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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30대 중반이었을 때 이준구(李俊九, 1932~2018) 선생님을 만나 뵌 적이 있다. 이준구 선생님은 ‘Jhoon Rhee’라는 이름으로 미국에서 크게 활동하여 ‘미국 태권도의 아버지(Father of American Taekwondo)’라 불리는 분이다. 

 

충남 아산 출생으로 1956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것을 계기로 태권도 사범으로 활동하면서 미국에 최초로 태권도를 보급했는가 하면 전 세계적으로 태권도 열풍을 일으킨 태권도 전도사이자 한류의 원조격인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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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구 사범과 이소룡

 

전설적인 액션 스타 이소룡(李少龍, 1940~1973)과 무술 교류를 하였고, 세계적인 복서 무하마드 알리(Muhammad Ali, 1942~2016)를 지도했으며, 미국의 제42대 대통령이었던 빌 클린턴(Bill Clinton, 1946~ )을 가르치기도 하였다. 특히 미국 국회의원들을 대상으로 태권도를 지도한 것으로 유명하며, 미국 상·하원 의원 제자만도 300명이 훨씬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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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구 사범과 무하마드 알리

 

1976년 미국 건국 200주년 기념일에 스포츠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금세기 최고의 무술인상’을 수상했으며, 2003년에는 미국의 문화체육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미국 워싱턴시에서 동양인 최초로 ‘준리데이(Day of Jhoon Rhee, 이준구의 날)’를 선포하기도 하였다. 2009년에는 우리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목련장을 받았다. 

 

한 마디로 이준구 선생님은 미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수없이 많은 제자를 키워내신 태권도계의 거목이시며 세계 무술사에 영원히 기록될 입지전적인 인물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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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구 사범과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 (왼) / 이준구 사범과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 (오)

 

이렇게 어마어마한 분을 집안 어르신의 도움으로 30대의 아무것도 아닌 필자가 독대(獨對)할 행운을 가지게 되었고, 당시 필자의 모친께서 운영하시던 한정식 식당의 아담한 방에서 단둘이서 오붓하게 식사를 하게 되었다. 

 

이준구 선생님은 방에 들어서자마자 양복 윗도리를 벗어 옷걸이에 걸고는 음식이 들어오기 전에 팔굽혀 펴기를 100번만 같이 하자며 엎드리셨다. 

 

필자는 엉겁결에 따라 엎드렸고 옆에서 같이 팔굽혀 펴기를 하게 되었다. 이준구 선생님은 크지는 않았지만, 절도 있는 목소리로 하나, 둘, 숫자를 세며 팔굽혀 펴기를 시작했다.

 

필자도 그 구령에 맞춰 따라 했는데 한창 운동을 할 때였기에 근력에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는데도 평소에 딱히 팔굽혀 펴기를 하지는 않았던 터라 80개가 넘어가자 조금씩 버거워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환갑이 훨씬 지난 노인네에게 질 수는 없다는 생각에 100개를 채우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데 그새 100개를 마치신 선생님께서, 

 

“힘들면 그만하시게!”

 

라고 하셨고 그 소리가 반가워 필자는 90개도 채우지 못했지만, 얼른 그만두었다. 그러나 솔직히 엄청 창피했다. 지금이야 환갑을 챙기는 사람이 없을 만큼 사람들이 젊게 살지만, 그 당시에는 환갑이 넘으면 당연히 노인이라고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그런 노인네에게 근력에서 졌으니 무예를 한다고 설쳐대던 스스로가 몹시 부끄러웠다. 그런 필자의 마음을 눈치채셨는지 이준구 선생님은 필자를 위로해 주셨다. 

 

“안 하다 갑자기 하면 힘들어! 그래도 그만큼 하는 거 보니 평소 운동을 열심히 하는구만!” 

 

곧이어 식사가 들어왔고 두 시간 정도 식사를 하는 동안 이준구 선생은 미국에서 활동했던 이런저런 에피소드와 재밌고 좋은 말씀들을 많이 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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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 미국에서 무술 시범을 보이는 이준구 사범

 

식사가 끝나고 돌아가시는 선생님을 문 앞까지 배웅해 드렸다. 문 앞에서 헤어지기 전에 선생님이 물으셨다. 

 

“나를 만난 것이 좀 도움이 되었나?”

 

“예, 좋은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러자 필자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시며, 

 

“내 얘기는 내가 그냥 잘난 척 한 거야. 재미로 듣고 다 잊어버려도 돼. 그런데 팔굽혀 펴기는 잊지 말게. 난 평생 하루도 빠지지 않고 팔굽혀 펴기를 했네. 자네도 얼마나 오래 지속할 할 수 있는지 한 번 도전해봐! 자신과 한 번 겨루어보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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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과 장년의 이준구 사범을 보며, 그가 얼마나 몸 관리를 꾸준히 했는지 알 수 있다.

 

필자는 이준구 선생님과 헤어진 그 날부터 하루에 팔굽혀펴기 100개에 도전했다. 한 보름이나 했을까? 집안일로 지방을 다녀오느라 하루를 빼먹게 되었다. 

 

‘아, 이게 아니다!’ 싶어 다시 마음을 다잡고 팔굽혀 펴기 100개를 실시했다. 또 10일이나 했을까!? 친구들과 술 먹고 놀다가 또 하루를 건너뛰었다. 

 

“이렇게 빨리 포기할 순 없지!!!”

 

또다시 도전했다. 그러나 제법 오래 버틴 것이 한 100일 정도였고, 이런저런 이유로 자꾸만 팔굽혀 펴기가 중단되었다. 그리고는 결국 흐지부지되어 포기하고 말았다. 젊은 시절 필자는 그렇게 자신과의 싸움에서 지고 말았다. 

 

무예를 수련하면서 두려운 것은 강한 적을 만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두려운 것은 게으름과 변명하는 나 자신이다. 

 

적을 이기기에 앞서 우선 나와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어야 진정한 강자가 될 수 있다. 나 자신을 이기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자신과의 약속을 정하고 실행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나를 이기는 싸움법은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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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터 황

 

지난 연재에서 소개했던 마스터 황이 주먹을 단련하여 엄청난 파괴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자신과의 약속을 지켜냈기 때문이다. 이준구 선생님께서 평생 팔굽혀 펴기를 실천하신 것도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하신 결과물이다. 

 

자신과의 싸움은 비단 무예인에게만 한정된 얘기는 아니라고 본다. 인간은 살면서 자신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여러 번 자신과 약속을 한다. 

 

학생 때는 공부를 열심히 하겠다, 게임하는 시간을 줄이겠다는 것에서부터 성인이 되어서는 술을 끊겠다, 담배를 끊겠다, 운동을 열심히 하겠다, 다이어트를 해서 살을 빼겠다, 등등 수많은 약속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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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번번이 실패하는 경우가 많으니 그것은 바로 자신과의 싸움에서 지는 일이다. 

 

필자는 팔굽혀 펴기가 나와는 맞지 않는다고 자위하면서 새로운 방법으로 다시 나와의 싸움을 진행 중이다. 아직 그 결과가 미비하여 밝힐 단계는 아니지만 이번만큼은 나를 이겨 보고자 열심히 노력 중이다. 

 

여러분들도 용기를 내어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고 싶은 마음은 없으신지? 그것이 무엇이든 부디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하여 보다 나은 삶을 영위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다음 편, 예고 

 

‘강한 만큼 정의롭다. 힘이 없는 용기는 객기이고 정의 없는 힘은 폭력이다. 무예를 수련함은 힘이 있는 정의로운 용기를 갖기 위해서다.’라는 내용으로 찾아뵙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