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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겨울은 유난히 따뜻하다. 북극의 온도마저 예년보다 20°C나 높다고 한다. 파리의 겨울이 어지간해서는 영하로 내려가지 않는데, 2015년 12월 내내 10도 안팎의 기온이 이어졌음은 보통의 일이 아니다. 다만 2016년의 첫날, 파리는 잠시 예년 기온을 되찾았다. 전날이 따뜻해서인지 이날은 평소보다 몇 배는 더 춥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날, 세느강을 사이에 두고 에펠탑 정면에 위치한 트로카데로 인권광장에는 칼바람이 불었다. 잠시만 서 있어도 뼛속으로 추위가 침투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던 그 현장에서 한국의 젊은이들이 온 세상에 희망을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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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28일부터 1월 16일까지 이어지는 이들 젊은이의 ‘유럽평화기행’의 본래 목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세계에 알리며, 전 세계에 평화를 호소하는 데에 있었다. 다만, 12월 28일 한일 양국의 위안부 문제 ‘타결’로 인하여 이번 기행의 목적은 한일회담 결과를 규탄하는 것까지를 포함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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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 동안이나 이어지는 ‘모두 발언’과 ‘자유 발언’ 내내 이들은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빨갛게 얼어 버린 손으로 ‘위안부’ 할머니들의 사진을 들고 결연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할머니들의 염원이 이루어지기를 소망하는 간절한 바람을 담은 그들의 진지한 모습에 어쩐지 숙연해졌다. 제2차 세계대전의 전쟁범죄 피해자이면서도 세계의 변방에서 자행되었다는 이유로, 또한 약자 집단 내에서도 여성이라는 상대적 약자의 위치에 있다는 이유로 아주 오랫동안 ‘위안부’ 문제는 수면 위로 떠오르지 못했다.


프랑스를 포함한 서방사회에서 이 주제에 대해 아는 시민의 수는 상당히 적다. 얼마 전 한일 양국의 회담 결과에 대해서도 <르몽드>를 위시한 프랑스의 언론은 아주 짧게 타결 사실 정도만을 전했을 뿐이다. 세계의 언론도 못 미덥고, 게다가 시민의 인권을 지켜주는 든든한 뒷배가 되어 주어야 할 정부조차 그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기에(망치고 있기에) 보다 못한 시민들이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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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공식사죄’와 ‘법적배상’이다. 명백한 범죄 행위의 피해자들이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최소한의 조건이다. ‘위안부’에 대한 가해 주체가 일본의 정부와 일본군이었음을 감안한다면, 그저 ‘돈 줄 테니 떠들지 말아라’는 식의 태도가 아니라, 일본 정부와 일본군의 가해자임을 시인하는 데서부터 시작되는 공식적 사죄가 선행되어야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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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코리아 친선협회(AAFC)의 부대표 브누아 케네데(Benoit Quennedey) 씨는 "위안부 문제는 한국인의 문제만이 아닌, 전쟁에서 희생된 여성에 대한 전 지구적 문제를 대표하는 것"이라며 이번 한일 양국 정부 사이의 졸속 합의가 전 세계에 미칠 부정적인 영향에 대하여 강하게 비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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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 거주하는 일본 국적의 활동가 역시 이번 한일회담의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음을 명백히 밝혔다. ‘위안부’ 문제의 해결은 두 정부가 서로 합의하는 것으로는 불충분하며, 아시아 피해국 간의 대화와 국제사회의 참여로만 실현 가능하다는 것. 실제로 현재에도 세계 곳곳에서 전쟁 등의 참상이 계속되고 있으며, 그 안에서 여성이 보다 더 큰 피해를 입고 있음을 감안하면 ‘위안부’ 문제의 해결은 그저 한일 양국의 문제가 아님 역시 분명히 하였다. 더 나아가 그는 이번 합의 내용에서 교육 항목이 빠져 있다는 것이 너무나 충격적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즉, 후속세대들에게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이 자행한 전쟁범죄에 대해서 전혀 입을 열지 않겠다는 일본 정부의 태도는 용납할 수 없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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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나비’ 주최로 열린 이번 파리 집회는 12월 28일에야 부랴부랴 신고되었다. 보통 최소 한 달 정도의 준비를 거친 후에 집회가 진행됨을 감안하면 그 준비 기간이 턱없이 모자랐다는 것. 실제로 파리 지역 교민 신문의 기자도 당일에서야 연락을 받고 새해 첫날 점심 식사를 하다가 현장으로 호출되었다고. 그럼에도 불구, 소식을 들은 파리 교민과 일본 활동가들이 함께해 주었다. 이 자리의 일본 활동가들은 일본의 아베, 한국의 박근혜 정부 모두 민주주의 정부가 아니라고 본다. 따라서 이들은 헌법으로 정해진 민주주의 국가에 어울리는 인물들이 아니다. 그렇기에 아베와 박근혜 두 국가 수장은 없어져야 하는 존재. 일본 활동가들은 ‘아베와 박근혜 꺼져라’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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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발언에 나선 목수정 작가



