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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탁기 파손 사건, 그 배후의 역사

-SBS CNBC 이형진 앵커브리핑에 부쳐-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연은 이탈리아 베로나에만 있는 건 아닙니다. 남녀간의 사랑이란 무엇이든 타고 넘는 법이라 몬터규와 캐퓰렛처럼 사생결단을 벌이는 원수 집안 간에도, 지기라도 하는 날이면 드러누워 끙끙 앓는 라이벌 간에도 사랑의 다리는 놓아지고 작대기는 상대방의 심장을 가리키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별 생각 없이 중매든 연애든 결혼했는데 그 이후의 상황이 급변하여 본의 아니게 로미오와 줄리엣이 된 사연도 있습니다. 바로 과거 금성사 구인회 회장의 3남 구자학씨와 삼성그룹 이병철 회장의 차녀 이숙희씨가 그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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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구자학 이숙희의 결혼식

 


재벌가들 자제들이 서로 얼키고 설키는 일이야 예나 지금이야 흔한 일이지만 이 부부는 1960년대 말 삼성그룹 이병철 회장이 전자 사업 진출을 선언하면서 아주 애매한 입장이 됩니다. 전설에 따르면 이병철 회장이 전자 사업을 하겠다고 하자 구인회 회장은 "이럴 수 있느냐"며 분노했고 삼성그룹에서 일하며 장인어른의 총애를 받던 사위는 본가로 U턴하고 딸 숙희씨는 아버지에게 전자 사업 그만둬 달라고 애끓는 호소를 하게 됩니다.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은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숙희씨가) 금성으로 시집가더니 삼성이 전자 사업한다고 시집에서 구박을 받아 집에 와 떼를 썼다. 보통 정신을 가지고 떠드는 게 아니었다. 당시 아버지가 ‘내 딸이 이럴 수 있느냐. 그렇게 삼성전자가 견제가 된다면 삼성 주식은 한 장도 줄 수 없다’고 했다”


삼성그룹의 비운의 사도세자이자 주치(칭기즈칸의 장자) 격이었던 이맹희 회장이 늘그막에 제기한 재산 분할 소송 때 이숙희씨가 이맹희 회장 편을 들었던 무렵 나온 얘기라 좀 격한 측면이 있겠지만 크게 사실에서 벗어난 토로는 아닐 겁니다. 금성사에게 삼성의 진출은 라이벌 정도가 아니라 사생결단의 적수를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격이었고 삼성 역시 금성은 반드시 밟고 넘어야 할 산일 수 밖에 없었으니까요. 1969년 11월 삼성전자 창립 이래 삼성과 금성, 그리고 그 이후의 LG가 치른 혈전의 역사는 웬만한 무협지보다 재미있으면 있었지 처지지는 않습니다.


70년대 있었던 ‘성에 논쟁’은 그 하나지요. 당시 가전 판도는 금성사가 우위를 점한 가운데 후발 주자인 삼성이 당시 유력한 가전 기업이었던 대한전선과 각축을 벌이는 삼국지 분위기였습니다. 금성이 위(魏)라면 대한전선은 오(吳), 삼성은 촉(蜀)이었지요. 1977년 대한전선은 냉장실이 분리된 ‘원투제로 냉장고’로 삼성의 ‘하이콜드’ 냉장고를 넉다운 시킵니다. 삼국지로 치면 손권이 형주를 빼앗은 형세라고나 할까요. 이에 삼성은 이를 갈면서 비장의 무기 하나를 가동하는데 그게 ‘서리 논쟁’이었습니다. “성에가 끼는 냉장고는 10년골치!” 이게 삼성 냉장고 광고 카피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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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전선의 원투제로는 냉각력을 높이다 보니 다른 제품에 비해 냉동실에 성에가 많이 끼는 편이었습니다. 보기에 좀 좋지 않다 싶은 것 뿐이지 성능에는 영향이 없었습니다만 삼성이 이를 물고 늘어진 겁니다. 일종의 비방 광고죠. 대한전선은 직접냉각식, 삼성과 금성은 간접냉각식을 도입하고 있었는데 이는 후일 소니와 미쯔비시의 베타와 VHS 대결처럼 일본 가전사들의 경쟁이 그대로 현해탄을 건너 온 것이었지요. 그런데 현해탄을 건너오면서 전쟁으로 변합니다.


