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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불황과 실업의 늪에 빠져서 파시즘의 먹이가 되어버린 사회를 떠나 버몬트로 이사했다. 스러져가는 사회 체제에서 쫓겨난 사람들이 소박하고 평온하게 살 수 있는 곳은 어디인가? 사회가 붕괴로 치달아 해체 속도가 점점 빨라지는 때에, 올바른 사회체제를 만드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시간과 힘을 얻을 곳은 어디인가?


헬렌 니어링, 스콧 니어링 <조화로운 삶>




놀랍지 않은가? 1930년대 천조국 시민의 하소연이다. 2016년 헬조선 백성들의 번민과 싱크로율 200%. 이래서 역사는 돌고 돈다고 했나보다.


‘헬렌 니어링’과 ‘스콧 니어링’부부는 도시문명 탈출을 위해 다음 세 가지 목표를 설정한다.


독립된 경제꾸리기

건강

사회를 생각하며 바르게 살기


부부는 그들의 신념, 객관적 조건, 라이프스타일에 알맞은 지역을 찾아 낸 후, 10년에 걸쳐 단계별로 능력치를 높였다.


나만의 ‘조화로운 삶’을 만들려면 오랜 시간 내공을 수련해야 한다. 초짜 강화군민은 이 글을 쓸 자격이 없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베테랑 강화도민들의 목소리를 담을 예정이다. 이번 편은 앞에서 자주 언급한 강화친구 Y씨 부부의 생생한 증언을 바탕으로 꾸몄다. 앞으로도 Y씨네는 단골 패널이다.


겨울의 강화는 으슬으슬 춥다. 섬의 1/3이 간척지다 보니 습도가 높다. 강화도에는 1층은 기둥만 세우고 2층에 올린 집이 많다. 2층으로 띄워서 땅의 소금기과 습기를 막으려는 강화인의 지혜다. 지난주까진 한파가 무시무시했다. 강화대교 아래로 썰물 때는 얼음세상이더라. 생전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강화는 해양성 기후라 한파 때는 서울보다 따듯(?)하다. 운전 중 온도계를 확인하니 서울 -12도, 강화대교 위 –9도, 강화도 진입 하자마자 –10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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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적인 추위를 겪으니 자연이 무섭다. 인간이 아무리 잘난 척 해도 자연 앞에서 까불면 다친다. 집집마다 설 전후로 제사가 많은데, 추위로 인한 스트레스가 건강을 해치는 것 같다 .


아파트 안에서 보일러 풀가동하고 반팔 차림으로 지내도 겨울은 겨울이다. 신체는 계절을 감지한다. 단독주택에 산 지 한 달 만에 내가 그동안 계절의 변화와 분리된 삶을 살았다는 것을 알았다. 더위와 추위를 견디는 면역체계는 붕괴됐다. 겨울 문턱에 접어들자 바이러스가 온 집안을 잠식한다. 독하게 신고식을 치룬 셈이다.



강화 북부의 강남인 강화읍 일부와 강화 남부의 비버리힐즈인 온수리 일부엔 도시가스가 들어와 있다. 강화읍에 위치한 욕망아줌마 집은 2016년 3월에나 도시가스가 들어온다. 아직은 기름보일러 신세다. 금쪽같은 기름을 함부로 쓸 수는 없지만 내 몸이 돈보다 소중해서 눈 딱 감고 보일러를 틀었다. 다행히 국제 유가가 하락한 덕을 봤다. 가정용 등유 1드럼에 14만 원. 2년 전에는 27만 원이었다. 기름 값이 떨어지니 만수르가 걱정이다.


보일러는 대성S라인, 경동나비엔, 귀뚜라미만 알고 있었지만, 가스, 기름, 연탄, 화목, 심야 보일러까지 강화도에서 다양한 난방 방식을 발견했다.


누구나 알고 있는 가스, 기름보일러 외에 연탄, 화목, 심야전기보일러를 소개한다.


평생 아파트만 살았던 나는 연탄에 대한 추억이 없다. 국민학교 때 친척집에 놀러 갔다가 가볍게 연탄가스를 먹고 병원에 갔던 경험이 전부다. 강화도로 이사 온 Y씨 가족의 첫 보일러가 연탄보일러였다. 연탄가스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에 안전한 지가 궁금했지만, 요즘 연탄보일러는 기본 연통 설치만 잘하면 괜찮단다.


