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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산호를 사육하는 오덕입니다.


산호를 키우는 데는 돈, 시간, 노력, 열정, 지식이 필요합니다. 고등학교 수준 정도의 화학 지식에다 생명유지 장치로 불리는 장비들이 다양하기 때문에 기계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고, 생물학 지식도 있어야죠. 다행히 저는 유사 학문을 전공했기에 생물학 부분에서는 크게 어려움을 느끼진 않았지만 문외한인 분들에게는 골 아픈 부분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산호를 키우는 건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산호가 아름다운 이유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수류를 따라 하늘거리는 촉수(폴립)의 움직임도 아름답지만(일부 연산호들의 촉수는 꽃과 같은 인간이 아름답다고 인지하는 육상 생물을 닮아있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아름다운 건 오덕들이 ‘발색’이라고 부르는 색깔입니다.



1. 산호는 무엇 때문에 색깔을 지니는가


산호는 색소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 색소는 단백질로 구성되어 있는데 형광 단백질과 색소 단백질로 구별됩니다.


형광 단백질은 형광 현상을 유발하는 단백질입니다. ‘형광 현상’이란 파장이 짧은 빛을 흡수하여 파장이 더 긴 빛으로 바꾸어 방출하는 현상입니다. 형광등의 광원(光源)은 자외선입니다. 자외선은 가시광선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의 눈은 이것을 빛으로 인식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형광등 내부에 도포된 형광물질에 의해 자외선이 흡수된 후 인간의 눈이 인식할 수 있는 파장대의 빛, 즉, 가시광선으로 바뀌어서 방출됩니다. 그래서 우리 눈은 형광등이 빛난다고 인식합니다.


산호가 형광 단백질을 지니고 있을 경우 형광등을 볼 때와 동일한 현상이 일어납니다. 바다 속에는 자외선과 가시광선에서 짧은 파장대의 빛(사람 눈에는 보라-푸른색 정도의 빛)이 집중적으로 도달합니다. 산호들은 이 빛을 흡수한 후 좀 더 긴 파장으로 바꾸어 방출합니다.


초록색, 붉은색, 오렌지색, 주황색 등 방출하는 빛의 색깔은 다양한데 이 빛들은 모두 보라-푸른색보다 긴 파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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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사육하고 있는 ‘에키노포라(Echinophora)’라는 산호입니다.

초록색 형광과 노란색 형광이죠.

이런 색깔을 보기 위해서는 형광을 유발할 수 있는 짧은 파장의 빛을 많이 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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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사육하고 있는 ‘아크로포라(Acropora sp)’입니다.

이 녀석은 형광 단백질이 없거나 아주 적고, 색소 단백질이 주인 것 같습니다.

따라서 저런 선명한 분홍빛을 보기 위해서는 조명에 붉은빛이 좀 섞여 있어야 합니다.


색소 단백질은 조금 성격이 다릅니다. 이 녀석은 형광 현상을 유발하지 않습니다만 특정 파장대의 빛을 반사합니다.


우리가 눈으로 보는 산호의 색깔은 형광 단백질, 색소 단백질, 그리고 공생조류가 조합된 것입니다. 산호의 형광 단백질에 의해 눈이 잘 인지하지 못하는 빛이 잘 인지하는 빛으로 바뀌기 때문에 빛나는 것처럼 보입니다. 산호를 처음 보는 사람들이 대체로 가장 신기해하는 것도 형광으로 인한 색깔입니다.



2. 색소의 기능


당연히 산호가 인간의 눈에 아름답게 보이기 위해서 색소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색소의 기능을 알기 위해서는 산호에게 물어보는 것이 가장 정확하겠지만 불가능하죠. 그래서 색소의 기능을 알기 위한 여러 가지 실험이 있었습니다.


현재까지 가장 설득력 있는 가설은 ‘천연 차양막’으로써의 기능입니다. 산호는 공생조류 때문에 주로 볕이 잘 드는 얕은 물에 서식합니다. 그런데 이 빛이 너무 강할 때가 있습니다. 열대 지방은 1년 내내 여름일 것 같지만, 1년 중 광량(光量)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산호들은 열대 지방의 겨울철(?) 광량에도 충분히 생장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광량이 지나치게 많을 때가 있죠.


산호의 위치에 따라서도 광량이 지나칠 수 있습니다. 간만의 차에 의해 매일 몇 시간씩 공기 중에 노출되는 극단적으로 얕은 수심에도 산호는 서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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얕은 수심의 산호들입니다. 비교적 밝고 화려한 편입니다.

이런 놈들을 관상용으로 많이 기르죠. 특히 왼쪽의 노란색 분홍색 개체들은 기십만 원은 우스워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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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사육하고 있는 ‘아크로포라 오스테라(Acropora austera)’라는 산호입니다.

이 녀석을 해외 오덕들은 ‘Purple monster’라고 부릅니다.

이런 짙은 푸른색-보라색의 산호가 잘 없기도 하고 빛이 조금만 약하면 원래의 영롱함을 잃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아마 강한 빛과 표면 온도 상승에 대응하기 위해서 밝은 색소 단백질 밀도를 높인 것 같습니다.


빛이 강하면 공생조류의 광합성이 활발해질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공생조류의 광합성 기관에는 광포화(light saturation) 지점이 존재합니다. 광포화 지점에서 광합성율은 최대에 도달합니다. 이보다 더 많은 광량을 줘도 광합성율은 상승하지 않거나 도리어 감소하기도 합니다.


