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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03. 06. 화요일

기획취재부팀장 죽지 않는 돌고래


 



 


 


2012년 2월 27일 오후 2시 경, 본지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전화를 받은 것은 이용 기자다.


 


‘김규열 선장 사건을 취재했던 기자 분은 지금 다른 취재 때문에 이 건을 맡을 수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 김규열 선장 사건 : 전남 여수 출신의 김규열 선장(52)이 정당한 절차 없이 필리핀에서 마약 소지 혐의로 체포되어 구타, 협박 등의 인권유린을 당하면서 702일 동안 필리핀 마닐라시티 교도소에 불법 감금된 사건. 본지에서 최초로 기사화 했고 현재는 보석 석방되어 필리핀에서 무죄를 증명하기 위한 재판을 진행 중에 있다.>


 


이용 기자는 수 차례 같은 말을 반복한다. 끝나려니 했던 전화는 10분 정도 계속되었고 그는 끝내 난처한 표정으로 내게 전화기를 건넨다.


 


‘김규열 선장 기사를 보고 전화했다. 2011년 9월 16일에 필리핀 여행을 떠났던 나의 아들이 납치됐고 여지껏 생사를 알 수 없다. 납치한 이들은 강도살인범이다. 제발 도와달라.’


 


전화를 한 것은 자신의 아들이 납치되었다고 주장하는 남자다. 간절함과 분노가 전화기 너머로 느껴진다. 나는 ‘이건 저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라고 에둘러 거절했다.


 



 


 


이어지는 기사의 배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어쩌면 연결 고리가 될지도 모를 또 하나의 사건을 소개하고 넘어가자.


 


독자 분들은 2011년 11월 17일에 나갔던 ‘김규열 선장 사건, 비하인드 스토리’를 기억할지 모르겠다. 김규열 선장 사건과 관련해서 기사 상으로 직접 고마움을 전한 인물은 33명, 단체는 6개에 이른다. 하지만 2010년 12월부터 1년에 걸쳐 기사가 나갔던 만큼 이 사건에 관련된 제보자는 그보다 훨씬 많다. 필리핀 현지 사정은 물론, 교도소 환경, 마약과 카지노 사업, 외통부의 현실, 범죄 루트에 대해 다방면의 사람들이 많은 도움을 주었다.


 


마지막 기사에는 그 수백 명 중, 신뢰도가 높은 정보를 제공했던 제보자 한 명이 등장한다. 결정적인 순간에 이상한 말을 꺼냈던 안재우(가명)다.


 


‘교도소 안에서 김규열 선장이 당한 괴롭힘은 교도소 안에서조차 마약을 취급하면서 비열한 방법으로 독점한 탓에 벌어진 일이다. 그가 잡힌 것도 억울한 일이 아니라 뒷세계의 암묵적인 룰을 지키지 않아 작업을 당한 것이다. 김규열 선장이 석방될 경우, 그를 작업한 이들이 그를 살해하기로 했다. 이름을 밝힐 수 없는 6명의 업자들에게 직접 확인한 사실이다.’


 


안재우(가명)는 다른 제보자를 통해 정보를 주던 사람이다. 특히 마약과 관련해서 상당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고 얼굴은 물론, 가족의 신원까지 공개했다. 더욱이 마닐라시티 교도소에서 김규열 선장을 면회까지 한 사람이다. 당시 기사에서 밝혔듯, 이 제보 전후로 나의 밀접한 지인에게 어설픈 동남아 영어를 쓰는 외국인이 수 차례 접촉을 시도한 사실도 있다.


 


그는 왜 그런 말을 했을까? 그에게 그런 정보를 준 사람은 누구일까?


 


 



 


 


얼마 전, 나는 또 다른 제보자를 통해 안재우(가명)가 어떤 사건에 연루되어 억울하게 용의자로 몰려 검거되어 있고 도와줄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겠냐는 전화를 받았다. 도움을 준 사람에 대한 예의는 아니지만 사실 확인이 불가능한 상황이라 편집장님에게 보고를 하지 않았고 나 또한 이렇다 할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며칠이 흘렀을까, 2월 중순 전후로 다음과 같은 기사들이 뉴스에 쏟아졌다.


