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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11. 08. 화요일
카인


 

딴지 입사 전 독투와 300 블로그에서 내 과거에 대해 직접 거론한 적은 거의 없다. 하지만 댓글을 통해서 정체(?)에 대해 말해본 적은 있다. 본 기자는, 20대를 통째로 한국 언더그라운드 힙합에 갖다 바쳤고, 랩을 한답시고 깝죽대다가 스물아홉에 그만 접어버린 사람 되겠다. 20대를 지불하고 얻은 지식과 경험 덕에 딴지 입사한지 어언 1주가 이제야 지나간다.(이거 참 손익계산서가...)


 

얻은 건 지식과 경험만은 아니다. 많은 친구, 아니, 정정. 친구 '약간' 얻었다. 그 친구 자랑을 좀 해볼까 한다. 본 기자는 무능을 통감하고 음악을 접었지만 그렇지 않은 친구들이 있다.


 

그 친구 중 한 명이 오늘의 주인공이다. 본명 김재천, 예명 XL, 또 다른 이름(also known as, 줄여서 a.k.a.)은 Optical Eyez다. 옵이라고 줄여부르다간 '오빠'로 오인 받을까 두려워 그의 주변에선 본명을 부르거나 엑셀(!)이라고 불러준다.


 

이 남자의 맨땅헤딩 정신, 그리고 짧지만 치열하게 고난을 맞부딪힌 인생 역사의 일부를 소개한다. 꿈을 꾸는 자 혹은 꿈을 꿨던 자에게 보낸다.


 


미안해_더_잘나온_사진이_없다_친구야.jpg


 

본 기자는 2002년에 연애를 하고 있었다 (그게 연애사의 전부는 아니다. 아니라고 아 젠장 아니라니까. 으앙). 그때 만난 여성 또한 인터넷 상에 자기 곡을 올리는 뮤지션 지망이었고, 사실 그걸 교집합으로 만나 손을 맞잡았다. 그딴 연애사에 누가 관심 있다고 어쨌든 그 이야기는 두 사람만의 것이니 듣고자 하면 본 기자에게 술을 많이 사면 된다.


 

재천이, XL은 그 여성의 친구였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 그 여성을 통해 건너 전해듣기는 했지만 서로 얼굴을 보지는 못했다. 그리고 본 기자는 그 여성과 헤어졌고, 우리는 다시 멀어졌다. 몇 년 뒤, 우리는 직접 얼굴을 보게 되었다. 2006년 그가 자기 이름을 걸고 첫 싱글을 냈을 때, 내가 관여한 공연이 열리던 공연장에서 만났다. 서로 통성명을 하는데 이름이 묘하게 낯익은 것. ’저기 혹시’로 시작해서 금새 '반갑다 친구야’가 되었다. 빈말이 아니었다. 우린 정말 서로가 반가웠다. 이름과 그 행태(?)만 전해듣다가 이제서야 만난 동갑 친구.


 


2006년, XL의 싱글 [I.M. Ground]


 

그는 랩퍼였고 동시에 프로듀서이다. 곡도 꽤 잘 만들고 랩도 잘한다. 특히 XL의 캐릭터는 묘했다. 가난하고 힘없는 청춘의 이야기를 하는데 패배주의로 빠지지 않고 특유의 위트를 잃지 않았다. '병신같지만 멋있다'는 말이 놀리는 의미가 아니라 칭찬으로 사용될 수가 있는 캐릭터였다.


 

다음 해에는 7명이 모여 만든 프로젝트 그룹 '7人 ST-ego'의 일원으로 단체 앨범 [Lucky #7]에도 참여한다. 그가 오랜 무명을 털고 조금씩 이름을 알리게 되자 얼마나 기뻤는지. 이후 그가 긴 슬럼프에 빠져 작업의 무한궤도에 들어갔을 때도 난 그를 믿었다. 차곡차곡 작업물을 쌓아가는 그를, 그의 방에 놀러가서 확인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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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당시 내가 그의 방에서 보았던 것은 성실한 슬럼프 탈출 궤도만이 아니었다. 알바와 작업을 병행하며 간신히 먹고 사는 그의 안타까운 생활의 흔적들이 숨겨지지 못하고 혹은 숨을 생각도 없이 드러나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이 당시 내 삶과도 다르지 않아 묘한 동질감과 애수를 느끼기도 했다.


