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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 2

 

두 번째 실험은 M1900 자동권총과 리볼버 권총의 연사속도 테스트였다. 다시 말하지만, 안중근 의사 의거 당시 자동권총은 새로운 형태의 권총이었다. 이때까지 권총이라 하면 ‘육혈포’라 불리는 리볼버가 주류였다. 자동권총이 등장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한국인들은 당연히 ‘육혈포’를 생각했다. '육혈포로 이등박문을 쏘았다'는 노래까지 만들어졌고, 나중에 연극, 소설, 영화 등등 창작 작품에서도 육혈포란 말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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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상식으로 권총은 리볼버였고, 리볼버를 일컫는 육혈포(六穴砲)란 말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다. 지금도 안중근 의사에 대한 기록을 검색해 보면, ‘육혈포’로 이토 히로부미를 쐈다는 기사나 기록들을 심심찮게 확인할 수 있다.

 

분명한 건 의거에 사용됐던 건 M1900 자동권총이었고, 일제에 의해 체포된 후 나온 조도선(曺道先) 열사가 가지고 있었던 리볼버도 6발이 아니라 5발이었다는 거다. 그럼에도 당시 상식으로 통용되던 6연발 리볼버에 대한 지식 때문에 '안중근 의사가 리볼버를 가지고 의거를 행했다'는 게 상식이 됐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리볼버와 자동권총의 연사속도에 대한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탄환의 파괴력에 있어서는 당시 조도선 열사가 가지고 있던 리볼버의 파괴력이 높았지만, 장탄수에 있어서는 압도적으로 M1900이 많았다. 재장전에 있어서는 비교불가 수준으로 M1900이 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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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연사속도는? 당시 상식이었던 ‘권총=리볼버’란 등식을 깬 자동권총의 등장을 우리는 어떻게 봐야 할까? 리볼버보다 뭔가 좋은 게 있으니 자동권총을 선택한 게 아닐까? 많은 장탄수와 재장전의 용이함, 그리고 연사속도 등에서 리볼버를 압도하는 무엇이 있다는 게 아닐까?

 

당장 장탄수와 재장전에 대해서는 거론할 가치가 없을 거 같다. 이미 총만 봐도 알 수 있다. 리볼버는 장탄을 하기 위해서는 사용한 탄을 실린더에서 빼고, 다시 장전을 해야 한다. 이런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해 스피드 로더나 문 클립 등등의 재장전 도구를 만들었지만, 이미 발사한 탄피를 빼내야 하는 건 어쩔 수 없다. 장탄수는 이미 몇 차례나 언급했다. 탄의 파괴력은 역시나 구경이 큰(조도선 열사가 들고 있던 38구경 리볼버) 리볼버가 당연히 더 클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남은 건 연사속도다. 

 

미국의 총기 사용자들의 의견은 양쪽으로 갈렸다. 리볼버가 약간 더 빠르다는 거였다. 물론, 이 의견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결국은 실험 밖에 없었다. 안중근 의사가 리볼버 대신 자동권총을 선택한 이유가 분명 있었을 거다. 넉넉한 장탄수와 상대적으로 반동이 적은 32구경 탄, 그리고 빠른 연사속도. 개인적으로 M1900의 연사속도가 더 빠를 것이라 예상했지만, 확실한 증거자료가 필요하기에 리볼버와 비교실험을 하기로 했다. 

 

두 명의 사격자에게 각자 사용하는 리볼버를 가져오라고 부탁을 했다. 아무래도 손에 익은 총이 연사속도 측정에 도움이 될 거 같아서 각자의 총을 가져오라고 부탁한 거다. 에런의 경우에는 357 매그넘 탄을 쏘는 6연발 리볼버를 가져왔고, 테일러는 32구경을 사용하는 6연발 리볼버를 가져왔다. 

