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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AS

 

독자들께 사과드립니다. 전편 기사인 <의사파업 이야기 3: 최대집과 극우 의사의 탄생>에서 잘못된 정보가 있었습니다. 이 부분입니다.

 

(의사들이 수가 부분에서 정부에게 배신당했다는 주장은 잘못된 것이다. 정부는 의협과 한시적으로 올려준다고 합의했고, 올라간 수가로 인해 건강보험 재정 파탄 위기가 오자 수가를 다시 내린 것이다. 더 자세한 내용은 다음 편에서 다룬다)

 

여기서 한시적으로 합의를 했다고 한 부분은 합의서에 한시적이라고 명명이 된 것으로 읽히는 부분이었습니다. 이 부분은 잘못된 부분이고, 한시적이라는 표현을 빼야 맞습니다. 2000년 의약분업 사태 당시, 정부와 의협은 수가 인상 협상을 하며 한시적이라는 말을 명시적으로 표현하지 않았습니다. 

 

충분한 고려와 확인 없이 독자 여러분께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고, 의사분들께서 이 표현으로 인해 비판을 듣게 한 점 사과드립니다. 앞으로 기사를 쓰며 좀 더 철저한 조사, 확인과 표현 고려를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의사파업 이야기 3: 최대집과 극우 의사의 탄생>에서 잘못된 부분은 수정하였습니다. 이 부분에 대한 오류를 짚어주신 모스피다님께 감사드립니다. 

 

 

수구강경 의사들의 급속한 성장을 만든 논리

 

1999년 5월 10일 의협과 약사회는 의약분업에 전격 합의했다. 그러나 합의 다음 날인 5월 11일, 전국의 병원장 800명이 합의안을 못 받아들이겠다며 결의문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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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도 당시 조선일보 1면 기사 캡처.

 

정부는 개정된 약사법에 명시되어 있고, 의협과 약사회가 합의한 대로 의약분업을 진행했다. 이에 의사들은 의약분업이 시행된 2000년에만 5차례 진료거부를 하며 투쟁했다. 그해 12월, 정부와 의협, 약사회가 합의안을 도출하며 의약분업 사태 속 의사들의 진료거부는 끝이 났다.

 

(1999년 말부터 2001년 초까지) 1년 동안, 정부는 5차례 건강보험수가를 인상하여 뿔이 난 의사들을 달랬다. 그리고 의사들이 받을 수 있는 수가에 처방료 부분을 신설하였다. 건강보험수가 항목에 처방료 부분이 신설되면서 의사들이 받는 수가는 훨씬 증가했다. 

 

의사들이 받는 수가는 1.5배 정도로 증가했고, 엄청나게 증가하여 대학병원 교수들도 개원을 하러 병원을 나가는 ‘개원붐’이 불었다. 이 개원붐은 2003~4년까지 지속되었고, 2001~2년이 피크였다.

 

의약분업 시기인 1999년, 2000년에만 각각 12.8%, 21.7%의 수가가 인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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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짚을 점은 이 당시 의료행위량이 폭증했다는 것이다. 수가가 증가할 순 있어도, 갑자기 전 국민이 다 같이 아파지지 않는 이상, 전 국민이 받는 의료행위량이 갑자기 증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이 의료행위량이 증가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수가가 높아진 만큼 돈을 더 벌기 위해서 많은 의사들이 필요하지 않는 의료행위까지 일부러 하는 ‘과잉진료’가 팽배했었다는 것이다.

 

급격한 수가 인상과 의료행위량 폭증까지 겹쳐 2001년 결국, 건강보험 재정이 파탄났다(더 중요한 원인은 급격한 수가 인상이었다). 2001년 건강보험 당기적자만 2조 4천억 원을 기록했다. 정부는 뭔가 특단의 대책을 세워야만 했다.

 

정부는 진찰료에 더해 새로 신설했던 수가 항목인 처방료를 진찰료와 통합시켰고, 2002년에 2.9%의 수가를 인하했다. 수가가 인하된 일은 이때가 유일하다.

 

의약분업 사태에서 의사들에게 ‘처방료’ 항목이 신설되면서 약사들에게는 ‘조제료’라는 수가 항목이 생겼다. 처방료는 2001년 7월에 진찰료와 통합이 되면서 없어졌고, 약사들의 조제료 항목은 유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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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중에 의약분업 사태의 진행 과정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이들과 그렇지 못한 이들 사이에 주장하는 부분이 좀 다른데, 결국 주장하는 바를 모아보면 이렇다. 

