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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번 지진에서 살아만 돌아왔을 뿐, 많은 것을 잃었다. 2008년 말부터 본격적으로 네팔에서 일을 하기 시작해, 올해 10월 15일 한국에 돌아올 때까지 몇 번을 죽을 뻔 했는지 기억도 안 난다. 100번 넘었을 때부터는 세는 것을 포기했으니까. 장출혈로 거의 기절한 상태에서 걸어 들어온 것은 약과다.


인도에서는 중앙선을 무시하고 냅다 달리는 차를 그리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데, 네팔은 여기에 절대적으로 좁은 도로와 작은 차가 추가된다. 인도는 차라도 크지만 네팔은 한국으로 치면 12인승 정도 되는 차를 개조해서 40명 넘게 타고 다닌다. 그런 차가 중앙선을 심심찮게 넘나드는데 왼쪽은 산, 오른쪽은 수백 미터 절벽이다. 얼마나 똥꼬 따땃한 느낌인지 짐작하실까?


그런데 그런 거 타고 다니면서 8년간 쌓아왔던 모든 것들이 날아갔다. 계속 외부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했지만, 사실 내 처지도 말이 아니었다. 결혼은 했고, 결과물이 코앞에 놓여있다고 생각해 달렸던 것들이 모조리 나가리 났다. 그런 상태에서 석 달을 노숙하고 돌아왔으니 몸이고 마음이고 정상인 것이 하나도 없었다. 결정적으로 결혼비자 받으러 다닐 때 인도의 국경봉쇄가 시작돼 하루 22~25킬로미터씩 20일을 걸어다녔던 지라 발목 상태도 말이 아니다.


지진 당시의 상황을 이야기할 때, 다 지난 이야기 왜 하느냐는 조금은 퉁명스러운 반응도 꽤 들었다. 뭐 섭섭하진 않다. 다들 바쁘고 힘든데 내가 힘든 사정 들어줘야 할 이유는 하등 없으니. 하지만 사실이 알려지지 못하고 있는 것은 많이 안타깝다. 2015년 연말결산, 내가 겪은 최악의 재난이었던 네팔 지진을 Q&A 형태로 정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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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1. 네팔의 복구 상황은?


복구가 안 되고 있다. 네팔 정부가 겨울이 오기 전에 따뜻한 옷이라도 사 입으라고 일인당 한화 11만원에 상당하는 돈을 지급하기로 했는데, 그것도 지급되지 않고 있다(참고기사). 이게 다가 아니다. 다섯 살 이하 아이들 중 43만 명이 영양상태에 문제가 있으며, 그 중 29만 명은 영양실조 상태에 들어가고 있다고 한다(참고기사).


혹시라도 네팔의 고질적인 부정부패 때문은 아닌가라고 하실 분들도 계시겠지만, 이 사태에는 남의 나라 헌법이 마음에 안 든다고 3개월이 넘도록 국경봉쇄를 하고 있는 인도에게 상당부분 책임이 있다. 영문을 모르겠는 분들은 이 얘기를 다뤘던 지난기사(링크)를 보시면 된다. 이게 아직도 현재 진행 중이다.


쌀이나 면 제품 같이 상할 수 있는 물품들은 상해서 냄새를 뿜기 시작해야 국경통과를 할 수 있으며, 석유는 필요량의 약 1/20 정도만 공급되고 있다. 제한된 휘발유라도 받으려면 정부 운영 주유소 앞에서 며칠을 기다려야 한다. 항공유도 마찬가지라 주요 노선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내선 비행기가 못 뜨고 있다. 항공유가 없어서. 인천-카트만두를 직항으로 날았던 대한항공이 사이공과 다카에서 급유를 받고 있다면 그 상황을 이해하실까? 가스도 마찬가지라 지난 10월, 네팔 최대의 명절인 더샤인과 띠하르 기간 중엔 각 가정에 땔감 나무를 공급했다. 그런 상황에서 무슨 복구가 가능하겠는가?



