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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中

 

1993년 여름, 1차 수능시험 100일을 앞두던 날, 저를 제외한 친구들(5명)이 다른 친구들과 백일주를 마셨습니다. 저녁 늦게 귀가하던 중, 같이 술을 마셨던 다른 친구 무리 중 하나가 '인사를 하지 않고 지나갔다'는 이유로 후배를 폭행했습니다. 제 친구들은 폭행 사실을 모르고 있었고요.  

 

다음날, 학교가 발칵 뒤집혔습니다. 피해 학생의 진술에 따라 제 친구들을 포함해 약 여덟 명이 교무실에 불려갔습니다. 폭행하지 않은 제 친구들(5명)도 그저 그 무리와 술을 마실 때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일주일 내내 학생주임실에 불려가 맞고, 수십 장의 반성문을 썼었습니다. 친구들의 어머님들까지 학교에 방문하여 용서를 구하기도 했습니다. 친구들은 아직도 술을 마시며 그 일에 대해서 얘기합니다. 너무 억울하다고 말입니다.

 

돌이켜보면, 그 시대 학교의 처벌 방식은 그랬습니다.

 

나쁜 행위에 대해서는 폭행을 서슴치 않았지만, 나름의 도덕적, 윤리적 기준으로 학교폭력에 대한 처분을 내린 것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옳고 그름에 대해 나름의 가치 판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아닌 경우도 많았지만요)

 

저는 어쩌면 학교에 그런 처분을 기대했을지 모릅니다. 학교 선생님들이 가해 학생을 꾸짖고 혼내는 그런 장면을 말입니다. 공권력이 그들을 처벌하기 전에 윤리적, 도덕적으로 학생들에게 훈계하는 게 당연한 모습이라 생각했으니까요. 

 

 

학교에 방문했습니다

 

아들의 폭행 사건을 담임 선생님께 알리고 나서 며칠 후, 아들과 함께 사안 조서 작성을 위하여 학교에 방문했습니다. 코로나의 영향으로 아이들이 없는 학교는 많이 썰렁했지요. 

 

당연히 저는 선생님들이 폭행피해를 입은 저희 아들을 걱정해줄 것이라 기대했습니다만, 예상과 달리 선생님들은 평온하기만 합니다. 

 

사실 확인서를 작성한다며, 담임 선생님과 학년 부장 선생님이 차례대로 오시더니 아들에게 똑같은 질문을 반복하여 물어봅니다. 가뜩이나 힘들어하는데 그 때를 기억하느라 더 힘들어하는 아들의 모습에 저도 모르게 폭발하고 말았습니다.

 

"왜 동일한 질문을 반복해서 물어봅니까?"

"아버님, 저희 절차입니다."

"폭행에 트라우마가 있는 아이에게 동일한 것을 반복적으로 물어보면, 아들 입장에서는 당시 상황을 계속 떠올려야 하지 않습니까? 왜 폭행피해를 입은 아들의 입장은 생각을 안 해주시는 겁니까?"

"일단 어려우시겠지만 제가 조사하고, 다시 학생부장 선생님과 면담을 할 예정입니다."

"무슨 소리입니까? 이미 ‘위계에 의한 특수폭행’으로 경찰서에 신고가 되었고, 폭행 피해에 대한 진단서까지 제출된 상황인데요. 똑같은 내용을 반복적으로 조사하고 물어보는 건 학교 폭력 피해 학생의 안위를 보호해야 할 학교가 직무 유기를 하는 거 아닙니까? 학생부장 선생님들 모두 오셔서 한꺼번에 진술을 받으십시오."

 

그제야 학생부장 선생님과 학교 폭력 담당 선생님이 오셔서 면담합니다.

 

피해자의 입장이 되면, 누구든 억울함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저도 마찬가지로, 아들이 중학교 3학년 선배들에게 폭행 당한 사실들에 대해 분노했습니다. 감정 조절이 힘들 정도였습니다. 

 

선생님들께 그러한 억울한 심정을 이야기하고, 또 그 이야기들을 들어주기를 원했지만, 이미 학교 폭력이라는 사안은 선생님들의 일상 업무이자 가장 골치 아픈 업무가 되어버린 듯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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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까지는 학교 폭력에 대한 조사 권한이 학교에 일정 위임되었습니다. 교장선생님을 포함, 자체적인 학교 폭력 대책 심의위원회에서 사안의 경중을 따졌고, 선도 조치를 했습니다. 그에 따라 학교 선생님들이 적극적으로 사안을 조사해, 사실 관계를 밝혀내고 사건을 처리했습니다.