 



 


2012년 2월 14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벌어진 충남 천안 성환 체육회 회원 납치 사건 관련 기사다. 현지 가이드 최씨와 함께 체육회 회원 4명이 무장괴한들에게 잡혔고 괴한들의 환치기 계좌로 모두 2400만 원을 송금한 뒤에야 풀려난 사건이다.


 


현재까지 밝혀진 사건의 진상은 다음과 같다.


 


무장괴한은 현지 부패 경찰들이었다. 그들은 마약을 발견하는 것처럼 상황을 꾸며 체육회 회원들을 체포했고 피해자인 척한 현지 가이드 최씨는 이 모든 상황을 미리 알고 있었다. 현지 부패경찰과 가이드 최씨가 공범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체육회 회원들이 감금되어 있을 때, 통역을 맡은 ‘톰’이라는 제 3의 인물이 등장한다. 그는 체육회 회원들에게


 


‘필리핀에서 마약 소지 혐의로 걸리면 수 년 간 감옥살이를 해야 합니다. 일단은 돈을 써서 빠져나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라며 중간에서 협상을 맡았고 최종적으로 3천만 원의 합의금을 제시하고 사라졌다.


 


경찰 조사에 의하면 통역을 맡았던 ‘톰’ 은 이들과 한패였으며 한 발 물러서서 상황을 조율하고 설계한 인물이다. ‘톰’은 한국에서 강도상해의 범죄를 저지르고 수배령이 내려지자 2008년 필리핀으로 도피한 인물로 밝혀졌다.


 


충남 천안 성환 체육회 회원 납치 사건을 세팅하고 중간에 통역을 하는 것처럼 연기하며 협상을 주도했던 제 3의 인물 ‘톰’. 그리고 김규열 선장 사건에 지속적으로 고급정보를 제공하다 막상 그가 진짜 석방되려 하자 이를 막으려는 듯한 제보를 했던 안재우(가명).


 



 


그 둘은 동일 인물이다.


 



 


 


마지막 순간에 다른 제보자보다 그를 더 믿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서투른 동남아 영어를 쓰며 지속적으로 접촉을 시도하는 의문의 인물과 내 지인이 만났으면 어떻게 됐을까? 내가 필리핀으로 가서 제보자들을 만났으면 어떻게 됐을까?


 


취재 중에는 이보다 더한 반전들이 많았다. 2010년 12월 24일, 본지에서 처음으로 김규열 선장 관련 기사가 나가고 추적, 탐문을 전문으로 하는 유명한 방송국 프로그램은 물론, 많은 기자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하지만 대부분 무산되었다.


 


독자들은 왜 인권유린을 당하는 김규열 선장에 대해 방송에서 공론화하지 않냐고 항의했지만 그 얽힌 실마리를 쫓아간 사람의 한 명으로써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말할 수 있는 것은 조광현(살인강도 혐의로 5년 간 교도소에 있다가 무죄 판결을 받고 나온 프랑스 외인부대 출신의 예비역 중사. 처음 김규열 선장의 존재를 알게 된 것도 3시간에 걸친 그와의 전화 통화에서였다. 현재 그는 행방불명이다.)사건에서 김규열 선장 사건으로 이어지는 장막 뒤에는, 또는 필리핀 현지에서 일어나는 이와 유사한 사건에는 밖에서 보이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들이 얽혀 있다는 것뿐이다.