 

-처방료와 조제료를 같이 신설했는데, 건강보험 재정 파탄으로 인해 처방료만 없앴다. 조제료는 그대로 두었다. 이것은 불공정하다. 억울하다.

 

-정부가 수가 인상을 약속하고 수가를 인상한 후, 약속을 유지하지 않고 2002년에 2.9%의 수가를 인하하였다. 

 

의약분업을 거치며 정부에게 탄압당했고, 그 후로도 배신당했다며 의사집단 내 수구강경우파의 급속한 성장을 만든 논리와 그 배경이다. 이후로 의사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여러 가지 논리를 생성했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은 잘못된 부분이 많다. 

 

현재의 많은 의사들도 의사 사회의 논리에 대해서 그냥 그것이 진실인 줄 알지 잘못된 주장이라고는 모르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현 정부에 뿌리 깊은 불신을 나타낸 젊은 의사들과 의대생들도 마찬가지이다.  

 

속사정을 들여다보자.

 

 

그들 논리에 공감할 수 없는 이유

 

의사들이 말하는 당시 정부의 행위는 팩트다. 의사들의 논리가 팩트라는 것이 아니다. 즉, 정부는 새로 신설했던 처방료를 진찰료와 통합하면서 하나의 수가 항목으로 만들었고, 2002년에 2.9% 수가 인하를 하였다. 이것은 팩트다.

 

(참고로, 진찰료라는 하나의 항목으로만 통합해서 수가를 받는 것보다 진찰료, 처방료로 나누어서 두 개의 항목으로 수가를 받는 것이 당연히 더 많은 수가를 받는다)  

 

그러나 이 행위를 해석하는 의사들의 논리가 잘못되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대학병원 의대 교수들도 개원하는 ‘개원붐’이 일어날 정도로 정부는 당시 파격적인 수가 인상을 하였다. 그로 인해 진찰료와 처방료, 이렇게 2개의 수가 항목으로 나뉘어 있던 것을 하나로 통합했던 해인 2001년마저 7.08%나 수가가 인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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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적으로도 진찰료와 처방료를 분리해서 진단하는 비용, 처방하는 비용으로 따로 수가를 주는 경우는 흔치 않다. 건강보험 재정이 파탄이 나니, 우리나라 의사들에게 줬던 혜택 중의 하나인 이 부분을 계속 유지하기 힘들었던 것이고, 2002년에는 2.9%의 수가 인하까지 감행한 것이다. 그러나 2.9%의 수가인하 전에 얼마나 많이 수가가 인상되었는지를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국민건강보험 재정이 파탄이 났는데도, 그것이 자신들의 수가 수준의 영향이 결정적임에도 자신들의 이익만을 생각하며 정부에게 배신당했다며 비난하는 것은 공감하기 힘든 주장이다. IMF의 여파가 회복되지 않았을 2001년 당시, 건강보험 재정 파탄으로 인한 국민들이 보험료 인상률만 해도 20%였다.

 

이런 상황에서 올려줬던 수가를 원상복구 하는 것도 아니고 처방료를 진찰료와 통합하고, 2.9%의 수가를 인하했다고 해서 자신들이 배신당했으며 피해 보았다고만 주장하는 것은 이해와 공감 능력이 없다고밖에 보이지 않는다. 물론 이 당시 정부(김대중 정부)가 잘했다는 것은 아니다. 무리하게 수가 인상을 하여 재정부담을 키운 과가 있다.

 

이 기사에서 말하는 것은 누가누가 더 잘못했냐가 아니라 의사들이 자신들의 주장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말하는 논리가 공감하기 힘든 것이라는 것이다.

 

처방료(의사)와 조제료(약사)의 비교도 그렇다. 앞서 말했듯이 세계적으로 진찰료와 처방료를 따로 주는 경우도 거의 없고, 두 항목을 통합한다고 해서 당시 의사들의 경제적 이익에 크게 타격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약사들은 달랐다. 의약분업이 되면서, 약사들의 수입은 조제료에 의지하는 시스템이 되었고, 이 조제료를 없앤다면 약사들은 생계를 유지할 수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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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는 사진이다. 다만,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 알리고자 첨부했다.

 

이러한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왜 우리(의사) 것만 건드리고, 쟤네(약사) 것은 안 건드리냐. 의사들만 탄압한다. 억울하다.”라며 자신들의 입장만 생각하는 것은 국민적 공감대를 얻기 힘들다. 이건 의사 것은 없애고, 약사 것은 안 없애서 옳지 않다, 옳다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합의의 문제이다.