 

2020년부터 지역 교육지원청에서 학교 폭력 대책 심의 위원회를 통합운영하게 되었고, 학교와 선생님들의 사안 조사에 대한 권한이 대폭 축소가 되었습니다. 가해 학생, 피해 학생의 진술서에 의존해 자료를 정리하는 수준으로 권한이 축소가 된 것입니다. (단, 학교폭력 예방 법률에서 정하는 4가지 요건이 모두 충족될 경우, 학교장의 재량으로 처리됩니다)

 

(학교와 선생님들의 조사 권한이 축소되면서 기본적으로 학교 폭력이 발생하면, 학교는 가해 학생과 피해 학생의 진술에만 의지합니다. 폭행 피해에 대한 사실적인 증거가 있다 하더라도, 학교와 선생님들은 피해 학생과 가해 학생을 구분하지 않습니다. 만약 가해 학생이 '피해 학생에게 폭행을 당했다'고 허위로 진술해도, 학교와 선생님들은 사실을 확인할 여력도, 권한도 없습니다. 강제 조사권이 없기 때문입니다. 순식간에 피해 학생이 가해 학생으로 특정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참 놀라운 일이지요)

 

이 때문인지 아들의 억울함을 이야기해도, 학교와 선생님들은 기계적 중립을 유지합니다. 그 어떤 선생님도 우리 아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네거나 걱정해주지 않습니다. 그저 사실 확인에 대한 진술서만 작성하고, 학폭위 일정에 대해서 이야기 해줄 뿐입니다.

 

피해 학생과 피해 가족들의 억울함을 일정 부분 학교와 선생님들에게 호소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은 이내 실망과 원망으로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무작정 학교와 선생님들을 원망할 수는 없습니다.

 

가해 학생들의 허위 진술은 선생님들도 알고 계십니다. 학생들과 목격자 일부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 또한 알고 계십니다.

 

그러나 학생들에게 사실대로 말하라고 윽박지르거나 다그칠 수 없습니다. 진술을 바탕으로 다른 목격 학생들에게 받은 사실 확인서를 대조할 뿐 입니다. 선생님들은 사실인지 아닌지를 판단하지 않습니다. 각각의 사실 확인서를 바탕으로 교육지원청의 담당 장학사에게 보고할 뿐입니다.

 

최종 판단은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에서 하니까요. 이 제도적인 변화는 일선의 학교 선생님들의 업무 부담을 덜기 위함이고, 학교 자체에서 진행되는 학폭위 처리 과정을 보다 투명하게 처리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이로 인하여 선생님들은 학교 폭력이라는 사회적 문제에 아무런 개입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저 기계적인 중립을 요구하는 교육 공무원이 되었습니다. 

 

학교가 사법 기관이 아닌 만큼 선생님들에게 강제 조사권을 부여한다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고 합니다. 맞는 말이지요. 그렇지만, 학생들이 도덕적, 윤리적으로 잘못한 것에 대해서는 스승으로써 올바르게 교육시킬 수 있는 것 아닐까요. 현 제도가 선생님들의 직업적인 소명을 빼앗아간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영향력 있는 사람의 말 한마디

 

모든 억울함과 섭섭함을 학교와 선생님들께 책임을 돌리는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들은 가해 학생 부모와 피해 학생 부모 양측에서 시달림을 받고 있었을지 모릅니다. 저와 같은 피해 학생 부모에게는 '왜 학교 폭력 피해자를 보호해주지 않느냐'는 원망을 들었을 것이고, 가해 학생의 부모에게는 '우리 아이는 절대 그런 아이가 아니'라는 항변을 듣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다만 영향력 있는 사람의 말 한마디가 인생을 살아가는데 큰 힘이 됩니다. 저는 선생님이, 영향력 있는 사람으로서 아들에게 격려의 한마디를 해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선생님들께 이성적으로 호소했습니다. 선생님들도 누군가의 엄마이고, 아빠입니다. 단순히 일상의 업무로 또는 극성 맞은 부모의 모습으로 다가가기 보다, 같은 부모의 입장에서 호소하였습니다.

 

처음에는 기계적 중립으로 일관하시던 선생님들도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여십니다. 그리고 현재의 제도에 대한 문제점들을 함께 논의하며, 저희 가족에게 미안함을 전하기 시작합니다. 

 

'아들 편을 들어달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의 사회적인 지위가 아무리 약해졌다 해도, 아이들이 바라보는 선생님은 여전히 영향력 있는 존재입니다. 그 부분에서, 아들이 받은 상처를 조금이나마 어루만져달라고 부탁 아닌 부탁을 했습니다. 그것이 선생님의 역할이지 않냐고 이성적으로 호소했고, 아들에게 직업적 소명의식을 가진 선생님이 되어달라고 간곡히 부탁도 드렸습니다.

 

진정성이 선생님의 마음에 와 닿았는지, 선생님은 저의 와이프에게 장문의 메시지를 보냈고, 저도 선생님께 장문의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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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프와 나눈 문자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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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보낸 문자 내용

 

학교 폭력 피해를 당하면, 어쩔 수 없이 학교와 선생님들을 원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원망은 우리의 자녀들을 지켜주는 곳이 학교와 선생님이라는 기본적인 인식에서 시작됩니다. 그러나 인식에서 파생되는 기대감은 현실에서는 실망과 원망으로 다가옵니다.