 

취업이라는 단어를 제대로 끌어안기가 점점 힘들어지던 그 시절. 구할 수 있는 알바 자리가 줄어들었고, 그나마 구할 수 있는 일자리는 우리에겐 작업을 할 수 있는 여유를 주지 못하는 직종들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CD를 사야 했고, 악기와 장비를 사야 했다. 때가 되면 위장에 음식도 집어넣어줘야 했다. 나도 그도, 치열하게 살았다.


 

그 치열한 시간 중, XL은 고등학교 때부터 함께 음악의 꿈을 키우며 공부해온 동료이자 친한 형 하나가 결국 음악을 내려놓는 것을 목격한다. 그는 애써 감정 표현을 삼갔고, 내가 그의 몫까지 대신 안타까워 했다.


 

그래도 그는 열심히 작업을 이어갔다. 2009년에는 언더그라운드 알앤비 싱어인 정기고(junggi-go)의 싱글 [NOWARNOCRY]에 'Cream'을 제공했다. 이 곡을 링크 삼아 일본에서까지 그에게 작곡 의뢰가 들어왔다.


 

Opical Eyez 작곡, 정기고의 노래 'Cream'



 



 



 



 



 



 

그리고 그에게 사고가 난다.


 

2010년 1월 28일.


 

정규 앨범의 첫 녹음을 끝마치고 돌아와 잠들었던 그를,


 

화재가 덮쳤다.


 

XL은 전신 화상을 입었다. 그중 30%는 3도 화상이었다. 자다가 화재를 인지하고 불길을 뚫고 뛰쳐나와 그는 간신히 살 수 있었다. 방에서 현관문까지가 수십 광년은 되는 것 같았다고, 그는 지금 술회한다. XL은 그 수십 광년을 지나 현관문을 나와서 몇 걸음 걷지 못하고 쓰러졌다.


 

몇 번의 수술이 있었다. 재활 치료와 피부 이식 치료를 시작할 수 있는 상태까지 가는 데만 2개월 가까이 소요되었다. 한동안은 의식조차 없이 식물인간처럼 누워있기만 해야 했다. 치료비만 수천만 원이 나왔다. 그리고 XL의 집안사정은 그닥 좋지 못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심각한 손실은 따로 있었다. 불길에 그만 그의 모든 악기와 장비가 망가져버렸고 나아가 10년 동안 쌓아뒀던 작업물이 모두 날아가버렸다. 당시 그의 첫 정규 앨범이 작업 중이었고 녹음 작업만 남겨두고 있던 시점이었다. 화재가 난 시점은 그의 두 번째 곡 녹음의 진행 직전이었다. 이미 녹음한 한 곡을 제외하고 나머지를 모두 날려버린 상황이었다.


 

날아간 자료에는 그동안 모아왔던 음악적 라이브러리도 있었다. 이로 인해 XL은 이후 작업에서 샘플링 작법을 사용하기가 힘들어진다. 샘플로 쓸 재료들도 날아가버렸으니까.


 

자기의 모든 자산을 잃었고, 수천만 원의 치료비가 얹혀져 버렸다.


 

거기다 집주인은 화재의 원인, 그러니까 책임을 세입자인 이들에게 떠넘기려고까지 했다.