연탄보일러의 최대 장점은 가성비다. 난방비 걱정 없이 뜨끈한 겨울을 보낼 수 있다. 단점은 확실하다. 몸이 힘들다. 대개 연탄은 하루에 두 번 교체해서 하루 한 번은 춥다. 12시간에 한 번은 심하게 덥다. 시간 간격이 문제로, Y씨네 경우 18시간에 한 번이 적정 간격이었다. 이 18시간이 애매하다. 새벽 꿀잠을 포기해야 한다. 오밤중 이부자리에 붙어 있는 등딱지를 떼고 칼바람 맞으며 연탄을 갈아보지 않았다면 인생을 논할 수 없다고, Y씨는 목놓아 외쳤다.


연탄보일러는 아날로그 감성의 오브제다. 가스나 기름보일러처럼 원하는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할 수 없다. 불 조절은 미묘한 터치에 달렸다. 서른 넘어 최초로 연탄과 대면한 Y씨도 적응 할 때까지 시행착오가 있었다.


마당에 묻어둔 김장 김치와 연탄보일러 아궁이 위에 구운 강화 속노랑 고구마는 우주 최고의 궁합이다. 한겨울 간식으로 이만한 게 없다.


연탄이 주는 선물은 또 있다. 소싯적 눈덩이 좀 굴려본 사람은 안다. 밤새워 하얗게 불태운 연탄재는 커다랗고 튼튼한 눈사람으로 변신한다. 가끔 겨울 강화도엔 눈 폭탄이 떨어진다(올해는 다행히 잘 지나갔지만 스노우 타이어와 체인은 겨울 필수 아이템이다). 부지런한 강화군 공무원님들 덕분에 제설작업은 신속하지만, 바야흐로 내 집 앞 눈은 내가 치우는 시대 아닌가. 이럴 때 연탄재 가루가 유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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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치우고 연탄재를 뿌리면 된다

(사진- 은평구)


덧붙여서, 부지런한 이장님이 계신 마을은 관 도움 없이 제설작업이 이뤄진다. 트랙터로 밀면 끝. 지면을 빌어 강화도를 비롯한 전국의 모든 이장님들께 감사드린다. 잠깐, 질문. 정말로 라면은 구공탄에 끓어야 제 맛인가? 아는 분 있으면 연락 바란다.


뽁뽁이, 3M 문풍지, 수면바지, 수면양말, 보온물주머니(독일 F제품 추천. 물이 안 샌다. 커버도 살 것), 온수매트, 캠핑용 난로(국산 P제품 추천), 침낭 등 아파트 주민이었을 때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겨울 아이템이 늘어간다.


국도 변 화목난로, 화목보일러 홍보 현수막이 눈에 들어온다. 욕망아줌마 집은 거실이 작아서 캠핑용 등유난로를 쓴다. 불을 피우면 잠시 후 실내 공기가 훈훈해진다. 다만 아이들 안전 때문에 오래는 못 피운다. 안타깝다.


Y씨네는 화목난로가 있다. 초기비용이 비싸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가정경제에 도움이 된다. Y씨는 경비절감차원에서 폭풍 검색질로 남쪽 지방의 중고 화목난로를 득템, 직접 운반했다. 또한 2mm 두께의 연통을 사서 직접 설치했다. 열전도율을 높이기 위해 난로 바닥에는 돌을 깔았는데, 재료는 이웃이 쓰다 버린 낡은 돌침대 상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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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목난로는 연료인 나무를 구입하는 게 관건이다. 본인에게 산이 한둘 쯤 있다면 무엇이 걱정이랴만은 대부분은 인터넷 통해서 5톤 트럭 가득 1년 분량 나무를 구입한다. 화목보일러 땔감도 마찬가지다.


강화도 10년 차 Y씨는 알음알음 벌목장을 소개받았다. Y씨는 벌목장에서 구입한 땔나무를 여름 내내 도끼질 하여 쌓아둔다. 나무는 2년 정도 말린다. 습도가 높을수록 화력은 제곱에 비례하여 떨어지기 때문이다.


