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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송비 무료는 얄궂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떨지 몰라도 나에게는 이 단어들이 참 얄궂게 느껴져. 언제부터였을까. 굳이 시작을 찾자면 아마도 2013년부터 일 거야.

 

왜냐하면 그쯤에 딴지일보 편집부 일과 함께 딴지마켓 일을 하기 시작했거든. 처음 딴지마켓은 나꼼수 관련 굿즈 몇 가지에 딴지 팟캐스트 유료 광고의 첫 주자였던 아로니아진 정도를 팔던, 온라인 쇼핑몰이라 하기에는 민망한 규모의 온라인 점빵이었어. 그러다 팟캐스트 광고 문의가 빗발치고 유료 광고의 수가 늘어나면서 딴지마켓에 입점된 상품 수도 빠르게 불어났지. 나름 검증이라는 것을 하고 딴지 기자들이 검증 기사를 써서 상세페이지에 싣고 그랬던 게 바로 2013년부터 시작된 일이었어.

 

그랬던 2013년 가을인가 겨울 어느 날 문득, 대학로 벙커1 지하 딴지일보 사무실 책상에 앉아 모니터에 딴지마켓 페이지를 띄워 놓고 멍을 때리는데 ‘배송비 무료’라는 다섯 글자가 콕 집어 눈에 밟히는 거야.

 

딴지마켓이라는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하는 일을 몇 달 하다 보니 ‘배송비 무료’라는 말이 얼마나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는지 이전보다 조금은 더 선명하게 알게 됐거든. 세상에 요금을 받지 않은 배송이 어딨겠어. 단지 배송에 드는 비용을 주문자에게는 받지 않겠다는 것인데, 그게 경우에 따라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거든.

 

만약 판매 업체가 상품을 팔면서 얻는 마진의 일부를 배송비로 지불한다면 그건 주문자 입장에서 배송비 무료가 맞아. 판매가 2만 원짜리 제품을 팔면서 남는 마진이 5천 원쯤 되고 배송비가 3천 원이라고 했을 때 그걸 판매 업체가 지불한다면 마진은 2천 원으로 줄어들고 소비자는 배송비 무료 혜택을 받게 되지.

 

그런데 말야.

 

애초에 상품 가격에 배송비를 ‘녹이는’경우라면 어떨까. 주문자가 상품 가격을 결제하면서 배송비까지 묶어서 내는 것이니 엄밀히 말하면 이건 주문자 입장에서 봐도 무료 배송이 아니야. 방금 위에서 말한 예시를 다시 활용해보면, 업체가 판매 마진 5천 원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배송비 3천 원을 판매가에 그대로 녹여서 2만 3천 원에 판매가를 설정하고 ‘배송비 무료’ 조건을 걸어 놓는다면 엄밀히 말해 그건 배송비 무료가 아닌 거지. (판매가 2만 원일 때와 2만 3천 원일 때의 부가세가 다르고 위탁 판매 시 판매 수수료도 달라지고 하는 복잡한 계산은 걍 무시한 사례임)

 

그렇담 이 배송비라는 것을 언제나 업체나 소비자 중에서 한 쪽이 다 지불하고 있는 걸까? 당연히 아니지. 오히려 어느 정도 분담하는 선에서 판매 가격이 책정되거나 배송비가 정해진다고 보는 편이 더 많다고 봐야 할 거야.

 

그런데 말야.

 

배송비에 해당하는 비용이 오로지 ‘택배 비용’뿐일까? 이건 배송비의 범주를 어디까지 놓고 보느냐에 따라 이견이 있긴 하지만 ‘배송에 필요한 포장 비용’과 ‘배송에 필요한 포장을 하기 위해 필요한 인력에 대한 비용’또한 배송비에 포함될 수 있어. 박스 포장 하나면 충분한 상품은 그걸 택배 포장으로 내보낸다 해도 꼴랑 종이 상자 하나의 비용이 추가될 뿐인 거지만 냉장, 냉동 상태가 유지되어야 하는 식품의 경우에는 얘기가 또 달라져. 몇 개씩 들어가는 아이스팩에 스티로폼 박스와 같은 보냉재 비용만 천 원을 훌쩍 넘어 2천 원 가까이 들기도 하거든.