 

XL은 참으로 착한 친구다. 그는 앨범 하나 내지 않고도 이미 업계에서 많은 친구들을 만들었다. 힙합하는 사람들 대다수가, 심지어 그를 잘 모르는 사람까지도 그의 밝고 좋은 성격을 좋아했다. 그리고 그 사람들 모두가 십시일반 서로의 돈을 추렴하기 시작했다. XL이 아직 병상에서 제대로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을 때다. 모금 공연을 열자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XL의 누님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조영남-최유라의 라디오 방송 [지금은 라디오 시대]에 사연을 올렸다. 악기도 자료도 모두 잃고 누워있는 뮤지션의 이야기는 사람들을 감동시켰고 모금이 되었다. 누님의 방송 모금과 지인들의 추렴한 돈을 보태 부채는 최소한으로 막을 수 있었다.


 

그를 병문안 갔을 때, 같이 간 사람 모두 가슴 속에서 뭔가가 살짝 치밀어오르는 느낌을 받았다. 이 쾌활한 남자는 이제 간신히 다인용 병실로 내려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병실의 다른 환자들과 꽤 많이 친해졌다. 온몸의 피부에서 진물이 배어나오는 고통도, 자다가 수시로 깨어나게 하는 악몽의 기억도, 결코 쉽게 여길 수 없을 10년 간의 작업물이 사라진 손해도, 담담하게 말하면서 웃어보였다. 그는 그 최악의 상황에서도 자신의 위트와 웃음을 잃지 않았다.


 

문병을 간 우리까지도 그 웃음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함께 농담하게 만드는, 전염성 있는 웃음이었다.


 


물론 이렇게까지 이상하게 웃진 않...(미안해_친구야_2.jpg)


 

피부이식 수술과 피부재생 치료를 몇 번씩 받고 난 후에야 그는 간신히 퇴원한다. 물론 병원에 더 있어야 했겠지만 그 이상의 치료비를 감당할 수 없어서였으리라. 당시 그가 농담조로 얘기했다.


 

- 야, 나 몇 개월간은 햇빛도 보면 안 된다? 자외선 피해야 된대.


- 그럼 밤에만 다녀야 하는 것이냐.


- ㅇㅇ 나 완전 뱀파이어 될 듯 ㅋㅋㅋㅋㅋ


- 그럼 이제 XL the DayBreaker인 건가


- 오 그거 멋지다!



 

결코 위트를 잃지 않았던 이 남자는 다시 작업을 시작한다. 정규 앨범으로 기획했지만 이제는 사정상 비정규 모음집인 부틀렉(bootleg) 앨범으로 내야 했다. 그는 묵묵히 지인들에게 보내줬던 데모 버전을 모아 그걸 기조로 다시 곡을 만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가 결코 잊을 수 없을 기억, 불 한가운데에서 삶을 향해 뛰쳐나와야 했던 그 날의 기억 또한 새롭게 형상화된다. [20100128 TTFT]라는 제목의 곡으로. TTFT는, Through The Fire Tape의 약자다. 샤카 칸(Chaka Khan)의 'Through The Fire' 제목을 인용했다.


 

그렇게 2011년 6월 28일 그의 부틀렉 앨범 [Wreckage]가 발매된다.


 


사진은 앨범 자켓, 사진의 손은 XL 본인의 손


앨범에 사고를 소재로 한 감상적인 이야기는 많지 않았다. 본인은 이에 대해 사고를 말한 앨범이 아니라 사고 전후를 말한 앨범이라고 대답한다. 사고 전의 트랙은 유머와 위트를 섞은, 내가 알던 내 친구 XL 그대로였다. 그리고 사고 후의 트랙에서 그는 조금 더 강해져있었다. 더 강한 어법, 더 강한 메시지, 더 강한 사운드. 죽음을 보았던, 현관문까지의 몇 걸음으로 그는 분명 더 단단해졌다.


 

그는 아직 전신에 사고 당시의 흉터가 남아있다. 그를 대할 때마다 그가 겪었을 고통이 떠오르며 가슴 한켠이 아릿해진다. 1년이 넘은 지금도 그의 피부는 완전히 회복되지는 못하고 있다. 그는 언젠간 될 것이라 말하고, 나 역시도 그러기를 기원한다.