 


위와 같은 일들과 개인적인 경험 탓에 나는 납치된 아들을 간절히 찾는 아버지의 전화를 에둘러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내가 섣부른 판단을 하거나 사실 관계를 잘못 파악해 납치 피해자의 가족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나 희망고문을 주는 일이 생긴다면, 나는 그 일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


 


하지만 납치된 지 5개월이 다 되어가는 홍석동씨, 그의 아버지는 내가 어떻게 에둘러 표현해도 전화를 끊지 않았다. 자식을 찾는 아버지의 간절함이 담긴 음성은, 패닉에 빠졌다고 해야할지, 분노에 찼다고 할지, 어떻게 글로 옮겨야 될지 모르겠다.


 


나는 그에게 다시 전화를 하기로 약속한 후, 전화를 끊었다.


 



 


 


 



 


 


강남 고속 터미널에서 청주까지는 약 1시간 40분이 걸린다. 나는 오전 10시 차로 출발하면서 원래 약속한 것과 달리 점심을 먹기 전에 취재부터 했으면 좋겠다는 문자를 보냈다. 홍석동의 아버지는 그러자며 답장을 보냈다.


 


2월 28일, 오전 11시 40분 경에 충북 청주에 도착했고 그와 나는 곧바로 홍석동씨의 어머니가 근무하는 사무실로 향했다.


 


다음의 내용들은 약 3시간에 걸친 인터뷰를 요약한 것이다. 사실 관계는 공공기관의 문서를 통해 재확인했다.


 



 


 


 



 


 


약 178cm의 키에 통통한 편, 쾌활한 성격을 가진 홍석동(81년생). 그는 대학시절부터 호주, 뉴질랜드, 인도 등지로 배낭여행을 즐겼고 2011년 9월에도 휴가차 여행을 준비 중이었다.


 


일주일 남짓의 휴가라 가까운 여행지를 고민하던 그는 항공사에서 일하는 여동생에게 조언을 구했다.


 


2011년 9월 14일, 동생은 싼 비행기표가 나왔다며 오빠에게 필리핀행을 추천했고 그는 동생에게 그곳 치안이 어떻냐고 물었다. 필리핀 마닐라는 세계인들이 즐겨 찾는 관광지이자 한국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동남아 여행지다. 동생은 조금만 조심하면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고 말했고 석동씨는 동생을 통해 5박 6일 일정으로 인천-마닐라행 왕복 티켓을 끊었다.


 



 


그가 탄 비행기는 편명 7C2301, 2011년 9월 16일 20시 20분에 인천에서 출발했고 총 승객수는 119명이었다. 그 비행기를 타고 홍석동씨는 필리핀 마닐라에 도착했다.


 


그리고 여행 4일째인 9월 19일, 오전 11시 30분 경, 석동씨의 어머니는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필리핀에서 술을 먹다 미성년 현지 여자와 실수로 관계를 맺었습니다. 그 가족들이 찾아와 합의금으로 1000만 원을 요구합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아 주세요. 죄송합니다.’


 


석동씨의 전화였다. 이후 석동씨와 어머니 간에 몇 통의 전화가 오간다. 급하게 현금을 구할 수 없었던 어머니는 조금만 깎으면 안 되겠냐고 물었고 석동씨는 원래 1500만 원이었던 것을 겨우 사정해서 합의를 봤기에 더 이상 깎을 수 없다고 했다.


 


어머니는 다시 전화를 걸어 ‘거기서 뽑으면 수수료가 들 텐데 그러면 1000만 원에서 조금 더 부쳐야 하지 않느냐’고 물었고 석동씨는 1000만 원만 부치면 된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그때부터 급하게 현금을 구하러 다녔고 오늘 안으로 1000만 원을 채울 수 없을 듯하자 내일 부치면 안 되겠냐고 다시 전화를 걸었다.


 


‘엄마. 얼른 해결하고 여기서 벗어나고 싶어요. 빨리 입금해 주세요.’


 


어머니는 아들의 ‘벗어나고 싶다’는 말에 혹시 감금되어 있는 게 아니냐고 물었다.


 


‘아니야, 엄마. 여기 사람들 되게 착하고 순해. 그냥 1000만 원만 입금하면 해결 되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어머니는 3시에서 4시 사이에 입금을 완료했다. 5시쯤에 다시 석동씨로부터 전화가 왔다.


