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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친 달팽이를 보게 되거든
도우려 들지 말아라
그 스스로 궁지에서 벗어날 것이다
당신의 도움은 그를 화나게 만들거나
상심하게 만들 것이다


하늘의 여러 시렁 가운데서
제 자리를 떠난 별을 보게 되거든
별에게 충고하고 싶더라도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라


더 빨리 흐르라고
강물의 등을 떠밀지 말아라
강물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을 것이다


장루슬로 <또 다른 충고들>



‘부지런한 사람은 돌로 담을 쌓을 수 없다’는 말이 있다. 돌담은 다들 알다시피, 물에 갠 흙으로 돌덩이를 쌓는 것이다. 돌담은 겨울에 손볼 곳이 생긴다. 흙이 건조해져서 바스러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겨울에는 손을 대지 않는다. 버석버석한 흙은 점성이 부족하고 마른 흙으로 쌓은 돌담은 무너진다. ‘부지런한 사람은 돌로 담을 쌓을 수 없다’는 말이 생긴 이유다. 돌담 보수는 농한기 끝자락에 한다. 아직 봄은 더 기다려야 하지만 마음만은 벌써 봄이 온 것 같은, 딱 이때 해 치운다.


괴테는 “자연은 오묘한 비밀을 가지고 있는데,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바라보는 이에게만 보여준다.”고 했다. 도시 사람들은 자연의 흐름을 바라보는 눈이 없다. 몰라도 사는데 큰 지장이 없으니까.


여름 폭염과 겨울 한파 스트레스 때문에 명이 점점 짧아지는 것 같다. 지옥불반도 백성에겐 필수 옵션으로 ‘불안’이 장착되어 있는데, 춥고 덥고를 반복하는 롤러코스터 같은 기후까지 견뎌야 한다. 정말이지 여러 가지 의미로 대단한 민족이다.


계절은 얼렁뚱땅 지나가는 게 아니다. 자연은 열심히 메시지를 보낸다. 도시형 인간들은 절기를 읽는 독해력이 부족하지만, 다행히 조상님들은 쪽집게 족보를 남겨 주셨다. ‘절기’다.


웬열, 겨우 강화도 몇 달 살고 절기를 언급하려니 볼따구가 화끈거린다. 우리 것은 좋은 것이고, 너는 누구냐 신토불이고, 잊혀져가는 옛 풍속 발굴 다 알겠는데, 농경사회에 최적화된 문화를 기가 인터넷 시대에 꺼내는 것은 시대착오 아니냐고? 반박을 못하겠네.


질문을 던져 본다. 일상의 삶에서 자연을 완전히 무시하고 계속 살아도 괜찮은 걸까? 판단은 각자의 몫. 안 땡긴다면 이번 편은 과감히 스킵하시라.


이번 편은 사계절이 들려주는 이야기, ‘절기’와 강화도의 ‘정월대보름’ 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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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도시아줌마가 ‘절기’에 대한 기초 상식이 있을리 만무하다. <꽃피는 학교> 김희동 선생님의 기고 글들을 그대로 베끼다 벤치마킹 했다. 김희동 선생님과 독자제위께 양해드린다. 꾸벅.


흔하게 하는 착각 중 하나가 우리 조상들은 음력만 사용했다는 거다(나만 그런 거니?). 그렇지 않다. 조상님들은 양력도 썼는데, 대표적인 게 ‘24절기’다.


시계가 없었던 옛날에는 해가 뜨고 지는 것을 하루로 삼고 달이 차고 기우는 것으로 한 달을 정했다. 달이 차고 기우는 주기는 약 29.5일이므로 12달과 일 년이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는다. 따라서 음력을 사용하는 옛 사람들은 19년마다 7번의 윤달을 넣어 양력과 맞췄다. 참고로 만 19세, 38세, 57세 등 19의 배수가 되는 해는 음력 생일과 양력 생일이 일치한다. 확인 해 보시라(경우에 따라 하루정도 오차 발생).


음력은 정확한 계절을 알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농사를 지어야 하는 옛사람들은 이런 불편함을 보완하고자 24절기를 만든다. 절기와 관련 된 세시풍속도 태양의 움직임을 따라간다.


해가 가장 높이 뜰 때가 하지(6월 21일)고, 가장 낮게 내려온 날이 동지(12월 22일)다. 양력이다 보니 날짜가 정해져있다(하루쯤 차이가 난다). 하지와 동지는 24절기의 기준점이다. 하지와 동지 사이에 밤낮의 길이가 똑같은 날이 있다. 춘분(3월 21일)과 추분(9월 23일)으로, 황도와 천구상의 적도가 만나는 날이다.


옛날 사람들은 태양이 다시 살아난 날인 동지를 새해 첫날로 여겼다. 어느 문화권이나 동지, 혹은 태양절과 관련된 풍습이 있다. 예수탄신일(12월25일)도 관련이 있다고 하는데 더는 언급하지 않겠다. 안 봐도 비디오다. 댓글 불판이 퐈이어 될 테니까. 나는 평화주의자다.


