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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국시대엔 하루가 멀다 하고 전쟁이었다. 그러다 보니 병사들의 군용 식량에 관심이 많았다. 문제는 일본도 한국처럼 쌀 문화권이란 점이다. 밥을 주식으로 삼았기에 보존방법을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밥이란 음식은 기본적으로 젖어있다. '젖어있다'는 건 보존기간이 짧다는 걸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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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일본 병사들은 전투식량으로 주먹밥을 들고 다녔다. 주먹밥은 들고 다니기도 불편했고, 수량도 제한적이었다. 부서지기도 잘 부서졌고, 보존기간이 짧았다.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쉽게 쉬어서 탈이 나는 경우도 많았다. 추운 겨울엔 얼어버리기도 했다.

 

결정적으로 주먹밥 만들기가 쉽지 않다. 주먹밥을 만들기 위해서는 일단 ‘밥’이 필요한데, 밥은 솥에다가 쌀을 씻어서 불을 때야 지을 수 있다. 솥을 들고 다니는 것보다 더 큰 문제는 ‘불’을 지펴야 한다는 거다. 전장 한 가운데서 불을 사용한다는 건 적에게 아군의 위치를 노출하는 행위와 같다. 

 

일본 내 전쟁이었다면, 피아 구분 없이 모두 주먹밥을 들고 다니니 괜찮을지 모른다. 그러나 전쟁의 상대가 바뀌었다. 

 

“영국이 청나라를 쳐들어갔답니다!”

“뭐야? 청나라를? 이것들이 제정신이야? 중국이 어떤 나라인데...”

“청나라가 밀리고 있답니다.”

“뭐?”

 

1840년 아편전쟁이 발발했다. 잠자는 사자라고 생각했던 중국이 ‘병든 돼지’였다는 걸 확인한 에도 막부는 마음이 급해졌다. 

 

“큰 중국도 이렇게 당하는데, 어떻게 버티지?”

“일본은 섬나라라 해안이 다 뚫려 있어. 영국이 마음 먹고 함대를 끌고오면 일본은 제대로 털리는 거야.”

”안되겠어. 당장 해안선 경비를 강화하자!”

 

에도 막부는 에가와 다로자에몬 히데타쓰(江川太郞左衛門英龍)에게 에도만 주변의 경비를 맡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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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가와 다로자에몬 히데타쓰

 

에가와는 해안 방어를 위해 두 가지 방도를 생각해낸다. 

 

하나, 서양포술을 전수 받아 해안포대 건설

둘, 빵 만들기

 

영국과 서구열강들의 함대를 방어하는 게 급선무였으니 첫 번째는 당연했지만, 동시에 주력했던 게 빵을 만드는 것이었다. 생뚱맞아 보이는 일이지만 에가와는 결연한 의지로 ‘빵’을 찾아나섰다. 

 

“잘 싸우려면 우선 먹어야 한다. 먹기 위해선 주먹밥을 만들어야 하는데, 전쟁하는 와중에 밥 짓고, 주먹밥 뭉치는 걸 언제 해? 가볍게 한끼 해결할 수 있는 서양의 떡을 들여오자!”

 

쉽게 상하는 주먹밥 대신 가볍고, 휴대하기 편하고, 오래 보존할 수 있는 서양의 빵을 전투식량으로 낙점한 거다. 

 

에가와의 눈에 들어온 사람은 데지마(出島 : 에도 막부가 나가사키에 건설한 인공섬. 네덜란드와의 무역을 독점적으로 허용한 곳)에서 요리사로 일한 사쿠타로였다. 

 

“네가 서양 떡을 만들 줄 안다면서?”

“서양 떡이 아니라 빵입니다.”

“그거 만드는 법 좀 알려줘”

 

‘팡(パン)’이 일본 사회에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된 거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일본에 빵이 전래된 건 1543년, 포르투갈 사람들이 일본에 등장하면서다(총과 함께 빵이 들어왔다). ‘팡’이 일본에서 슬슬 저변을 넓혀가다가, 에도 막부가 등장한 뒤 잠시 모습을 감췄다(정부 정책이 '쇄국'이라). 물론 이 때도 데지마의 네덜란드 사람들은 빵을 굽고, 버터를 발라먹고 있었다.

 

어깨너머로 보아온 일본인들은 빵의 ‘유용성’을 알고 있었다. 

 

“전투식량으로 쓰기에 딱인데”

 

에가와가 놓칠 리 없었다. 빵을 전투식량으로 활용했다. 당시 에가와가 만든 빵은 밀가루에 소금으로 간을 한 ‘초보적인’ 빵이었으나 유용성은 확실했다. 에가와가 직접 사슴사냥에 빵을 들고 가 확인했다. 

 

“평균적인 식사량을 가진 사람이 빵 1개, 많이 먹는 애들이 2개를 먹었다. 빵을 먹은 뒤에 찻물을 마시면, 뱃속에서 불어나 포만감을 느껴진다.”

 

10여 년이 흐른 1855년. 에가와는 죽었지만, 일본은 너나 할 거 없이 ‘빵’을 연구하게 된다. 아니, 연구할 수밖에 없는 일이 터진다. 

 

'흑선내항(黒船来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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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3년 미국의 페리 제독이 이끄는 증기선들이 일본에 등장했고 사회는 요동쳤다. 외세의 등장 앞에 일본은 전쟁을 생각했다. 아니, 서구세력과의 전쟁까지 아니더라도 일본 내에서 변화의 움직임이 보였다(흑선내항이 촉발한 거지만).

 

전쟁의 먹구름이 피어오르는 상황에서 빵이 다시 주목받았다. 

 

나가사키에서 네덜란드 의학을 공부하던 시바타 호안이 새로운 빵을 들고 나온다.

 

“군용식량하면 비스킷이지! 서양 군인들은 비스킷을 먹어! 빵보다 이게 더 쓸만 해.”

 

1855년 미토 번(水戸藩)에서 시바타가 비스킷과 ‘비슷한’ 빵을 만들었다. '병량환(兵糧丸)'이다(이름부터 군용식량이란 게 느껴진다). 미토 번이 빵을 만들자, 훗날 메이지 유신의 주축세력이 되는 사쓰마와 조슈에서도 빵을 내놓는다. 사쓰마의 증병(蒸餠), 조슈의 비급병(備急餠)등이 등장한다. 

 

나라의 위기(!?) 앞에서 일본 각지에서 빵을 만들었지만,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이름이 ‘떡’, ‘경단’, ‘찐빵’이란 단어를 연상케 했고, 실제로도 보조 역할이 고작이었다. 이때까지도 일본의 주요 군용식량은 주먹밥이었다. 

 

등장은 했지만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한 빵. 아직까지는 시대의 바람을 쫓아가지 못했던 걸까?

 

아니다. 빵은 시대를 기다리고 있었던 거다. 군용식량의 왕자였던 주먹밥은 누가 봐도 시대의 흐름에 뒤처진 존재였다. 다만 계기가 없었을 뿐이었다. 

 

계기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온다. 일본에서 전쟁이 터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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