 



‘엄마, 잘 해결했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그 기분에 여행을 하겠니? 내일이라도 와라.’


 


석동씨는 비행기표를 알아보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고 저녁 8시 경에 다시 전화가 왔다.


 


‘비행기표를 사려면 80만 원이 필요해요.’


 


어머니는 이미 천만 원을 모으느라 수중에 현금이 없는 상태였다. 현재 날짜는 9월 19일, 그녀는 어차피 21일 돌아오는 왕복행 티켓을 끊고 갔으니 하루만 더 기다렸다가 그 비행기로 오는 게 낫겠다고 석동씨에게 말했다.


 


‘그럼 이틀 동안 숙소에 더 있다가 가죠.’


 


당황스런 상황이 일단락 되자, 그녀는 참았던 감정들이 그제서야 복받쳐 오른 듯, 집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이를 본 석동씨의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자초지종을 물었고 모든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버지는 오후 8시 30분경에 석동씨에게 전화를 걸어 ‘사람이 살면서 실수도 할 수 있다. 엄마한테 잘 말해서 80만 원을 부칠 테니 그냥 빨리 돌아와라.’라는 전화를 남겼다.


 


19일 오후 10시 30분 경, 아버지가 다시 전화를 했을 때, 석동씨의 전화기는 꺼져 있었다. 어머니는 그가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말라고 당부를 했는데 아버지에게서 계속 전화가 오자 일일이 설명하기도 귀찮아 그냥 전화를 꺼놓았다고 생각했다.


 


다음날인 9월 20일, 몇 번이나 전화를 했지만 전화기는 계속 꺼진 상태였다.


 



 


 


석동씨가 타기로 했던 비행기는 22일 새벽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항공사에서 일하는 동생이 출근하여 확인한 결과, 그는 그 비행기를 타지 않았다.


 



 


석동씨의 부모님은 납치를 의심하고 신고했지만 경찰과 영사 측은 ‘카지노에 빠져서 돌아오지 않을 확률이 높다. 돈이 다 떨어지면 돌아올 것이다’라는 쪽으로 초점을 맞추었다. 어머니는 ‘우리 아들은 절대 그럴 아이가 아니다’라고 주장했지만 ‘아들이 집 안에서 보여주는 행동과 집 밖에서 보이는 행동은 다를 수 있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어머니는 석동씨가 월급을 받기 직전에 휴가를 떠나 가진 돈도 별로 없었고 부족한 부분을 메꾸기 위해 자신에게 30만 원을 빌려서 갔다는 점, 수수료 한 푼까지 아끼려는 아들의 성격으로 봤을 때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경찰 측에서 조사한 석동씨의 전화 조회 결과, 그가 어머니에게 전화하기 전, 제 3금융권과 대출회사에 여러 번 전화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 때문에 경찰은 카지노 측과 연관된 사건으로 확신을 더했다.


 


다만 그가 한국이 아닌, 필리핀 현지에서 금융권을 통해 대출을 받으려 했기에 조건이 성립되지 않았고 이러한 요구는 모두 거절된 것으로 확인됐다.


 



 


 


2011년 10월 초순경, 홍석동씨 가족은 대사관에서 보낸 두 장의 사진을 받는다. 어머니가 보낸 1000만 원을 인출한 사람의 뒷모습이 찍힌 CCTV 사진이다. 그 사진 속 남자의 뒷모습은 가족들조차 확실한 판단이 서지 않을 만큼 홍석동씨와 유사했다.


 



 


어머니는 회사 사람들에게 석동씨 사진과 CCTV사진을 같이 보여주면서 동일 인물 같냐고 물어보기까지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다’고 말했다.


 


홍석동씨는 정말 카지노에 빠져 가족들에게 거짓말을 한 것일까.


