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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상반기 가장 핫한 자산은 원유다. 가격이 미쳐 날뛰고 있기 때문이다. 


2014년에 100불까지 하던 게 작년 10월에 50불 언저리로 고점을 한 번 찍고 추락을 거듭, 올해 2월에는 27불까지 떨어졌다. 그리고 다시 채 한 달이 되지않아 40%이상 올라 지금은 40불대에 거래된다. 같은 기간에 내 월급이 거의 수평을 유지하고 있는 걸 감안하면 놀라운 등락이 아닌가. 이렇게 하나의 자산이 미친 듯이 롤러코스터를 타니까, 원유가 오르면 주가도 오르는 등의 현상이 관측되고 있다. 원유 관련 이슈를 함 디벼볼 좋은 기회라 하겠다.


(사실 이 쩐의 전쟁에 나도 돈을 담궈둔 상태라, 요새 내 기분이 원유가격 등락에 연동되어있다. 자연스레 원유관련 뉴스를 꾸준히 모니터링하고 있다보니 해드릴 얘기가 쌓이게 된 셈이다.)

 

미리 덧붙이자면, 나는 투자 쪽 전문가도 아니고, 파생상품에 관해선 문외한이다. 내 말 듣고 혹해서 투자하시면개털 되실 수 있다. (그리고 아마 나도 파산해 있겠다.) 또, 내가 최초에 매입한 시점에서 원유가격은 상당히 많이 오른 상태인 데다가 가격이 여전히 미친 듯이 날뛰고 있기 때문에, 절대로 투자를 권하지 않는다. 그냥 싸움구경 재밌게 하시라는 취지에서 좀 디벼드리는 것임을 염두에 두고 읽어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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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원유와 같은 원자재는 기본적으로 경기에 민감하다. 경기가 살아나야, 공장도 돌리고, 공장을 돌려야 그만큼 원자재를 가져다 쓰니까. 이런 수요적인 관점에서만 본다면, 원유 가격의 변화를 아주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다. 2014년 때 정점을 찍었던 중국경제가, 작년에 하반기에 아작이 났으니, 원유가격이 이 시기에 폭락한 게 바로 설명이 된다. 세계의 공장 중국이 멈춰서니까, 세계 경제 전반이 얼어붙고(대표적으로 독일도 굉장히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러다보니 이 나라들로 흘러가던 원유가 남아돌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최근 20불대까지 떨어졌던 유가가 다시 40불대까지 올라간 데에는, 미국 고용지표 호조와 낮은 기름 가격으로 인한 에너지 소비의 일시적인 증가 등이 있었다. '수요 개선의 여지가 조금 보이니까 다시 원유가격이 회복되었다'고도 볼 수 있는 상황이란 거다.

 

그런데, 이렇게 일반적인 수요의 논리만으로는 미친 듯한 가격의 널뛰기가 채 반도 설명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같은 시기에 동네 치킨값이 세계 경제 위기로 인해 절반까지 떨어졌었나? 보통은 매출이 좀 줄어도, 가격을 갑자기 이 정도로 떨어뜨리고 난리를 벌이진 않는다. 그냥 좀 덜 팔고 버티기에 들어감 되니까.


근데 재미있는 건, 원유가격의 폭락을 전후로 오히려 석유생산량은 꾸준히 증가해왔다는 점이다. 이코노미스트지에 실린 원유가격 및 생산 그래프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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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Economist.com


2013, 2014년을 전후로 가파르게 증가하기 시작하던 원유생산량은, 원유가격이 바닥을 기고 있는 지금까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를 않는다. 왜 이런 막장스런 상황이 벌어진 걸까.

