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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합격하고 입학을 기다리던 겨울이었습니다. 한 달만 있으면 청운의 꿈을 안고 서울로 가게 되고, 신촌에서 만날지도 모를 초미녀들 생각에 잠도 못 이루는 그런 시기였습니다. 제 생애 가장 희망 가득한 시절이었던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보였고, 학교에 입학해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 의사가 되겠다고 하루에도 몇 번이고 다짐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제 마음 한 켠에 불안이 드리우고 있었으니, 저는 ‘수전증’이 있었습니다. 훌륭한 의사가 되려면 수술을 잘해야 하는데, 수전증이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었습니다. 아무리 작더라도 불안의 싹은 더 커지기 전에 미리 제거해야 될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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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어머니를 졸라서 병원에 가자고 했습니다. 여유가 있었던 예과 때 고쳐야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의과대학은 예과 2년, 본과 4년의 과정입니다).


수전증이라 해도 손이 아주 많이 떨리는 정도는 아니었기에 아무래도 ‘기’와 연관이 있는 건 아닐까 싶었습니다. 당시 드라마 <허준>이 엄청난 인기를 끌기도 해서 -허준은 모든 병을 다 고치고 그랬지 않습니까?- 먼저 한의원으로 갔습니다. 그나마 동네에서 좀 크다는 한의원이었습니다.


한의사 선생님과 면담을 했습니다.


‘나는 훌륭한 의사가 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수술을 잘해야 하는데, 손이 떨린다. 다른 직업이면 괜찮겠으나 나는 훌륭한 의사가 될 사람이다.’ 이렇게 의대 입학한 것을 자랑하는 것인지, 손 떨리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인지 헷갈리는 멘트를 계속 날리고 있던 바로 그 순간 한의사 선생님의 한 말씀.



 “사진 한 번 찍어 보시죠?”


 “사진이요? 어떤 사진이요?”


 “손 떨리는 것은 머리 쪽이랑 연관이 있으므로 머리 안을 다 볼 수 있는 그런 사진입니다”


 “얼마인데요?”


 “20만 원쯤 합니다.”


 “...”



갑자기 의사 선생님에 대한 믿음이 확 떨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제 이야기를 잘 안 듣고 있다는 느낌도 들었고, 돈도 꽤 비싸서 어쩐지 뭔가 이상한 기분이었습니다. 당시 대학 입학금이 120 정도였으니 엄청 비쌌습니다. 기분 탓일지도 모르겠으나, 사진 찍으라고 말씀하시던 의사 선생님이 눈빛도 어쩐지 조금 흔들린다는 느낌도 받았습니다(지금 생각해보니 ‘머리 안을 볼 수 있는 사진’은 당시 처음 도입된 CT 같은 게 아닐까 합니다. 혹은 다른 것일 수도).


그래서 사진은 다음에 찍겠다고 말씀드리고, 근처에 있는 신경과로 갔습니다. -우연인지 그 신경과 선생님은 제 선배님이 되었습니다- 한의원에서 의대에 입학했다는 자랑(?)에도 불구하고 냉랭한 분위기를 기억한 저는 별 이야기를 안 하고 수전증 이야기만 했습니다.


그 원장님은 저를 잠시 째려(?)보시더니 갑자기 일어나서 서보라고 하시더군요. 그러더니



 "(선을 따라서 ) 똑바로 걸어봐라."


 "(눈 감고 ) 한 발로 서 봐라"


 "내가 왼쪽으로 머리를 돌릴 테니 오른쪽으로 머리를 돌려봐라."



이런 주문을 하셨습니다. 나중에 알았지만, 신경학적 검사였습니다(미국에서는 술 먹고 운전하다가 걸렸을 때 입으로 불거나 피 검사 대신 이런 검사를 한다고 하네요).


선생님께서는 후에 다시 저를 째려보시더니 괜찮다고 말씀하시고, 너무 걱정 말고 아직은 괜찮으니 수전증이 더 심해지면 오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대학 들어가서 술 좀 적게 먹어라 뭐 그런 말씀도 하셨던 것 같습니다. 돈은 딱 진찰비만 들었습니다.


그 후 제가 누구에게 더 믿음이 생겼는지는 말씀 안 드리겠습니다.


그때 제 나이가 갓 20살 이였습니다. 가장 건강하고 가장 빠를 때였습니다. 60살쯤 되서 수전증이 와서 병원에 갔었으면 아마 다른 검사나 처방을 하시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며칠 전 대한한의학협회장님이 한의학계도 현대 의료기기를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시며 많은 기자들이 있는 가운데 '초음파 골밀도 검사' 시연을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한의사들이 현대 의료 기기를 사용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는 열외로 치겠습니다. 워낙 논쟁거리가 많아서요. 한의학협회장님의 시연에 대해서만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첫 번째로 시연 환자가 잘 못 되었습니다. 29세 남자라고 알려져 있는 데 -협회에서 일하는 직원이라고 들었습니다- 아시다시피 그 나이에는 골다공증이 거의 오지 않습니다. 골다공증은 주로 폐경 된 여성들에게 많이 오고 젊은 남자 환자는 참 드뭅니다. 이왕이면 골다공증이 많은 연령군과 성별을 환자로 설정하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요?