 



 


 


 



 


 


2011년 10월 1일,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위험한 동행 - 필리핀 관광객 표적 납치’라는 제목의 방송이 나간 바 있다. 이 방송에서는 필리핀을 주무대로 하는 납치단을 심층취재했으며 그들은 모두 한국인으로 밝혀졌다.


 


납치단은 한국에서 혼자 여행하러 온 관광객을 대상으로 현지 사정에 능통한 교민인 척 접근해, 몇 시간, 때로는 며칠 간 신뢰를 쌓으며 상황을 노리다 돌변한다. 그리고 납치한 이들의 신상정보를 파악해 거액을 대출하거나 피해자를 협박하여 한국의 가족들에게 돈을 송금 받고 자취를 감춘다.


 



 


그들은 피해자가 본국에 돌아가서 신고를 할 수 없도록 현지 여성과 강제로 성관계를 시켜 동영상을 찍고 납치한 이들을 돌려 보내는 과정에서 자신들이 손댔던 피해자의 물건 하나 하나에 묻은 지문까지 지울 정도로 철저했다. 게다가 피해자가 출국하는 공항까지 따라가 경찰과의 접촉을 막고 지인인 냥 연기하며 협박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필리핀 교민 사회에서는 위조여권을 이용하여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들고 현지 경찰과 연계되어 법 위에 군림하고 있다는 소문도 있다. 방송 내용을 근거로 판단하면, 필리핀 현지에서는 악명을 떨치는 인물들로 보복이 두려워 함부로 증언을 못하는 교민들도 있는 듯하다.


 


<그것이 알고 싶다> 팀에서는 납치범들이 미처 신경 쓰지 못했던 부분에서 지문을 발견, 새로운 사실을 알아냈다.


 



 


이들은 2007년 7월 9일, 경기 안양시 소재 환전소에 침입해 여직원을 흉기로 살해하고 1억 원을 강취한 후, 필리핀으로 도피한 강도살인범들이었던 것이다.


 



 


 



 


 


<그것이 알고싶다> 에서는 ‘뚱이’라고 불리는 인물이 나온다. 납치단의 막내인 그는 불과 19살의 청년이지만 납치했던 이를 풀어주는 과정에서 출국장까지 따라와 협박을 잊지 않는 인물로 나온다.


 



 


석동씨의 여동생은 방송에서 공개된 뚱이의 CCTV 사진과 대사관 측에서 보낸 CCTV사진이 굉장히 유사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석동씨의 가족은 이런 의문을 경찰 측에 제기한다.


 



이후, 필리핀 현지에서 ‘뚱이’라고 불리던 김원빈이 검거되었고 석동씨를 본 적은 없지만 최세용 일당에게서 통장을 건네 받아 돈을 인출한 것은 자신이 맞다고 시인했다.


 


2007년 안양시 소재 환전소에서 여직원을 살해하고 필리핀으로 도피한 강도살인범들, <그것이 알고 싶다>에 나온 필리핀 현지 납치단, 그리고 홍석동씨를 납치한 이들.


 


모두 동일범들의 소행인 것이다.


 



 


 


2011년 11월 초, 새벽 4시를 조금 넘어 석동씨의 어머니는 의문의 남자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조용히 처리합시다. 경찰에도 영사관에도 알리지 마세요.’


 


석동씨가 납치된 지 40여 일 만에 걸려온 전화. 수화기 너머의 남자는 석동씨 어머니에게 천만 원을 보내면 아들이 있는 곳을 가르쳐 주겠다고 한다.


 


어머니는 의문의 남자에게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을 어떻게 믿느냐며 자신이 천만 원을 직접 들고 갈 테니 아들과 맞바꾸자고 제안한다. 남자는 ‘그럼, 얘기 끝났습니다’라며 전화를 끊는다.


 


의문의 남자는 이후, 석동씨 아버지에게도 전화를 건다.


 


‘석동이 아버지시죠? 아줌마는 말귀를 못 알아 듣네요. 아들 유품이랑 시체라도 찾아가려면 천만 원을 보내세요.’


