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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6. 02. 화요일

도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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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작성한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에 관련된 나의 글(기사:자유주의 거짓말의 도구, 경제 선생님 아담 스미스)에 누군가가 이런 댓글을 남겼다.



갈릴레이는 등속원운동 하는 놈은 아무 힘이 없으면 계속 등속원운동 한다고 보았어요. 진짜 '관성'이란 말에 충실했죠.

 

하지만, 뉴튼은 구심력도 하나의 힘으로 보았지요. 구심력과 직선 가속운동을 시키는 힘을 별개로 보았던 갈릴레이와 달리 뉴튼은 구심력도 '' 하나로 수렴시키면서 어마어마한 물리학의 진보를 이루어내었지요.

 

전 경제학에서도 가치에 대하여 이러한 하나의 잣대가 있다고 보아요. ^^”



사실은 전부터 주류 경제학의 허구를 밝히는 시리즈를 쓰고 싶었지만 워낙 방대한 작업인 탓에 글쓰기를 망설이고 있었다. 그런 글을 쓰기에는 아직 공부도 부족하고 알아야 할 것도 많고, 하지만 어느 정도 선까지 공부하면 쓸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안개 속을 헤매는 것처럼 적절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공부라는 것은 고구마 줄기 캐는 것하고 비슷해서 하나를 알면 그것과 연관된 다른 것들이 줄줄이 딸려오기 마련이다. 시작할 때는 이 정도 공부하면 되겠지 생각하지만 막상 ‘이 정도’에 이르면 처음에는 몰라서 보이지 않던 것들이 너무나 많이 보이게 된다. 다기망양(多岐亡羊, 학문의 길이 다방면으로 갈려 진리를 찾기가 어렵다)이란 이런 상황을 일컫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을 다 알아야 어떤 주제를 다뤄야 한다면 죽는 순간까지 단 한 문장이라도 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다들 자기 수준에서 그 수준에 걸맞은 글을 쓰고 소통하고 그런 것이 글쓰기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마침 그 사람과 댓글로 소통하던 차에 진작부터 쓰고 싶었던 ‘주류 경제학의 거짓말’을 주제로 한 시리즈를 쓰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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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보지 않는 손: 이론에 가려진 실전 경제


첫 페이지를 쓰고 있는 지금 이런 글이 딴지 마빡에 뜬 것을 확인했다. 내가 하고자 하는 작업을 누군가 다른 사람도 하려는 모양이다. 어째 중복된 느낌이 없지 않으나 서로의 작업이 서로에게 보완할 수 있을 것이라는 명분 아래, 실제로는 남자가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베어야 한다는 오기 때문인 것 같긴 하지만, 아무튼 시리즈는 진행할 생각이다.


본격적인 글을 시작하기 전에 내 경제학의 이해 수준을 말한다면, 나는 어떤 경제 현상을 분석하기에는 턱없이 지식이 부족하고 경제학 공부 역시 누구에게 제대로 배운 적 없이 독학으로 이 책 저 책, 이 기사 저 기사 끄적이며 익힌 것이 전부이다. 때문에 투자 시간 대비 얻은 지식은 전공자에 비해 현격한 비효율을 과시한다. 그러나 독학에도 나름의 장점은 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게 배우는 것은 빠르게 익힐 수는 있으나 아무래도 자신만의 관점을 세우기가 쉽지 않다. 그런 학습자는 선생님과 선배들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부분 위주로 습득하고 그렇지 않은 부분은 생략하고 넘어가면서 자연스럽게 그 학파가 중요시하는 부분만을 학습하기 십상이다. 독학의 경우는 어쨌든 모든 의문점을 스스로 해결해야 하므로 옳든 그르든 자신만의 관점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된다. 그 관점이 인정받을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것은 이제부터는 독자들의 몫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이런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세월호 사건 때문이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세월호 참사 때 단식 농성하는 유가족들 앞에서 폭식투쟁을 벌이던 일베나 어버이연합 류의 인간들을 보고 받았던 충격 때문이다. 도대체 저들은 무슨 이유로 저렇게 인간이라는 종특을 버리고 일차원적인 동물의 행태를 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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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사실, 이렇게 말하면 이건 동물에 대한 실례다. 어떤 동물도 망자를 조롱하는 행동 따위는 하지 않는다. 그런 행동은 인간에게서만 발견되는 독특한 현상으로, 무엇이 인간을 그 지경까지 타락시키는지 그 원인을 알고 싶었다. 그리고 그들의 입에서, 또한 정부 당국자들의 입에서, 보수 언론에서 공통적으로 튀어나오는 하나의 키워드를 발견했다. ‘경제’