 

(조도선 열사가 가지고 있었던 총은 M1900보다 구하기가 더 어려운 총이었다. 탄 자체가 흔하지 않은 탄이기에 총을 구한다 하더라도 실험에 사용하기에는 어려웠을 거다)

 

두 사격자에게는 똑같은 주문을 넣었다.

 

“M1900과 리볼버를 발사할 때 둘 다 최대한 빨리 사격해달라.”

 

최대한 빨리 사격해서 두 총의 연사속도를 직접 비교해 보려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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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격자 모두 M1900이 더 빨랐다. M1900이 7발 발사되는 동안 리볼버는 6발이 발사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M1900이 더 빨랐다. 이에 대한 의견은 간단했다.

 

“리볼버의 경우에는 해머가 움직이는 시간, 방아쇠 압력이 무거운 것 등등을 생각해봐야 한다. M1900은 슬라이드 왕복만으로 발사와 탄피배출, 재장전이 가능하지만 리볼버의 경우에는 해머가 움직이고, 실린더가 회전해야 한다. 자동권총의 연사속도가 더 빠르다.”

 

당시 권총의 대명사였던 육혈포 대신 새로 등장한 자동권총을 들고 의거에 나선 거다. 넉넉한 장탄수와 상대적으로 적은 반동, 품안에 숨길 수 있는 은닉성과 빠른 연사속도. 리볼버 대신 자동권총을 택한 건 탁월한 선택이었다. 

 

 

실험 3

 

질문: 그대가 십자형의 흠이 있는 탄환을 우의 총에 재어 준 이유는 어떠한가.

안중근: 이토를 죽이기 위해 재어 주었다.

질문: 흠을 낸 탄환은 힘이 있으므로 그대가 가지고 있던 것을 나누어 주었는가. 

안중근: 나는 탄환 끝에 흠을 낸 것만을 가지고 있었다.

질문: 끝에 흠을 낸 탄환은 명중하면 상처가 크게 되기 때문인가.

안중근: 나의 탄환은 다 끝에 흠이 나 있다. 특별히 상처를 크게 할 목적은 아니다. 나는 흠이 나 있는 탄환을 샀다.

 

안중근 의사를 심문했던 기록을 살펴보면, 일제는 집요하게 안중근 의사가 사용한 탄의 목적과 출처를 캐묻는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십자선을 침으로써 머쉬룸 효과를 얻고, 이를 통해 이토 히로부미를 확실하게 척살하려고 했던 게 아니냐는 질문이다. 

 

해답은 이토 히로부미 옆에 있다가 같이 피격 당한 다나카 세이지로(田中清次郎)의 몸에서 나온 탄두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탄환의 파괴력이 약해서 머쉬룸 효과를 보기에는 어려웠다.”

 

일본 헌정기념관에 전시돼 있는 적출탄환은 형태를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다. 즉, 탄환이 쪼개지거나 한 흔적이 아예 없다는 소리다. 32구경 탄 자체가 위력이 약하기 때문에 탄두가 쪼개지거나 벌어지거나 할 만한 에너지를 얻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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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실한 실험을 위해서 우리는 발리스틱 젤라틴(Ballistic Gelatin: 인체와 비슷한 밀도를 지닌 젤로, 총을 맞았을 때 인체에 어떤 피해를 입히는지 실험할 때 주로 사용된다)을 준비하고, 32구경 탄에 십자가를 그었다. 

 

총기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테일러가 실험에 사용할 3발의 십자가 친 수제(手製) 덤덤탄을 만들기로 했다. 북한 영화 ‘안중근 이등박문을 쏘다’처럼 줄톱으로 3발의 총알에 십자가를 그었다. (사람이 손으로 십자가를 그을 수 있는지도 같이 실험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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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있는 건샵과 건 스미스, 슈터들에게 있어서 탄환에 십자가를 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서는 상식적인 내용이었다. 굳이 문헌을 뒤적이지 않아도 될 정도의 ‘상식’ 그 자체였기에 묻는 것도 애매했다.