 


아버지는 시체를 가지고 있다면 석동이의 신체적 특징이 있으니 옷을 벗겨서 자신한테 말해 달라고 했다. 그러자 의문의 남자는 다시 전화를 끊는다.


 


이후, 납치범은 3분 단위로 계속 전화를 했지만 아버지는


 


 



 


‘니들이 뼈를 준다면 내가 염소 뼈다귀인지 소 뼈다귀인지 어떻게 아느냐. 거기서 DNA 검사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느냐. 너희들이 정말 시체를 가지고 있다면 대사관에 갖다 줘라. 나는 산 사람을 원한다.’


 


이후, 의문의 남자는 석동씨 아버지에게는 전화를 하지 않았고 어머니 쪽으로만 이따금씩 전화를 걸어 금품을 요구했다. 달러로 돈을 바꿔 필리핀으로 오라고 하기도 했다.


 


석동씨 부모님에게 걸려온 전화의 내용이나 통화 패턴을 봤을 때, 심카드칩을 교체해 번호를 바꾸거나 추적을 피할 자신이 있다 하더라도(필리핀에서는 신분 확인 절차 없이 심카드만 교체해서 계속 번호를 바꿀 수 있고 이가 범죄에 악용되는 사례가 있다.), 이 시기를 전후로 갑자기 전화량이 급증한다.


 



<의문의 남자가 웨스턴 유니온 송금 제도를 이용해 돈을 부치라고 했을 때,


석동씨 어머니가 남겼던 메모>


 


석동씨 이전에 이들에게 납치된 피해자의 증언을 보면 납치단은 자신들의 지문을 모두 지울 정도로 철저한 면을 보인다. 그런 이들이 석동씨를 납치한 지 40여 일 지나서야 집요하게 금품을 요구했고 석동씨의 부모님이 자신들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상황을 인지한 시점에서도 계속 수단을 바꿔가며(천만 원을 보내라, 300만 원 먼저 보내라, 필리핀으로 오라, 웨스턴 유니온을 통해 돈을 보내라 등)어떻게든 금품을 요구한 것으로 보아 나는 이들이 이 시기를 전후로 재정적으로 상당히 곤란한 처지에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2010년 8월 26일 새벽, 마닐라에 도착 후, 8월 30일부터 연락이 두절된 공군 소령 출신의 윤철완씨(74년생). 2011년 10월 1일, 방영된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윤철완씨의 행방을 추적했고 그 역시 최세용 일당에게 납치된 것으로 확인했다.(윤철완씨는 아직도 행방불명이다.)


 


당시 윤철완씨는 동생에게 지갑을 잃어버렸다며 신용카드를 스캔해서 보내달라고 했고 부모님이 걱정할 수 있으니 이 사실을 말하지 말라고 했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그 카드로 총 3460만 원의 돈이 대출되었다.


 


윤철완씨의 동생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확인한 결과, 납치범이 석동씨의 부모님에게 전화를 걸어 금품을 요구한 시점과 윤철완씨 동생에게 금품을 요구한 시점이 정확히 일치했다. 윤철완씨 동생에게는 오빠의 뼈를 찾는 대가로 1500만 원을 요구했다고 한다.


 


 



<강도살인 및 납치 용의자, 김종석>


 


석동씨 어머니가 검거된 뚱이(김원빈)를 찾아 교도소에서 면회한 결과, 의문의 남자는 김종석으로 밝혀졌다.


 


윤철완씨 동생에게는 그 전 1년 간 여러 사람에게 전화가 왔지만 납치범으로 확인된 김종석에게 직접 전화가 온 것은 그때가 처음이다. 납치된지 1년 반이 되어가는 피해자와 40여 일이 되어가는 피해자 가족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계속 금품을 요구했다는 것은, 이들이 그 시기를 기점으로 재정적으로 곤란했다는 추리에 근거를 더하며 다른 피해자의 가족, 또는 필리핀 현지나 한국의 누군가를 통해 재정을 확보하려 접촉했을 가능성이 높을 거라고 생각한다.


