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5년 히틀러의 베르사유 조약 탈퇴와 독일의 재군비 선언, 이어지는 영국과의 ‘영독 해군 조약’의 체결로 독일은 자신을 얽어매고 있는 족쇄들을 거의 풀어낸다. 마지막 남은 목표는 제1차 세계대전의 패전으로 빼앗긴 주권인 ‘라인란트의 재무장’이었다.
프랑스와 벨기에에게 있어서는 라인란트의 재무장이 전쟁을 막아줄 마지막 카드였지만, 독일에게는 제1차 세계대전으로 빼앗긴 ‘영토’와 다를 바 없었다. 단치히와 함께 라인란트의 재무장은 독일 국민들의 숙원과도 같은 존재였다. 히틀러의 망상이나 독단적인 행동이 아니라 당시 독일국민들의 염원이며, 풀어야 할 숙제 같은 존재였다.
1935년 베르사유 조약을 파기한 히틀러지만, 라인란트 재무장까지는 가지 않았다. 베르사유 조약을 파기하는 데도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는데, 라인란트 재무장까지 간다면 로카르노 조약까지 파기될 것이었다. 프랑스와 벨기에와의 불가침 조약의 파기는 이 두 나라를 상대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스트레사 전선의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를 상대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아무리 히틀러라도 여기까지는 갈 수 없었다.
그러다 ‘영독 해군조약’으로 영국을 포섭했고, 스트레사 전선의 한 축을 맡았던 이탈리아도 에티오피아로 떠나버린다. 이제 스트레사 전선은 말뿐인 구호가 아니라 말도 맞추지 못하는 이름뿐인 존재가 됐다.
모든 유럽이 히틀러가 라인란트에 들어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아니, 기정사실이었다. 다만 문제는 그 시기가 ‘언제’냐는 것이었다. 당시 국제정세에 대한 식견이 있는 이들은 모두 입을 모아 ‘10월 위기설’을 내놓고 있었다.
“아무리 막 나가는 히틀러라도 베를린 올림픽을 망치면서까지 라인란트에 진주하지는 않을 것이다. 만약 라인란트 재무장에 들어간다면 베를린 올림픽이 끝난 10월이 유력하다.”
히틀러가 1936년 8월 1일에 있을 베를린 올림픽의 폐회 이후 라인란트에 진주할 것이란 예상이었다. 그러나 히틀러는 다시 한 번 모든 이들의 예상을 뒤엎고, 1936년 3월 7일 라인란트에 진입했다.
라인란트로 입성하는 독일군
프랑스와 벨기에는 이제 독일군을 눈앞에서 맞이하게 됐다.
당시 프랑스군 첩보부는 라인란트에 주둔한 독일군 병력이 30만에 이를 것이란 첩보 때문에 전전긍긍했다. 만약 30만이 움직인다면 프랑스도 각오를 해야했다. 그러나 이는 오판이었고, 독일군이 동원한 병력은 경찰을 포함해 채 4만이 되지 않았다.
문제는 전후 프랑스가 공들여 만들었던 ‘대독 포위망’이 제대로 작동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작동을 기대했다면 그게 더 이상하지 않을까?). 영국은 이미 동맹의 등을 칼로 찌른 전적이 있었기에 쉽게 믿을 수가 없었고, 실제로 대륙에 보낼 병력도 별로 없었다. 프랑스가 믿었던 동쪽의 폴란드와 체코슬로바키아는 공식적으로 전쟁을 부정했다.
“프랑스가 독일 영토를 공격한다는 건 프랑스의 침략이다.”
폴란드와 체코슬로바키아의 배신(?!)이었다. 사실 이들도 전쟁이 두려웠다. 애초 프랑스의 구상은 프랑스와 벨기에, 영국이 합심해 서부전선에서 독일을 압박하고, 체코슬로바키아와 폴란드가 동부전선에서 독일을 압박하는 거였다. 말 그대로 ‘양면전’을 강요하는 모양새로, 완벽한 독일 포위망을 갖추는 것이다. 그러나 영-독 해군조약와 뒤이은 이탈리아의 개별 행동을 보면서 포위망은 삐걱거렸다. 이들은 서로를 믿지 못했고, 결정적으로 전쟁을 두려워했다.
이 대목에서 다시 한 번 음모와 배신이 판친다. 라인란트 재무장에 가장 두려움에 떨었던 국가는 벨기에였다. 프랑스와 벨기에가 순망치한의 관계라는 건 제1차 세계대전 때 이미 증명됐다. 벨기에는 다시 한 번 독일의 군홧발에 짓밟힐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여 있었다.
