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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랑스어 철자법 개편과 올랑드


누구나 스스로를 사랑한다. 그 정도와 방법이야 개인과 사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그렇다. 자기애는 생존을 위한 본능에 직결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런 시각에서 보면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가족, 친구, 더 나아가서 자신이 포함되어 있는 사회에 대한 애정을 지니고 살아가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이는 가끔씩 근거 없는 믿음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이를테면 ‘한국어는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언어’라는 믿음. 15세기 세종대왕이 창제해 낸 한글은 그 과학적인 면모를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글자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국어까지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이라는 것은 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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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에서 2013년 한글날 특집으로 제작한 다큐멘터리

필자가 프랑스에서 본격적인 한국어 수업에 앞서 필히 보여주는 영상임을 밝힌다.

(링크 : EBS 한글날 특집 - 위대한 문자, 한글의 재발견 2)


마찬가지로 프랑스인들의 ‘프랑스어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언어’라는 믿음 역시 하나의 신화에 불과하다. 프랑스 문화와 그 언어가 낳은 위대한 작가, 철학가 등은 굳이 예를 들지 않아도 될 만큼 많고 많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언어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거나 외국인이 배우기에 가장 어렵다는 것 따위는 사회화 과정에서 요구되는 ‘자문화에 대한 자긍심 갖기’의 결과물뿐일 가능성이 높다.


물론, 대부분의 한국인에게 있어 프랑스어는 배우기 어려운 언어 중의 하나이다. 실제적으로 음성, 음운, 형태 및 통사, 동사의 형태와 어휘 등의 측면에서 프랑스어는 한국어와 그 언어적 거리가 꽤나 먼 언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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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표에 따르면 전 세계 언어 중 한국어와 프랑스는 가장 거리가 멀다

현재 프랑스어 학습 및 습득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면, 그것은 스스로의 언어 능력 및 지적 능력에 뭔가 문제가 있어서가 아닐 수 있다 하겠다

출처 - <The Atlantic> 2013년 5월 7일 자


어쨌든 프랑스인들의 프랑스어 사랑은 한국인의 그것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다. 또한 프랑스에서는 말을 잘하는 것이 사회에서 상당히 중요한 기술이다. 한국에도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던가 ‘세 치 혀가 사람 잡는다’라는 속담이 있을 만큼 언행을 중요시하기는 하지만, 프랑스에서 자기의 생각을 정연한 논리에 따라 바르게 언어로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이 사회에서 높은 자리에 올라갈 수 있는 확률은 한국보다 확연히 적다 할 수 있다. 과학적인 증거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 한국에 살아 있는 증거가 존재하니 부연 설명은 하지 않겠다.


실제로 지난 1월 초, <샤를리 엡도> 사건 1주년을 맞아 프랑스 정부에서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추모판을 제작, 대중에 공개했다가 삽화가 볼린스키(Wolinski)의 이름에서 오자가 발견되어 모두의 조롱거리가 된 바 있다. 올랑드(Hollande) 대통령과 히달고(Hidalgo) 파리 시장은 그 일로 상당히 면을 구겼다. 이 해프닝은 추모판 제작사 측에서 급히 작업을 하던 나머지 저지른 실수에서 비롯된 것으로 드러났다. 어찌 보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고 그냥 수정하면 될 일이었으나, 이는 1월 초 2-3일 동안 언론의 조명을 받았으며 사람들의 입에 적잖이 오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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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르 피가로> 2016년 1월 5일자


이런 프랑스에서 철자법에 대한 대폭적인 개혁이 발표되었다. 이는 신학년이 시작되는 9월부터 적용된다(프랑스의 학년은 여름 방학이 끝난 이후인 9월에 시작된다). 그에 따라 철자가 달라지는 어휘는 2400여 개에 달한다. 실제 발음과 차이가 있는 어휘의 형태를 바꿈으로써 프랑스어의 복잡한 철자법을 보다 쉽게 바꾸기 위한 개혁이라 하겠다. 이제 발음상 효력을 상실한 ‘악상 시르콩플렉스(^)’와 ‘트레뒤니옹(-)’이 상당 부분 없어진다. 단 악상 시르콩플렉스의 경우, 단순과거, 접속법의 동사 변화형에서는 여전히 존재한다. 모든 딴지 독자들이 프랑스어를 공부하는 학생은 아니기에 더 자세한 이야기는 생략하기로 한다. 만일 더 자세한 사항이 궁금하다면 여기(링크)를 참조할 것을 권한다.