Q2. 네팔은 부정부패가 심한 나라라고 알고 있다. 정부 공식 계좌로 돈을 보낸 사람들의 정성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네팔의 부정부패, 장난 아니다. 사우디로 일하러 떠나던 처남에게서 한화로 약 2만 원 상당의 돈을 뜯어내던 게 공항 경찰이다. 장모님께서 주신 네팔식 소주를 '폭발물'이라고 압류해야 한다며, 화장실까지 아내를 쫓아가 역시 2만 원에 상당하던 돈을 뜯어내던 것도 공항 경찰이다. 이런 황당한 일을 네팔인과 결혼한 나만 당할 리가 없잖아?


하지만 원조물자를 삥땅치는 문제에는 부정부패의 화신인 이 분이 빠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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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lu Prasad Yadav. 인도에서도 가장 가난한 동네라, 큰 도시에서 ‘촌놈’을 부르는 말로 쓰이는 ‘비하르인’들의 주, 비하르에서 꽤나 오랫동안 주총리를 ‘해 드셨던’ 분이다. 반복한다. 역임하신 분이 아니라, ‘해 드셨던’ 분이다.


일본의 나카소네가 비하르에 와서 “내가 주총리라면 비하르를 10년 내에 일본 수준으로 만들어놓을 것이오”라고 했더니 씨익 웃으며 “내가 일본의 총리라면 1년이면 일본을 비하르로 만들 수 있지요”라고 했다고 한다. 이 농담은 남아시아에서 가장 유명한 정치농담이다.


인도에서도 가장 가난한 주의 주지사 시절에 얼마나 해 드셨는지 해외개발원조(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 이하 ODA) 방법이 획기적으로 바뀌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하셨다. 비하르의 주도인 빠뜨나로 들어가는 곳엔 기초공사를 전혀 안하고 아스팔트를 깔아놓은 꽤 긴 길이 있다. 일본에서 ODA로 준 돈을 탈탈 털어 드셔서 그 모양이 된 것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세계 어디든 ODA로 진행하는 공사는 모두 공개입찰 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물론 이렇게 해도 쌀가마 바꾸기 신공 덕택에 생뚱맞게 WFP가 못 먹는 쌀을 보급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었다. 즉, 일부가 새고 있다. 하지만 그게 4대강에 비할 바는 아니다.



Q3. 지진 이후 공관 대응에 문제가 있었다고 하는데?


유감스럽지만 그런 재난 상황이 벌어졌을 때 공관이 해줄 수 있는 일은 몇 가지 없다.


첫 번째는 전화번호를 등록 받아 업데이트 되는 구호 상황들을 통보해주는 것. 지진과 같은 대형 자연 재해가 벌어지면 국내 통화요금으로 현지에서 전화를 쓸 수 있다. 이걸로 업데이트 되는 내용들을 전달 받는 것은 꽤 중요하다. 나 같이 현지에서 뒹구는 짬이 좀 오래되면 알아서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지만, 히말라야 한 번 밟아보겠다고 온 사람들이 현지 상황에 대해 아는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한국 가는 비행기편 편성과 같은 정보들은 상당히 요긴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두 번째는 에스크로 서비스. 현지에서 돈을 모두 잃어버렸을 경우, 한국의 지인들이 3,000달러 한도에서 공관이 지정한 계좌로 돈을 송금하면 그 돈을 현지 공관에서 받을 수 있다. 한국 여권도 분실했으면 여행증명서를 만들어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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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 홈페이지에 <위기상황별 대처매뉴얼>이 있긴 있으나,


이 외에는 정해진 것이 없다. 사실은 이게 문제다.


지진 직후 해발 4천km 이상에 있던 사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헬기를 불러 긴급히 하산하다 보니, 헬기 임대료가 몇 십 배로 뛰었다, 그러나 이를 위해 긴급예산을 편성하고 그 예산을 집행할 수 있도록 하는 특별한 지침 같은 건 없다. 한국 사회는 어디까진 누가 책임지고 어디까진 누가 책임진다는 기준을 만들어놓은 것도 아니고, 이런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해본 적도 없다.


