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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5년차 한의사입니다. 출신 학교는 한의대로서는 가장 오래된 곳입니다. 의대, 치대, 한의대, 간호대, 약대까지 있는데 재단 입장에서 보면 돈되는 과만 있는 학교입니다. 지금 내 나이또래가 한방병원에서 과장, 학부에서는 학과장을 하는 경우도 꽤 있습니다. 


그래서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문제는 이 윗세대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요. 

 

잠시 제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가볼까 합니다. 같은 반에 공부는 못했는데, 말 잘하고, 상대에게 자신이 요구하는 것을 부드럽게 관철하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방송반활동을 하면서 선생님들과 잘 지내기도 했지만 공부하는 머리는 갖지 못한 듯 보였습니다. 고3 때는 내 공부하기도 벅찼는데, 평균적인 성적의 학생이라면 당연히 풀어야할 문제의 풀이를 알려달려며 자기 집까지 저를 데려가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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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을 그렇게 개인교습 해줬는데 도저히 안 되겠기에 그만 두고 내 공부를 했습니다.


결국, 그 친구는 대학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리고는 연락이 끊어졌습니다가 어느날 무슨 컴퓨터관련 잡지사에서 일을 한다고 하면서 연락이 되었습니다. 자기가 베이직과 엑셀에 대한 책을 썼다고 자랑하더군요. 그러냐고, 그냥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또 몇 년이 지나고 책을 읽어주는 펜을 개발했다고 합니다. 신기하더군요. 또 몇 년이 지나서는 회사 사옥에 입주를 하면서 초대를 하더군요. 기업 규모는 코스닥 상장이 가능하지만 알짜라 주식 공개를 안 하는 수준까지 키워낸 듯 보였습니다.

 

나이가 좀 되시는 분이라면, 이런 경험을 누구나 한 번씩은 해보셨을 겁니다. 학교 다닐 때 별 볼일 없던 친구가 개인기사까지 두고 살며, 내가 몇 년을 모아야 하는 돈이 1주일간 통장에 잔고로 올라가는 경우 말이죠.

 

이재용이 몇 억짜리 차를 사는 것은 아무런 감정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그런데, 나와 비슷했던, 아니, 나보다 한참 밑이라고 생각했던 사촌 동생이 그런 차를 산다면 정말 고통스러울 겁니다.

 

한의사라는 직업이 각광받게 된 것은 미국 닉슨 대통령이 중국에 방문했을 때부터입니다. 1972년도, '죽의 장막'이라 불리던 중국의 쇄국정책을 걷어내고 들어간 것이었죠. 그때 한의학이 서방에 알려지게 되고, 미국을 추종하는 대한민국까지 한약에 열광하게 됩니다.


그 때만 해도, 한약은 정말 고가의 약이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당시에는 한약을 재배하질 않았기 때문입니다. 야생의 약초를 사람이 직접 캐다가 약으로 썼기 떄문에, 생산량도 적었고 인건비도 그만큼 더 드는 구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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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허준'의 한 장면


86년도, 한의대를 들어갔을 때 선배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런 식이었습니다. '배구선수하다가 먹고 살기 위해 한의사를 했다', 실제로도 배구선수 출신 한의사도 있었고요. (이런 것이 인연이 되어 배구협회 팀 닥터는 한의사가 다 하고 있습니다.) 물론, 모든 선배 한의사들이 운동선수 정도의 머리로 한의사를 한 것은 아니지만, 줄

세우기 좋아하는 우리사회에서는 공부 잘 하는 사람은 다 의학을 전공하려는 분위기였습니다. 자연스레 한의사들은 고교 때 그들 보다 한참 떨어지던 사람들이었죠.

 

그런데, 한의학 바람이 불어옵니다. 게다가 광주학살의 원흉 전두환이 집권을 했는데도 세계적인 경제 조류는 3저를 바탕으로 경기가 좋아집니다. 경제사정이 좋아지며 몸보신 좋아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한약을 엄청 먹기 시작합니다. 때마침 약탕관에 다리는 식이 아니라 기계식으로 약을 다리고 파우치 형태로 한약을 개별포장하는 기계까지 개발되니 한약을 만들기도 편해졌습니다.

