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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이 유일한 합리적인 전략임을 예측할 수 있는 단순한 게임과는 달리, 반복 방식의 게임은 다수의 전략적 선택의 여지를 제공한다.


리처드 도킨스 <이기적 유전자>



죄수의 딜레마에 처한 인간은 협력하면 보다 큰 이익을 얻을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결국 배신한다. 그러나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에서 미국의 정치학자인 액설로드의 ‘변형된 죄수의 딜레마’이론을 인용하며 게임이 무한히 반복되고 끝나는 시점을 예측할 수 없다면 얼마든지 ‘우리도 살고 남도 살리는(live-and-let-live)’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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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수의 딜레마


저성장 시대다. 2016년이 되자마자 저성장 시대의 생존 전략을 다룬 글들이 쏟아지고 있다. 최근에는 ‘성장에 익숙한 생활습관과 가치관을 바꾸고 심플 라이프를 실천하라’는 내용을 담은 책도 출간되었다. 고도성장 시절에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울부짖으며 정석과 성문기본영어를 성경으로 모셨던 학창시절을 보냈지만, 사회 초년생이 될 무렵 IMF를 겪었고, 한창 일할 나이인 지금은 저성장 시대란다.


‘하면 된다’ 신화는 깨졌다. ‘해도 안 되는’ 건 분명히 있다. 콩 씨앗에서는 콩이 나고, 팥 씨앗에서는 팥이 난다. 콩이 팥이 될 수는 없고, 김연아가 박태환이 될 수 없다. 알랭 드 보통은 ‘과거에는 실패한 이에게 불운하다(unfortune)는 표현을 사용했다면 현대에는 실패자를 패배자(looser)취급 하고 있다’며, 모든 일의 결과가 개인에게 종속되고 그 책임 또한 개인에게 전가되는 것에 대한 위험성을 지적한다.


원망스런 세상 맞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이 거지같은 헬조선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기왕이면 행복하게. 인생은 생방송, 한 번 뿐인 삶인데, 이대로 정신줄 놓아 버리기에는 억울하니까.


‘게임이 무한히 반복되고 끝나는 시점을 예측할 수 없다’는 믿음만 있다면 인간은 얼마든지 서로 도우며 살 수 있단다. 나름 희망적이다. 최근 몇 년 동안 유리 멘탈이 산산조각 나는 막장드라마를 종류별로 겪다 보니 두 다리 딛고 있던 바닥이 쑥 꺼지는 기분이 들었다. 정말이지 사람 망가지는 건 순식간이더라. 오기가 생겼다. 그래도 근면 성실 착하게 살아왔는데, 이따위로 팔자가 꼬인 건 내 책임만은 아닐 터. 이대로 무너지면 나처럼 하찮은 서민 따위는 아웃 오브 안중인 갑들 좋은 일만 해주는 거잖아. 누구 웃으라고 고분고분하게 좌절할 수는 없다.


죄수의 딜레마에 처한 자가 상대의 배신에 대해 할 수 있는 것은 쌍욕 날리기 밖에 없다. 욕망과 공포에 따른 진솔한 선택이니까. 딜레마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게임이 무한히 반복 될 수 있다는 신뢰를 만들어야 한다. 나부터 믿어보자.


갑들이 지들 편하자고 만들어 놓은 프레임에서 살짝이라도 벗어나고 싶어 안간힘을 써본다. 여전히 안 해도 될 걱정 땡겨 하고 있지만, 노력 중이다. 혼이 정상이고 싶은 나는 우주의 기운이 도와주길 간절히 기도한다.



으리으리한 김포 한강 신도시 아파트를 지날 때마다 부럽다. 소비가 곧 수준과 취향을 드러내는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명품 아파트에 대한 환상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 다만 이상과 현실적 자아의 간극을 알아차리며,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을 반복하고 싶다.


나는 조증과 울증을 노상 넘나드는 의지박약한 인간이다. 자발적 가난, 느리게 살기, 소박한 소비생활, 재활용 동참, 신용카드 안 쓰기, 대중교통 이용하기, 모두 훌륭한 말씀들이다. 이런 구호들은 다이어트랑 똑같다. 조금 덜 먹고 매일 운동하면 건강하게 살을 뺄 수 있다는 걸 세 살 먹은 아가들도 알겠지만, 감각기관의 유혹을 이길 재간이 없다. 인간은 하루아침에 환골탈태하지 않는다. 그래서 강화도 적응 기간을 최소 2년으로 잡았다.


