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졌다. 이세돌이 또 졌다. 1국의 패배는 상대를 얕본 것도 있고, 시험해보기도 해서 이해했지만, 2국은 아니었다. 시종일관 진지하게 두었으며, 결코 방심하지 않았다. 그런데 졌다.


오늘의 패배를 요약하면 이렇게밖에 쓸 수 없다.



‘그날 인간은 떠올렸다. 놈들에게 지배당하던 공포를, 새장 속에 갇혀있던 굴욕을.’



너무나 충격적인 패배다. 놀라운 것은 이세돌 사범이 실수한 수가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점에 있다. 오히려 실수는 알파고가 많이 했는데 바둑은 이세돌 사범이 불리한,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되는 경우의 연속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왜 진지 모른다는 것이다. 이는 3국에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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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바둑tv>


알파고와 인간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두터움에 대한 해석이다. 고수와 하수의 차이는 무엇인가? 두터움과 뒷맛에 대한 이해도다. 두터움이란 무엇이며, 뒷맛이란 무엇인가? 두터움이란 세력이라는 미지의 영역을 집으로 환산할 때 어느 정도의 가치가 있느냐를 판단하는 것이다. 이는 수치화하기 어렵다. 그래서 고수들은 대략 몇 집 정도라고 말한다. 그리고 고수일수록 해석이 정확하다. 뒷맛이란 무엇인가? 뒷맛은 앞으로 바둑이 어떻게 될지 모르기에 여지를 남겨놓는 거다. 다양성이 많아질수록 계산할 게 많아진다. 그리고 고수일수록 이런 뒷맛을 잘 활용한다.


그런데 알파고는 두터움을 계산해버리고 뒷맛을 남기지 않는다. 두터움을 정확하게 수치화한다는 것은 신의 영역이다. 그런데 그것을 정확히 계산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알파고에게 실리와 세력은 의미가 없다. 모두 수치화되기 때문이다. 뒷맛도 없다. 미래를 계산해버리기 때문에 현재의 최선의 수를 두는 것이다.



알파고의 기풍


알파고의 기풍은 무엇일까? 1국만 하더라도 이세돌의 시험을 잘 견디고 이긴 느낌이라면 2국은 오히려 알파고가 이세돌을 시험해보는 느낌이다. 예전에 바둑인끼리 한 이야기가 있다. 세계 최강의 기사는 어떤 기풍일까? 결론을 말하자면 어떤 기풍이기보다는 키메라처럼 기사들의 장점을 모아서 합치면 최강이 되지 않을까? 이런 얘기로 중론이 모아졌다. 포석은 세계 최고의 스피드를 자랑하는 조훈현 9단. 감각은 이상감각(이상한 감각이 아니라 이상적인 감각)의 후지사와 슈꼬 9단(초반 50수까지는 세계최강을 자부했고, 사실이다), 중반 공격력은 유창혁 9단, 운영과 끝내기 계산력은 이창호 9단, 불리할 때 판을 흔드는 건 이세돌 9단. 이 사람들의 장점을 모두 합치면 세계최강이 아닐까? 이런 생각을 했다.


그런데 오늘 바둑을 보며 느낀 알파고는 후지사와의 감각과 한 번만 참는 이창호. 그리고 완벽한 수읽기의 컴퓨터를 합친 느낌이다.


헌터X헌터의 개미왕 메르헨과 헌터협회 회장 네테로의 대결을 보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역할이 바뀌었다. 알파고가 네테로고 메르헨이 이세돌 같았다. 대신 네테로가 압도적으로 이긴 기분이다. 백식관음을 쓰는 메르헨 같은 느낌이다. 모든 경우의 수를 대비하는 것 같았다.



승부사에게 감정은 거추장스러울 뿐


바둑을 둘 때 기분 좋은 모양. 좋은 흐름. 즐거운 형세. 이런 식으로 표현한다. 이는 계산으로 정확하게 몇 집이 유리한지는 모르지만 감각적으로 좋은 모양이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반대로 기분 나쁜 모양, 더러운 모양, 찝찝하다 이런 표현도 있다. 집으로 얼마나 안 좋은지는 모르지만 불리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컴퓨터에게는 그런 게 없다. 그저 누가 몇 집 유리할 뿐이다. 하지만 인간은 기분 좋은 흐름을 두어서 낙관하기도 하고, 반대로 찝찝한 상황이어서 비관한다. 이는 승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또한 컴퓨터는 상대의 감정을 생각하지 않는다. 오로지 반상에서 결과만을 가지고 판단한다. 진정한 반전무인이다. 하지만 사람은 미묘하다. 기세라는 용어가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그만큼 컴퓨터에 비해 냉정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세돌은 이창호가 전성기 때 상대들이 느낀 감정의 몇 배를 느꼈을 것이다.


이제 기보를 보며 패인을 분석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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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고가 과연 기계인가? 이런 의문이 들게 하는 수다. 대부분 하변을 받는 게 정수다. 이세돌의 장점을 기존 관념에 얽매이지 않는 파격으로 보는데 알파고가 더 파격적인 인간보다 오히려 더 인간적인 수를 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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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바둑 최대의 미스테리다. 정말 알파고에게 물어보고 싶은 수다. 도대체 왜 여기를 두었느냐? 아무 때나 선수로 돌 수 있는 곳을 왜 지금 두었는지 정말 의문이다. 그런데 환장하는 것은 이 수가 결과적으로는 나쁘지 않은 수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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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수도 보통은 낮게 4칸 벌린다. 그런데 높게 둔다는 것은 알파고가 우리와 두터움에 대한 해석이 다르다고밖에 볼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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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하이라이트다. 이 수에 다들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필자는 이 수에서 후지사와 슈꼬의 향기를 느꼈다. 이상감각. 괴물로 불리며 자유분방한 기풍과 선이 굵은 바둑을 선보였던 희대의 천재 후자사와 슈꼬 9단. 그가 두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수다. 언뜻 보면 이상한데 백이 반발하기가 쉽지 않다. 이 모양에서 여기를 둘 수 있는 프로는 없다. 아마추어도 하급자 레벨에서나 두는 수다. 그런데 막상 돌이 놓이니 막막하다.