대한전선 역시 막대한 광고비를 들여 “삼성과는 비교가 안됩니다.”는 식의 광고로 맞섰고 둘은 치고 박고를 거듭합니다. 삼국지에서 위나라는 촉나라와 오나라가 싸우는 걸 보고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며 됐지만 금성사는 그럴 처지가 못됐습니다. 두 후발 주자가 피튀기게 싸우다보니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시장 점유율이 눈에 띄게 떨어진 겁니다. 결국 금성사도 무한 경쟁에 뛰어들었고 가전삼사의 혈전은 정부가 개입하고서야 강제로 그치게 됩니다. 이른바 성에 논쟁이었죠.




어디 냉장고 뿐이겠습니까. 컬러TV를 둘러싸고도 가전업계의 전쟁은 치열했습니다.


“흑백TV에서 뒤진 삼성은 컬러TV는 앞서려고 하지만 컬러TV도 시작은 금성사가 먼저였다. 1974년 9월 금성사가 미국 RCA와 기술 제휴로 컬러TV 개발에 나섰다. 삼성전자는 1년 뒤인 1975년 8월에 RCA와 기술제휴 계약을 맺고 컬러TV 개발에 뛰어들었다. 그런데 금성이 RCA와 특허권 문제로 시간을 끄는 사이, 1976년 6월 삼성전자가 먼저 14인치 컬러TV 시제품 개발을 완료하고 1977년 4월부터 양산에 나선다. 금성이 컬러TV의 양산에 돌입한 때는 삼성보다 5달 늦은 1977년 9월이다. 삼성으로서는 비록 TV 한 분야였지만 창업 8년만에 업계 선두를 따라잡은 것이었다.”


출처 - 레오가 소개하는 다양한 지식IN (링크)




위 블로그에도 나오지만 삼성과 금성의 입장은 다를 수 밖에 없었죠. 삼성은 빨리 하자, 금성은 시기상조다. 이 치열한 논쟁을 판가름해 준 것은 박정희 대통령이었습니다. “컬러 TV는 아직 시기가 아니야. 사람들이 사치에만 신경쓰게 되고 흑백 TV도 없는 농민, 서민들은 위화감을 느끼지 않겠나?” 그리고 당연히 상대적으로 TV에 고객을 빼앗길 신문도 반대를 했구요. 결국 컬러 TV의 진검 승부는 박정희 대통령 사후, 신군부가 들어선 뒤에야 이뤄지게 됩니다. 컬러 TV가 대량 생산되고 상용화됐던 80년대 초반에도 두 기업은 엄청난 광고 전쟁을 감행했는데 이걸 좀 자제하자고 상공부장관이 만든 자리에서 두 기업 사장이 멱살을 잡고 육탄전 일보직전까지 갔을 정도로 분위기는 험악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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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도 두 전자기업 간의 전쟁은 끝이 없습니다. “1993년 삼성전자 직원 두 명이 LG전자 거래처 명함에 자신들의 이름을 새겨 LG전자 거래처 직원으로 위장해 LG전자의 냉장고 공장에 잠입하여 생산 공정을 훔쳐보다 적발되는 일도 있었다.” (스페셜 경제 2014.9.4)는 스파이 소동도 그렇거니와 1995년의 육각수 논쟁, 2005년의 우담바라 논쟁 등등 끝이 없습니다. 이형진 기자가 브리핑한 ‘세탁기 파손 논쟁’도 그 중의 하나이겠지요. 내용은 보시면 아시겠습니다만 어찌 보면 유치하지만 또 다른 눈으로 보면 꽤 복잡한 사연이 숨어 있는 스토리입니다.


한국 전자업계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이끌어왔고 일본 전자업계의 생산 방식을 베껴 한국에서 대리전을 치르던 올망졸망한 전자 회사가 아닌 세계를 주름잡는 대기업들이 된 오늘, 그 라이벌 의식을 포기할 수는 없겠으나 그것이 긍정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당시 삼성과 금성의 일선의 전사들로서 밤새 연구하고 내다 팔고 피튀기는 영업전을 치르고 신문사 찾아다니며 자기네 제품 우수성에 침을 튀기던 분들이 오늘 ‘냉장고 파손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이 어떨지 궁금합니다. 응답하라 1980 쯤 하면서 회상에 젖으실까요? 회장님들이 치른 전쟁보다 그분들이 치른 전투에 애잔하게 눈길이 가는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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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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