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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7. 21. 화요일

고등어









아버지는 전라남도 순천 옆에 자그마하게 붙어 있는 학구라는 곳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어린시절 기억이 별로 좋은 게 없어서인지 그는 나에게 어린시절 이야기를 거의 해주지 않았다. 아니면 내가 듣고 잊어먹었을 수도 있고.


순천은 꽤나 큰 도시이고, 당시에도 그랬다. 하지만 학구라는 동네는 산골짜기도 그런 산골짜기가 없을 만큼 산에 파묻힌 동네였고 지금도 그렇다. 아버지는 그 산골짜기 마을에 살고 있던 시골 촌부의 무려 9번째 아들로 태어났는데 "똥꼬가 찢어지게 가난한"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어린 시절이 떠오를 만큼 텍스트 그대로 미칠 듯이 가난했다. 그는 대충 얹어 만든 집에서 9명의 형제들과 어린 시절을 보냈고 밥 때가 되면 어머니 곁을 항상 지켰다. 밥을 많이 얻어먹으려고 그런 게 아니고, 그나마 옆에 붙어 있지조차 않으면 일찍 남편을 여의고 9명의 자식들 먹여 살리느라 한숨 한번 제대로 쉬어볼 시간이 없던 그의 어머니는 자꾸 자기가 있다는 사실조차 잊어먹더라는 것이다.


밥도 안 줄거면 나는 왜 낳은 거냐고 한번 따져물을 새도 없이 그는 형들의 손을 잡고 함께 나뭇짐을 하러 다녔다. 하루종일 산에서 부러진 나뭇가지들을 그러모으면 용케 형들은 아홉번째 동생을 챙겨서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그는 가끔 나에게 어린 시절 산에서 나무를 하던 이야기를 해 줬는데 그땐 하루를 살아내는 일 외에 세상에 다른 일들에 대해선 관심도 없었고 알 도리도 없었다고 했다. 그가 18살인가가 되어 군에 입대하기 전까진 말이다.

 

군에서 그는 꽤나 행복했다고 했다. 엄청나게 많이 두드려 맞고 기합 받아도 제 때 밥은 꼭꼭 먹여주고 철마다 옷도 챙겨 줬으니까. 그는 다른 이유 하나도 없이 딱 그것 때문에 행복했다고 한다.


"그래서 말뚝 박으신 거에요?"


라고 내가 묻자, 그는 쓴 웃음을 지으면서 이렇게 대답했었다.


"아냐. 제대했었지. 그런데 제대하고 집에 가니까 어머니가 나 보자마자, 입 하나 줄어서 편했는데 벌써 왔냐? 라고 하길래 열 받아서 하사관 지원 했지."


할머니는 돌아가실 때까지 이 일을 기억하지 못하셨다. 그냥 막내아들이 군대 갔다가, 바로 말뚝 박은 걸로 기억하고 계셨다고. 이런들 저런들 어떨까 싶어서 우리 아버지도 굳이 할머니를 붙잡고 구구절절 말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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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남전에 참전한 이유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박정희가 우리 군을 베트남에 참전시키는 이유 따윈 그가 알 방법도 없었고 관심도 없었다. 그는 그냥 맛있는 미군음식을 실컷 먹어볼 수도, 돈도 벌 수 있다는 말에 따라나선 길이었다고 한다.  

 

그의 기억속에 월남전의 파편은 많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끔찍하게 더웠고" "평생 볼 벌레들과 뱀들을 거기서 다 보고 먹어봤으며" "밤에 담배를 피우던 친구의 머리통이 날아가는 것을 보고 죽기 싫어서 담배를 끊어버린 것" 정도였다. (베트콩 스나이퍼들이 밤에 상대방 진지에서 담배 불빛을 보고 조준사격을 했다 카더라) 아버지는 돌아가실 때까지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친구라는 분은 담배불을 붙이자마자 몇 모금 빨지도 못하고 저 세상 사람이 되었으니, 이보다 확실한 금연교육이 없었겠지.

 

나중에 들은 얘기로, 그는 처음엔 밤에 잠들기가 힘들 정도로 무서웠다가 주변에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꼴을 몇 번 보고난 다음부턴 눈이 뒤집혔다고 한다. 정규 교육이라곤 산골마을에서 국민학교를 다닌 게 전부였던 그는 아무런 여과장치 없이 상관들의 말을 듣고 그들의 생각을 배웠고, 생각은 경험에 뿌리를 박고 자라났다. 그의 머릿속에 베트콩 = 빨갱이들은 너무너무 무섭고 나와 내 동료를 죽이려고 총을 들고 달려드는 존재였다. 귀신처럼 나타났다가 연기처럼 사라질 때 마다 동료들이 죽었고 어느 마을에선 어린 처녀가 별안간 난사한 총알이 그의 허벅다리를 스치고 지나간 적도 있다고 했다. 목욕탕에 같이 갈 때마다 나는 그 흉터를 볼 수 있었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조상님의 도움으로" 한국으로 생환한 후, 그는 결혼도 하고 자녀도 낳았다. 첫째 아들을 잉태한 어머니의 배가 만삭에 가까워질 쯤, 그러니까 1969년에 흑산도에는 간첩이 침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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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색대였던 아버지는 이 간첩작전에 처음부터 참여했다. 그는 아무리 술을 많이 마신 날에도 이 때의 일을 제대로 이야기해준 적이 없었는데 딱 한번, 우리 어머니에게 한 적이 있다고 한다. 나는 어머니를 통해서 이 이야기를 들었다.