 

이걸 이해하려면, 석유산업의 특징을 먼저 설명해야 된다. 모든 원자재 생산이 그렇듯이, 원유를 뽑아내기 위해서는, 초장에 돈이 졸라 많이 든다. 일단 엄청나게 돈을 들여서, 석유가 있는 곳을 탐사해야 되고, 가능성 있는 곳을 복권 긁는 심정으로 땅 주인한테 돈 주고 산 다음 엄청 뭘 짓고 해야 기름이 나온다. 그것도 물론 운이 좋을 경우에. 근데 또 이렇게 한번 콸콸 나오기 시작하면, 몇 년은 꾸준히 아주 낮은 추가비용만 지불하면 안정적으로 원유가 생산된다. 스타크래프트에서 가스 캘 때 리파이너리 하나 지어놓으면 SCV가 쭉쭉 뽑아내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래서 보통 에너지 기업들은, 지을 때 초반에 빚을 엄청 지고, 계속 꾸준히 원유를 뽑아내서 이 빚을 갚는 식으로 운영된다. 한번 투자를 시작해놓으면 몇 년간은 빼도 박도 못하는 위험한 투자라는 소리다.

 

그런데 2010년대 초중반에 석유 가격이 100불을 넘어가자, 전 세계적으로 원유 생산을 무조건적으로 늘리기 위한 대대적인 탐사와 도전이 벌어진다. Fracking 공법의 활용은 그 이전에 뽑아내지 못했던 셰일층 아래의 석유를 뽑아내게 해주었고, 이는 미국 내에 셰일가스 개발 붐으로 이어졌다(맷 데이먼이 나오는 Promised Land라는 영화가 이와 관련된 내용이다). 


2014년 10월에, 미국에서만 무려 1609개의 유전에서 석유가 생산되기에 이른다. 비슷한 시기, 캐나다도 오일샌드라는 아주 비싼 방식을 통해서 석유를 짜내기 시작했고 (그리고 우리 MB가카는 이런 기업 등을 프리미엄까지 얹어주고 인수한 바 있다), 1920년대 첫 탐사 이후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석유개발을 금지한 알래스카 일부 지역에도 탐사계획이 공론화되었으며, M&A로 몸집을 불린 에너지기업들은 북극과 같은 극지로 더 멀리 나가서 석유를 뽑아내기 위한 계획을 앞다투어 내놓는다.

 

그러자, 여기에 원조 산유국 사우디가 참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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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그래프를 함 보자. 원유 생산에 필요한 단위 비용에 대한 리서치다. 보믄, 알겠지만 산유국도 다 같은 산유국이 아니다. 미국 애들이 Fracking을 하고, 캐나다가 오일샌드를 녹여서 졸라 비싸고 빡세게 석유를 뽑아내지만, 사실 이 원조 산유국은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싼 값에 기름을 뽑아낼 능력이 충분하다.

 

하지만, 이들은 공급과잉이 발생하면 원윳값이 떨어질 걸 알고 있으므로, 국제 공인 카르텔인 OPEC을 만들어서 석유생산량을 조절해왔다. 그런데 감히, 돈도 많이 드는 주제에! 미국, 캐나다 같은 나라에서 석윳값 좀 올랐다고 미친 듯이 석유를 뽑아내니, OPEC의 맹주라 할 수 있는 사우디로써는 상당히 빡치는 일이 아닐 수가 없는 거다. 열심히 일궈놓은 석유판을 흐리는 다국적 에너지기업들을 손봐줄 필요가 있었다. 과잉 생산에 동참해서, 석윳값을 폭락시켜서라도 미국 에너지 기업들을 도산시키고, 추가 유전개발을 막으리라.

 

사우디를 비롯한 산유국이 작심하고 석유를 뽑아내면서, 본격적인 치킨 게임이 벌어졌다. 과잉생산, 가격 덤핑을 통해 수많은 공급자가 도산하면, 살아남은 경쟁자들이 시장 지분을 나눠 갖기 위한 경쟁이다.