경제를 살려야 하는 이 중차대한 시국에 유가족들이 정부의 발목을 잡고 있으면 경제를 살릴 수 없다. 경제 살리기를 방해하는 유가족들은 종북주의자나 다름없다. 그들은 이런 주장으로 유가족들에게 인내와 망각을 강요했고 응하지 않자 모욕하고 조롱했으며 급기야 공권력을 투입했다.


경제가 중요한 인간 활동이긴 하지만 인간의 기본적인 유대관계조차 우선 순위에서 밀릴 만큼 중요한 것인가. 그렇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경제학자들이다. 그들은 경제 활동이 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며 사익을 추구하면 공익은 저절로 이루어진다는 허풍을 떨어가며 모든 사람이 경제 활동에만 매진할 것을 바란다. 이런 경제 지상주의는 사실상 독극물이나 다름없는 사상으로 그 영향을 받은 이들은 전두엽 손상의 장애를 입는 것으로 추정된다. 대표적으로 이런 양상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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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대학교 익명의 페이스북 페이지



"냉정하게 장애인이건 노인이건 보호할 필요없죠. 도태되면 죽는 건 당연한겁니다."



2014년의 화두라 할 말은 ‘가만히 있으라’라고 생각한다. 배는 선장이 몰 테니 학생들은 가만히 있으라. 나라는 정치인이 알아서 할 테니 국민들은 가만히 있으라. 경제는 경제학자들과 기업인들이 알아서 할 테니 뭘 모르는 일반인들은 가만히 있으라. 그래서 이제까지 우리 국민들은 얌전하게 가만히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가만히 있다가는 기울어진 배 안에서 아무 것도 못해보고 세상을 떠난 수많은 희생자들의 운명을 따라하게 될 것이라는 불안감이 나로 하여금 이 글을 구상하게 한 직접적인 계기라 할 수 있다. 쓰레기 같은 사상이 세상을 장악하고 거기에 노출된 뇌 없는 사람들이 활보하는 세상을 막기 위해서 뭐라도 해야만 할 것 같았다.


비록 내가 경제학 전반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할 정도의 실력은 되지 못하더라도, 어차피 이 글은 다른 사람들에게 경제학의 개념을 친절히 설명해주는 종류의 글이 아니다. 주류 경제학의 새빨간 거짓말을 거짓말이라고 폭로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지금의 나로서도 그 정도의 작업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지금 내 앞을 활보하는 임금님이 시스루 룩을 입었는지 아니면 그냥 벌거벗었는지는 굳이 내가 패션의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알 수 있을 테니까.



1.


주류 경제학이 대중을 기만하는 사례는 한두 가지가 아니어서 무엇부터 시작할지 고민이 많았다. 이런 경우에는 모든 거짓말 가운데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거짓말의 본체라 할 수 있는 부분을 먼저 폭로하고 거기서 파생되는 곁가지 거짓말들을 하나씩 짚어가는 것이 일의 순서라 할 수 있다. 경제학의 가장 큰 거짓말이자 모든 거짓말이 시작되는 본체라 할 수 있는 것은 경제학이 과학이라는 주장이다. 가장 많이 판매된 주류 경제학 교과서 맨큐의 경제학에서 그레고리 맨큐는 이렇게 말한다.