두 번째는 검사 결과가 잘 못 될 가능성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 모습이었습니다. T-score가 4.4로 나왔는데, 이 정도면 엄청난 골다공증 수치입니다. 제 폐경기 환자 중에서도 이 정도 수치는 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참고로 정상은 -1 이상이어야 하고 -2.5 이하이면 골다공증 -1에서 -2.5 사이는 골 감소증이라고 합니다. 보험 기준은 조금씩 바뀌기는 하는 데 -2.5 이하로 골다공증 진단을 받으면 약물치료를 해야 되고 약물은 보험이 적용되어 싸게 살 수 있습니다).


일단 이 나이 남자에게 이런 수치가 나온다면 수치가 잘 못 되었다는 생각을 먼저 했었어야 합니다. 다른 검사를 해서 교차 확인을 해야 되고 그 때도 이렇게 낮았을 때에야 조심스럽게 골다공증을 의심해 봐야겠지요.


그런데 기자 회견 속의 회장님의 모습에서 이런 모습은 찾기 어려웠습니다. (이런 기계쯤은 나도 사용할 수 있다는) 엄청 자신 있는 모습이 사실 보기 좋지는 않았습니다. 적어도 “일단 수치상으로는 골다공증이네요” 이 정도 말이 제가 납득 할 수 있는 최저선이 아닐까 싶습니다.



결론적으로


1) 폐경 된 지 얼마 안 된 환자이거나

2) 혹은 이유 없이 뼈가 자꾸 골절된 환자 아니면

3) 우연히 엑스레이를 찍었는데 뼈 사진이 좀 이상해 보이는 사람에서


이런 골다공증 초음파 검사를 하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를 할 수 있습니다만, 이 경우는 아닙니다(사실 산모를 많이 보는 저의 경우 산모들도 일시적으로 골다공증이 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절로 다 좋아지기 때문에 진짜 산모가 엄청 애걸복걸하지 않으면 검사를 안 하죠).


아무튼 환자를 보는 데 제일 중요한 것은 환자의 과거력과 병력을 물어보는 것이고 거기에 맞추어서 검사를 해야 하고 검사가 잘 못 나올 가능성도 항상 생각을 해야 합니다.


실제로 산부인과에도 건강 검진이나 다른 과 검사를 하다가 우연히 난소나 자궁에 뭔가가 발견되어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른 병을 진단하기 위해 촬영된) CT 나 MRI에서 판독을 하는 영상 의학과 선생님이 난소에 4cm짜리 혹이 있는 것은 말씀해 주실 수 있지만 그 병을 어떻게 치료할지 혹은 그냥 관찰해도 되는지 알려 주지는 않습니다.


만일 CT 검사에서 우연히 발견된 4cm짜리 난소 혹이 환자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모르는 사람은 적어도 (그 병 진단을 위해서) CT를 찍게 하면 안 됩니다.


사실 난소 혹이 3cm 이어도 문제가 될 수 있고 7cm 이어도 괜찮은 경우도 있습니다. 그냥 혹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아무나 말할 수 있지만 그 병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아마 그 이후에도 환자에게 더 비싼 검사를 요구할 수도 있습니다(실제로 임상적 경험이 떨어지는 레지던트 선생님들이 그러합니다. 참고로 주말에 스탭이 없는 응급실에 오게 되면 검사를 더 하게 됩니다).


이 일을 의학계와 한의학계이 밥그릇 싸움이라 비난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세상에 밥그릇 싸움이 아닌 게 무엇인지 반문드리고 싶습니다. 밥그릇 싸움만큼 확실하고 구성원의 의견을 모을 수 있는 다른 일이 또 뭐가 있겠습니까? 세상에 제일 믿을 수 없는 게 사회적 정의나 당위성 그리고 도덕적 의무감으로 맺어지는 관계들입니다.


다만 공론의 장에서 서로의 의견을 발표하고 제안하는 과정에서 '어떤 집단의 의견이 옳은 가?' 결정하는 일이 나머지 구성원의 몫이겠죠.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서, 물론 이 문제들이 한의사에게만 해당하는 건 아닙니다. 이런 양의사들도 주위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환자의 이야기를 잘 듣지 않고 환자가 오자마자 환자에게 겁을 주어 비싼 검사를 권유하는 의사가 좋은 의사일 리 없습니다. 개선해 나가야 할 부분입니다. 그러나 이를 부추길 필요는 없겠지요?


검사 기기가 아무리 발전해도 최종 진단과 치료 그리고 (수술 안 하고) 그 병변을 관찰하는 것은 담당 전문 주치의가 하는 것입니다. 한의원에서 검사하고 또 병원으로 옮겨와 검사하고 치료를 받는다면 의료비가 올라갈 테고, 의사에게도 진단을 헷갈리게 할 수 있어 좋지 않습니다.






 


본 기사에 대한 반론은 이곳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의학잡담]양의사vs한의사, 현대의료기기 폭풍 논쟁에 대하여


 






raksumi 


편집: 딴지일보 coco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