365일을 춘하추동으로 4등분 한 후, 황도, 즉, 해가 가는 길을 이리 저리 나누면 24절기가 된다. 24절기는 보름마다 한 번씩 돌아오는데, 아래는 네이X 달력을 보고 정리한 2016년 절기다. 나머지 날짜는 검색찬스를 이용하시라.


입춘(2.4), 우수, 경칩, 춘분(3.20), 청명, 곡우
입하(5.5), 소만, 망종, 하지(6.21), 소서, 대서
입추(8.7), 처서, 백로, 추분(9.22), 한로, 상강
입동(11.7), 소설, 대설, 동지(12.21), 소한, 대한


24절기 날짜는 거의 같지만 음력으로는 조금씩 달라서 윤달을 넣어 계절과 맞게 조정한다. 입춘이 음력 섣달(12월)에 있기도 하고, 정월에 들기도 한다. 올해처럼 설이 입춘보다 늦은 해의 봄은 춥다. 어설프게 봄 기분 냈다가 얼어 죽을 수도 있으니 주의하시길.


윤달이 있는 해에는 입춘이 두 번인데, 이를 ‘복입춘(複立春)’ 또는 ‘재봉춘(再逢春)’이라고 한다. 띠는 입춘부터 시작된다. 그러니까 병신년 원숭이띠는 2016년 2월 4일 이후 출생자들부터 해당된다. 헷갈린다. 청와대 홈페이지에 공지 좀 했으면 좋겠다.


파종은 춘분에 하지만, 농사의 시작은 입춘이다. 작년 농사를 끝내고 만들어 둔 거름은 이 시기의 중요 업무다. 입춘 때는 겨우내 얼고 녹고를 반복한 거름을 뒤집어 산소를 공급해준다. 봄 날씨에 발효가 잘 될 것이다. 우리 모두 알고 있는 바로 그 냄새는 이렇게 탄생한다.


이 시즌에 가장 신경 써야하는 농사준비는 종자 손질이다. 작년 가을에 갈무리 해둔 종자 주머니를 꺼내 공기도 쐬어주면서 문제 있는 씨앗들을 골라내고, 좋은 놈들만 다시 골라 정성껏 선별하여 손질해야 한다.


정월대보름의 세시풍속은 이때 하는 일과 관련이 많다. 놋다리밟기는 겨울동안 지반이 약해진 흙다리를 집단이 함께 다지던 작업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미야베 미유키의 에도시대 배경 소설에도 이른 봄에 다리를 산책하는 장면이 나오더라. 사람 사는 모습은 비슷한 것 같다. 달집태우기, 쥐불놀이는 논밭을 태우면서 살균, 살충도 하고 잡초를 씨까지 사전 제초해하는 작업이다. 그 해 농사의 풍·흉 점치기는 덤.


봄을 부르는 비가 내리는 우수(2.19)와 새 생명이 깨어나는 경칩(3.6)이 되면 아침 해는 7시 30분에 뜬다. 경칩에는 개구리 뿐 아니라 벌레도 눈을 뜬다. 이때 꽃샘추위가 오면 벌레가 동사한다. 꽃샘추위가 없으면 그 해 해충들이 극성부린다. 꽃샘추위가 짜증나겠지만 여름철 모기, 파리 생각하며 꾹 참자.


본격적인 봄이 시작되는 춘분(3.21)을 지나 청명(4.5)이 오면 겨울의 흔적은 완전히 사라진다. <동국세시기>에 따르면 청명날 나라님이 새 불씨를 전국으로 나눠줬다고 한다.


‘한식’은 묵은 불을 끄고 새 불을 기다리며 하루를 동안 찬밥을 먹는 날이다. 해마다 식목일에는 안타깝게도 연례행사처럼 산불 소식이 전해진다. 이런걸 보면 한식에 찬밥을 먹는 것은 화재를 막기 위한 조상님들의 슬기가 아닐까 싶다.


곡우(4.20)를 마지막으로 봄은 끝나는데, 이때 비로소 모종이 시작된다. 곡우에 비가 오면 그 해 풍년이 든다고 한다. 곡식에게 좋은 비가 온다고 해서 ‘곡우(穀雨)’라고 하는데, 곡우 전에 모종을 사다 심으면 서리 냉해를 입을 수 있다(서리는 곡우가 지나야 완전히 사라진다). 곡우 전에 시장에서 파는 모종들은 대개 하우스용이니 농사 초짜들은 참고 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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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내기의 시작은 망종(6.5)이다. 망종(芒種)은 까끄라기(벼·보리 따위의 낟알 겉껍질에 붙은 수염 동강)가 달린 곡식을 거두거나 심는 절기인데, 망종의 ‘망(芒)’자가 ‘까끄라기 망’이다. 이때 겨울 작물인 밀과 보리는 베고 벼는 모내기 한다. “보리는 익어서 먹고, 볏모는 자라서 심으니 망종이요.”라는 말과 ‘발등에 오줌 싼다’는 속담이 있을 만큼 망종은 농부에겐 1년 중 가장 바쁜 날이다. 옛날에 하늘에서 내리는 비로만 농사를 지을 때는 봄 가뭄이 들면 장마가 시작되는 6월 말 하지에 모내기를 했다. 이를 ‘하지벼’라 부르는 데, 마른장마가 오면 7월 태풍 올 때 모내기를 했다.