김포에서 강화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강화대교, 초지대교 두 다리를 건너야한다. 이건 어디까지나 강화에서 외지로 출퇴근해야 하는 나의 편의상 구분이다.


강화도가 속해있는 강화군은 총 13개의 면으로 이뤄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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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는 동, 서로 각각 5개 면, <1박 2일>로 유명해진 교동도의 교동면, 연인들 단골 데이트 코스(배는 끊겨야 맛이다)인 석모도가 속한 삼산면, 그리고 서쪽 끝 크고 작은 섬들로 이뤄진 서도면이 있다. 강화도가 우리나라에서 네 번째로 큰 섬이다 보니 내륙과 바다의 생활 모습에 차이가 있다. 생활 권역을 나누는 방식이 있겠지만 나는 모르겠다. 편의상 강화도를 북쪽의 강화대교, 남쪽의 초지대교로 구분했다.


강화대교는 김포의 통진읍과 연결되어 있고, 초지대교는 대곶면과 연결되어 있다. 출퇴근을 위해 자동차로 서울-초지대교, 서울-강화대교를 여러 번 이동했다. 초지대교에 비해 강화대교 방향 도로가 더 잘 되어 있는 것 같다. 통진읍 도로는 왕복 8차선이다. 반면 초지대교 방면은 양촌 삼거리 부근이 짧은 신호로 인해 붐볐고, 거리에 비해 신호가 너무 많게 느껴졌다.


이런 외부자적인 시선이 오랫동안 강화에 터를 잡고 살아온 현지 주민들에게는 실례일 것이다. 다양한 삶의 형식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의도하지 않았지만 무례를 범할까봐 조심스럽다. 혹시나 상처 받았거나 앞으로 받을 분 계신다면 미리 사죄하겠다. 글쓴이의 이런 태도는 글의 목적을 위한 장치로 이해해주길 바란다. 태연한 척 해봤자 독자는 글쓴이의 허영과 미숙함을 눈치 채기 마련이다. 미안하다. 내 수준이 겨우 그 정도다. 엄살은 이쯤에서 관두고.


강화대교–강화읍 / 초지대교–길상면


첫 작업은 두 번화가(?) 중 한곳을 낙점하는 것이었다. 두 곳 모두 장단점이 있었다. 집값은 길상면이 저렴하고, 강화읍은 각종 문화생활을 향유할 수 있었다. 연고 없는 강화도에서 유일하게 믿는 구석인 나의 강화친구는 초지대교 쪽에 살고 있다. 기왕이면 친구네 근처가 좋지 않을까 싶었다.


강화도로 이사를 간다고 하니 귀촌 성공을 기원하는 지인이 있었다. 그 말을 듣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남들은 귀촌으로 보는구나. 처음 알았다. 귀촌을 염두해 둔 적은 없었다. 나 같은 사람이 함부로 귀촌을 떠드는 건 예의가 아니다. 이 프로젝트는 도시아줌마의 소읍살이 정도 된다(그것도 나에게는 경천동지할 노릇이지만). 어디까지나 블랙홀처럼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무시무시한 서울에서 빠져나가고 싶었을 뿐 꼭 강화도를 고집했던 것도 아니다.


남편 직장이 서울이라는 사실은 바꿀 수 없기 때문에 그 안에서 여러 방향을 모색했다. 경의중앙선 전철을 중심으로 찾아보기도 했고, 가평, 여주, 평택, 안성과 같은 경기 동남부지역도 검토했다. 강화도는 우리 가족의 욕구와 라이프 스타일을 고려한 결과다.


사람마다 절대 양보할 수 있는 중요한 것과 조금 불편해도 견딜만한 것들이 있다. 타로마스터 한쌤 방송을 듣다 보니, 2016년 전셋집 이사를 꿈꾸는 내담자에게 이런 조언을 해주더라.