 

그리고 이제 본 기자는 그에게 미안해야 한다. 얼마 전, 그러니까 2011년 8월 27일, 그는 결혼했고 본 기자는 부끄럽게도 그의 결혼식에 가질 못했다. XL의 병상을 지키며 눈물과 정성으로 그를 간호했던 연인과 백년가약을 맺는 기쁜 자리에 가서 진심으로 축하해줬어야 했는데도.


 

그래서 이 글을 축의금과 축하 박수 대신으로 하고 싶다. 먼 듯 가까운 듯 10년의 세월 동안 같은 장르의 음악 주변을 함께 공전했던 친구에게, 이제서야 본 기자는 '너를 존경한다'고 말해야 한다. 맨정신에, XL 얼굴 보고서는 절대 못할 말이니 이 소개 기사로 대신하려 한다. 그래야 그간 같은 가난과 같은 꿈을 공유했던 친구의 삶에 비추어 나 자신도 부끄럽지 않을 것이다.


 

그러자면 많은 독자 제위들이 XL a.k.a. Optical Eyez를 아셔야 하고 그의 앨범 판매고가 조금이라도 올라가야-_-만 한다. 그래야 축의금 대신은 될 것 아닌가.


 

내 친구 중 이 사람이 가장 아름답다.


 

내 친구, XL이자 Optical Eyez, 김재천을 자랑한다.


 

(음원을 구하기가 어려워 음악 대신 '20100128 TTFT'의 가사 전문을 아래에 인용해둔다.)


 

14. 20100128 TTFT (feat. Soulman)


 

Verse 1)
읽혀지지 않을 시
불리지 못할 노래
불을 당겨 그 의미를 애도해
내 20대의 반, 아니 그 전부
오늘밤도 내 공책과 펜을 비추는 전구
차마 숨을 불어넣지 못했던 무던한 일상 힘없이 여린 선택
내 몸에 상처처럼 씌여진 그 치기어린 날들을 위로하는 기념일
삶은 때론 숨찬 오르막길
같은 병실 안 옆칸 누군가를 또 보낸 아침
잔인하게 흐드러진 아름다운 빛을 보며 느꼈어
생명을 갈구하는 핏줄
나 또는 타인, 신을 말하는 입술이 부르는 노래, 누구를 위해서 바치는지.
....말없는 미소
서투른 걸음마, 가슴 속 아껴둔 기도.


 

HOOK - Soulman)
가슴속에 묻어둔 얘기를
할 수 없을것 같던 노래를
너와 나누고 싶어
Through The Fire


 

Verse 2)
내 두려움은 그 밤차를 타고 떠나 아무도 모르는 곳에 도착했을 거야.
내게 수많은 물음표를 남긴 곳.
이제 내가 찍는 느낌표와 마침표.
항상 곁에 없을때에 느껴지는 소중함.
삶의 소소한 숨소리-
움켜쥐는 손아귀. 왜 더 가지려 애썼을까?
그들은 뭘 위해 투쟁하고 외쳤을까?
깊은 밤을 더욱 짙게 만들었던 병실의 적막.
그대가 밀어주던 휠체어. 칸막이 사이 아버지의 손.
형이 사온 스펀지공. 불러주던 샤카 칸 'TTF'...
빌릴 수 있던 어깨, 수십 개의 진통제.
피 고인 치료실조차 아름답게 기억해.
...우린 나눠갖지.
시간은 쌓이고, 추억들은 보석이 되어가지.


 

Hook)


 

Outro)
쓰여진 문신, 가슴엔 불씨
왜 사냐 묻거들랑 그저 웃지.



 

트위터 및 페이스북 : @OpricalEyezXL


hiphopplaya.com 의 김대형 PD가 진행한 인터뷰 보기(클릭)


rhythmer.net 의 필진 남성훈 씨가 작성한 리뷰 보기(클릭)


Optical Eyez의 공개 음악 웹페이지(클릭)


 

[Wrecage] 앨범의 홍보용 PV


Optical Eyez a.k.a. XL - Interlude #2 : Unofficial Re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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