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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행대(에코톤 ecotone)는 생태학적 긴장의 공간이다. 이행대는 숲과 들의 두 지대를 잇는 다리처럼 경계지대의 식물들로 하여금 서로 교류하게 한다.

 

이런 두 생활공동체 사이에 놓인 이행대는 두 생태계에 새로운 자극을 준다.

 

이행대는 그 자체로 특별한 가능성을 띤 독자적인 생활공간이기도 하다.

 

이행대는 울창한 숲에서도 열린 들판에서도 편안함을 느끼지 못하는 생물들의 서식처가 된다.

 

그리하여 이행대에서는 간혹 희귀한 난초라든가 나비 같은 특별한 동물도 볼 수 있다.

 

경계지대는 생명이 전개되기에 유리한 출발점이다.

 

경계를 이루는 두 지대의 자원을 활용할 수 있으니 말이다. 경계지대에서는 물질이 교환된다.

  

나탈리 크납 <불확실한 날들의 철학>


  

어디에 사냐는 물음에 '강화도'라고 대답하면 상대방은 '응?' 하는 표정을 짓고 다시 묻는다.

 

"전원생활 하세요?"

 

"아뇨, 읍민인데요."

 

편견을 합리화 하려고 사는 동네와 주거 형태를 들먹이는 저급한 행위는 결사반대지만, 인정할 건 인정하자. 의, 식, 주는 사람을 닮기 마련이란 것.

 

40년 도시 아줌마와 '강화도'는 이질적인 조합이다. 질문자의 말문이 막히는 건 당연하다. 그의 잘못이 아니다. 미안하다. 후련하게 궁금증을 해결해 주지 못한 나여서.

 

전편에서도 언급했지만, 귀촌했냐고 물으면 난처하다. 그러던 차에 신문에서 <불확실한 날들의 철학>의 서평을 읽었다. 즉시 인터*크에서 책을 샀다. 걱정 마시라. 강화도가 아무리 섬이어도 배송비가 추가되는 일부 산간도서지역은 아니다. 무료배송, 로켓배송 혜택 모두 누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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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행대'는 강화살이의 키워드다. 들과 숲의 경계지대처럼 도시 너머 그 어떤 구역을 찾고 있는 중이다. 이행대의 삶이 모두에게 복음을 선사 하는 건 아닐 것이다. 이행대는 새로운 에너지의 공간이지만, 불쾌한 놀라움이 가득한 혼돈일 수도 있다. 자고로 광야에서 외치는 인간은 예언자 아니면 똘아이였다.

 

인생의 과도기도 일종의 이행대다. 과도기는 익숙한 삶의 규칙이 무력화 되는 시기지만, 전혀 다른 패러다임이 전개되기도 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욕이 튀어 나오지만, 정신건강을 위해 믿고 싶다. 헬조선도 과도기라고. 된장.)

 

겨울과 봄이 오락가락 한다. 지긋지긋해진 코트와 내복을 다시 꺼냈다. 마음은 진작 꽃피는 춘삼월인데 현실은 여전히 혹독하다. 우아하게 '이행대' 어쩌고 했지만, 매서운 추위 앞에서는 오만 짜증이 밀려온다. '과도기'고 나발이고 간에, 빨리 봄바람이나 불어달란 말이다. 온 가족이 감기에 걸렸다. 변화의 부작용이다.

 

풍물시장 옆 강화인삼농협에 갔다. 단박 약이 필요했다. 강화도에는 인삼판매처가 여럿이다. 지난 설에 명절 선물을 준비 하다가 강화 인삼을 추천 받았는데 결과는 대만족. 어른 손가락 두 개 굵기의 수삼 한 근을 착한 가격에 구매했다. 5천원 추가하면 예쁘게 포장도 해 주신다. 백화점 선물세트가 부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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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만 잘하면 사장님이 한 봉지에 2천 원인 인삼 크런키 초콜릿도 주신다. 인삼 초콜릿 얕보지 마라. 맛있다. 우리집 미취학 어린이도 가끔 찾는다. 주말에 2천 원 들고 가서 인삼 초콜릿 한 봉다리 달랑 사본 적 있나? 커플지옥 극장에서 혼자 영화보기 난이도는 된다. 