여름작물의 마지막 파종 시즌은 하지다. 봄 가뭄이 심할 때는 이렇게 늦게 심기도 했는데, 곡식들은 하지 전에만 심으면 수확할 것이 있다고 했다. 하지는 사람으로 치면 사춘기인데, 하지를 기점으로 여름작물이 육체성장을 끝나고 생식 생장으로 넘어간다. 이 시기에 가로등이 밝으면 곡식들이 알곡을 제대로 맺지 못한다. 사람이나 작물이나 사랑은 밤에 나누자.


가을 농사 시작은 입추다. 한창 더운데 입추라고 하면 화딱지가 난다. 말복도 입추 뒤에 있다. 아직 뜨거운 여름철인데 왜 입추일까? 입추 지나서 해수욕장에 가 본 사람은 안다. 물이 차다. 입추 즈음부터 아침저녁으로 쌀쌀하다. 열대야도 없다. 이때 가을배추, 시금치, 무, 쪽파, 갓을 파종한다. 알타리는 9월 초 추분 때 심어도 된다.


한로(10.8)에는 겨울 작물의 씨를 뿌린다. 밀과 보리는 이때 심어야 검지 크기 정도로 추운 겨울 모낸다. 그래야 버틴다. 너무 작거나 크면 동해를 입는다. 마늘은 입동 전에 심는다.


농사 좀 아는 것처럼 폼을 잡았지만 쥐뿔 모른다. 죄다 글로 배운 거다. 그럴 리 없겠지만 농사에 대해 묻지는 말길.



강화도의 D마을에서는 6년째 정월대보름 축제를 열고 있다. 욕망아줌마는 쥐불놀이를 텔레비전으로만 봤다. 바람은 불지만 햇살이 좋았던 지난 토요일, 가족들과 함께 정월대보름 잔치에 참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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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3시가 되자 D마을 풍물패의 길놀이를 시작으로 축제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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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날리기, 떡메치기, 소원 적기, 팽이치기 같은 전통 놀이마당이 펼쳐지고, 가족 대항 윷놀이 대회도 열렸는데, 우리는 당당히 3위를 차지했다. 상품은 강화섬 쌀 10kg와 잡곡, 온갖 친환경 먹을거리들.


잔치에 음식이 빠질 수 없지. 마을 주민들이 추렴하여 돼지를 잡았다. 무쇠 솥에 푹 삶은 수육과 머리고기 반 내장 반 순대국이 인기다. 내장고기를 못 먹는 나도 가마솥 순대국의 매력에 푹 빠졌다. 참가자들이 직접 떡메를 쳐서 만든 인절미와 장작에 구운 강화 속노랑고구마도 무한 제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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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식사 후 산마을 고등학교 학생들과 마을 분들이 준비한 마당극이 펼쳐졌다. 20년 전 갔던 농활이 떠올랐다. 요즘 대학생들도 농활을 가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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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하이라이트인 쥐불놀이와 달집태우기가 시작된다. 시골 출신 남편은 25년 만에 깡통을 돌리며 제일 신났다. 정월대보름 행사는 달집태우기와 풍물패의 대동놀이로 마무리 되었다. 불구경 싸움구경이 제일 재미있다더니, 이렇게 거대한 불길은 난생 처음이다. 안전한 행사를 위해 강화군 소방공무원님께서 밤늦게까지 고생하셨다.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달은 차고 기울며, 해는 뜨고 진다. 나가면 물러설 때가 반드시 온다. 자연과 문명의 속도는 다르다. 달팽이와 인간의 시간은 다르다. 강물마다 유속도 다르다. 너와 나의 알맞은 때는 다르다.


계절을 가슴에 담는 법을 배웠다. 강화살이의 즐거움이 하나 더 늘었다.




별들의 침묵 - 데이비드 웨이고너


한 백인 인류학자가
어느 날 밤 칼라하리 사막에서
부시맨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자신은 별들의 노랫소리를 들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부시맨들은 그의 말을 믿을 수 없어 했다.
그들은 미소를 지으며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가 농담을 하고 있거나 자신들을 속이고 있다고 여기면서


농사를 지은 적도 없고 사냥할 도구도 변변치 않으며
평생 거의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살아온
두 명의 키 작은 부시맨이
그 인류학자를 모닥불에서 멀리 떨어진 언덕으로 데려가
밤하늘 아래 서서 귀를 기울였다.


그런 다음 한 사람이 속삭이며 물었다.
이제는 별들의 노랫소리가 들리느냐고.
그는 의심스러운 사람이 되고 싶진 않았지만
아무리 해도 들리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부시맨들은 그를 마치 아픈 사람처럼
천천히 모닥불가로 데려간 뒤
고개를 저으며 그에게 말했다.
참으로 안된 일이라고, 참으로 유감이라고.


인류학자는 오히려 자신이 더 유감이었다.
언제부터인가 자신과 자신의 조상들이
듣는 능력을 잃어버린 것에 대해.


류시화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를 받지 않은 것처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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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딴지일보 챙타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