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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대생의 개강스케치

2010-03-09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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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지방소녀 추천0 비추천0

2010.03.12.금요일


체지방소녀


 


 


 


 


제목을 저렇게 지어 놓으니 무슨 90년대 오후시간대의 라디오방송 코너 이름같다. 그것도 열라 성의없이 그냥저냥 점심먹고 졸리니까 대충 이름 지어놓고, 재미도 없고 센스도 없는 작가가 써 준 대본을 열정도 없이 읽는 디제이가 진행할 것만 같은 그런 후진 라디오방송.


 


여튼, 후진 라디오 방송같은 제목의 그 여대생은 바로 나다. 그러타. 나는 여대생 이었던거다. 나는 그 이름도 찬란한 '와우' 를 하기위해 학교를 때려치웠지만 하라는 와우는 안하고 딴지에서 어물쩡 거리는 여대생이었던 것이다.


 


내가 여대생이던 아니던 딴지에 어물쩡 거리던 아니던 근돼를 흠모하던 말던 그래도 겨울은 가고 봄이 오더니만 또다시 새 학기는 시작 되었고, 어머니는 이번 학기에는 꼭 와우하러 피시방 말고 공부...가 아니고 졸업을 하러 학교엘 가라고 애정어린 눈길로 날 지그시 바라보며 말씀해주시진 않았지만...


 


나는 그저 울엄마의 강스파이크를, 그동안 내가 전혀 시원하지 못하게 저렴한 물건들을 지르고, 만나자는 친구중 나에게 밥을 꼭 사줄것만 같고 사 줘야만 하는 친구들만 골라 만나고, 다이어트를 핑계로 남들 다 먹는거 도도하게 안먹으며 꼬깃꼬깃 1년간 모은 돈 200여만원을 고스란히 내 드린것으로 럭키하게 피하였음에 만족할 뿐이다.


 


근데 아우 썅... 등록금 왜이렇게 쳐 오르는거냐? 저기 내가 200만원 모은걸 보태도 씨발, 백만원도 넘게 더 내야 하잖아. 내가 열받아서 진짜.


 



상아탑이냐 돈탑이냐...


 


이런생각이 들면서 문득 와우한다고 개판을 쳐 놓은 나의 학점들과 이수과목들 등등이 떠 오르며 오함마로 내 손을 내리찍어 마땅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동시에 내가 와우에 빠져 허덕이고 있을때 왜 우리 존경해 마지않는 교수님들은 나를 땅바닥에 패대기친 후 양 싸대기를 매우 때려 정신교육을 시키지 않아 주었는가 하는 근본을 상실한 분노가 오르는 찰나, 이 두가지의 생각들은 말짱 꽝이고 허상이며 스물다섯살이나 먹은 체지방소녀 네년은 도대체 아직도 정신을 못차린것만 같다는 자학적 자세로 마무리가 되었다. 그런거다. 아우 썅. 이 모든것이 등록금탓 이라며 목적을 잃은 분노를 내 질렀다.  


 


여튼 졸업을 하러 학교에 왔는데 아 이게 뭐지?


10학번...10학번들이 요기잉네?


 


10으로 말하자면, 나랑 여섯 학번이나 차이가 나며 여섯살 이나 차이가 나고, 주민등록번호 맨 앞자리가 8 로 시작하는 나와 여타 다른 80세대들과 달리 9로 시작하는 주민등록번호를 가진 그들. 90년생들. 테레비에서나, 혹은 아이돌들 에게서나 볼 것 같은, 나와는 절대적으로 멀어서 절대로 인간관계가 영영 만들어지지 못할것만 같던 그 90년대 생들이 벌써 이렇게 스무살이나 쳐 먹고는 10학번을 당당하게 달고 학교를 다니고 있는거다. 90년대에는 시대가 풍족하고 평화적 이었는지 인구수가 이렇게도 많아서, 나때는 우리과에 40명 뽑았는데 지금은 70명이나 뽑는다고. (이건 다분히 나의 망상적 기질에서 착안한 시대배경임을 미리 밝힌다. 90년대가 풍족하고 평화로웠는지는 난 잘 기억이 안난다. 코찔찔이 꼬마 였으므로.)


 


애들은 또 어찌나 이렇게 발육이 좋은지 내가 분명히 스무살때는 저런 모양새의 가슴을 달지 아니 하였는데 이것들은 무슨, 과학적, 물리적, 시각적으로 절대적으로 뽕이 아니게끔 보이게 하는 뽕브라를 차는 것이 분명한 가슴을 가지고는 허리를 꼿꼿이 펴고 샤방한 얼굴로, 상기된 두 뺨에... 초롱초롱 빛나는 긴 생머리에 머리띠... 뉴스에서는 꽃샘추위가 시작된다구 하고 오늘은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와중에 이(상대적으로) 늙은 나는 한겨울 잠바를 꽁꽁 싸매고 다니는데 이것들은 지하철계단 45도각도의 아랫쪽에서 보면 빤쓰가 적나라하게 보일 것이 분명하지만 역시 샤방함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똥꼬치마와 대부분의 낭심을 부르르 떨게 만드는 얇은 꽃분홍남방 따위를 입고 돌아다니는 작태를 보자니 너무 반짝반짝 눈이부셔.. 아악 혈압이...