‘경제학자들도 과학적인 객관성을 가지고 경제문제를 연구한다. 경제학자들이 경제현상을 연구하는 것은 물리학자들이 물질을 연구하고 생물학자들이 생명체들을 연구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경제학자들도 먼저 이론을 만든 후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하여 그 이론이 맞는지를 검증한다.


경제학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는 경제학이 과학이라는 말이 다소 이상하게 들릴 것이다. 물론 경제학자들이 시험관이나 망원경을 가지고 연구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과학의 핵심은 이 세상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에 대한 엄정한 관찰과 검증, 즉 과학적 방법론이다. 이런 방법론은 지구 중력에 대한 연구나 생명체의 진화에 관한 연구, 나라 경제에 대한 연구 등에 모두 적용된다. 아인슈타인의 말대로 “과학이란 일상의 생각을 정밀하게 가다듬은 것에 불과하다.'




뉴턴이 만유인력의 법칙을 정립한 이래 다른 분야의 학자들은 뉴턴의 연구 방법론에 대단한 매력을 느꼈다. 그것은 간단한 몇 개의 정리만을 가지고 물체의 낙하 운동에서 행성들의 움직임까지 모든 종류의 물체의 운동을 설명할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과학의 출발이었기 때문이다. 뉴턴 이후 18~9세기 학자들은 자신이 연구하는 분야에서 뉴턴처럼 일반법칙을 도출해내는 것을 일종의 사명처럼 생각했다. 칸트는 도덕에 있어서 일반법칙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려 했고, 마르크스는 경제와 역사 발전에 있어서 일반법칙을 도출하려 했다. 다윈이 진화라는 개념을 발견한 것 역시 넓게 보면 뉴턴의 영향이라 할 수 있다.


과학의 절대적인 위상은 그것을 부러워하는 일부 사이비 학자들로 하여금 과학이라는 용어를 도용하고자 하는 유인을 제공하기에 충분했다. 대표적인 케이스는 소위 창조과학이라는 기독교 원리주의자들의 주장이라 할 수 있다. 신이 육천 년 전에 세상을 창조했고 오늘날 세상에 존재하는 생물종은 창조된 당시의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다는 기독교인들의 세계관에 다윈의 진화론은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었다. 원리주의 기독교인들은 각종 소송을 통해 진화론을 학문의 영역에서 몰아내고자했고, 초창기에는 그들의 시도가 일정 부분 먹혀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러나 학교 교육에서 과학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면서 그런 방식의 접근은 계속해서 생명력을 잃게 되었고, 그 대안으로 만들어낸 것이 소위 창조과학이다. 미국의 창조과학자들은 주기적으로 신이 세상을 창조했다는 가르침 역시 일종의 과학이니 진화론과 함께 교과서에서 가르쳐야 한다는 주장을 사회 이슈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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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네이버 뉴스검색


진화론을 몰아낼 수 없다면 차라리 교과서 내에서 함께 공생하자는 전략이라 할 수 있다. 90년대 중반 우리나라에 소개된 소위 포스트 모더니즘 계열의 사상가들 역시 자신들의 저서에 함부로 인용한 수학과 물리학의 언어로 도배를 하며 대중들에게 자신들이 하는 연구가 뭔가 대단히 심오하고 절대적인 법칙을 연구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착시 현상을 유발했다.


이런 시도들이 일정부분 대중들에게 먹혀들면서 과학이라는 용어 자체는 애매해지고 과학의 위상 자체가 문화 상대주의에서 다루는 상이한 문화의 가치관처럼, 보는 관점에 따라 서로 다르게 정립될 수 있다는 인식을 형성시키기도 했다. 따라서 과학과 과학 아닌 것을 가르는 기준을 세워야한다는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그리고 그것을 일반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설명한 것은 20세기 최고의 과학 철학자로 평가받는 칼 포퍼(Karl Popper)였다.


