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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이었다. 국회 정보위원회가 끝난 자리에서 ‘북한, 김여정이 위임통치’라는 말이 나왔다. 이 소식은 즉시 언론을 통해 속보로 전달되었고, 순식간에 언론을 뒤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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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YTN>

 

그렇지 않아도 건강 악화설에 이은 사망설로 세간의 이목이 김정은 위원장에게로 향하고 있었던 시점이었다. 사망설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지만, 김정은 위원장에게 무슨 일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채 풀리지 않은 상황이었다.

 

‘위임통치’ 기사가 보도된 상황은 곧 밝혀졌다. 국회 정보위원회의 보고 내용을 전달하던 여야 간사단이 ‘위임통치’라는 말을 쓰면서 속보 기사로 떴던 것이었다. 

 

국회 정보위원회는 다른 위원회와 달리 비공개로 진행된다. 국가의 주요 정보를 다루는 위원회인 만큼 국정 운영과 관련하여 공개하기 어려운 내용이 많기 때문이다. 회의가 끝나면 여야 간사단이 기자들에게 회의 내용을 설명한다. 이 과정에서 정보위에서 나왔던 ‘위임통치’라는 표현이 기자들에게 전달되면서 일어난 해프닝이었다. 

 

‘위임통치’는 말 그대로 ‘위임을 받아 국가를 통치하는 것’이다. 국제적으로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선진국들이 독일과 터키의 옛 식민지들을 통치했던 것에서 유래한다. 본국의 위임을 받아 식민지를 통치할 때 사용하는 말이다. 

 

국제 관계에서나 사용하는 ‘위임통치’가 화제가 되었던 것은 ‘권력을 위임받아서 대리 통치’하는 것으로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불안한 시선으로 북한을 지켜보았던 사람들은 ‘위임통치’ 말을 듣고는 김정은 위원장에게 무슨 일이 생겨서 다른 사람, 특히 김여정이 대신 통치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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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는 국가 최고 지도자는 김정은 위원장이며, 그의 건강에는 이상이 없다고 설명하였다. 김여정이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김정은을 보좌하는 “사실상 2인자” 역할을 하지만 통치권을 넘겨받은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 붙었다. 

 

북한의 권력 구조를 보면 ‘위임통치’는 생각하기 어렵다. ‘위임통치’는 김정은 체제에서 달라진 운영체계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것이었다. 김정은에게 집중되었던 국정 운영의 여러 사업 중에서 일부 사업들을 내각이나 관련 기관에 맡긴 것을 표현한 것이다. 역할 분담의 의미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체제의 통치방식

 

김정은 체제에서는 분명히 이전의 통치 방식과 달라졌다. 권력의 문제는 아니다. 권력은 어디까지나 당을 중심으로 집중되어 있고, 당 권력의 정점에 김정은 위원장이 있다. 

 

이전보다 국정을 운영하는 방식에서 전문 관료들이 중요해졌다. 특히, 김정은 체제에서 집중하고 있는 경제 분야에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박봉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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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봉주

 

박봉주는 2019년 4월까지 내각 총리를 맡았던 경제통이다. 총리에서 물러났지만, 국무위원회 부위원장, 노동당 부위원장 겸 중앙군산위원회 위원이자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이다. 

 

게다가 3명 밖에 없는 노동당 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이다. 그 3명 중 2명이 김정은과 최룡해이다. 내용이야 어찌되었든 김정은 위원장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최룡해에 이어 권력서열 3위의 인물이다. 혁명 가문 출신의 최룡해와 달리 오로지 실력으로 자리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박봉주는 덕천공업대학을 졸업하고 룡천식료공장 지배인으로 시작하여 현장에서 실력으로 자리에 오른 경제통이다. 2003년 9월 내각 총리에 오른 이후 경제개혁을 주도한 인물이다. 시장 경제를 축으로 한 경제개혁을 추진하다 실각하기도 하였다. 

 

김정은 체제가 들어선 이후, 다시 신임을 얻으면서 2012년 노동당 경공업부장에 이어 2013년 내각 총리로 복귀하여 2019년까지 경제 전반을 지휘하였다. 

 

한가지 알아둬야 할 것은 박봉주가 노동당 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이라고 해서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권력 서열 3위의 위상을 가진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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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과 박봉주 / 2016년,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조선노동당 제7차 대회 경축 평양시 군중대회 및 군중시위에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박봉주 당시 내각총리(오른쪽)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북한 조선중앙TV 화면캡처.