전세냐, 월세냐, 시내 중심부냐, 외곽이냐. 이것에만 매몰되어 고민하지는 말 것


‘전세대출이 월세보다 싸다’는 한 가지 기준만 적용하지 말고, 2016년 인생과제 성취 과정에서 집의 역할이 무엇인가를 고려해보자는 내용이었다(내가 잘못 이해 한 것 일수도 있다). 여하튼 서울 자가용 출퇴근 거리, 혁신학교, 밝히고 싶지 않은 가족 구성원의 개인사로 인한 필수조건 등 절대 포기 못할 몇 가지와 견딜 수 있을 것 같은(막상 겪어보면 다르겠지만) 막연한 불편함 사이에서 저울질을 했다. 그 결과 강화읍을 택했다.


공인중개사가 그랬다. 강화읍은 강화의 강남이라고. 때문에 강남 못지않게 화끈한 학구열을 자랑하는 초등학교도 있다고 했다. 제일 처음 소개받은 집이 그 학교 근처였다. 마음에 쏙 들었다. <응답하라 1988>의 쌍문동 같은 정겨운 골목에 위치한 단층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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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느낌의 골목이었다


구식 양옥이지만 마당의 소담한 화단과 어린 시절부터 로망이었던 다락방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도시가스가 들어왔다! 아파트에서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결심하면서 크게 걱정한 것이 겨울나기였다. 금쪽같은 기름 펑펑 때리며 보일러를 틀수는 없으니까. 그런데 도시가스라니 심봤다. (2016년 1월 현재 강화읍 일부까지 도시가스가 들어와 있다)


얼마 전에 강화읍 골목 정비 사업이 있었단다. 북촌처럼 동네길이 예뻤다. 학교 담장을 따라 알록달록 학원 간판들이 눈에 들어왔다. 흐뭇했다.


‘강화살이 실패하고 도시로 유턴할 수도 있으니까, 교육열 높은 이 학교를 보내는 것이 안전하지 않을까?’


‘혁신학교는 시험도 안 본다던데, 전인교육도 좋지만 만날 놀다가 중학교 들어가서 애가 꼴등하면 어쩌지? 집 근처에 학원 많으니까 안심이 되네’


이 집이 당장이라도 사라져 버릴까봐 안달이 났다. 그에 반해 남편은 영 찜찜한 표정이었다. 공인중개사는 좀처럼 집구하기 힘든 시절이니, 이것저것 따질 것 없이 바로 계약을 하자고 권유했다. 단순한 엄포는 아니었다. 서울 전세가 폭등하면서 덩달아 김포 집값도 신나게 뛰었고, 그걸 견디지 못한 김포 사람들이 강화도로 많이 유입되었단다.


작년 가을 이후, 강화도에는 월세집도 씨가 말랐다. 강화도에 사는 친구는 연신 운이 좋았다고 가슴을 쓸었다. 강화친구 지인들 중에 발만 동동 구르다가 집을 구하지 못한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내가 집을 계약한 시기에도 집이 거의 없었다. 다행히 강화친구가 한 달 전부터 이런 저런 네트워크를 동원해서 월세집 소식을 전해 준 덕분에 무사히 집을 구할 수 있었다. (지면을 빌어 고맙다 친구야)


석연치 않아 하는 남편의 표정을 본 공인중개사는 혁신학교 근처에 집이 하나 더 있다고 했다. 밀당은 남녀관계에만 필요한 게 아니었구나. 그 집은 첫 집보다 작았다. 집 자체만 놓고 보면 처음에 방문 한 집이 가격 대비 훨씬 괜찮았다.


하지만 이 집을 선택했다. 원래 강화행을 결정한 가장 중요한 까닭 중 하나가 혁신학교니까. 약간의 자극에도 갈팡질팡하는 탐욕으로부터 가까스로 이성을 회복한 후 바로 계약했다. (한 시간 후 첫 번째 집도 바로 나갔다. 요즘 강화도에선 월세가 나오면 하루 만에 계약 완료다)


이렇듯 바람 앞 촛불처럼 수시로 흔들리는 욕망아줌마가 과연 강화도에 잘 정착할 수 있을지. 한번 지켜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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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섬사람 되다




셀러킴


편집: 딴지일보 챙타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