 

“어디서 알게 된 사실인가?”

 

라는 질문에 거의 대부분, 

 

“아주 오래 전부터 그냥 아는 이야기다. 누군가에게 들었을 수도 있고, 책에서 본 것일수도 있다.”

 

라는 대답이 대부분이었다. 문제는 32구경 탄에 십자가를 긋는다고 해서 할로우포인트(Hollow Point. 탄자 앞부분을 파낸 형태의 탄. 착탄됐을 때 탄두가 파괴력을 높인다)탄과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느냐는 거다. 

 

테일러가 3발의 32구경 탄에 십자가를 그은 뒤 발사를 하는 걸로 실험을 준비했다. 실험은 간단했는데, 십자가를 긋지 않은 일반적인 32구경 탄을 발사해 탄두의 진행방향과 파괴력을 확인하고, 뒤이어 십자가를 그은 수제 덤덤탄 3발을 발사해 비교하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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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십자가를 긋지 않은 탄을 발사했다. 발리스틱 젤 속에 박힌 탄은 전형적인 전도현상(탄환의 앞부분이 뾰족하고, 뒤쪽이 굵은 경우 인체에 들어갔을 때 앞뒤가 뒤집히며 요동치는 것)을 보였다. 발리스틱 젤을 칼로 갈아서 탄두를 꺼내보니 아직도 그 열기가 남아 있었다. 

 

십자가를 긋지 않은 탄이 평범한 진행방향을 보인다는 걸 확인한 후 십자가를 수제 덤덤탄을 발사했다. 

 

결과는 우리의 예상대로였다. 앞서 발사했던 십자가를 긋지 않은 탄과 동일한 모습을 보여줬다. 진행방향은 전형적인 전도현상의 모습 그대로였고, 탄 자체에 어떠한 물리적 변화도 없었다.

 

실험결과에 에런이 의문을 제기했다. 

 

“십자가를 충분히 긋지 않은 거다. 구리가 보이면 안 된다. 탄두를 감싼 구리를 넘어서 납까지는 십자가가 들어가야 머쉬룸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거다.”

 

십자가를 너무 깊게 파서 탄두 형상이 뭉개지면, 총열 안에 제대로 맞물리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테일러는 순순히 동의했다. 에런이 자신이 쏠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며, 십자가를 좀 더 깊이 파 보는 게 어떻냐는 의견을 계속 피력했다.

 

우리는 이전에 쐈던 3발의 십자가를 그었던 탄의 사진을 확인했다. 탄두의 납이 노출된 상황이지만(총알은 납탄두 위에 구리코팅을 입혔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거다), 에런의 의견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회의 끝에 총열에 맞물릴 정도로 탄두를 갈라내기로 결론을 냈다. 

 

결국 납탄두가 다 노출될 정도로 십자가를 박은 1발의 32구경탄을 만들었다. 

 

혹시나 하는 기대와 불안 속에서 십자가를 깊게 그은 1발을 장전해서 발사했다. 결과는... 역시나 예상대로였다. 탄두는 모습 그대로 전도현상을 보이며 발리스틱 젤라틴 안을 헤엄쳤고, 탄두의 물리적 변화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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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런은 담담하게 실험결과를 인정했다.

 

“당신들의 예상대로 32구경 탄의 위력이 예상외로 낮았다. 지금 탄약의 성능이 더 좋다는 점을 감안하고, 당시 탄두 재질이 지금보다는 물렀을 것이란 추측을 더 한다면, 당시 탄환과 지금 탄환의 격차는 없다고 보는 게 맞다. 이건 32구경 탄환의 한계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안중근 의사가 덤덤탄의 머쉬룸 효과를 노려서 십자가를 친 탄환을 사용한 건지, 아니면 심문기록에서처럼 탄환에 이미 십자가가 그어져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32구경 탄환에 십자가를 긋는다고 해서 머쉬룸 효과를 얻을 수 없다는 건 110년 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