 

구입한 수삼을 손질하려는데 방법을 알 수 없다. 검색 신공을 발휘해 칫솔로 닦는 법을 배웠다. 꿀팁을 전수해준 이름 모를 블로거에게 감사드린다.

 

깨끗이 씻은 수삼을 잘게 자른 후 사과와 우유를 넣고 믹서에 갈아 마신다. 또한 풍물시장에서 산 토종닭에 수삼 세 뿌리를 넣고 닭죽을 끓였다. 건강해진 느낌적인 느낌이다.

 

순무는 강화도 이사 와서 처음 구경했다. 강화도 어느 식당이든 나박김치 형태의 순무김치가 반찬으로 나온다. 강화 순무는 속노랑 고구마와 더불어 풍물시장의 스테디셀러다. 대게 한 무더기에 만 원이다. 솔직히 초딩 내 입맛에는 별로다. 김치 꼭다리는 질색인데, 식감이 딱 그렇다. 순무는 식물 분류학상 무 보다는 배추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게다가 밴댕이 젓갈로 간을 하는데, 물컹물컹, 쌉싸름, 살짝 비린 향이 오묘하다. 라면이랑 어울린다는데 사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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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강화군농업기술센터

 

그런데, 암 예방에 좋단다. 고민에 빠졌다. 맛을 포기 하고 건강을 따를 것인가. 도전 정신을 발휘하여 피클을 만들어 봤다. 나쁘지 않다. 식감 문제는 양배추를 첨가하여 얼렁뚱땅 해결했다.

 

전편에 출연한 강화도 10년차 Y여사에게 하소연했다. 순무김치는 어른들의 세계야. 난 아직 어린가봐. Y여사가 그랬다. 강화살이 연차가 쌓여야 순무랑 친해질 수 있어. Y여사도 이사 첫해는 도통 순무 맛을 알 수 없었지만, 한 해 한 해 지날수록 순무 김치의 매력에 눈을 떴단다. 이제는 순무 김치 없으면 밥을 못 먹을 지경이라고.

 

잘 담은 순무 김치는 깍두기 못지않게 씹는 맛이 좋다. 아마도 나는 제대로 익은 순무 김치를 못 만난 모양이다. 순무 김치는 국물이 일품인데, 돼지 젓국 갈비와 환상의 커플이다.

 

젓국갈비는 호박, 배춧속, 버섯 등 각종 채소에 돼지갈비, 두부, 감자를 넣고 맑게 끓인 탕이다. 생*정보통 같은 프로그램에서 가끔 소개 되는데, 나는 듣도 보도 못했다. '젓국'이란 이름처럼 새우젓으로 간을 하고 청량고추를 넣어 시원하고 칼칼하다. 관광지 홍보차 급조한 향토 음식인 줄 알았더니, 예로부터 강화 사람들이 즐겼던 토종 보양식이다. 유래가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니 나름 족보가 후덜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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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인천관광공사 블로그

 

몽골이 고려를 침략하자 당시 왕이었던 고종은 강화도로 도읍지를 옮긴다. 2016년 강화군민이 약 6만 명인데 강화천도기에 개경에서 이주한 인구가 30만 명이었다. 젓국갈비는 그 난리통에 태어난다. 갑작스럽게 밀어 닥친 군식구들로 강화도의 식재료는 거덜이 난다. 평생 궁 안에서 호의호식 했던 왕은 나라를 말아먹고도 반찬 투정이다. 그래서 에라, 모르겠다. 온갖 좋은 것 다 때려 넣어 왕에게 진상한 요리가 젓국갈비다.