그들이 믿을 수 있는 동맹국은 프랑스 하나밖에 없었다. 그래서 프랑스와 방위조약을 맺었던 건데 문제는 이 프랑스가 라인란트 재무장 앞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까놓고 말해서 대독일 포위망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 가장 위험한 국가는 벨기에였다. 영국은 바다 건너에 있고, 이탈리아는 제법 군사력도 갖추고 있는데다 앞에 알프스 산맥이 있었다. 폴란드의 경우 벨기에를 능가하는 군사력을 갖추고 있었고(비록 전차에 돌격하는 기병대지만), 체코슬로바키아는 중부유럽에서 독일군 다음으로 가장 강력한 군대를 갖고 있었다. (폴란드군 육군과 체코슬로바키아 육군의 병력수는 비슷했으나, 질적으로 체코슬로바키아가 압도했고, 공군력 역시 그러했다. 또한 전차를 비롯한 각종 총기류 생산대국으로 분류됐던 체코슬로바키아다. 2차 세계대전 당시 가성비 대비 최고의 구축전차로 분류되는 ‘헤쩌’는 독일이 체코슬로바키아군의 38t전차를 모태로 만든 것이었다) 그렇다면 프랑스는? 여차하면 마지노선에 들어가 방어전에 들어가면 된다.
때문에 대독포위망 앞에서 가장 위험한 나라는 벨기에였다.
노란 부분이 라인란트로, 벨기에와 직접적으로 닿아있다.
이런 상황에서 독일군이 라인란트에 진주한 것이다. 당시 벨기에는 프랑스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에 경악했다. 이제 벨기에는 독일 앞에 발가벗겨졌다. 이들이 느꼈을 배신감이 어떠했을까? 실제로 벨기에에는 프랑스에 대한 불신과 분노가 팽배해 있었다. 최후의 순간 전쟁이 일어난다면 벨기에는 제일 먼저 희생될 것이다. 프랑스의 지원 없이는 벨기에는 국가의 형태를 유지할 수 없을 게 뻔했다. 프랑스에게는 마지노선이란 믿을 구석이 있었지만 벨기에는 믿을 구석이 없었다. 이제 대독포위망 중 제대로 작동하는 게 단 하나도 없었다.
여담이지만 만약 이때 라인란트 재무장을 구실로 프랑스와 벨기에, 영국, 체코슬로바키아, 폴란드가 힘을 합쳐 독일을 공격 혹은 압박 했다면 독일은 물러났을 것이다. 유럽은 점점 더 전쟁의 판을 키워나가고 있었다.
나치가 공산주의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그들이 사회민주당원들을 가두었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회민주당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그들이 노동조합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나에게 닥쳤을 때는,
나를 위해 말해 줄 이들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마틴 니묄러 <나치가 그들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프랑스와 벨기에. 그리고 마지노선
이제 서유럽에서 프랑스가 믿을 수 있는 국가는 벨기에 하나뿐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 때처럼 독일은 벨기에를 거쳐 프랑스로 짓쳐들어올 것이었다. 이미 마지노선은 벨기에 국경선 시작되는 곳까지 완성되어 있기에 독일이 무모하게 프랑스 국경 쪽으로 돌격할 것이란 생각은 그 누구도 하지 않았다(실제로도 그랬고).
진한 빨간선이 마지노선의 핵심 방어망이다
문제는 벨기에 국경선 방면을 어떻게 해야 하냐는 것이었다. 프랑스는 마지노선 건설 계획을 세울 때부터 ‘벨기에 국경선 방면’도 마지노선으로 둘러칠 계획이 있었다. 프랑스가 바보는 아니니까.
그런데 어째서 마지노선을 연장하지 않았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제일 먼저 떠올릴 수 있는 건 바로 ‘돈’이다. 막대한 건설비와 요새 유지비를 생각한다면, 무한정 요새선을 늘릴 수만은 없었다. 그러나 이걸로 모든 걸 설명할 수는 없고, 벨기에의 정치적 목적이 강하게 들어가 있었다.
사실 프랑스는 대서양까지 마지노선을 건설할 계획이 있었으나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침략을 경험한 벨기에가 반발을 했다.
“전쟁이 터진다면, 독일은 벨기에를 점령한 뒤 프랑스 국경을 위협할 것이다. 만약, 프랑스가 마지노선을 대서양까지 이어버린다면 전략적으로 벨기에를 버린다는 의미다. 프랑스의 마지노선이 벨기에 국경까지 연결되는 걸 막아야 한다.”
대독 포위망의 가장 약한 고리였던 벨기에가 그나마 믿을 수 있었던 건 바로 뒤에 있는 프랑스뿐인데, 그 프랑스가 마지노선에 들어가 웅크리고 있겠다면 벨기에는 앉아서 죽으란 소리와 다를 바가 없었다. 마지노선을 대서양까지 둘러친 다음에도 충분히 벨기에와 협조해 독일을 방비하겠다는 말은 말뿐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의 참상을 모두가 두 눈으로 확인한 뒤였다.