 

선생님들과 학교의 기계적 중립은 각 선생님들의 개인의 소명 의식과 자질에 대한 문제보다는, 지속적인 사회적인 분위기가 만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입시 경쟁 위주의 교육 방식에 따른 사교육의 확대가 학교와 선생님들을 더 위축시켰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현실적 한계가 극명한 작금의 학교 폭력 관련 사안에 대한 학교와 선생님들의 역할은 그러한 배경과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실적으로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학교와 선생님들은 학생들을 보호하는 주체가 아닙니다. 지식의 전달자, 공유자의 역할일 뿐입니다. 학생들은 보호하고, 선도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가정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선생님들에게 권한이 주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책임까지 요구하는 부모들이 많아질수록 학교와 선생님들은 어쩌면 기계적 중립과 절차를 더 강조하는 교육 공무원이 될 것입니다.

 

학교와 선생님 편에서 옹호하는 게 아닙니다. 다만, 학교 폭력이라는 사회적 문제를 경험한 부모로서, 그들의 역할을 명확히 인식하면 훨씬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대처를 할 수 있습니다. 시대는 변하고, 학생들도 변하고 있지만, 인식은 과거에 매몰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학교와 선생님들의 현실적인 상황을 무조건 이해하라는 말도 아닙니다. 적어도 학교 폭력에 대한 실상과 현실을 맞닿으면, 그들에게 실망하고 원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실망과 원망이 피해 학생과 가족에게는 또 다른 상처로 다가오겠지요. 다만 현실을 명확히 인식하여, 저와 같은 상처를 받지 않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 학교와 선생님들과의 감정적 대응은 지양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성적으로 접근하시되 그 분들을 납득시키고, 아이들을 키우는 같은 부모로서 감정이입을 하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향후 학교폭력 피해를 입은 아이가 학교로 돌아갔을 때 선생님들이 아이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해줄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집니다. 

 

※ 학교와 선생님들께 부탁드립니다. 현실적인 한계와 기계적 중립을 이해합니다. 하지만 선생님들의 따뜻한 위로의 말 한마디가 피해 학생에게는 얼마나 많은 도움이 되는지 꼭 알아주십시오. 선생님들의 말 한마디와 관심은 피해 학생들이 트라우마에서 좀 더 빨리 벗어날 수 있습니다. 꼭 그들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시고, 위로를 해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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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p: 학교에 방문하기 전에 질문지를 준비했습니다.

 

① 학교는 이 사안의 심각성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② 최초 사건 발생 후, 학교의 초동 조치는 무엇인가?

③ 향후 학교의 사건 처리 진행 과정은 어떻게 되는가?

④ 가해 학생들에 대한 학교의 평판은 어떠한가?

⑤ 평판이 안 좋았다면, 학교 자체적으로 그 학생들을 관리하는가?

⑥ 관리를 한다면, 지속적인 면담 일지가 있는가?

⑦ 향후, 학폭위 일정은 어찌되는가?

⑧ 학교는 학교 폭력을 예방하기 위해 무엇을 하는가?

⑨ 학교에서 피해 학생의 보호조치는 무엇인가?

⑩ 교육청에서 피해 학생에 대한 별도의 보호조치는 무엇인가?

 

 

Q: 학교 폭력 피해 학생의 보호 조치는 무엇이 있나요?

 

A: 교육지원청의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에서 피해 학생에 대한 보호 조치를 할 수 있지만, 자녀의 정신적, 신체적 피해가 큰 경우에는 해당 학교의 교장에게 요청하십시오. '긴급하다'고 인정될 경우 바로 보호 조치를 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정신적 피해가 큰 경우에는 별도의 심리 상담이 가능합니다. 해당 교육감이 지정하는 곳에서 상담을 진헹할 수 있으며, 비용은 가해 학생 측의 부모가 집니다(추후 학교안전공제회가 구상권 청구). 자녀가 만약 학교 폭력을 당했다면, 피해의 정도를 떠나서 별도의 심리 상담을 꼭 권합니다.

 

 

제16조(피해학생의 보호) ① 심의위원회는 피해학생의 보호를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때에는 피해학생에 대하여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조치(수 개의 조치를 병과하는 경우를 포함한다)를 할 것을 교육장(교육장이 없는 경우 제12조제1항에 따라 조례로 정한 기관의 장으로 한다. 이하 같다)에게 요청할 수 있다. 다만, 학교의 장은 피해학생의 보호를 위하여 긴급하다고 인정하거나 피해학생이 긴급보호의 요청을 하는 경우에는 제1호, 제2호 및 제6호의 조치를 할 수 있다. 이 경우 학교의 장은 심의위원회에 즉시 보고하여야 한다. <개정 2012. 3. 21., 2017. 4. 18., 2019. 8. 20.>

 

1. 학내외 전문가에 의한 심리상담 및 조언

2. 일시보호

3. 치료 및 치료를 위한 요양

4. 학급교체

5. 삭제<2012. 3. 21.>

6. 그 밖에 피해학생의 보호를 위하여 필요한 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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