 

이쯤 읽고서는 ‘도대체 이런 디테일을 일반 소비자가 굳이 알아야 할 필요가 뭐가 있냐’라든가 ‘그 정도는 대충 머리만 굴려도 누구나 알 수 있는 이야기 아니냐’라고 할 분들은 쫌만 더 인내심을 발휘해주길 바라. 요즘처럼 검색 잠깐이면 국가기밀 빼고는 다 알 수 있는 세상에(어쩌면 국가기밀도 알 수 있을지도) 내가 너 님들 보다 뭘 알면 얼마나 더 알겠어? 그저 같이 생각해볼 만한 세상 이야기 하나 꺼내 놓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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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뉴시스>

 

배송비는 늘 그 자리에

 

암튼 2016년 12월 말에 나는 딴지를 나왔고 그 이후 몇 군데서 직장 생활을 해왔어. 어쩌다 보니 그동안 내가 한 일은 모두 온라인 쇼핑몰에서 상품을 판매하는 것과 관련된 일이었어. 남의 회사 상품을 우리 회사몰에 올려놓고 파는 것이든, 우리 회사 상품을 자사몰이나 다른 쇼핑몰에 올려놓고 파는 것이든 말야. 물류 쪽 인력이 갑자기 모자랄 땐 냉장창고에 가서 택배 포장 작업을 며칠간 한 적도 있고, 배송 관련 클레임이 쇼핑몰에 올라올 땐 택배사에 직접 연락해서 상황을 파악하거나 위치를 추적하기도 했어. 그리고 한 편으로는 나 또한 온라인 쇼핑몰을 이용하는 소비자이기도 했지. 직접 택배 배송 업무를 해보지는 않았지만 주문부터 배송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과정에 직, 간접적으로 개입해왔단 말이야.

 

딴지마켓일로 온라인 쇼핑몰 관련 업무에 손을 댄 지 벌써 7년이 지났어.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그 자체로 잘못이라 할 수도 없는 ‘배송비 무료’는 여전히 참 얄궂어. 7년의 시간 동안 그 얄궂음의 정도는 더 심해진 것 같아. 7년 전, 혹은 그 이전부터 무료 배송이 아닌 상품의 배송비는 대체로 2,500원에서 3,500원 사이였어. 간혹 4,000원 이상 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건 말 그대로 간혹이었지.

 

그리고 2020년 10월, 지금도 여전히 무료 배송이 아닌 상품의 배송비는 2,500원에서 3,500원 사이에 있지. 무려 7년이 넘는 세월이 지났는데 배송비는 어떻게 그대로인 걸까? 2013년에 4,860원이었던 최저시급은 2020년 올해는 8,590원이 되었는데, 그 사이 택배 포장에 들어가는 부자재 가격에도 오르내림이 있었을 텐데 어떻게 배송비는 늘 그 자리였던 걸까.

 

뭐겠어. 누군가 비용을 떠안거나 제값을 못 받고 있었던 거지. 택배사는 택배사들끼리 경쟁을 하다 보니 일당 일정 수준 이상의 택배량만 보장이 되면 대형 택배사의 경우 건당 가격을 2,500원 이하로 책정해. 그 비용을 지불하면 (경우에 따라) 택배사 차량이 직접 발송 업체에 와서 택배를 실어 가고, 자기네 센터에서 분류하고, 배송지 권역별 허브에 모으고 거기서 다시 분류하고 배송지를 담당하는 대리점으로 보내서 하차한 뒤 택배 기사들의 담당 구역별로 나눠서 최종적으로 차량에 실어 배송지에 보내는 거지. 업체에서 발송된 택배 상자가 우리 집 문 앞에 놓이기까지 개입된 모든 차량의 이동에 들어간 운전자의 인건비와 유류비, 각 지점 상하차 인력의 인건비, 택배 기사들이 자기 구역의 택배를 차에 실어 집집마다 돌며 배송하는 비용이 건당 2,500원에서 3,000원 정도 하는 금액에 포함되어 있는 거야.