나무 재거름에는 칼륨이 있어 밭에 뿌리면 좋다. 칼륨은 모든 열매를 튼튼하게 하는데, 특히 토마토 배꼽(?)이 썩는 것을 막는다.


펠릿 겸용 화목난로도 있다. 캠핑용 펠릿난로는 일반 화목난로보다 가격이 저렴하다. 연료인 펠릿도 나무보다 구입이 쉽고 싸다. 장단점이 있으니 각자의 라이프 패턴에 맞춰 선택하시길.
 

화목보일러는 기존 빅3 보일러업체에서 모두 출시 중이다. 요즘에는 기름 겸용 하이브리드 제품도 나오는데, 화목난로와 마찬가지로 연료 조달 계획이 필요하다. 화목보일러는 난방비가 절감되는 장점이 있지만, 최근 화목보일러 화재 사건이 많이 발생하고 있다. 반드시 우수한 회사의 검증된 제품을 구매하여 전문가에게 설치를 맡겨야 한다. 안전한 이용 부탁한다.


하나 더, 도시 사람들은 잘 모르는 심야보일러도 있다. 정식명칭은 ‘심야전기 축열식 보일러’로, 전기사용이 적은 심야시간(오후 11시∼오전 9시)에 값싼 잉여전기로 물을 데워 난방하는 방식이다. 심야전기가 들어오는 집은 계량기가 두 개다. 전기가 남아돌았던 2000년대 초반까지는 심야전기가 인기였지만, 지금은 전기료가 올라서 아무나 신청할 수 없다(사회복지시설은 가능하다).


욕망아줌마가 살고 있는 오래된 양옥에도 심야전기가 들어온다. 욕망아줌마는 서울 촌것이라 이사 첫 달 두 장의 전기요금고지서를 받고 분노했다. 현재는 심야전기를 이용한 순간온수기 설치를 고민 중이다.


심야보일러엔 물탱크 사이즈가 5톤 이상이어야 유리하다. 순간온수기 역시 물탱크 사이즈를 체크한다. 심야보일러는 25평 이상이면 열 효율성이 떨어진다. 궁궐처럼 넓은 집이라면 25평 기준으로 심야보일러를 여러 개 설치한다. 강화도의 2000년 이전에 지어진 집엔 심야전기가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 집을 구할 때 참고하시라.


전형적인 문과형 기계치다. 보일러에 대한 이해가 없으니 잘못된 정보는 알아서 정정하고 찾아보시길.



도시를 떠나니 ‘집터’의 중요성을 알겠다. 배산임수, 남향이 무작정 좋은 건 아니더라. 강화친구는 ‘바람 자리’라는 표현을 썼다. 계곡에서 내려오는 바람이 모이는 장소다. 마을마다 ‘바람 자리’ 집이 있다. 옆집은 평화로운데, 그 집 마당에만 낙엽 회오리바람이 분다. ‘바람 자리’에 살고 있다면 추위를 운명으로 받아 들여라.


추위도 끝이 보인다. 설이 지나면 살갗에 닿는 공기가 다르다. 도시는 계절이 없다. 문명은 삶의 질을 높인 만큼 자생력을 떨어뜨린다. 혹독한 추위에도 강철 새잎은 돋는다. 자연 앞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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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의 봄소식은 동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전한다. 황량한 겨울 들판이 갑자기 복작거린다. 겨우내 마을회관에서 꼼짝 안하셨던 어르신들이 이유 없이 바빠졌다면 ‘백퍼’다. 수평선 너머 봄이 오는 중이다. 며칠 후 아직 언 눈이 남아있는 논두렁에 냉이가 삐죽 올라온다. 할머니께 여쭌다.


“봄 오는 거 어떻게 아셨어요?”


“그런 거 몰러.”


“그럼 왜 이렇게 바쁘세요?”


“농사 준비 해야지.”


“농사 준비 시기는 어떻게 아셨어요?”


“흙 보면 알지.”


흙? 내 눈은 막눈인가? 어제나 오늘이나 땅이 거기서 거기지 뭐. ‘하늘 보고 별을 따고, 땅을 보고 농사짓고’라 했지. 21세기 도시인은 감각기관이 퇴화됐나보다.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오고, 모진 추위도 언젠간 물러난다. 강화도의 첫 겨울나기가 별일 없이 끝나간다.


이제,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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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딴지일보 챙타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