 

그러고 보니 임진왜란 때 선조에게 발탁되어 삼일천하를 누린 도루묵이 떠오른다. 예나 지금이나 나라님은 국가 위기 상황에도 내 입이 최고다.

 

강화 5일장은 2일과 7일이다. 예전에는 지역마다 5일 장이 있었다는데, 이제는 풍물시장만 장이 선다.

 

어쩌다 주말과 장이 겹치면 헬게이트가 열린다. 그래도 방문할 가치는 충분하다. 강화도로 나들이 계획을 잡았다면 풍물시장도 꼭 코스에 추가하시라. (자세한 건 홈페이지를 참조 하시면 된다.)

 

강화는 섬이라, 해산물 가격이 싸다. 우리 식구는 주로 가까운 풍물시장을 이용하는데, 외포리 젓갈시장도 괜찮다고 한다. 다만 풍물시장이든 외포리든 외지사람들은 현지인들보다는 가격 흥정에서 불리할 수 있다.

 

지난 겨울은 풍물시장에서 구입한 2만 원짜리 숭어회 한 접시에 온 가족이 행복했다. 강화 숭어는 임금님 수랏상에 진상 되었을 정도로 유명하다. 12월부터 2월까지가 제철인데, 강화도 인근에서 많이 잡힌다. 숭어회 뜨고 남은 뼈는 매운탕거리로 사용하지 않는다. 맛이 없다. 

 

매운탕이 생각나는 날은 우럭 회다. 인심 좋은 사장님은 매운탕 재료에 조개, 새우, 미더덕을 서비스로 넣어 주신다.

 

풍물시장의 자연산굴은 아는 사람들만 아는 고급 정보다. '굴'하면 대부분 남해를 떠올리겠지만, 강화에도 굴이 난다. 지난주에 외포리 갯바위에서 뭔가를 채취하는 아주머니들을 봤다. 여쭤 보니 굴을 따는 중이셨다. 외지로 나갈 양은 아니어서 일부는 외포리 젓갈시장에서 팔고, 나머지는 풍물시장으로 간다. 알은 작아도 감칠맛이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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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물시장 2층 식당가의 인기스타는 밴댕이 초무침이지만, 개인적으로 안 좋아하는 음식이라 패스한다. 밴댕이는 죄가 없다. 돌은 편식주의자 나에게 던져라.

 

풍물시장 1층 민물장어 구이도 유명한데, 가격 땜에 아직 그 분을 영접하지 못했다. 입 안의 황홀경을 경험해본 용자는 댓글로 체험 수기 부탁한다.

 

진짜 고수들이 코웃음 칠 타이밍이다. 강화도 몇 달 산 주제에 잘난 척은... 그래서 Y여사에게 물었다. 강화도에서 잘 먹고 잘 사는 법.

 

먼저 배 주인과 친해질 것. 최소한 선주의 지인이라도 알아둘 것. 그러면 느닷없이 의문의 전화벨 소리가 울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물건은 준비 됐다. 접선 시간은 오전 10시. 장소는 신작로 점방. 비밀 유지 엄수. 이상."

 

꽃게, 낙지, 가무락조개... 공지된 장소와 시간이 되자 빈 바께스를 양손에 든 수상한 무리가 모인다. 새벽 조업에서 잡은 싱싱한 해산물 거래가 시작 되자마자 장이 파한다.

 

다리 한두 개 떨어진 꽃게를 몇 바께스 사면 그날 저녁은 꽃게찜 파티가 열린다. 남은 게로는 양념 게장, 간장 게장을 만들어 1마리씩 냉동실에 얼려 두었다가 반찬으로 꺼내 먹는다.

 

낙지는 워낙 귀해 1가구당 서너 마리만 구입 가능하다. 그래도 낙지볶음도 하고 연포탕도 끓이면 온 가족이 포식한다. 가무락 조개는 백합의 한 종류인데 강화도 10년차 Y씨 가족도 어쩌다 밥상에 올릴 수 있는 식재료다. 가을부터 봄까지 잡히는데, 언제 먹을 수 있을지 기약이 없다.