 

흑산도에 침투한 간첩선은 침몰하고, 잔당을 수색하는 작전이 지루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그는 부사수를 데리고 참호 속에 앉아 경계를 하고 있었는데, 그의 눈에 뭔가 희미한 움직임이 들어왔다. 두 개의 인형(人形) 이었는데 그의 말에 따르면 그 형체들의 움직임과 베트콩들의 그것이 너무나 흡사해서 시야에 들어온 순간 그들이 간첩이라는 걸 깨달은 동시에 몸이 흠뻑 젖을 정도로 땀이 솟아났다고 했다.

 

몇 초만에 수십 수백 가지의 생각이 그의 머릿속에 떠올랐는데 그는 그 짧은 시간에 엄청나게 고민을 했다고 한다. 어쨌거나 살아 움직이는 사람들이었고 그들의 생사여탈권은 바로 자신이 쥐고 있었기에. 조준을 하고 두발을 쏘면 바로 잡을 수 있었고 허공에 대고 두 발을 쏘면 살려서 보내줄 수 있었다. 그 순간 그는 곧 산달이 다가오는 자신의 아내를 생각했고 월남에서 죽어간 친구들을 생각했고 흑산도에서 만난 주민들을 생각했었다고.

 

그는 방아쇠를 당겼다.

 

간첩을 사살한 군인에겐 무공훈장이 주어진다. 두 명을 잡았으니 훈장이 두 장이었다. 뿜빠라뿜빠 시끄럽고 휘향찬란한 수여식이 끝나고 그는 무려 당시 대통령이었던 양반을 만나서 악수와 포옹까지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버지는 눈물을 보이는 일 따위 없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 때의 일은 어머니를 제외하곤 누구도 본 적이 없으니 역시 대외적으로 우리 아버지는 눈물을 보인 일이 없다. 하지만 어머니가 회상하시기로 - 이 일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에야 어머니에게 들었다. 아버지는 어머니까지 함구시켰던 거다. - 아버지는 돌아온 이후 술을 많이 마셨고 많이 울었다. 아이언맨 마스크처럼 굳은 얼굴을 하고 돌아와선 어머니가 차린 술상 앞에서 어머니의 손을 잡고 그렇게 울었다고 한다.

 

간첩들은 네 활개를 편 자세로 널부러져 있었고 최초로 사살한 아버지는 접근해서 그들의 품을 조사했다. 수색대 인원은 전혀 손상을 입지 않고 적들만 사살한 것이다. 혁혁한 공과였다. 그들의 품속에선 변변찮은 음식물과, 총알과, 틈틈이 꺼내어 바라봤을 것이 분명한, 손때가 잔뜩 묻어있던 가족사진이 나왔다.

 

아버지는 그 후로 세월이 많이 지나도록 그 일에 대해 말하는 일이 없었다. 무공훈장 수여자에 국가유공자였기에 아버지의 아들들(나는 2 2녀중 막내였다) 중 한 명은 군 면제가 가능했으나 아버지는 형에게도 나에게도 그걸 허락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 일을 그렇게 자랑스럽게 생각해 본 적도 없으며, 만약에 그 일로 인해 자식들이 뭔가 이득을 보게 된다면 그 업까지 자식들에게 함께 가게 될까봐 그러셨다고.

 

간에 암이 생겼다는 소식을 들은 그는 뜻밖에 담담했다고 한다. 어머니에게 "받게 될 것을 받은 것 뿐"이라고 낮게 말한 것 뿐. 아버지는 끝내 환갑을 넘기지 못하셨다.

 

나는 가끔, 그가 생존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 편견이 아예 그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유일무이한 생각이었다면 어땠을까. 라는 가정을 한다. 월남전우회나 참전용사모임에 서서 고함을 지르고 있는 그를 보았더라도, 적어도 건강하게 살아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오래오래 보게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그는 나에게 그럴 기회를 주지 않았다. 나에게 뭔가를 억지로 가르치려고 하지도 않았으며 말버릇처럼 "직접 겪어보기 전엔 쉽사리 판단하지 말라"는 말만을 하셨고, 누군가에게는 자랑스럽게 읊어대는 추억담이 될 일을 평생 가슴의 빚으로 안고 살아가는 쪽을 택했다.


끝내 그걸 이겨내지 못하더라도 말이다.








편집부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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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기사는 

<벙커깊수키 통합9호 : 편견 특집2(15년 6월호>에 실린 

고등어의 <아버지는 방아쇠를 당겼다>의 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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