려는 품목이 한꺼번에 품절되는 일이 벌어졌다. 그것도 매일 같이. 한계를 넘어선 주문량으로 인해 품절을 걸어 놓은 것이라는 보도를 접하고야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품절 사태는 점차 해소되었고 한동안 대부분의 장보기는 쿠팡을 통해 해결했다.

 

쿠팡 물류센터발 집단 감염이 터진 시기는 ‘코로나 덕에 쿠팡이 노났다’는 말이 한창 돌고 있을 때와 일치한다. 그리고 두 현상이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코로나19 위기가 닥치면서 말그대로 ‘노난’ 쿠팡은 쏟아지는 주문을 감당하기 위해 인력 수급과 현장 관리 측면에서 무리를 했고, 결국 집단 감염이 발생했다.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일용직 노동자들이다. 쿠팡이 그때 그때 필요한 만큼 모집을 하면 그날 상황에 따라 출근을 하거나 하지 않을 수 있다. 쿠팡 입장에서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넘치는 주문량이 사업 확장과 수익 확대의 기회일 수 있다.

 

그러나 그 기회의 열매가 물류센터 노동자들에게 돌아가지는 않는다. 밀집 공간에서 감염 위험을 감수하면서 일한 사람들에게 위험 수당을 지급하기를 바라는 것은 언감생심. 물류센터에서 일하다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고 사경을 헤매도 보상 얘기조차 꺼내지 않는다(관련기사 링크) .다른 업체의 물류센터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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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19가 우리에게 말한다

 

연대는 ‘여럿이 함께 무슨 일을 하나 함께 책임을 짐’, ‘한 덩어리로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뜻하는 단어다. 여기서 ‘사회적 연대’는 후자의 뜻에 가깝다. 사회적으로 연대하려면 다른 사람이 당하는 부당한 일이나 고통을 남의 일 같지 않게 느낄 수 있어야 하고 남의 일만은 아니라고 여길 수 있어야 한다. 남의 일이 아니라 여기는 이유는 이 복잡다단한 세상에서 나와는 전혀 다른 곳에 살고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알고 보면 나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같은 대한민국 국민일 뿐 전혀 상관 없는 누군가가 국가 권력에 자유을 빼앗겼을 때, 언젠가 나의 자유도 빼앗길 수 있음을 자각하면 그건 더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나와는 전혀 다른 직종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가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회사의 부당한 처우에 고통 받을 때, 내가 다니는 회사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때부터는 남의 일이 아니게 된다. 고통 받는 누군가의 상황이 나와 어떤 방식으로든 연결되어 있음을 느낄 때에도, 우리는 연대할 수 있다.

 

코로나19가 닥치기 전에도 광주 118번 확진자는 공사 현장에 있었을 것이다. 코로나19가 닥치기 전에도 배달 오토바이는 도로 위에 있었다. 코로나19가 닥치기 전에도 쿠팡 물류센터에는 일용직 노동자가 일하고 있었다.

 

재난이 닥치면 가장 먼저,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사회의 약자들이다. 노동의 측면에서 볼 때 사회적 약자는 실직자와 일용직 근로자들이고 경제적인 면에서는 저소득층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저소득층은 실직자이거나 고용 불안정에 시달리는 사람들이다.

 

코로나19가 닥치기 전에도 사회적 약자를 비롯하여 우리 사회 곳곳에는 연대의 손길이 필요했다. 누군가는 적극적으로 연대했고, 누군가는 마음으로나마 응원했고, 누군가는 외면했다. 그 차이는 개개인이 가진 연대의 감수성과 필요성의 차이에서 기인한다. 연대의 감수성이 다르다는 건, 사람마다 남의 일이 내 일 처럼 느껴지는 사회적 감각의 정도가 다르다는 것이고, 연대의 필요성이 다르다는 건 말그대로 사람마다 연대의 필요를 체감하는 정도가 다르다는 것이다.

 

그런 와중에 코로나19가 닥쳤다. 코로나19의 무서움은 전파력에 있다. 자칫 잘못하면 하나가 백이 되고 만이 되고 백만이 될 수 있다는. 코로나 이전에는 나와 전혀 상관 없다고 여겨지는 사람과의 연결성을 확인하기 위해 넓은 관점과 깊은 생각이 필요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우리 가운데 누구든 감염될 수 있다. 만약 내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는다면, 전혀 관계 없었던 누구라도 나와 감염 경로를 통해 엮일 가능성이 있다.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서울에 사는 사무직 노동자 서른 두 살 김모 씨의 감염 경로를 두어 단계 거슬러 올라갔을 때, 부산 사는 20대 대학생이 있거나 강원도의 60대 할아버지가 있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 누구나, 언제든지 코로나19를 통해 나와 상관이 있을 수 있다. 이렇게 코로나19는 서로 다른 위치에서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모든 사회 구성원을 강제로 연대시켰다.

 

따라서 코로나19가 만들어낸 고용 위기는 당사자들만의 위기가 아니다.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위험을 감수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사회 전체가 감수해야 할 위험도 커진다.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음에도 당장 돈을 벌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늘어난다면 그건 모두에게 위험 신호다. 마찬가지로 방역 수칙이 지켜지지 않는 작업 환경은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다. 심지어 꼭 바이러스 감염이 아니더라도 코로나19 사태의 간접적인 영향으로 배달앱 주문이 폭증하면서 늘어난 오토바이 사고는 도로 위에 누구든 당사자가 될 수 있다.

 

코로나19는 우리에게 묻고 있다. “이래도 당신과 무관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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