박근혜 정부 들어 벌써 다섯 번째로 트로카데로 광장에 서서 한국 정부를 규탄한다는 목 작가는 이 자리에 모인 한국 교민들을 향하여, 4월에 있을 국회의원 선거에 참여하여 주권을 행사할 것을 종용하였다. 한국에서 9천 킬로미터 가량이나 떨어진 이 곳에서 한국 정부를 반대하고 성토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면, 민주주의 틀 안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투표를 포기하지 말라는 것이 목 작가의 메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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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서 이어진 퍼포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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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던 프랑스 가족이 잠시 내 옆에 멈춰 서서 ‘위안부’ 문제에 대하여 나누는 대화를 훔쳐 들었다. 이들도 전혀 알지 못하던 사안인 듯하다. 이들은 곧 서명을 하러 갔다. 부모는 이로써 아이에게 산교육을 시킬 셈인 듯했다. 백만인 서명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그 목표치에 도달하면 이 서명명부는 UN에 보내질 예정이다. 정부가 무능하면 시민이 고생한다. 그래서, 현재 한국의 유일한 희망은 시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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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ease open your heart to their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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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미래를 꿈꾸던 소녀가 살고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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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그녀의 꿈은 무참히 깨져 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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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사람이 찾아와서 소녀를 끌고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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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끌려온 사람은 소녀 혼자만이 아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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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는 어두운 곳에 혼자 갇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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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의 문을 열고 들어 오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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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공포이자 절망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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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는 차라리 눈을 감아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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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시간이 흘러 소녀는 할머니가 되었지만, 그 눈의 눈물은 마르지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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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희망이 되어 할머니의 웃음을 찾아드리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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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와 사랑, 꿈과 희망. 전 세계 모든 여성의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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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에 희망이라는 이름이 진정으로 빛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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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어진 간단한 뮤지컬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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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모든 집회와 달리 새해 첫날 한국 젊은이들의 집회에는 구호가 없었다. 떠들썩한 구호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 아니라 이들의 ‘마음’에서 더 진한 감동이 번져 나왔다. 1월 1일 해돋이를 보는 것을 한 해를 시작하는 중요한 행사로 삼는 한국과 달리, 프랑스의 경우 12월 31일 밤부터 1월 1일 새벽까지는 파티가 계속된다. 따라서 1월 1일, 에펠탑과 트로카데로를 찾은 많은 이들은 대부분 관광객이었을 터. 안타깝게도 더 많은 프랑스인들과 만나지는 못했지만 이들의 희망을 담은 퍼포먼스가 진행되는 순간만큼은 그 자리의 모든 이들이 걸음을 멈추고 한국 젊은이들의 메세지에 화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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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은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타인의 인권이 침해될 수 있는 곳이라면, 언제든지 나의 인권 역시도 짓밟힐 수 있다. 그래서 인권은 세계 모든 사람의 문제다. 나만 열심히 잘 살면 내게는 아무 문제가 생기지 않으리라는 생각은, 그래서 이기적이면서도 어리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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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노예 협상에 반대한다



마지막으로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나비 모양의 종이에 희망을 담은 메세지를 적어 붙였다. 말 그대로 주최한 이들과 참여한 이들, 보여 주는 이들과 보는 이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마당이 파리의 한복판 트로카데로 광장에서 구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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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인권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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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의 성노예 문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까이소라

트위터 : @candy4sora


편집: 딴지일보 coco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