 

김정은 위원장이 노동당 위원장이고, 모든 권력이 노동당으로 영도하기에 김정은 위원장 이외의 권력은 서열은 상징적인 의미이다. 경제총력 노선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위상이라는 것이 훨씬 더 설득력 있다. 

 

그렇다면 북한의 권력은 어떻게 구성되는 것일까? 

 

-북한에서 권력은 이렇게 형성된다

 

북한의 모든 권력은 노동당으로부터 나온다. 북한은 ‘조선로동당’이 모든 것을 영도하는 체제이다. 북한 헌법 11조의 내용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조선로동당의 령도밑에 모든 활동을 진행한다” (2019년 개정 헌법 제11조) 

 

노동당에서 국정 운영과 관련한 결정을 한다. 경제발전 계획, 권력기구의 개편도 모두 당의 결정에 따라 이루어진다. 김정은 체제의 권력 구조도 노동당의 결정을 통해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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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제7차 당대회

 

노동당의 최고의사 결정 기구는 당대회이다. 당대회는 당 사업을 총화(종합적이고 비판적인 평가)하고, 향후 경제 발전 계획을 비롯하여 당의 운영과 관련된 핵심적인 문제를 토의하고 결정한다. 

 

●당의 권력기구 개편

●중앙지도기관의 선거

●당규약 개정

●당의 주요 기구개편

●주요 선언문 발표

●당 중앙위원, 당 중앙검사위원, 정치위원회 위원을 비롯한 당 중앙지도 기관의 선거

●후계구도의 확정 

 

이 모든 것이 당 대회를 통해 이루어진다. 김정은 체제의 권력 구조도 당대회를 통해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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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제7차 당대회

 

김정은이 후계자로 결정된 이후 ‘청년장군’, ‘인민군대장’의 칭호를 받았다. 후계자로 떠오른 2010년 노동당 대표자회에서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에 선임되었다. 

 

후계자로서 최고 자리에 오른 2012년 4월 11일에 조선로동당대표회의에서 조선로동당 제1비서로 추대되었다. 그리고 이틀 후인 4월 13일에 최고인민회의에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으로 추대되었다. 

 

≫잠깐 설명

최고인민회의: 우리나라의 국회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최고주권기관으로서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조선로동당의 거수기 기관으로 역할하고 있다.

 

2016년에는 조선로동당 제1비서의 명칭도 ‘당 위원장’으로 바꿔 현재와 같은 김정은 위원장이라는 호칭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국방위원회도 국무위원회로 개편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김정은 위원장은 왜 최고 권력에 오른 2012년에 위원장이 되지 않다가 집권 4년이 지난 2016년에 위원장이 되었을까? 

 

 

북한에도 절차가 있고, 따라야 한다

 

워낙 독재자의 이미지로 각인된 북한이기에 최고지도자가 마음만 먹으면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우리가 북한을 보는 시각의 하나이다. 

 

북한은 독재국가이다. 정치적 견해가 아닌 사실이다. 북한 헌법에도 ‘독재’라고 규정되어 있다. 북한 헌법 제12조는 다음과 같다.

 

“국가는 계급로선을 견지하며 인민민주주의독재를 강화하여 내외적대분자들의 파괴책동으로부터 인민주권과 사회주의제도를 굳건히 보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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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헌법에서 과거 ‘프로레타리아 독재’라고 규정하였던 것에서 ‘인민민주주의 독재’로 표현을 달리하였다. 하지만 독재인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형식적이지만 절차를 지켜야 한다. 2012년 4월, 시간을 두고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에 선임되고, ‘조선로동당 제1비서’로 추대된 것은 외부의 눈치를 보아서가 아니다. 추대하는 기관이 다르기 때문이다.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은 노동당에서 지위이다. 노동당에서 군사와 관련한 주요 결정을 하는 중앙군사위원회의 지위이다. 따라서 노동당 대표자회의에서 추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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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통일부 북한정보포털> 링크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우리의 국회에 해당하는 최고인민회의의 자리이다. 우리 국회에 국방위원회가 있듯이 최고인민회의의 한 분과로서 국방위원회이다. 김정일 시절에는 이 국방위원회가 모든 권력 위에 있었기 때문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김정일을 대표하는 직책으로 불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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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통일부 북한정보포털> 링크 / 2016년 국방위원회는 국무위원회로 개편되었다.