과학의 특징은 일반법칙(대전제)의 정립을 토대로 사회 현상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연역적 방법론이라 할 수 있다. 이 장 서두에서 맨큐가 “경제학자들도 먼저 이론을 만든 후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하여 그 이론이 맞는지를 검증한다.”라고 말한 것 역시 경제학은 연역적 방법론으로 경제 현상을 이해하기 때문에 과학의 한 분야라는 것을 주장하기 위한 시도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연역적 방법론을 취하는 모든 것을 과학이라 인정해줄 수는 없다. 이를테면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여성은 어떠어떠하다’, ‘특정 지역 사람들의 성품은 어떠어떠하다’라는 나름의 대전제를 통해 현실의 개별 여성 내지는 특정 지역 거주자들을 재단하는 태도를 보인다. 대전제를 통해 사회 현상을 이해하는 겉모습의 유사성만을 가지고 이러한 편견마저 우리가 과학이라 불러줄 수는 없다.


과학과 과학 아닌 것의 가장 큰 차이점은 대전제의 절대성에서 찾을 수 있다. 질량을 지닌 물체는 서로를 잡아당기는 속성이 있다는 일반법칙은 언제 어디서나 통용되어야만 그것을 기반으로 한 물리학이 과학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예외는 있을 수 없다. 마찬가지로 ‘여성은 어떠어떠하다’, ‘특정 지역 사람들의 성품은 어떠어떠하다.’, ‘유태인들은 어떠어떠하다’라는 사이비 대전제들에 기반한 주장들 역시 과학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단 하나의 예외적 현상도 발견할 수 없을 때 비로소 과학으로서 평가받을 수 있다.


어떤 대전제가 하나의 예외도 없는 절대성을 띄는지를 판단하기 위해 과학자들은 ‘검증 가능성’이라는 개념을 제기한다. 어떤 과학자가 새로운 일반법칙을 발견했다는 것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본인의 주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자연과학에서는 그 이론의 타당성이 드러날 때까지 끊임없는 실험을 하고, 동일한 조건에서는 동일한 결과가 나타난다는 것이 최종적으로 확인되는 순간 논문을 작성해서 다른 과학자들에게 검증을 받는다. 검증 절차에서 가설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 발견되면 가설은 폐기된다. 우리는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스캔들을 통해 과학의 검증과정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이 검증가능성이라는 개념은 스스로가 연구하는 분야를 과학이라 주장하는 사람들의 연구가 진짜 과학인지 아니면 사이비 과학인지를 판단하는 데 매우 유용한 방법론이라 할 수 있다.


일찍이 헤겔은 역사는 절대정신이 스스로를 구현하는 방식으로 발전한다는 역사주의(역사는 발전하고 그 발전에는 일반법칙이 존재한다는 관점)를 표방한 바 있다. 마르크스는 헤겔의 역사주의를 관념적이라 비판하며 역사는 생산양식과 생산수단의 모순을 통해 발전한다는 사적 유물론을 만들어냈다. 그는 인류의 역사는 이 일반법칙을 통해 원시 공산제, 노예제, 봉건제, 자본제의 순서로 발전해왔으며 자본주의 역시 생산양식과 생산수단의 모순 때문에 붕괴하고 필연적으로 사회주의가 도래할 것이라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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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가 주장한 사회 발전 법칙


마르크스는 역사에 있어서 우연이 존재할 가능성은 없으며, 우리가 우연이라 생각하는 현상조차 사실은 필연적인 법칙에 의한 것으로, 개인은 무대 위에서 연기하는 배우처럼, 본인이 자발적으로 어떤 행동을 한다고 생각할지라도 실제로는 역사발전을 위한 하나의 역할에 불과하다는 극단적인 해석을 내놓기에 이른다. 그리고 이러한 마르크스의 역사관은 사회주의 국가들의 공식적인 역사관으로 채택된다.


칼 포퍼는 <열린 사회와 그 적들>에서 역사를 과학으로 파악하고자 했던 마르크스의 시도를 ‘검증 가능성’의 개념으로 비판한다.