 

생산 단가가 낮은 사우디의 손쉬운 승리로 끝날 것 같았던 이 싸움은, 석유바닥이 2년째 바닥을 기는데도 꾸준히 지속 돼 오고 있다. 그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첫째로, 미국 기업들이 엄청 잘 버티고 있다. 맨날 임직원에게 성과급 잔치나 벌이고, 아주 비싼 비용으로 석유를 뽑아내던 샌님을 연상시키던 미국 에너지기업들이, 베어그릴스 급의 생존력을 보여주고 있다. 석유 가격이 떨어지기 시작하기도 전에 인원을 대규모 감축하고, 신규 사업들을 취소 및 축소하는 식으로 무려 80%정도 비용을 감소시켰다. 그래도 상황이 넉넉한 건 절대 아니지만, 부족한 건 빚을 늘리기보다 주식을 새로 찍어내면서 꾸역꾸역 저유가시대를 버텨나가고 있다.

 

둘째로, 예상보다 세계경기가 빨리 떨어져 버린 것이다. 가뜩이나 과잉공급으로 시장에 석유가 남아도는데, 중국 등의 세계 경제가 어려워지니 이렇게 석윳값이 내려가도 이걸 소비해줄 수요가 쉽게 안 생기는 것이다. 막 예전처럼 기름값 떨어졌다고 사람들이 집채만 한 SUV 끌고 다니고 이러진 않는 상황이다. 위에서 말한 수요 둔화가 공급 과잉과 더해지니 원유의 가격은 바닥을 뚫고 지하로 가기 시작했다.

 

셋째로, 달러화가 같은 시기에 강해졌다. 거의 모든 원자재는 달러로 결제되는데, 이 시기 유일하게 미국만 경기가 좋아졌고, 그로 인해 작년 12월에는 미국에서 금리 인상이 일어났다. 이런 금리 인상은 보통 미국 달러화의 강세를 불러일으키는 데다가(지난 글 함 복습하시라), 가뜩이나 세계 경제 위기설이 나오자 너 나 할 것 없이 안전자산인 달러로 몰리면서 달러가 졸라 쎄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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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달러가 1000원일 때, 원유 1배럴이 100불이라면, 우리는 이걸 10만 원을 주면 살 수 있었다. 근데 원유가격이 50불로 떨어졌다고 쳐보자. 이제 5만 원만 주면 우리는 1배럴을 살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만약 원달러 환율이 1,300원이라면? 우리는 6만 5천원을 줘야 1배럴을 살 수 있다. 즉, 원유 가격하락효과가 달러 상승분 (1만 5천 원)만큼 상쇄되어 날아가 버리는 효과가 벌어진 것이다.

 

이게 수요 쪽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지만, 공급자인 산유국에도 엄청 큰 영향을 미쳤는데, 특히 러시아를 함 보면 이런 현상을 고대로 목격하실 수 있다. 러시아의 통화인 루블은 한 1달러당 30루블 즈음하던 게 올초에는 84루블까지 확 뛰었다. 원유보다 루블화가 더 심하게 폭망을 해버리니까, 러시아에서 석유 뽑아내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아무리 원유의 달러 값이 떨어져도, 무조건 원유를 많이 뽑아내는 게 이득이 돼버린 거다. 대부분의 산유국이 원유가격 하락으로 화폐가치가 폭락하면서, 상대적으로 석유를 더 뽑아내는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여기서 연동되어 넷째로, 산유국 대부분은 국가재정에서 석유생산에 의지하는 비용이 매 우크다. 다들 알겠지만, 살림살이라는 게 늘리는 건 쉬워도 줄이는 건 졸라 빡세지 않은가. 고유가 시대 때, 산업기반 안 닦고 흥청망청 써버리는데 씀씀이가 맞춰져 버린 산유국들은 엄청난 재정적자를 겪고 있다. 원유가격 하락의 원흉으로 종종 지목되던 사우디도 재정적자를 20%가량 겪으면서 피눈물을 흘리고 있다. 원윳값이 내려간 마당에, 이 빚을 메꾸고 살아남으려면, 열심히 더 생산하는 수밖에 없다.