“요새가 없다면 모를까. 요새가 건설된다면 언제든 벨기에를 버리고 마지노 안에서 독일을 기다릴 것이다.”
맞는 말이다. 역사를 더듬어 보면 ‘조약’의 무게가 얼마나 가벼운지 쉽게 알 수 있다. 역사 기록 이래로 1990년까지 만들어진 수많은 평화조약의 평균 지속 기간은 불과 2년 남짓이었다. 멀리 갈 필요도 없다. 독일을 견제하기 위해 만든 베르사유 조약, 로카르노 조약, 스트레사 전선이 무너지는 걸 확인하는데 걸린 시간은 불과 10여 년이었다.
말뿐인 구호의 허망함은 라인란트 재주둔 사건 앞의 대독포위망에서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만약 여기에 마지노선이 대서양까지 이어진다면? 프랑스는 벨기에를 버릴 것이었다.
벨기에는 나라의 운명을 걸고, 마지노선의 연장을 반대했다. 그리고는 한 가지 타협책을 내놓는다.
“우리도 독일과 싸울 준비를 하겠다. 같이 싸우자.”
유럽의 작은 국가 벨기에는 ‘생존’을 위해 자신의 국토를 요새화(?)했다. 이때 등장하는 게 ‘운하’다. 1920년대 벨기에는 독일 국경선을 따라 벨기에 내륙으로 흐르는 알베르 운하(Albert Canal)를 파기 시작했다. 벨기에 안트웨르펜(Antwerpen)시와 리에쥬(Liege) 사이를 연결하는 총연장 130Km의 알베르 운하는 경제적 목적과 동시에 군사적 목적을 띄고 있었다. 독일의 진격에 앞서 천연의 방어막이 될 것이란 계산이었다.
“최소한 독일군의 발을 묶어 놓을 것이다.”
바닥의 너비 가장 좁은 곳이 24미터나 되는 알베르 운하는 독일군의 진격을 막지는 못해도 최소한 시간은 끌어줄 거라는 기대를 받았다. 뒤이어 벨기에는 전국의 철도망과 교량에 폭약을 설치해 독일군의 진격을 최대한 늦추는 계획을 짜기도 했다.
압권은 리에쥬(Liege) 근처의 국경마을 에방에말(Eben-Emael) 마을에 건설한 에방에말 요새(Fort Eben-Emael)다. ‘작은 마지노’란 별명으로도 유명한 에방에말 요새는 벨기에가 쥐어짜낼 수 있는 모든 걸 결집시킨 벨기에의 마지노선이었다.
에방에말 요새
그러나 에방에말 요새는 시작부터가 잘못되었다. 요새 건설 당시 독일 회사가 참여했는데, 이 독일 회사에 의해 설계도가 유출된 것이다. 덕분에 독일의 프랑스 침공일인 1940년 5월 10일 시작과 동시에 독일 공수부대의 공격이 시작됐고, 30시간 만에 함락 당한다.
3년간 벨기에의 모든 능력을 쥐어짜내 만든 요새가 30시간 만에 함락 된 것이 안타까울 수도 있겠지만 너무 안타까워 할 이유는 없다. 독일은 아르덴(Ardennes)을 통과해 프랑스로 진격하려고 했고, 실제로 이를 성공시킨다. 에방에말 요새의 공격은 말 그대로 조공(助攻), 즉, 페이크였을 뿐이다.
마치며
가볍게 시작한 ‘마지노선’에 관한 이야기가 이렇게 오래갈 줄은 나 역시도 몰랐다. 뭔가 결론을 내놔야 할 거 같은데, 워낙에 ‘가볍게’ 시작한 주제라 딱히 떠오르는 주제가 없다. 그래도 결론을 내려야 한다면,
“필생즉사 사즉필생(必生卽死 死卽必生)”
이란 말이다. 만약 프랑스나 대독포위망을 구성한 국가들이 죽을 각오로 덤벼들었다면 히틀러는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니, 설사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훨씬 빨리, 조용히 끝났을 수도 있다.
살겠다는 욕망이 너무 강하다 보니 결국 죽게 된 것이 프랑스였다.
영국의 배신을 보면서 손가락질을 할 수도 있겠는데 이게 바로 국제정치의 본질이다. 영국을 탓할 이유가 전혀 없다. 물론 잘못된 정보에 의한 오판은 지적해야겠지만, 영국은 당시로서는 최선의 판단을 내렸다.
“나의 생존보다 우선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
자국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국제정치의 기본 룰이다. 그리고 그 힘의 배경에는 군사력을 포함한 국가의 힘이다. 언제나 그렇지만 진리는 가까운 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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