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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전 새벽에 온 한겨레신문을 뒤적이다가 화들짝 놀랐던 기억......현직 검사가 쓰는 수사받는 요령이었나......하여간 기함을 하고 봤던 기억이 난다. 기사의 내용은 이미 새까맣게 됐으나 기사를 보면서 들었던 생각은 세월이 가도 그 선명함이 바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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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검사가 이래도 돼? 와! 이 검사 잘리겠다. 와! 대한민국 좋아졌다." 읽으면서 '와와와' 소리를 서너 번 냈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기실 내용은 별것이 아니었다. 기실 검사도 아무리 영감이래 봐야 대한민국 국록 먹는 공무원이고 대한민국의 모든 국록은 세금으로부터 나오는 거고 고용주는 4천만분의 1일망정 나도 아닌가 말이다. 피고용주가 고용주에게 고용주의 권리를 설명해 주는 것이 무엇이 대단한가! 이렇게 말하기야 쉽지만, 당시로는 내용조차 와 와 와 소리를 내고 읽을 만큼 충격적이었다.


"수사받을 때 아무것도 하지 말라!.......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말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억울함을 밝혀야 하지 않겠는가. 설사 죄를 지은 것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조금이라도 유리한 점을 찾아내서 수사에 대응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당신은 이미 파멸로 이끄는 길에 한 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수사에는 밀행성의 원칙이 있어서 진행 상황을 비밀로 하게 되어 있다.


공개가 원칙인 재판과는 달리 수사를 받는 피의자는 충분한 정보도 없이 어둠 속에서 헤매야 하는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섣불리 행동하면 상처를 입는다. 가만히 있으면서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현명한 태도다. 그러므로 기다리고 또 기다려라. 스스로 만든 함정에 빠지는 것만은 피하라. 상황을 파악한 이후에도 수사에 대응할 충분한 시간과 기회가 있다."


아마 동료 검사들에게는 욕을 장히 먹었을 것이다. 왜 그러냐 하면 당시 나는 시사 프로그램 PD를 하고 있었는데 술자리에서 이 검사의 말을 좀 바꿔서 이렇게 선언해 볼까 농담했다가 그러면 안 돼요~ 난리가 났기 때문에 짐작해 볼 수 있다.


"(언론사로부터 나쁜 일로) 취재받을 때 아무 말도 하지 마라.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것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취재하는 사람들은 '반론권을 드린다'고 하면서 접근하고 또 그에 솔깃하기 쉽다. 하지만 대개 취재하는 사람들은 내가 하는 반론에는 별 관심이 없고 반론 도중에 얼핏 설핏 끼어나오는 그들의 취재방향에 유리한 정황에만 민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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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프로그램 PD나 기자가 이런 식으로 언론 지상에 썼다면 매장까지는 몰라도 지청구 또는 왜곡된 시각으로 언론인을 모독한다는 싸다구에 오른뺨 왼뺨이 부어오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현직 검사가, 피의자들 겁주고 어르고 모욕하고 일면 설득하여 자백을 받아내고 범죄사실을 구성해야 하는 검사가 그런 글을 공개리에 썼다는 것이 얼마나 경악할 만한 일이었겠는가.


그 기사가 실린 아침에 동료에게 던진 농담은 "이 검사 1년 안에 잘리거나 스스로 변호사 개업한다에 만원"이었다. 만약 동료가 대한민국 검찰의 관대함을 믿고 이 내기에 응했더라면 나는 세종대왕을 공짜로 한 분 모셨을 것이다. 그는 1년을 못 가 변호사 개업을 했던 것이다. 이 사실은 훗날 유명해진다. 2012년 대선 정국에서 '안철수 여자 문제 있다더라' 운운하며 불출마 종용 사건을 일으켰던 정준길 변호사가 자기가 문제의 전직 검사와 20년 지기라는 근거를 '개업 축하 공지를 올렸다'는 것으로 들었기 때문이다. 그 개업 일자가 2007년 2월이었다.


어쨌든 이 양반 변호사로 그럭저럭 사시다가 위에서 언급했듯 2012년 대선 정국에서 화제의 인물로 급부상했다. 이때 안철수에 혹했던 인물은 하나둘이 아니고 나 자신 안철수가 단일화 ‘양보’를 선언했을 때 이순신 장군에 비하는 트윗을 하며 “우리에게 아직 12일이 있습니다.”고 환호했던 기억은 얼굴이 벌게질 정도였지만 이 전직 검사 이름하여 금태섭 변호사는 안철수의 최측근으로 활약한다. 그 뒤 일은 많은 사람이 익히 알므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기로 한다.