'물리학에 있어서는, 우리가 이미 본 바와 같이, 관점은 일반적으로 새로운 사실들을 탐색해 냄으로써 시험될 수 있는 물리이론에 의해서 제시된다. 그러나 역사에 있어서는 사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중략)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중요한 것은 많은 <역사이론>(이것은 <유사이론>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좋을지도 모른다)은 그 성격에 있어서 과학적 이론과 엄청나게 다르다는 것이다. 그 까닭은 역사에 있어서(역사지질학과 같은 역사적 자연과학을 포함하여) 우리의 손에 닿는 사실들은 흔히 매우 제한되어 있으며 우리 마음대로 반복하거나 공급할 수 없다. 그리고 그 사실들은 미리 상정된 관점에 맞추어 수집되었다. 소위 역사의 <출처> 즉 사료라는 것은 기록할 만큼 흥미가 있어 보이는 사실만을 기록하므로 사료는 머릿속에 미리 생각하고 있는 이론에 맞는 사실들만을 흔히 포함하게 된다. 그리고 더 다른 사실들을 구할 수 없을 경우에는 이 이론이나 다른 부수적인 이론은 시험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그와 같은 시험할 수 없는 이론들은, 과학적 이론에 대해 부당하게 비난을 퍼부었던 그 의미에서 순환 논증적이라는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나는 과학적 이론과 구별되는 그러한 역사적 이론들을 <일반적 해석>이라고 부르겠다.'




다시 서두에서 인용한 맨큐로 돌아가 보자. 맨큐는 경제학이 과학적 방법론을 채택하고 있기에 과학이라는 주장을 하면서도 검증 가능성이라는 개념을 의식한 듯, 이런 변명을 늘어놓는다.



‘관찰된 현상과 이론의 이러한 관계는 경제학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어떤 경제학자가 살고 있는 나라에서 물가가 빠른 속도로 상승하고 있고, 그는 이런 관찰을 토대로 인플레이션에 관한 이론을 만들기로 했다고 하자. 그리고 인플레이션은 정부가 너무 많은 돈을 발행해서 발생하는 것이라고 결론지었다고 하자. 이 이론을 검증하기 위해 경제학자는 다른 여러 나라의 물가와 통화량 자료를 수집해서 분석해야 한다. 만약 통화량 증가가 물가 상승률과 전혀 무관한 것으로 나타났다면, 그는 인플레이션 이론의 유효성에 대해서 의심해야 할 것이다. 만약 국가 간 비교를 통해 통화량 증가와 물가 상승률 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면 그는 자신의 이론을 더욱 확신할 것이다.


경제학자들도 다른 과학자들과 마찬가지로(강조는 필자) 이론과 관찰에 의존하지만 경제학에는 독특한 어려움이 있다. 즉, 경제학에서는 실험이 매우 어려운 경우가 있다는 점이다. 물리학에서는 중력 현상을 연구하기 위해 실험실에서 여러 종류의 물건을 떨어뜨려봄으로써 자료를 얻을 수 있다. 이에 반해, 경제학자들은 단지 인플레이션에 관한 자료를 얻기 위해 한 나라의 통화정책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는 없다. 결국 경제학자들은 천문학자나 생물진화를 연구하는 학자들처럼 우연히 만들어지는 현상과 자료에 의존하여 연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경제학 연구는 실험실에서의 실험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역사적 경험을 통해 얻는 자료에 크게 의존한다.(강조는 필자) 중동전쟁이 발발하여 원유 공급이 중단되면 전 세계적으로 석유가격이 폭등한다. 이렇게 되면 석유나 석유제품을 소비하는 소비자들의 생활수준이 낮아진다. 정책담당자들은 최선의 대응책을 찾기 위한 어려운 선택에 직면한다. 그러나 이런 사건은 경제학자들에게 주요 천연자원 가격의 변화가 세계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하며, 전쟁이 끝나 원유 가격이 정상가격으로 되돌아간 이후에도 이 좋은 기회는 상당 기간 지속된다.