 

어렵게 이룩한 전 국민 건강보험이 흔들리게 된 것을 살리기 위한 특단의 조치였던 것이였다. 의사들이 2000년에 탄압을 받았다는 듯이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지만, 사실 의약분업 사태로 인해 의사들이 얻은 부분은 많았다.

 

 

의약분업 사태로 의사들은 많은 이권을 얻었다

 

가장 먼저 이야기할 수는 부분은 의대 정원 감축이다. 

 

원래 의대 정원은 김영삼 정부 때, 정원 40명 규모의 의대 9개를 신설하면서 3,253명으로 늘어났지만, 순차적으로 줄어 2006년 3,058명이 된 후, 지금까지 동결이다. 이 의대 정원 감축은 의약분업 사태에서 의사들이 정부에 요구해 얻은 이권이었다. 의사들은 이번에도 코로나 국면 속에서 집단 진료거부를 시행하며 그들의 정원수를 일단은 지켜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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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국가기록원> / 2000년 8월 12일에 이한동 당시 국무총리가 발표한 <의약분업 정착과 보건의료 발전을 위한 특별담화문中 일부

 

<내용>

 

건강보험 수가를 앞으로 2년에 걸쳐 원가의 100% 수준으로 현실화하고, 처방료와 진찰료를 합리적 수준으로 증액 조정하였습니다.

 

전공의의 처우와 어려운 근무환경을 개선하고, 의과대학 정원을 2002년까지 10% 감축하면서, 그 수준에서 동결해 나가기로 했습니다.

 

이와함께 내주부터 국무총리가 위원장이 되는 「보건의료발전 특별위원회」를 가동하고 의약분업 평가단과 의약분업 감시단을 운영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보건의료발전 특별위원회」는 보건의료 관련단체의 대표와 각계 인사, 그리고 관계장관들로 구성되며 의학교육과 전공의 관련제도 개선, 보험 수가 현실화와 재정지원 등 의약분야의 모든 문제에 관한 해결방안을 최대한 빨리 마련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정부는 「보건의료발전 특별위원회」 운영과정은 물론 약사법 시행에 필요한 하위법령 개정시에도 의약계와 모든 분야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렴하여 반영하겠습니다.

 

김대중 정부 당시 보건의료개혁에 있어서, 로드맵이 있었다. 의약분업 바로 다음 해인 2001년에 포괄수가제 개편을 시행하려고 했고, 그다음으로는 약품의 성분명 처방 시행 등 계획이 딱딱 서 있었다.

 

그런데 그 개혁이 2000년 의사들의 5차례에 걸친 집단 진료거부로 다 없어졌다. 그 개혁을 진행한다면 의사들이 국민건강을 볼모로 또 난리칠 게 뻔하니 정치인들이 보건의료개혁 계획을 추진하기가 두려웠던 것이다. 더 이상의 개혁은 제대로 추진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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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건강보험심사평가원 홈페이지> 링크

 

용어설명 (모바일 배려)

포괄수가제: 환자에게 제공되는 의료 서비스의 종류나 양에 관계없이 어떤 질병의 진료를 위해 입원했었는가에 따라 미리 책정된 일정액의 진료비를 의료기관에 지급하는 제도.

 

포괄수가제의 경우, 2012년에 되어서야 노환규 전 의협 회장의 파업 선동에도 불구하고 겨우 도입이 되긴 하였으나, 7개군에 한정되었다. 이렇게 의사들은 2000년의 단체행동으로 인해 그 이후의 개혁들을 막았다. 

 

그러므로 의사들은 2000년에 정부로부터 배신을 당했다거나 탄압을 당했다거나 패배를 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때의 집단 진료거부로 많은 것을 얻었다.

 

이번에는 유례없는 코로나란 위기의 국면 속에서 많은 국민들이 공공의료 확충과 의사 수 확대에 동의하는 여론이 모아지다 보니 정부에서 힘을 얻어 의료정책을 발표했으나, 코로나 국면에서마저 의사들이 단체 진료거부를 이런 식으로 하리라고는 정부는 예상을 못 했던 것 같다. 

 

미진한 부분이 있는 정책이긴 하나 그 부분은 충분히 논의하며 개선해 나갈 수 있는 것이고 또 현재의 보건의료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제대로 된 방향성을 가진 정책은 맞다. 그러나 의사들은 이번에도 막아냈다. 일단은.

 

아직 끝이 아니다. 2000년 진료거부 사태로 의사들이 얻어낸 정말 거대한 이권이 있다. 제일 큰 이권이다. 건강보험의 중요 정책을 심의하고 의결까지 하는 막강한 권한의 기구.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일명 ‘건정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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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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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