거기다 빛이 너무 강하면 공생조류의 광합성 기관이 파괴됩니다. 파괴된 광합성 기관에서는 활성산소가 방출되는데 이 활성산소가 산호의 큰 손상을 입힙니다. 따라서 산호는 공생조류에게 적절한 광량의 빛을 제공하기 위해서 색소 단백질을 마치 차양막처럼 활용하는 거죠.


색소 단백질, 특히 형광 단백질의 주 기능은 아직까지는 천연 차양막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만 부차적인 기능도 있습니다.


형광은 빛의 파장을 바꾸는 현상입니다. 이를 통해 공생조류가 좋아하는 파장대의 빛을 제공할 수 있다는 가설이 있습니다. 또한 공생조류를 산호 쪽으로 유도하는 유도등과 같은 역할을 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어떤 실험에 의하면 운동능력이 있는 공생조류가 초록색 빛을 향해서 이동했다고 합니다. 이는 산호의 초록색 형광이 활주로의 착륙 유도등처럼 공생 조류가 산호를 찾아서 이동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산호주위로 몰려든 공생조류는 산호에게 잡아 먹히고 노예 생활을 시작하겠지요.


표면온도와 색소도 연관이 있다고 합니다. 대체로 얕은 수심에 분포하는 산호일수록 색깔이 밝습니다. 또한 오덕들의 사육 경험에 의하면 색깔이 밝고 화려한 산호들일수록 강한 빛을 주지 않으면 변색이 된다고 합니다.


빛이 강하기 때문에 차양막 역할을 하는 색소의 밀도를 높였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색깔이 밝아지는 것까지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색깔이 어두운 산호일수록 표면 온도가 높고, 색깔이 밝은 산호는 상대적으로 낮다고 합니다.


온도는 빛과 마찬가지로 지나치게 높을 경우 공생조류의 광합성 기관을 파괴해서 산호에게 큰 손상을 입힐 수 있습니다. 전체적인 수온의 상승도 문제지만 표면온도의 국소 상승도 공생조류의 광합성 기관에 문제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 이에 따라 일부 학자들은 표면 온도 상승에 대응하기 위해 밝은 색깔의 색소를 많이 합성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3. 백화현상


색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김에 ‘백화현상(Bleaching)’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언론에선 백화현상을 ‘공생조류가 산호를 떠나는 현상’이라고 합니다만, 이건 완전히 틀린 소리입니다. 


백화현상은 공생조류가 산호를 떠나는 게 아니라 산호가 공생조류를 ‘뱉어내는’ 현상입니다. 공생조류를 뱉어내면 색소의 밀도도 같이 감소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산호가 하얗게 변합니다. 이 때문에 ‘백화’라는 이름이 붙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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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현상으로 하얗게 변해버린 산호들


백화의 과학적 정의는 또 다릅니다. 일반적으로는 산호의 체내 공생조류의 개체 수 혹은 공생조류의 엽록소 밀도의 80% 이상 감소될 경우를 백화라고 합니다. 꼭 산호가 새하얗게 변해야 백화인 것은 아닙니다.


백화가 발생하는 건 어떤 스트레스 인자가 공생조류의 광합성 기관을 파괴하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에서 활성산소가 발생하고 활성산소로 인해서 산호의 조직 손상이 발생합니다. 산호는 조직 손상을 피하기 위해서 강제로 공생조류를 배출하는 거죠.


스트레스 인자는 매우 다양합니다. 빛, 열(수온), 수류, 화학물질 등이 주된 인자로 알려져 있습니만 지구 온난화로 인한 수온 상승이 가장 주된 인자라고 합니다.


백화현상이 발생했다고 해서 당장 산호가 죽지는 않습니다. 빠른 시간 내에 공생조류를 다시 섭취하면 됩니다. 문제는 주변에 섭취할 만한 공생조류가 많지 않다는 데에 있습니다. 물속을 헤엄쳐 다니는 공생조류도 수온 상승으로 인해 광합성 기관에 손상을 입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자연 상태에서 발생하는 백화는 산호의 대량 사멸로 이어지게 됩니다. 산호가 생산하는,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산호 몸속의 공생조류가 생산하는 산소는 지구 대기 산소의 주요 공급원입니다. 때문에 산호초의 황폐화는 산호를 비롯한 산호초에 서식하는 생물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4. 백화에 대한 대응


산호의 백화에 대한 저항력을 결정하는 가장 주된 인자는 공생조류의 계통군입니다. 어떤 계통군의 공생조류는 고수온에 매우 강한 반면, 어떤 공생조류는 고수온에 매우 취약합니다. 따라서 고수온에 강한 공생조류를 산호가 선택하면 수온으로 인한 백화를 피할 수 있습니다.


고수온에 가장 강한 계통군 C의 공생조류들은 32도 정도까지는 광합성 기관의 파괴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홍해에서 발견된 어떤 종은 무려 42도까지 견디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지구 온난화 때문에 산호가 맥없이 죽어가는 것 같지만 공생조류를 이용한 대응전략을 개발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산호의 대응전략 개발 속도에 비해서 지구 온난화의 속도가 너무 빠릅니다. 이것이 현재 산호들이 직면해 있는, 그리고 산호가 생산한 산소를 소모하고 있는 인간을 포함한 육상 동물이 직면해 있는 가장 큰 문제입니다.




편집부 주


위 글은 독자투고에서 납치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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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기사


1. 산호는 먹이를 노예로 만든다

2. 산호의 생존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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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투고 스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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