 

실질적인 최고권력자라도 해도 형식적인 절차를 밟아야 한다. 권력 구조의 개편은 앞서 말하였듯이 노동당 대회의 결정 사항이다. 김정은은 2016년 당대회를 개최하여 경제발전 전략을 비롯하여 권력 구조의 개편을 결정하였다. 이어서 헌법을 수정하였고, 그에 맞추어 권력 개편을 단행하였다. 

 

2016년 5월에 있었던 당 대회는 제7차 당 대회였다. 제6차 당 대회는 1980년 10월 10일에 개최되었다. 노동당이 생긴 이래로 제1차 대회에서 6차 대회가 열리기까지 34년이 걸렸는데, 제7차 대회는 제6차 대회 이후 36년 만에 열렸다. 

 

노동당은 김정은의 지도에 대해 전폭적인 지지를 결정하고, 김정은에 대한 신뢰를 확인하고 당의 영도를 결정하였다. 김정은에 대해 “김정은 동지를 조선로동당 위원장”으로 높이 추대할 것이 결정되었다. 

 

‘조선로동당 중앙지도기관 선거’를 통해 중앙위원회 위원, 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 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 중앙군사위원회 등이 선출되었다. 당을 중심으로 하는 통치 체계가 온전히 확정되었다. 선군에서 선당으로의 복귀를 결정하였다. 

 

당 대회가 열리지 않았던 시간을 생각한다면, 사실상 유명무실했던 당 대회를 부활하였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이다. 최고 의사 결정 기구로서 당대회를 통해 당 중심의 정상적인 운영 체계를 복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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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차 당대회에서 김정은

 

36년 만에 열린 당 대회는 두 가지를 의미한다. 

 

①북한의 권력 구도가 36년 동안 변화가 없었다는 것 

②다른 하나는 36년 만에 권력 구도가 바뀌었다는 것 

 

무엇이 바뀌었을까? 

 

 

36년 만에 열린 당대회에서 바뀐 것

 

제7차 당대회 마지막 날 회의에서 그동안 갖고 있던 ‘제1비서’ 칭호를 ‘위원장’으로 바꾸었다. 조선노동당은 1966년 2차 당대표자대회를 하면서 ‘위원장’ 자리를 없애고 ‘총비서’라는 자리를 만들었다. 

 

김정은은 당 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5명),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장이 되었다. 당 밖으로는 인민군 최고사령관, 행정부의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입법부의 제13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자리도 유지하였다.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직책이 없어진 것은 2016년이었다. 2016년 6월 29일 최고인민회의 제13기 제4차 회의를 통해 헌법이 개정되었다. 조선노동당 제7차 대회의 결정에 따라 헌법을 개정한 것이다. 

 

제100조를  개정했다. 이렇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위원장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최고령도자이다”(제100조, 1998년 개정)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위원장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최고령도자이다”(제100조, 2016년 개정)

 

‘당 비서’를 중심으로 ‘비서국’ 중심체제로 운영하였던 것에서 ‘국무위원회’를 중심으로 바뀐 것이다. 국가 최고령도자로서 지위는 변함이 없지만 “국가 주권의 행정적 집행기관이며 전반적 국가 관리기관”으로서의 내각의 역할도 커졌다. 

 

‘위임통치’의 해프닝은 북한의 당 권력과 행정 기관의 역할 분담이 조금씩 현실화되고 있는 상황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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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덕훈 현 내각 총리 

 

 


 

덧. 김정은 시대의 당대회

 

당대회의 진행순서는 다음과 같다.

 

‘당대회 소집 -> 준비 기간 -> 당대회 -> 결의대회’ 

 

당대회는 당대회 소집 결정을 하면서부터 시작된다. 지난 8월 19일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6차 전원회의를 개최하였다. 이 자리에서는 2021년에 “조선로동당 제8차 대회를 소집”하기로 결정하였다. 당대회에서는 짧게는 1개월부터 길게는 10개월 넘게 준비 기간을 가졌었다. 그만큼 당대회 결정은 절대적이다. 

 

2016년 제7차 대회가 열린 이후 5년 만에 8차 대회를 개최하기로 한 것이다. 36년 만에 당대회를 복원한 김정은은 당대회를 정기적으로 개최하여 주요 결정을 내릴 것으로 예상된다. 당비서가 모든 것을 결정하던 것에서 당대회를 통한 결정으로 정책 결정의 방식을 변화하고 있다.

 

 

전영선 (건국대학교 통일인문학연구단 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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