한국은 무역으로 먹고 사는 나라다. 해외에 한국 사람이 안 나가 있는 나라가 없다. 따라서 자연재해나 테러, 전쟁 같은 상황에 개인이 빠지게 될 가능성이 굉장히 높은데, 그럼에도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조차 시작하지 않고 있다.



Q4. 내가 성의를 표시한 돈이 단체의 운영경비로 소모되는 것은 아닌가?


강명순 당시 한나라당 의원이 ‘한국 적십자사에서 아이티 지진 당시 성금 모아놓고 성금으로 이자놀이 중’이라는 폭로를 한 적이 있다. 그 이후에 이런 불신들이 생겼던 것으로 아는데, 일단 아이티 성금은 2012년까지 제대로 집행됐다(참고기사).


이어지는 비판들은 이들이 4성급 호텔 이상에서 묵으면서 활동한다는 것인데, 일단 재난 지역에서 구호단체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전기, 통신 등이 안정적으로 공급되는 곳이 그닥 많지 않다. 안정적인 전기와 통신 시스템 없이 어떻게 현지 상황을 파악하고 사실을 전파하겠는가? 그래서 4성급 이상 호텔로 들어가는데, 호텔들도 이런 상황에선 국제 구호 단체들에게 할인을 많이 해준다.


여하튼 이런 비판이 워낙 강하다 보니 거꾸로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있는 것이 한국 구호단체들이다. 일부 단체의 경우, 현지 활동가들의 월급이라고 할 수 있는 활동비가 월 20만 원이 안 된다. 네팔에서 한 달에 20만원으로 살기 어렵다. 물론 단체 활동을 하면서 거나하게 살아야 한다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 최저임금 기준도 안 되는 돈을 준다니. 그것도 재난 상황 초기 대응팀의 경우엔 특정분야 전문가인데 말이다. 제대로 된 전문가들이 아니라면 그런 상황에서 활동하기 힘들다. 일반비용(Overhead Cost) 비중이 가장 낮다고 알려진 국경없는 의사회(Médecins Sans Frontières (MSF))의 경우에도 월 100만 원에 기타 경비 일부를 보전한다.


구력이 좀 되는 국제 단체들 중 하나인 Oxfam의 경우, 지진 직후부터 여름 장마(summer monsoon)이 오기 전까지 고립된 40만 명에게 구호물자를 전달하겠다고 했다(참고기사). 네팔 같이 정말 ‘아무 것도 없는’ 나라에서 이런 프로그램을 돌리려면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결합해야 한다.


그에 반해 며칠 전에 또 한국 적십자사에서 문제가 터져 나온 걸 보면 한숨만 나온다.



Q5. 내가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


가장 좋은 것은 그 열악한 상황에서도 트레킹을 가서 직접 상황을 보고, 힘든 상황에 공감하고 조금 더 돈을 쓰고 오는 것이지만, 한국에서 열흘 휴가 내서 날아가는 게 어디 쉬운가.


사실 국경봉쇄가 풀리기 전까진 일반인이 현지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을 것 같다. 규모 7.9의 지진에 알려진 사망자만 1만명에 달했던 이유는 내진 설계가 되어 있는지의 문제가 아니라 항상 삶이 위태로운 사람들에게 재앙이 닥쳤기 때문이다. 흙과 돌로 집 짓고 산에서 살던 사람들인데, 그 산이 무너져내려 마을 단위로 없어졌던 것이다. 이 현장은 위험해서 중장비도 접근하지 못한다.


두산을 지금의 위기로 넣은 ‘밥켓’ 같은 장비를 산간지방에 보내는 것이 가장 절실했는데, 국경봉쇄가 되어 있는 상태에서 뭘 할 수 있겠나. 유류공급조차 안 되어서 국내선 운항이 거의 대부분 중지되어 있는 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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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류공급이 안 되어서 버스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타기도 한다.


이런 상태에서 민간인들이 뭔가를 할 수 있는 건 없다. 현지에서 살고 있는 한국 사람들의 경우에는 자신들의 삶의 터전이 그곳이기 때문에 현지에서의 관계 유지를 위해 이런 저런 복구사업들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 그 분들을 지원하는 것도 방법이다.




국제부 SamuelS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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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딴지일보 챙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