그런데 그런 그의 과거 때문에 나는 고마운 일이 하나 더 생겼다. 안철수라는 사람의 본질을 파악할만한 정보를 준 것이다. 그의 책 <이기는 야당을 갖고 싶다>를 통해서. 무슨 특별한 사연이 아니라 한 에피소드가 나에게는 직관의 화살로 다가섰을 뿐이지만.


안철수와 함께 두 시간 동안이나 밀담을 나누며 걸은 적이 있다고 했다. “너비가 좁아서 두 사람 정도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정도였고 맞은 편에서 오는 사람이 있으면 피해야 할 때도 있는” 좁은 길이었다. 그런데 그 길에서 안철수는 오른쪽으로 바짝 붙어서 걸었고 맞은 편 쪽에서 오는 사람들 때문에 금태섭은 좀 떨어져서 걸었는데 그곳은 진창이었다. “안 후는 ...자신이 편하자고 일행에게 불편함을 강요하거나 혹은 다른 이유에서라도 누구를 괴롭히는 유형은 전혀 아니다. 안 후보는 단지 내가 불편한 길로 걷고 있는 것을 전혀 몰랐던 것이다. 두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란히 함께 걷는데 옆 사람이 어떤 길을 걷는지 눈치를 못 채는 것은 정말로 인상적이었다.”


한국 사회가 참 봉건적이라는 것을 북한의 대장 동지나 남한의 대통령을 보고 느끼거니와 모시던 ‘주군’을 배신한 사람이라거나 정치적 이념을 바꾸었다고 하여 ‘변절’로 몰아붙일 때는 확실하게 절감하게 된다. 나는 주사파들의 전향을 ‘변절’로 보지 않는다. 수령님에 대한 절개 따위는 애시당초에 작신작신 꺾는 것이 민주주의와 인간에 대한 충절이다. 맹렬 사회주의자였다가 요즘은 이상한 꼴통이 된 뱅모 박성현 같은 이도 ‘변절’자로 부르지 않는다. 생각이 바뀐 것이 왜 변절인가. 아니 변절 자체가 봉건적인 용어인 것을. ‘존영’과 맞먹는 수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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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영이라 불리우는 사진


금태섭 변호사 아니 이제 국회의원 후보이니 금태섭 후보에게도 ‘모시던 주인을 배신’했다는 소리를 내뱉는 소리를 몇 번 들었다. 언젠가 술자리에서 누가 그러기에 한바탕 쏘아 주었다. “아니 그럼 수사받는 방법 쓴 것도 검찰에 대한 배신이고 안철수 계속 따라다니는 게 충절이냐? 시덥잖은 소리하고 있어.”


오히려 나는 그가 안철수 옆에 있을 때 경험으로 아직도 많은 사람이 희망을 두고 있는 안철수의 본질을 적어도 내게는 깨우쳐 준 것이 고맙다. 안철수는 나쁜 사람은 아니지만 뭘 모르는 사람이며 총명한 사람이지만 지혜로운 사람이 아니며 나귀 위에서 도탄에 빠진 세상을 한탄하나 경마 잡는 노비의 배고픔을 아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금태섭 후보는 일화 하나로 깨우쳐 줬던 것이다.


개인적으로 그를 잘 안다고 말하기는 어렵고 그가 좋은 정치인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하고 주먹 불끈 쥐기엔 코가 근질거리지만 나는 그가 이번에 여의도에 입성했으면 좋겠다. 이유는 적어도 그는 갑갑하고 꽉 막힌 조직에 배신(?)할 줄 아는 사람이고, 한 번 들어선 길이 아닐 경우 돌아서되 그 길이 아닌 이유를 설명할 줄 알기 때문이며. 마지막 이유는 추정으로 그의 아들이 주동이 된 듯한 SNS 선거운동팀의 유쾌함 때문이다. 그건 그의 페이스북 @금태섭(링크) 을 들여다보면 아실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우리 정치에 가장 부족한 것 중의 하나가 유머 감각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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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여성 의원이 처칠에게 “당신이 내 남편이라면 찻잔에 독이라도 넣어 죽여 버리고 싶어요!”라고 일갈한 적이 있었다. 한국 같으면 난리가 났을 것이다. 망언이니 극언이니 시정잡배의 무엇이니 살인예비음모니 뭐니 임진왜란이 났을 것이다. 그런데 처칠은 이렇게 대답했다. “그러세요. 의원님이 제 마누라라면 제가 독을 마시고 싶을 것 같아요.” 나는 다른 것은 몰라도 금태섭 후보가 그런 의원이 될 소지는 넉넉하다고 여긴다. 능력이나 소양이나 뭐 그런 건 어차피 다들 드높으신 선량들일 텐데......장점 하나 더 가진 것 훌륭하지 않은가.





[지난 기사]


1 : 부산광역시 기장군, 이창우

2 : 내가 경험한 표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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