이 책에서는 역사적 경험과 사례가 많이 소개될 것이다. 이러한 경험과 사례를 통해 과거 경제에 대해 이해할 수 있고, 특히 현존하는 경제학 이론을 검증하고 평가할 수 있기 때문에 이들은 매우 중요한 연구대상이 된다.’



맨큐는 경제학이 과학이라는 것을 아예 전제해버리고도, 다른 자연과학과는 달리 경제학에만 존재하는 특유의 어려움에 대해 구구절절 변명을 늘어놓았지만, 애석하게도 그의 변명은 이미 그가 태어나기도 전에 칼 포퍼에 의해 논파당한 셈이다. 포퍼는 역사적 사료에는 서술자의 취사선택이 개입되기 때문에 과학적 이론을 지지하는 논거로 사용될 수 없음을 밝혔다. 누군가 어떤 경제 현상에 대해 사료를 통해 이론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다른 사람은 그와 반대되는 이론을 다른 사료를 통해 제시할 수 있다. 이것은 인문학에서는 대단히 흔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나 자연과학에서는 있을 수 없다. 포퍼에 따르면 경제학은 과학이 될 수 없고, 그저 ‘일반적 해석’에 불과하다.


물론 경제학자들이 스스로의 연구를 과학이라 주장하려는 심리를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다못해 조폭들도 스스로를 부를 때 협객이라 부르기를 즐기고, 사채업자들 역시 본인들을 금융업 종사자라고 부른다. 자신이 몸담은 집단이 뭔가 심오한 진리를 탐구하는 것처럼 보이고 싶어 하는 학자들의 욕망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인간적인 약점에 대한 동정적 태도가 경제학이 과학이라 주장하는 그들의 태도를 용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선, 과학이라는 용어를 애매모호하고 불순한 어떤 것으로 전락시키는 것도 문제이지만, 더 큰 문제는 그들이 경제학을 과학의 선상에 올려놓고 벌이는 일련의 작태를 용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신자유주의 전도사로 활약하고 있는 토마스 프리드먼은 그의 저서 <렉서스와 올리브나무>에서 이른바 ‘맥도날드 이론’이라는 것을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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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 스스로 오랜 연구 끝에 얻은 산물이 아니라 어느 날 문득 맥도날드 간판의 M자 아치를 보고 불현듯 떠오른 아이디어라고 고백하는 이 이론에, 토마스 프리드만은 ‘분쟁방지에 대한 골든아치 이론(Golden Arches Theory of Conflict Prevention)’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갖다 붙였다. 그는 이 이론을 통해 전쟁발발에 관한 이제까지 그 누구도 감히 시도할 엄두조차 못낸 놀랍도록 참신한 관점을 선보였다. 



‘맥도날드가 진출한 나라끼리는 서로 전쟁을 하지 않는다!’



이제까지의 전쟁은 맥도날드가 진출하지 않은 나라들끼리, 혹은 진출한 곳과 진출하지 않은 나라들끼리 벌어졌으나 맥도날드가 미국 바깥으로 진출한 이래 맥도날드 매장이 영업하고 있는 나라들끼리의 전쟁은 한 건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2008년 러시아가 그루지아를 침략하면서 맥도날드 이론은 세상에 빛을 본 지 9년 만에 폐기처분될 운명을 겪고 말았으며, 이스라엘-레바논 전쟁의 발발로 완전히 생명력을 잃고 말았다. 지금은 신자유주의자들의 지적 경박성을 조롱하는 소재로 쓸 때나 가끔씩 인용되고 있다.