 

그때, 의사들이 1000만 원을 벌었다면, 한의사들은 그 3배 정도 벌었을 겁니다. 우스갯소리로 개업 자금 한 푼 없어도 카드 세 개로 대출 받아 개업해서 몇 년하면 한의원들어간 건물을 살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의사들, 의대교수님들은 얼마나 심리적으로 힘들었까요? 진짜 고등학교때 나한테 수학문제 물어보고 내 앞에서 제대로 눈도 마주치지 못한 애들이었는데, 의료사고 같은 부담도 없는 파라메디칼이 저렇게 돈을 벌어 제끼니... 이건 불공평하다, 생각했겠죠. 그런데, 세상은 원래 불공평한 겁니다.

 

이런 심리적인 기제가 있었지만, 그런 슬픔과 분노가 바로 표출되지는 않았습니다. 사람은 이성적인 존재이니까요. 1992년 정도까지만 해도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안되면 서로에게 트랜스하고, 의학적인 소견이 필요하면 전원해서 환자를 치료했습니다. "기질적인 문제가 없을 때 한의원에서 xx탕을 먹어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사실 그게 정상적인 것이지요. 자기가 해결 못하는데, 내가 상대쪽의 학문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아니지만 방법이 있다고 하면 전원시키지 않을 이유가 없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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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김영삼이 대통령으로 당선 되었습니다만, 경제에 대한 통찰력이 부족했기에 미국의 아바타인 재경부직원들이 이야기하는 세계화를 무비판적으로 이야기했습니다. 글로발라이제이션(이명박 때 인수위원회 위원장인 이대총장이 이야기했던 영어발음의 문제 오렌지가 아니고 어륀지라고 했던 사건의 뿌리가 아닐까,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사실 이 세계화는 미국의 다국적 기업들이 장사하기 좋게 하는 거였고 우리의 민중들의 삶과는 별개의 것이었습니다만 그때는 몰랐죠. '기업이 잘되야 나라가 잘되고, 나라가 잘되야 우리 삶이 좋아진다'고 수십 년가 세뇌를 받았으니까. 


김영삼정부는 여러 곡절 끝에 결국 IMF를 맞게 되고, 국민들은 평생 직장이라고 여겼던 것들이 신기루였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대기업을 취업하기보단 전문직 자영업을 선호하게 되고 그렇게 한의대도 피크를 치게 됩니다.

 

외환 위기 이후 우리나라에서는 더욱 자본의 힘이 커지게 됩니다. 그래서 돈이 된다 싶은 모든 영역에 자본이 침투하기 시작합니다. 유명한 거 몇 개 이야기하면, 동네 빵집을 모두 섬멸한 빠리바게트, 동네 슈퍼를 다 들어먹은 CU(삼성의 처가), GS, 세븐일레븐(롯데) 등등. 그러다 자본은 또다른 노다지를 발견합니다. 개개인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다면 처방이 필요없을 것 같은, 보약시장에 진출한 겁니다. 우리 모두가 사랑하는 박지성, 최경주 같은 선수들을 앞세워 마케팅을 하던, 담배나 인삼을 농민들에게 전매해서 소비자에게 판매하여 돈을 벌었던 그 회사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한약의 전문가인 한의사가 "모든이에게 홍삼이 맞을 수 없다, 체질과 상황에 따라 적절한 복용이 필요하다", 라고 이야기해도 별 소용이 없습니다. 그것을 파는 기업의 대대적인 광고공세에 사람들은 세뇌됩니다. 최소투자의 최대이윤을 보기만 하면 될뿐, 홍삼은 인삼을 특수 가공한 것이기에 남녀노소 누가 먹어도 좋다(이게 정말 그렇다면 홍삼은 약성이 없기 때문에 효과가 없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아니면 어떤 효과를 내기에는 턱 없이 적은 유효성분을 적당한 감미료와 섞어서 판매하고 있거나나 말입니다)는 이상한 선전을 해댑니다. 더 재미있는 것은 그 옆에 앉아있는 의사들입니다. "한약은 절대 먹어서는 안 되지만 홍삼은 괜찮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일까요? 이런 말은 "이온음료는 절대 먹으면 안 되지만 포카리 스웨트는 괜찮다", 혹은 "과일은 먹으면 해롭지만 한라봉은 괜찮다"라고 하는 말과 같습니다. 도대체 저 얘기를 한 의사는 '한약'에 대해서 무엇을 알고 있었던 걸까요?