이번 개혁이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은 아니다. 관련 연구가 이미 1990년부터 시작되었고, 2016년 2월이 되어서야 공식적으로 채택된 것이지만, 프랑스 사회의 반응은 그다지 긍정적이지는 않다. 언어의 특성 중 하나인 역사성을 감안하면 언어의 변화는 당연한 것이지만, 동시에 언어란 한 사회의 약속이기에 이 개혁에 대한 적잖은 이들의 시선이 곱지 않은 것은 어찌 보면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일이라 하겠다. 그중에서도 가장 재미있는 반응 하나를 소개할까 한다. 올랑드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마치 개껌처럼 이곳 저곳에서 마구 씹히고 있는 중이다. <샤를리 엡도> 테러와 11월 파리 테러로 잠시 지지도를 회복한 바 있으나 지난 <프랑스는 지금> 15편에서 소개한 바와 같이 올랑드에 대한 지지도는 또 다시 하락세로 돌아섰다. 삽화가 에르베 보드리(Hervé Baudry)는 아래 그림을 통하여 약속한 실업 문제나 해결할 것이지 이렇게 딴짓이나 하고 있다며 올랑드 대통령을 비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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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랑드 대통령이 "제가 약속했지요, 실업율을 가볍게 하겠다고. 자, 해냈습니다."라며

실업(chomage)이라는 단어에서 ‘^’ 하나를 떼어내고 있다 (출처)


실제로 현재 올랑드 정부는 실업자에게 지급되는 실업보조금을 점차 줄여나가는 정책을 진행하고 있다. 실업보조금이 실업 상태에 빠진 이들이 보다 안정적으로 직업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한 것임을 감안하면, 이들을 생존 위기에 빠뜨리는 이와 같은 정책이 얼마나 효과적일지는 의문이라는 소리가 여기 저기에서 나오고 있다. 이와 같은 보조금 정책을 악용하는 이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실업 상태에 놓인 이들 전부를 게으르며, 자신이 원하는 직업에 대해 고민하고 선택할 여유조차 가질 권리가 없는 이들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롭스> 2월 3일자). 바로 이러한 부분이 올랑드 정부가 진짜 좌파 정부가 맞긴 한가 하는 비판이 나오는 것이 아닌가 싶어지는 대목이다.


어쨌든 이번 철자법 개혁은 발표되었고, 오는 9월부터 프랑스어의 철자 체계는 대폭 바뀌게 된다. 기존에 프랑스어를 공부했던 이들은 일일이 사전을 들춰 보아야 하게 되었다. 한국에서 프랑스어 사전 및 교재를 담당하는 출판사에서도 대대적인 개정이 필요하게 되었고.



2. 올랑드 대통령의 특별 사면


2012년 9월 10일, 파리에서 남쪽으로 130여 킬로미터 떨어진 소도시 몽타르지스(Montargis)의 한 가정집에서 총성이 울려 퍼졌다. 47년 동안 자행된 남편의 폭행, 강간 및 살해 위협에 못 이긴 자클린 소바쥬(Jacqueline Sauvage, 현재 66세)가 남편을 총으로 쏘아 살해한 것. 자클린의 세 딸은 아버지에 의해 지속적으로 성적학대를 당해왔음을 증언했으며, 이웃들 역시 살해된 남편이 평소에 폭력적인 성향을 다분히 띠고 있었다고 밝혔다. 사건 전날 스스로 목을 메어 자살한 아들 역시 평소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음이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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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클린 소바쥬

사진 출처 - <르 피가로>


2014년 10월 28일, 자클린은 징역 10년 형을 선고받는다. 정당방위는 인정받지 못했다. 2015년 12월 1일, 자클린의 형이 확정된 후 온-오프라인에서 자클린의 석방을 요구하는 움직임이 점차 거세어졌다. 자클린의 세 딸은 2015년 12월 22일, 올랑드 대통령에 서면으로 어머니의 특별 사면을 요청했으며, 12월 중순에는 10여 명이 파리에 모여 자클린의 사면을 요청하는 집회를 열었다. 그로부터 한 달 뒤, 사람들의 목소리가 점차 전달되어 행동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10여 명으로 시작된 움직임은 2016년 1월 23일, 200여명으로 늘어났다. 파리의 바스티유(Bastille) 광장에 모인 이들은 "나는 자클린 소바쥬다"를 외치며 자클린의 정당방위를 인정해 줄 것을 요구했으며, 이날 31만2천 여 명이 서명했다(<르몽드> 2016년 1월 23일자).


