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그간 딴지일보의 외모 상향평준화를 책임져온 내게 미모는 훈장이라기보다는 시지포스의 돌 같은 것이었다. 지금껏 그 무엇보다 먼저 미모로 평가받고 싶었던 것은 어디까지나 운명의 엄중함을 받아들였기 때문이지, 다른 사심은 없었다.

마침내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언제가 마지막이었을지 모르는 기지개를 켜려 했다. 그러나 휴식의 빈자리는 실존적 고뇌에 점령당하고 말았다.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탈모가 최인훈의 <광장>에 나오는 흰 손처럼 내 삶에 엄습했다.


각박한 외모지상주의의 시대에 제3의 젠더라 불려 마땅한 탈모인이 된 후 숱한 불면의 밤을 보냈다. 그러나 베개 위에 고이 영면한 모발의 모습에 고뇌하는 아침을 맞으며 나는 인문학적 탈모인으로 거듭났다. 망국의 비극이 범부를 독립투사로 만들듯, 인간은 탈모에 직면했을 때 철학자로 변모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본격탈모방송]안물어봐도 알려주는 남얘기’를 시작하게 된 것은 거울을 보며 성찰한 당연한 귀결이다. <안물어봐도 알려주는 남얘기>, 줄여서 <안알남>은 의심의 여지를 허용치 않는 고품격 시사 교양방송이다.


KakaoTalk_20160317_164122459.jpg


대체 교양과 인문학을 들려주는 일이 탈모인이 된 것과 무슨 관계인지 이해하지 못할 분들도 있으리라. 나는 처절한 사유의 끝에서 인류의 사상적 발전이 탈모에 의해 추동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진정한 교양인은 죄다 탈모인들이다. 아래의 인물들이 내 고찰의 반박할 수 없는 논거가 될 것이다.


소크라테스.jpg
자신의 탈모를 받아들인 후 ‘너 자신을 알라’고 일갈한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jpg
풍성족 이단아 플라톤을 거쳐 소크라테스의 가치를 회복한 아리스토텔레스.

수줍게 드리운 얼마 남지 않은 앞머리에서 지혜로 빛나는

소크라테스의 그것을 넘어서지 않으려는 겸손이 느껴진다.


칸트1.jpg
웅장한 맥도널드형 M자를 자랑하는 임마누엘 칸트.

과연 칸트 이전의 모든 서양철학은 그에게로 흘러들었고, 칸트 이후의 모든 철학은 그에게서 나왔다.


헤겔1.jpg
프리드리히 헤겔. 플라톤에서 시작된 서양 관념론의 완성자.


마르스크1.png
턱수염 두피 이식수술이 없던 시대에 내던져진 ‘거꾸로 선 헤겔’ 칼 마르크스.


haidekeo.gif
모(毛)물(物)자체는 알 수도 없고, 관심도 없다.’ 마르틴 하이데거.


푸코1.png
<감시와 처벌>, <감옥의 역사>로 포스트모더니즘을 견인한 미셸 푸코.


동양사상사에도 이러한 전통은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었다.


공자1.png
진행형 탈모가 확실시되는 공자


맹자1.jpg
동아시아 혁명사상의 비조(鼻祖) 맹자


이제 그들이 탈모의 고통으로부터 존재론적 사유를 이끌어냈음을 의심할 자 감히 누구인가. 그러나 동양사상사는 고고학적 차원에서는 비극이다. 근대에 이르기까지 지속된 상투와 변발 때문에 탈모를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동양사(史)의 사상적 단절을 보여주는 안타까운 일면이다.


이런 전차로, IT사업에 인문학적 소양이 요구되는 시대가 오자 스티브 잡스와 같은 인물이 출현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스티브 잡스.jpg


이렇게 보면 탈모를 지적 축복이라고 오인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역사엔 탈모의 고뇌를 치열한 사유가 아닌 폭력으로 해결한 낙오자도 있음을 좌시하지 말아야 한다.


전두환.jpg


탈모란 지혜의 뮤즈가 아니다. 고통 속에서 철학을 꽃피워내는 것은 오롯이 그 자신의 몫이다. 나 역시 그 가시밭길 위에 서 있기에 잘 안다. 이제 최소한의 소양을 가진 독자라면 <안알남>의 심오한 인문학적 토대를 부정할 수 없으리라. 그러나 아직도 내가 탈모로 인해 고뇌하는 지식인이 되었음을 의심하는 이들에게 나의 사상적 진보를 조금 맛보여주도록 하겠다.


야구팬이라면 김재박 감독이 제시한 DTD이론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


dtd.jpg


“Down team is Down.”


대담한 콩글리시에서 감지할 수 있듯 전위적 이론이었으나, 이제는 LG 트윈스의 비밀번호 입력을 통해 귀납적으로 증명된 물리적 법칙이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고개를 갸우뚱거리지 않을 수 없다.


재박.jpg


김재박은 탈모가 아니다. 나는 한국프로야구를 관통하는 물리학적 법칙이 고작 비탈모인에 의해 발견될 수 없음을 간파했다. 김재박의 DTD는 탈모의 제1 물리법칙을 모방했을 뿐 아니라 이름까지 표절한 아류에 불과했다.


합성1.png
Down Teol is Down. 빠질 털은 빠진다.

글자가 조금 이상해 보이는 것은 기분 탓이다.


합성2.jpg
본 기자의 DTD법칙 발견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는 공중파 뉴스.

화면이 조금 이상해 보이는 것은 기분 탓이다.


그렇다.


적어도 두피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한 한, 빠질 털은 반드시 빠진다. 나 역시 두피를 가리기 위해 수많은 돈과 시간을 썼지만 'DTD(down teol is down)'법칙을 벗어나지는 못했다. 인간의 삶이란 결국 상실의 연속이란 말인가! 저 위대한 철학자들은 유한한 삶 안에서 영원불변한 진리를 구축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제 알겠는가? 왜 내게 방송에 담고도 남을 교양이 함양되었는지를.


하지만 달관의 경지가 멀어서일까. 나는 아직 운명에의 순응을 거부하고 갖은 트리트먼트를 전전하며 저 비정한 두피 사막화에 저항하고 있다. 또한 인문학적 시사 교양 방송을 만들기 위해 과감히 적과의 동침을 결행하기도 했다. 함께 진행하는 자는 오만한 헤어스타일을 과시하는 풍성족 추장 겸 문화평론가 이동규다. (모발기득권과 타협했다는 이유로 변절을 의심하는 독자들도 일부 있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모발독점세력을 향한 나의 적개심엔 변함이 없으며, 여전히 수북청년단에 대한 심대한 타격을 도모하고 있음을 밝혀둔다.) 나의 결기에 하늘도 감읍한 덕인지 의문의 미녀를 섭외하기도 하였다.


따지고 보면 모든 교양은 ‘남 얘기’다. 교양이 되는 남 얘기를 안 물어봐도 알려준다. 인문학적 탈모방송, 아니 사실은 탈모적 인문학 방송 <안알남>은 청취자의 발모를 기원한다. 하지만 내게도 그랬듯이 여러분들에게도 탈모는 한밤중의 암살자처럼 소리 없이 다가온다. 미리 <안알남>을 듣는다면 미래의 불행에 대처할 수 있는 인문학적 소양이 생기지 말라는 보장이 아주 없지는 않다.



 

photo_2016-03-23_19-29-08 - 복사본.jpg


팟빵 : <안물어봐도 알려주는 남얘기>
아이튠즈 : <안물어봐도 알려주는 남얘기>






필독

트위터: @field_dog


편집: 딴지일보 챙타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