 

마지막 다섯번째로, 하필 이 시기에 이란이 제재에서 풀려났다. 최저의 원유 생산비용을 자랑하며, 한때 사우디랑 맞장뜨던 이란이 서방으로부터의 제재에서 풀려나면서, 외국에서 투자를 받아 석유산업 재건을 하겠다고 나섰다. 얘덜은 몇 년간 제재 속에 살면서 굶주렸기 때문에, 뭔짓을 해서라도 생산량 늘릴 거다. 비슷한 시기에 내전으로 고통받았던 쿠르드족도 석유 증산을 고려하고 있고 하여튼 이곳저곳에서 석유 생산뉴스가 쏟아지고 있다.

 

하여 원유시장은 지금 혼돈의 카오스가 열려버린 상황이다. 미국 전역에는 석유를 가득 실은 채 짱박힌 화물열차가 널부러져 있고, 각국의 해안에는 기름값이 오르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유조선이 정박해있다. BBC에 따르면, 점차 많은 배들이 수에즈 운하를 안 거치고 아시아로 향하고 있다고 한다. 기름값도 떨어져서 희망봉을 찍는 우회 루트를 거쳐도 그다지 돈도 많이 안 들고(사실 수에즈 운하 통과료도 매년 꾸준히 인상되어와서 꽤 비싸다), 일찍 목적지 가봐야 판매처도 마땅치가않으니, 선주들이 화물선들을 뺑뺑이 돌리고 있다고 한다. 덕분에 지금 우리는 지금 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규모의 원유 비축분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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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는 하도 상황이 혼란스러우니 사우디랑 러시아가 앞장서서 OPEC 회의를 통해 석유 동결을 논의한다는 떡밥을 꾸준히 풀고는 있는데, 아까 말했듯이 아직 배가 고픈 이란은 조까라는 식으로 응수하며 초를 치고 있고, 재정적자에 허덕이는 산유국들이 쉽게 동결에 응해줄지도 모르겠다. 동결도 이렇게 힘드니, 감산에 대한 논의는 아직 요원하다.

 

현재 미국도 생산 중인 유전개수는 무려 386개까지 떨어졌지만(이는 1940년대 수준이다), 혁신의 나라답게 더 적은 유전을 알뜰하게 짜내는 기술을 적용해서 절대 생산량 자체는 그다지 떨어지지 않고 있다. 하여 매일같이 원유가격은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하며 월미도 바이킹을 타고 있다.

 

또 슬그머니 유가가 조금 오르니 미국 에너지기업도 좀 버틸 여지가 생겼고, 미국 기업의 상황이 나아졌다는 건, 사우디 입장으로서는 치킨게임을 좀 더 지속할 명분을 얻은 셈이 되었다. 돈이 궁해 결속력이 약해진 OPEC, 어떻게든 이 상황을 버티려는 미국 에너지기업들과 이들을 노리는 사우디, 이 와중에 스멀스멀 생산량을 늘리는 이란, 멈춰버린 중국의 공장 등의 여러가지 이슈가 짬뽕이 되어서 지금의 원유가격 롤러코스터를 만든 것이다. 

 

지난  2014년도의 원윳값이 100불로 고점을 찍을 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가 유가 200불 간다고 희대에 개드립을 날린 바 있다. 이후 원유가격은 바닥을 뚫고 들어갔고, 예측실패로 비참해진 골드만삭스는 이후 원유에 있어서는 무조건 비관론으로 전향해서 폭락설을 꾸준히 제기하는 중이었다. 그렇게 3월 11일날, 골드만삭스가 토라지고 난 후 처음으로 원유 적정가격을 25불~45불 사이로 상향 전망했다. 이는, 기존 예측가격인 20불~45불에서 5불가량 늘어난 전망치이고, 골드만삭스가 올해 들어 처음으로 전망치를 개선시킨 수치이다. 그덕에 11날 에너지기업과 원유의 가격은 2016년 들어 최고점을 찍었다.

 

골드만삭스도 헛발질해온 원유시장의 혼란이 서서히 가라앉는 지금, 원유가격은 앞으로 올라갈 것인가, 아니면 사우디나 이란의 역습으로 재추락을 할 것인가. 그리고 이 투기판 속의 진정한 승자는 누가 될 것인가. 참으로 흥미진진한 싸움이 원유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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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딴지일보 퍼그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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