확실한 건 알파고가 우리보다 더 자유분방한 사고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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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번 사람들을 놀라게 한 수다. 이 수야말로 알파고가 바둑을 부분이 아닌 전체적으로 본다는 것을 입증해주는 수다. 사람은 상변 침입에 어떻게 받을지 반응하는 게 우선이다. 그런데 알파고는 그런 고정관념이 없는 것이다. 가볍게 응수타진을 하려 둔 수 같은데 흑이 이렇게 연결을 해버리니 백도 방치할 수가 없는 것이다. 또한 지금까지 백이 잘못 둔 수는 없는 것 같은데 바둑이 불리해 보인다. 알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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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수도 놀랍다. 마치 전성기의 이창호를 보는 것 같다.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는 것이 아니라, 두들겨 보고 안 건너는 이창호의 기풍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 수로 “이겼습니다.”를 선언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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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날카로운 수다. 필자가 알파고의 기풍에 한 번만 참는 이창호라고 쓴 이유가 바로 이 수 때문이었다. 이창호는 유리할 때 절대 이런 수를 두지 않는다. 오히려 이런 수는 이세돌의 날카로운 비수 같은 한 방이라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아주 정확하게 상대의 아픈 곳을 찌른 수다. 이게 컴퓨터라고? 이런 탄사가 절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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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변을 받아도 되는데 굳이 중앙을 잡는다. 부분적으로 손해여도 우하귀의 흑이 불확실해지는 게 싫어서 확실하게 처리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우상귀의 패가 나는데, 이것은 좀 더 검토해봐야 알 것 같다. 알파고의 특징은 최대한 단순화 시켜서 경우의 수를 최소로 하는 데 있다. 최선의 수가 아니라, 최고로 안전한 수를 둔다. 그게 알파고의 무서움이다.


이후 진행이 조금 더 되었다. 잔끝내기를 남기고 이세돌이 돌을 던졌지만 계가해보면 2~3집 반 정도 불리했고 뒤집을 수는 없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에 이세돌의 패배가 확정된 것일까?


모르겠다. 초반에 이미 이기기 힘든 바둑이었을 수도 있다. 알파고의 바둑은 마치 영웅문 시리즈 중 신조협려의 현철중검과 같다. 중검은 날이 없고 끝이 둥글다. 그러나 베지 못 하는 것이 없다. 언뜻 보기엔 둔해 보이나 지극히 현묘한 경지를 알파고가 보여주는 것 같다. 날이 없기에 한없이 날카로워질 수 있고, 둥글기에 모날 일이 없다. 대현은 대우라. 현자는 어리석어 보인다. 알파고의 바둑은 심해처럼 두텁다. 그 끝을 알 수 없다. 그리고 그 밑바닥을 보려고 하면 미증유의 압력에 눌려 버린다.



총평


알파고는 이제까지 본 적이 없는 스타일의 기사다. 컴퓨터가 아닌 기사로 대접을 하고 싶다. 그의 기풍은 심해와 같다. 두텁다. 그리고 함부로 들여다볼 수 없다. 1국은 목까지 물이 차오르는 불안감이라면 2국은 심해 속에 갇힌 느낌이다. 깊은 어둠 속을 걷는 기분이다. 어둠은 빛의 부재. 순간 순간 반짝이는 건 빛인지 환영인지 분간이 안 간다. 그렇게 심연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심해를 걷고 있어 피가 나는 건지 물인지도 알 수가 없다. 그저 한 걸음, 한 걸음 전진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끝나고 보니 계속 같은 자리를 맴돌았다.



3국을 승리하기 위한 전략


3국에 대한 대비책은 솔직히 모르겠다. 확실한 건 어제의 알파고와 오늘의 알파고는 달랐다. 그리고 3국의 알파고는 다르다. 우리가 승리를 위해 바칠 수 있는 것은 피와 땀과 눈물뿐.


그래도 이겨야 하기에 대책을 생각해본다.


1. 진(眞)반전무인


진정한 반전무인의 자세로 두는 것이다. 상대는 없다고 생각하고 몰아일체가 되어 두는 것이다. 이래서 지면 실력이 약해서 지는 걸 어떡하겠나. 그런데 2국을 보니 쉽지 않을 것이다.


2. 접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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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인식 능력 밖을 계산하는 컴퓨터를 이길려면 방법은 하나. 바로 강신술이다. 신내림을 받아 컴퓨터가 계산할 수 없는 수를 두는 것이다. 그러나 바둑의 신이 있는지 모르겠다. 어설픈 신이 오면 만방으로 깨질 것이다. 사이가 있으나, 이세돌 어록에 보면 ‘사이 약해요.’ 이런 얘기가 있다. 와도 안 될 것이다. 참고로 한국에는 노사초 국수라는 분이 계시나 매우 약하다.


3. EMP


알파고가 있는 영국의 상공에 EMP탄을 터트려서 바보 만든 뒤에 시간승을 하는 것이다. 현재 이 방법이 가장 현실적으로 본다.



현재 필자가 멘붕이라 이런 대책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혹 이세돌 사범이 알파고를 이길 수 있는 아이디어를 갖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댓글로 달아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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