물론 토마스 프리드만은 경제학자의 반열에 끼일 학문적 엄격성을 지닌 사람은 아니고, 여타 언론 매체에 잡글이나 올리며 연명하는 칼럼니스트에 불과하긴 하다. 신자유주의 바람을 타고 그런 잡글 모음에 불과한 <렉서스와 올리브 나무>가 우연히 많은 판매부수를 올리긴 했지만, 그의 기본 입장이라는 게 어떤 심오한 철학을 지닌 것도 아니고,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받아들여서 렉서스 몰고 다니며 폼 나게 살래 아니면 올리브 나무 소유권 놓고 티격태격하는 유목민의 삶을 살래’ 이 정도 수준의 유치한 ‘이론’ 설파하는, 우리 식으로 치면 패널리스트 수준의 인물에 불과하다.


이 사람 비판을 근거로 경제학을 욕하면 경제학자들도 심각하게 불쾌함을 표시할 것이다. 다만 우리가 여기서 포착할 수 있는 진실은 경제학자들이 얼마나 ‘이론’이라는 것을 우습게 생각하는지를, 그들의 그림자라 할 수 있는 토마스 프리드만을 통해 엿볼 수 있다는 점이다(토마스 프리드먼은 이후, 다른 저서에서는 맥도날드 대신 ‘델 컴퓨터’를 들고 나와 같은 주장을 펼친다는데, 더 이상 이 자의 주장 따위에는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는 구제불능 사이비라는 점을 스스로 입증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 자는 현실을 통해 이론을 도출하는 것이 아니라, 변기에 앉아서 문득 떠오르는 상념을 이론이랍시고 꾸며낸 뒤에 현실을 거기에 끼워 맞추는 인물에 불과하다).


경제학자들이 스스로의 주장을 과학으로 꾸미려는 의도는 자신들의 주장에 비판 불가능한 아우라를 덧씌우려는 유치한 발상에서 출발한 것이다. 이 글 맨 처음에는 경제학에도 가치에 대한 물리학과 같은 잣대가 있다고 생각한다는 어떤 이의 댓글의 인용으로 시작한다. 그가 그런 주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본인의 통찰이라기보다는 이제껏 경제학이 과학이라고 주장했던 사이비 과학자들(마르크스에서 현대 신자유주의자에 이르는)의 영향으로 보인다. 상품의 가치가 거기에 투여된 인간의 노동으로 결정되는지, 희소성으로 결정되는지, 아니면 자의적인 것인지 판단할 수 있는 잣대는 무엇인가?


내 결론으로는 그런 것 없다. 서로가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서 자신에게 유리한 자료를 바탕으로 상대의 주장을 논박하는 논쟁을 통해서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이다. 그러나 만약 어떤 한 입장이 마치 자연과학의 이론과 같은 절대성을 지닌다는 것이 인정된다면, 그 다음부터 논쟁은 생략될 수밖에 없고 일방적인 주장과 수용의 절차만 남는다. 주류 경제학자들이 원하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아쉽게도 오늘날 주류 경제학자들이 보이는 행태만으로도 그들이 스스로를 과학자인양 가장하는 처신이 사기의 영역에 해당한다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주류 경제학은 내부에 분파가 많다. 그들이 적으로 여기는 마르크스나 케인즈 경제학은 차지하고라도, 우리가 보기엔 같은 신자유주의로 분류되는 입장마저도 크게 보면 하이에크를 비조로 여기는 오스트리아 학파와 밀턴 프리드만을 비조로 여기는 시카고 학파로 나뉜다. 물리학자들이 오스트리아 물리학파와 시카고 물리학파로 나뉜다는 상상 자체가 웃음을 유발하는 것처럼, 스스로를 과학이라 주장하는 사람들이 어떤 학파로 나뉜다는 상황은 비현실적이고 감히 그 어떤 개그맨도 상상할 수 없는 농담의 영역이다. 절대로 과학으로 분류될 수 없는 학문을 연구하는 일련의 학자들이 스스로를 과학자로 지칭하며 벌이는 행태는 과학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사이비 종교와 비슷한 성질을 띠게 된다. 이들의 사이비 종교 행각과 그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다음 번 글에서 설명하도록 하겠다.

 

 

 

 

 

 

 

 도비공


편집 : 딴지일보 coc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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