 

가무락 조개는 초무침도 맛있고, 구이도 맛있고, 탕도 맛있고, 부침개도 맛있고, 라면(!)에 넣으면 특히 맛있고... 하여간 다 맛있단다. 나도 한 번 먹고 싶다. 가무락 조개. 쓰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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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일러 편에서도 등장한 속노랑 고구마는 순무와 함께 강화도 방문객이라면 반드시 사야 하는 필수 아이템이다. 강화도 전역 어디에서나 판매하지만, 강화 사람들은 '찌끄미'라고 하는 상처 난 B급 고구마를 찾는다. 만 평 이상 고구마를 재배하는 농민들은 기계로 고구마를 수확하는데, 이 과정에서 미처 캐지 못했거나 흠이 생긴 고구마는 출하가 어렵다. 고구마 농사가 끝난 밭에 가서 "찌끄미 있어요?" 라고 물으면 와서 마음껏 가져가라고 손짓 하신다. 아는 동네 어르신들은 10kg에 만 원만 받기도 하신다. 그 분들도 남은 고구마를 얼른 처리 하는 게 낫기 때문이다. 


'찌끄미' 땡처리 후에도 고구마가 남으면 녹말가루로 만들어 풍물시장에 내놓는다. 녹말가루 만들기는 어머이(어머니의 강화사투리)들의 몫이다. '섬 여자는 부지런하다'는데, 강화 어머이들 보니 딱 그렇다. 일 년 내내 쉬는 날이 없으시다.

 

강화 섬쌀, 강화 속노랑 고구마, 강화 인삼... 거친 간척지와 해풍을 이겨낸 강화 어머이, 아부지들의 땀의 결실이다. 


오늘도 풍성한 식탁을 만들어 주신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

 


 

Y여사의 꿀팁 1.

 

강화 섬쌀 맛있는 건 다 알지? 집에서 밥을 하면, 그 맛이 안 날 거야. 이유는 '물'이지. 


강화 섬쌀은, 강화물로 지을 때 가장 맛있어. 지하수나 약수여야 해. 강화도 수돗물도 소용 없어. 강화도만 그런 게 아니야. 이천 쌀, 철원 쌀, 김제 쌀... 다 마찬가지야. 그 고장물로 조리해야 제대로 된 밥맛을 알 수 있어.

 


Y여사의 꿀팁 2.

 

이번 주는 냉이가 피크야. 냉이가 끝나면 쑥이 올라오고. 바야흐로 진짜 봄날이지.


가끔 외지 사람들이 놀러 왔다가 논두렁 밭두렁 냉이랑 쑥을 막 캐는데, 먼발치에서 농민 분들이 눈만 껌뻑이며 이렇게 중얼거리셔.


"벨나다.. 농약 친 밭에서 매이 캐고 그탄다."

(농약 많이 친 밭에서 냉이 캐고 있는 것을 비꼬는 강화도 사투리.)


원래 사유지 산나물은 채취하면 안 되지만, 농민 분들이 그렇게 야박하진 않으셔. 그래도 남의 논, 밭에서 뭔가를 캘 때는, 마을 분들에게 승낙 받는 게 예의지 싶어. 허락 받으면 살짝 물어봐. '저 밭은 괜찮아요?' 농약 많이 친 밭은 피하는 게 옳아.

 


마지막 덧붙임.

 

강화 인삼 막걸리가 빠져서 섭섭한 분 있겠다. 걱정 마시라. 주(酒)님은 소중하니까. 특별판으로 가려 한다. 


강화도에서 잘 먹고 잘사는 법 후편은 막걸리 특집이다. 기대 해주실.


투 비 컨티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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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딴지일보 퍼그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