 



 


나의 캠퍼스를 이 젖비린내나는 ...은 아니고 왠지상큼해서 괜히 짜증나는 10학번들이 장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예전에 입학해서 파릇파릇한 새싹냄새 풍기는 새내기였을 적에 우리과에는 99학번 오빠가 있었더랬다.


 


이 오빠는 참으로 투철한 자주의식이 있어서 어디 집회라는 집회는 다 따라다녔었고, 그 당시에도 무슨 수배를 받았다고 했던가...그래서 학교 학생회실 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여기저기 도피 생활을 하는 그런 상황을 겪었고 여튼, 이러저러 해서 그때까지 학교를 다니고 있을 수 밖에 없다는 그런 슬프고도 아름다운 전설을 가진 이시대 마지막 운동권 사나이라고 들었다. 당시 나이 28살이었던가 27이던가 가물가물한데 현역으로 들어온 99학번 이라면 아마도 27살이 맞았을 거다. 어쨋든 지금같으면 약간의 호기심과 의리나 존경심 따위로 매우 친하게 지내고 싶은 사나이 이지만 당시의 나는 그저 젖비린내 나는 ...아니 새싹내 파릇하게 나는 새내기였으므로 운동권따위 아웃오브 안중.


 


그 사나이를 보며 슬프고도 아름다운 전설이 있거나 말거나 그냥 너무나도 당연하게 아저씨, 내지는 삼촌 정도의 나이적 카테고리를 본능적으로 만들어 그를 장착시켜 놓았으며, 일단 함께 수업을 듣는 사나이긴 하였지만 파릇한 나와는 너무나도 달라보이는 그의 후줄구레한 옷차림과 썩어빠진 동태눈깔을 연상시키는 세파에 찌든 눈빛 따위를 보곤 수업같이듣긴 하지만 잘 모르는, 알고싶지도 않은, 아니 그냥 관심없는 어떤사람. 정도의 인식만을 하기로 했었던것 같다. 더불어 가혹하게도, 그리고 27살이라는 젊은 나이 임에도 불구하고 나의 여심적 본능은 '어쨋거나 생물적 남자' 카테고리마저도 그에게 내 줄 자리가 없었던 관계로 그는 나에겐 남자는 아니었다. 그냥 아웃오브 안중이었던 거다.


 


뭐 이런 생각이 들면서 잠시 추억에 젖으며 나도 저런 새내기 시절이 있었다는 듯한 눈빛과 썩소를 흘리며 학교 벤치에 앉아 새내기 여대생 들의 똥꼬치마 길이를 눈대중으로 재고 있을 무렵 문득...


 


10학번들이 생각하는 05인 나 또한 전설의 그 99학번 오빠와 별로 다를것 없는 카테고리에 낑겨져 있을것이 분명하다는 느낌이 엄습하더라는 거다. 그리고 그 두려움은 실체로 다가왔다.


 


싱그러운 10학번들과 함께 듣는 , 내가 1학년때 빵꾸냈던 첫 영어과목 재수강에서 완벽한 아웃사이더가 된 나를 발견한 것이다. 싱그러운 10 들은 수업도 끼리끼리 신청해서는 서로 애인사이도 아닌 주제에, 그리고 여자의 팔뚝은 남자의 팔짱을 끼라고 있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모르는건지 지들끼리 레알 돋는 팔짱들을 끼고 들어와서 수업을 들었고, 나는 덩그러니 맨 앞줄의 맨 왼쪽 구석 자리에 앉아서 빔프로젝터를 위한 교실 형광등 스위치나 딸각 거리고 있는거다. 이 교활한 10들, 니들 연습장에 대화 적으면서 수다 떨고 키득키득 거리면서 수업 듣는거 모를줄 아니? 나도 옛날에 다 해봤던 거임. 글구 니들이 지금 무슨생각을 하면서 저 교수님을 보고있을지도 다 알고있음. 나도 옛날에 그 생각 다 해봤다능? 그리고 가장 중요한거. 니들이 나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도 알고있거든?? 나도 옛날에 어떤 복학생 오빠를 말이야...


 


다 알거든? 그래, 그러니깐...


 



 


나랑도 좀 놀아줘 ㅠ0ㅠ


 


뭐 이렇게 외로운 개강 2주째가 지나가고 있다는 얘기다.


 


이렇게 써 놓고 보니 제목을 '복학한 여대생의 개강 스케치' 쯤으로 해야 될 것 같지만 그냥 여대생이 좀더 간지가 나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