서명서가 대통령궁인 엘리제 궁에 전달되었음에도 불구, 정부 측에서 아무런 반응이 없자, 이번에는 정치권에서 나섰다. 공화당(LR) 하원의원 발레리 부아이에(Valérie Boyer)의 제안에 따라 서른 명의 하원 의원이 대통령 특별 사면을 정식으로 요청했다. 부아이에 하원 의원은 "물론 살인은 프랑스에서 마땅히 처벌받아야 하는 심각한 범죄행위임에는 틀림이 없으나 자클린은 범죄자이기 이전에 희생자였음을 감안해야"함을 강조했다. 부아이에 의원에 따르면 2014년 프랑스에서는 134명의 여성이 가정폭력으로 사망했다고(<르 피가로> 2015년 12월 1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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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자클린 소바쥬다 ≫라며 자클린의 석방을 요구하고 있다

출처 : <20minutes> 2016년 1월 31일자


결국 2016년 1월 31일, 올랑드 대통령은 프랑스 헌법 제17조에서 부여한 대통령의 권리에 따라 자클린 소바쥬를 특별 사면한다. 그에 따라 자클린 소바쥬는 오는 월요일부터 사면을 위한 절차에 들어간다. 해당 절차는 4월 중순에 완료될 예정. 시민과 야당 정치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을 위해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는 대통령의 모습은 일견 부러워 보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이를 대선을 앞두고 지지도를 얻기 위한 사회당 정부의 교활한 책략에 지나지 않는다는 시선이 있다. 정말이지 올랑드는 뭘 해도 씹힌다. 이런 시선에 힘이 실리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올랑드 대통령이 애초에 ‘대통령 특별 사면’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지니고 있었다는 점이다. 평소의 신념과 어긋난 예외적인 결정을 내린 데에는 무언가 꿍꿍이가 있기 마련이고, 그 꿍꿍이란 2016년 대선을 앞두고 올랑드 대통령 집권 이후 20% 남짓으로 완전히 고정되어 버린 낮은 지지도를 조금이라도 회복해야 할 필요성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둘째는 자클린 소바쥬에 대한 특별 사면은 자클린의 형량을 감해줄 뿐, 자클린의 정당방위가 인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현재 프랑스에서는 가정폭력에 의한 희생자가 3일에 한 명꼴로 발생한다. 자클린 소바쥬는 두 번의 정식 재판을 치렀으며, 두 번 모두 자클린의 정당방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자클린의 경우뿐 아니라 비슷한 이유로 남편을 살해한 베르나데트 디메(Bernadette Dimet, 60세) 역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자클린 소바쥬는 사면되었으나, 베르나데트에게 선고된 징역 8년은 그대로이다. 현재 프랑스의 사법 체계에서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여성의 결단은 그저 범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르몽드>). 결국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논의되지 않고 있는 상태에서 대통령의 특별 사면은 그저 허울 좋은 지지도 챙기기에 불과해 보인다는 것이다.


적어도 자클린 소바쥬 건으로 인하여 프랑스에 가정폭력에 대한 문제가 다시금 진지하게 논의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그 이면에는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낸 당사자들과 그 목소리에 힘을 실어준 시민들과 정치권,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 목소리가 울림이 되게 한 정부가 있었다. 한국에도 이와 비슷한 사건들이 심심찮게 발생한다. 하지만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 주는 정부는 어디에 있을까?



덧붙임. 2016년 2월 첫째 주 TOP25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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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랑스는 지금> 연재 기사는 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프랑스에서 가장 많이 읽힌 인터넷 기사 매일 5건, 한 주에 총 25건을 수집하고 분석하는 기사로, 동시대의 프랑스 사회에 대한 이해를 돕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2. 프랑스어로 된 매체의 기사들을 모두 프랑스인들만 읽는다는 보장은 없지만, 전세계 프랑스어 사용자의 대부분이 프랑스 본토에 분포하고 있음을 감안하여 구글의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기사 검색 시간은 프랑스 시간으로 매일 오전 8-9시 사이입니다.  프랑스 현지 시간에 따라서 기사를 수집하여 오류를 최대한 좁히려 하였습니다.


3. 본 연재물에서는 프랑스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 혹은 프랑스 매체에서 다루는 모든 기사를 대상으로 하고 있지는 않는 관계로 그저 수박 겉 핥기 식으로 프랑스 사회의 모습을 보여줄 수 밖에 없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4. ‘인권의 나라’라던가 ‘낭만의 나라’ 정도로 알려져 있는 프랑스의 민낯은 어떤지, 한국의 모습과는 어떻게 닮고, 또 다른지를 전할 수 있다면 제 목표는 충분히 전달한 것일 듯 합니다.





지난 기사


사법부vs전 대통령 사르코지

파리 테러, 현재 상황




아까이소라

트위터 : @candy4sora


편집: 딴지일보 coco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