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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선화되면서 바닷길 근처 철로가 폐쇄되는 바람에 그 운치가 사라졌지만 어렸을 적만 해도 부전역에서 출발해서 해운대역 지나 송정 거쳐 일광 등으로 나가 경주로 이어지던 동해남부선은 기차 창문 밖으로 보이는 바다를 즐길 수 있는 몇 안 되는 철도였다. 데이트하기에는 어린 나이에 부산을 떠났기로 그 열차에서 어여쁜 여학생과 나란히 앉아 너 하나 나 하나 별 둘 나 둘을 못 부른 게 아쉽기는 하지만, 교회 수련회나 기타 등등의 이유로 동해남부선을 탔을 때 만났던 해변의 기찻길은 내 기억 속 화랑에 넉넉히 걸려 있다.


그 기찻길 가운데 기장역이 있었다. 근처의 한 시골 교회에 수련회를 가기 위해 내렸던 기장역사는 무척 낡았지만 고풍스러웠다. 전국에서 모기들이 지독하기로 유명한 곳이 포항 경주 모기라는데 점차 그쪽에 근접해 가서 그런지 그곳 모기도 장난이 아니었다. 그렇게 모기에게 뜯기기도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지 싶다. 무슨 피부병이라도 걸린 것처럼 온몸에 반점투성이였으니까. 그 몸을 소금물(?)에 소독이라도 할 수 있었던 것이 수련회 끝나고 갔던 진하 해수욕장이었다. 거기서 신나게 물장구를 치는데 엄청나게 우람한 건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게 고리 원자력 발전소였다.


원자력 발전소의 이름이 ‘고리’여서 왜 그런가 궁금했는데 알고 보니 행정 구역이 ‘고리’였다. 왕년에는 경남이었겠으나 지금은 부산광역시 기장군 고리. 오랫동안 해운대에 붙어 있던 기장 지역구가 이번 선거에서 독립했는데 이 독립 선거구에 정의당 간판으로 출마한 이가 이창우 후보다. 고리 원자력 발전소 주변 바닷물을 담수화해서 공급한다는 부산시의 계획에 반대운동이 한창인 곳인데 여기에 ‘진박’을 표방한, 그리고 원자력 발전소 옹호론자인 윤상직 전 산자부 장관이 새누리 낙하산을 타고 내려왔다. 이창우 후보는 그 ‘저격수’로 나선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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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우 후보는 페친이지만 지금까지 얼굴을 마주한 건 두세 번 정도였다. 그러니 딱히 잘 안다고 내세울 것은 없고 설사 그가 저 돌 같은 ‘나라 팔아먹어도 새누리’의 경상도 표심을 뚫고 여의도에 나타난다 해도 내게는 별반 좋을 일이 없다. 하지만 나는 그를 여의도에서 보고 싶다. 거듭 그를 잘 모른다 고백하거니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연히 아는 체 선전을 기원하게 되는 것은 내가 그의 만화의 팬이기 때문이다.


재주 많은 사람을 부러워하는 건 본능이다. 손재주가 가위손과 곰손이 반반씩인 나로서는 내가 원하는 모습을 쓱쓱 펜이나 물감으로 그려대면 거짓말같이 종이 위에 재연되는 사람들이 무척 부러웠다. 장담컨대 내가 그림에 재질이 있었다면 만화가를 반드시 지망했을 것이다. 언젠가 말을 그렸는데 어느 아저씨가 왜 소에 뿔이 없냐는 말을 듣고 좌절할 때까지 꽤 오랫동안 만화(?)를 그려댔었으니까.


각설하고 이창우의 만화는 장편 스토리 만화보다는 (물론 이것도 있다) 한컷짜리에 다큐를 담는 만평 느낌 쪽이 강하다. 만화 한 컷과 함께 유려한 글로 한국 진보정당사의 일단을 끈질기게 그려낸 시리즈를 읽다 보면 이 양반의 내공이 심후함을 어렵지 않게 알게 된다. 또 그가 얼마나 성실하고 꿋꿋하게 진보정당의 한 귀퉁이에서 사람들을 묶어 세우고, 분연히 싸우고, 날카로운 눈으로 지켜보았는가를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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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이창우의 한 컷 만화, 진보정당 STORY



몇 년 전 그는 페이스북에서 자신의 재능을 살릴 겸, 사람들의 캐리커처를 그리는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많은 페친들이 신청을 했고 상당한 스피드로 작품(?)이 만들어져 공개됐다. 나도 그 중의 하나였다. 알다시피 캐리커처는 의외로 만만한 작업이 아니다. 그리기 쉬울 것 같지만 사람의 골격의 특징뿐 아니라 순간의 표정, 드러나는 성정까지도 묘사돼야 하기에 초상화와는 완전히 다른 작업이다. 정교하지 않으나 섬세해야 하고 오랜 관찰을 넘어 번득이는 직관을 요하는 일이다. 그런데 이창우 후보의 캐리커처는 그 어려움을 훌륭하게 넘어서고 있었다. 한 번도 그를 만나지 않고 자신의 캐리커처를 의뢰했던 후배는 이렇게 얘기했었다. “신기하네요. 내가 이런 표정을 잘 짓는 걸 어떻게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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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이창우의 화실



그건 사람에 대한 이해력일 것이다. 나 역시 경상도 사투리가 입에 밴 사람으로 3당 합당 이후 그 지역에서 진보 정당 운동을 한다는 것이 어느 정도로 힘든 일인지를 안다. 그는 그 가시밭길에서 이름난 마당발이었고 그의 모교의 광장 이름처럼 ‘넉넉한 터’였다고 들었다. “이 지역 운동판에서 이창우를 모르면 간첩. 아니 간첩도 이창우는 안다. 막 탈북한 탈북자만 모를 거다.” 언젠가 술자리에서 들은 농담이었다. 나는 그 사실의 진위를 모른다. 하지만 숱한 사람들의 감탄과 웃음을 자아냈던 그의 캐리커처에서 그 말의 진실성 몇 조각을 주워 담을 뿐이다.


얼마 전 정의당 내에서 노무현 관련 만화 때문에 허벌나게 씹히는 걸 봤다. 나는 “노동이란 말 쓰지 마라!”고 절규하는 일부 정의당 사람들에게 한없는 경멸을 표하고 노무현은 좋아하나 ‘노빠’는 별로 친하고 싶지 않으나 그들에게 이창우 후보를 위해서 머리 긁으며 헤헤거릴 요량이 있다.


“이창우 후보 괜찮지 않십니까. 확실하게 밀어 주이소 마. ”


그를 여의도에서 만났으면 좋겠다. 여의도에는 괜찮은 포차가 많다.






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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