 

얼마 전 추석을 앞두고 택배 기사들이 파업 예고했던 거 기억나? 간선 차량이 싣고 온 택배 상자가 택배 터미널에 도착하면 택배기사가 맡은 지역별로 택배를 분류하고 트럭에 실어서 정리해야하는데 이걸 ‘까대기’라고 해. 그동안 이 까대기 일이 대부분 택배 기사에게 전가되었는데 문제는 택배 기사들이 하는 까대기 일이 사실상 ‘무료’였다는 거야. 택배 기사들이 받는 배송 요금에는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는 부분이거든. 그런데 하루에 택배기사들의 업무 비중에서 까대기가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 수준이었다고 하니, 들고일어나지 않는 게 이상할 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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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연합뉴스>

 

그리고 지난 10월 8일, CJ택배기사 한 분이 과로로 사망하는 일이 있었어. 추석 전 협상 과정에서 택배사 측이 약속한 수만큼의 분류 인력을 충원해주지 못했고, 부족한 부분을 다른 기사들은 비용을 갹출해서 따로 사람을 구해다 썼는데 이 분은 직접 까대기 작업을 했다고 해. 올해 과로사로 숨진 여덟 번째 택배 기사였어. 그리고 12일, 또 다른 택배 기사가 과로로 숨졌다는 보도가 나왔지.

 

대형 택배사와 택배 대리점 사이의 계약 관계, 그리고 사실상 자영업자로 분류된 택배 기사들의 노동 실태와 같은 부분은 여기서 이야기하지 않을게. 그 자체로 할 말이 많은 부분이기도 하거니와 그런 부분은 조금만 관심을 갖고 검색해보면 나보다 훨씬 잘 설명되어 있는 참고 기사, 자료들이 많거든.

 

정당한 몫에 대한 관심

 

‘배송비 무료’라는 다섯 글자는, 무료 배송이 아닐 때의 3천 원 안팎으로 표시되는 배송비와 연결해서 볼 때 얄궂음의 효과가 더 극대화되기도 해. 일반 소비자 입장에서 배송비라 하는 것은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언제나 3천 원쯤 하는 푼돈에 머물러 있는, 그마저도 판매 정책에 따라 얼마든지 무료가 되거나 조건을 맞춰서 무료로 만들 수 있는 변변찮은 비용으로 여겨져 왔으니까.

 

실제로는 그렇지 않더라도, 사람들이 그걸 아예 모르고 있지 않더라도 우리가 실제 생활에서 만나는 배송비라는 세 글자는 늘 모니터나 스마트폰 화면에 떠 있는 ‘무료이거나 3천 원에 불과한’, ‘이걸 무료로 만들지 않으면 돈을 낭비하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 거추장스러운 푼돈이었음을 나조차 인정하지 않을 수 없어. 그리고 ‘택배’는 내가 원하는 시간에 우리 집 문 앞에 알아서 도착해야 마땅한 것으로 여겨왔다는 것까지도 말야.

 

이제는 마냥 그렇게 두고 보면 안 될 것 같아. 우리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더라도 이런 생각은 한 번 해보고 넘어가야 할 것 같아. 우리가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택배가 과연 ‘제값’을 받고 있는 건지, 거기에 투입된 사람들은 ‘제 몫’을 받고 일하고 있는지, 그리고 소비자인 우리는 그동안 배송비를 어떻게 인식해왔는지 말야.

 

택배 기사들에게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못하게 하거나 택배 차량을 진입하지 못하게 하는 일부 아파트 주민들의 이야기, 택배 기사에게 심부름을 시키는 일부 이용자의 이야기를 가끔 접할 때가 있지. 그 사람들은 과연 악마인 걸까. 나는 인성의 문제에 앞서 무지의 문제도 있다고 봐. 갑질이란 걸 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있다는 무지, 자신에게 그럴 권리가 있다는 무지에 빠져 있다고 보거든. 조금만 살펴보고,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는 일들에 그 조금의 관심조차 끊었을 때 우리 또한 얼마든지 그런 무지에 빠질 수 있어. 무지막지한 갑질까지는 아니더라도 무지에서 비롯된 편견을 갖게 될지도 몰라.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말은 이런 부분에도 해당하는 말이야.

 

나 살기도 바쁜데 다른 사람이 받는 정당한 몫에 대한 고민까지 할 여력이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거야. 하지만 우리 각자의 정당한 몫을 보장받기 위해 필요한 건, 우리에게 무언가를 제공하는 다른 사람의 정당한 몫을 헤아리는 게 먼저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어.

 

택배가, 자신의 생활에 꼭 필요한 서비스라면 더더욱 말야.

 

그런데 그렇지 않은 사람, 거의 없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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