 

물론 자본이 한의사들의 캐시 카우였던 보약시장을 잠식해 들어오는 걸 한의사들이 멍하니 보고만 있지는 않습니다. 그동안 유입되었던 머리 좋은 한의사들이 보약시장을 대체해서 진짜 'disease' 쪽을 공략하기 시작한 겁니다. 비염, 아토피, 여드름, 탈모, 척추질환 등등. 여기서 의사들이 한의사를 싫어하게 되는 이유가 하나 더 발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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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한의사들은 의사들의 강력한 경쟁자가 되어 버린 겁니다. 그냥, 보약이나 주던 사람들이었는데, 질환을 치료하는 메디칼의 영역에 진입해 들어오는 겁니다. 진입뿐만이 아니라 아주 성공하게 되니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대형병원이면서 도수치료(손으로 관절 척추를 교정하여 병을 치료하는)를 시행하여 해당 분야에서는 우리나라 최초로 성공한 자생한방병원, 이거 생기고 이 쪽에 돈이 된다는 것을 알게된 양의사들은 너도 나도 척추관절전문병원임을 복지부에서 인증받아 체인을 만들고 광고를 합니다. 그 외에도 여럿 있지요.


어떤 분야든 권력을 가지려면 독점이 되어야 합니다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 피곤해지죠. 노이즈가 발생합니다. "의사들이 항생제 너무 많이 쓴다", "필요없는 수술을 한다", "쓸데없는 검사를 한다" 등등, 어떤 분은 의료 서비스가 너무 저수가정책으로 가기 때문이라고 하고 어떤 분은 의학의 태생적 한계 때문이라고도 하시지만 사정이야 어찌 됐든 이런 노이즈 자체가 일어나는 것은 유쾌한 일이 아닙니다. 의사 입장에서는 한의사가 메디칼 영역에 들어오면서 그런 간섭이 일어나니 한의사가 싫을 수 밖에 없을 듯 합니다.

 

끝으로, 잠깐 의료통합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사실 일반국민의 입장에서는 한의학은 한의학대로 발전하고 양의학은 양의학대로 발전해 나가는 것이 이롭습니다. 누군가가 독점을 하게되면 비용도 올라가고 투명해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양의학 쪽에서 의료서비스를 독점하고 싶다면 한의사를 상대로 인정하고 포용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런 후에 중국처럼 서의, 중의가 제도적으로 구분되면서 의사들이 모든 의료서비스를 독점하는 게 계속 지위를 유지하는 길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이 경우 국민들은 별로 득이 안되는 경우겠죠.

 

이야기가 너무 번잡해져서 의사가 한의사를 싫어하게 된 이유를 간단히 정리해 드려야 될 것 같네요.

 

1. 나보다 공부 안 하고 노력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훨씬 돈을 많이 벌었다는 사실에 화가 나서 싫다.

 

2. 내 독점영역이라고 생각했던 곳에 마구 들어오는 영역싸움이 짜증이 나서 싫다.

 

이 두 가지입니다.

 

그런데, 한의학이라는 게 그리 만만한 학문이 아닙니다. 전의총인가 하는 단체의 생각처럼 박멸해야 할 그 무엇이 아니란 겁니다. 그렇게 하기에 우리 민중들에 삶에 너무 깊숙이 밖혀있고, 생활과 밀접하며, 서양문물이 해일처럼 들어와서 동양실용학문을 죄다 결단내는 와중에도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우리 학문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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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에 기록 유산으로 등재된 동의보감

 

강한 자가 살아남는게 아니라 살아남는 게 강한 자라는 말도 있지만 그렇게 강한 이유도 반드시 있는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강한 면이 무엇인지를 연구하고 우리 모두에게 이롭도록 궁리하고 개발하는 게 의료인의 책무가 아닐까요?

 

한 가지 더 첨언하면서 글을 마치겠습니다. 제가 대학 다닐 때만해도 사실 의사들은 한의사가 뭘 하든 어떻게 치료하든 어떻게 먹고 살든 대부분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사는 게 너무 팍팍하고 행복하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싸우게 되지 않나 생각해봐야 할 일인 듯 합니다. 앞서 정리해드린 두 번째 이유는 사실 양 쪽 다 여유로우면 해결될 문제일지도 모르니까요. 




편집부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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