 


 


 


지난 12월 25일 방영된, 채널 뷰의 <추적르포 사라진 가족>이 밝혀낸 바에 의하면 납치범들은 2011년 11월 30일 오전 10시 경에 마닐라 시내 환전소에 권총을 들고 침입, 금고에 있는 돈을 모두 들고 달아났다.


 



 


당시 환전소에 들어간 것은 납치단의 리더인 최세용과 지금은 검거되어 있는 ‘뚱이(김원빈)’였으며 김종석은 자동차(차종 : 혼다 시빅)안에서 대기 중이었다.


 


11월 초부터 중순까지 한국에 있는 피해자의 가족에게 계속 금품을 요구한 납치단, 그리고 11월 30일에 마닐라 시내의 환전소에 권총을 들고 환전소 사장을 위협해 돈을 들고 달아난 사실.


 


납치라는 비교적 안전한 방식을 선택하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본인들의 신분 노출을 각오하고 권총강도를 저질렀다는 것은 위의 추측에 근거를 더한다. 게다가 지난 10월 1일에 <그것이 알고 싶다>가 방영되었기에 한국은 물론, 필리핀 현지에서도 자신들의 얼굴이 더욱 많이 알려져 활동하기가 힘들었을 것이고 더욱 극단적인 방법을 택했을 가능성이 높다.


 


나는 이들이 2011년 10월과 11월 사이에 필리핀 현지에서 재정적으로 곤란한 처지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식으로든 모습을 드러냈을 것이며(실제 이 시기에 벌써 몇건의 제보가 확인되었다.) 특히, 평소 친분이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접촉을 시도하면서 이후의 행적에 관한 증거를 남겼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지난 11월 30일, 환전소 권총강도라는 큰 범죄를 저질렀기에 멀리 도망갔을 거라고 예상되었으나, 12월 14일,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는 마카티에서 김성곤과 뚱이(김원빈)가 검거된 것으로 보아 어쩌면 아직도 필리핀 내에 숨어있을 확률도 무시할 수 없다. 만약 그렇다면 그곳은 그들이 자주 등장하는 마닐라, 세부, 마카티 근처일 것이다. (검거된 뚱이는 이 부분에 대해 전혀 진술을 하지 않고 있다. 납치단은 필리핀이 주 활동무대이긴 하나 주변국인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지도 오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강도살인 및 납치 용의자, 김성곤>


 


지난 12월, 필리핀 현지에서 납치단의 일원인 김성곤과 뚱이가 PC방에 들렀다 주민의 신고로 검거되었다. 하지만 안타깝게 김성곤은 현지에서 탈옥했다. 뚱이는 한국으로 이송되어 재판 진행 중에 있으나 자신이 돈을 인출한 것은 맞지만 홍석동씨를 본 적은 없다고 한다.


 




<김성곤이 탈옥한 유치장 / 출처 : 필고 112>


 


다음은 김성곤이 탈옥할 당시의 정황을 설명하는 뚱이(김원빈) 어머니의 진술이며 <필고 112> 카페에 올라온 내용이다.


 




안녕하세요. … 먼저 김성곤 탈출소식이 올라온 것을 보고 여러가지 정확한 경위를 말씀드리고자 쪽지를 남깁니다... 아이의 부모로서 조속히 사건이 해결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처음 대사관 김태수 영사님과 상의한 결과 김원빈군의 한국으로의 강제소환이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보석신청을 하면 한국으로 자진귀국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영사님께 미리 말씀을 드렸고 필리핀 시청법원에 보석 신청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보석되기 그 전날 밤 12시경 김성곤이 탈출을 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오전 1시경 경찰서로 갔습니다... 경찰들의 말에 따르면 갑자기 배가 아파 화장실에 간다던 김성곤이 얼마 후 사라진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경찰들은 김성곤이 창문으로 점프하여 도망간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 제가 그때 새벽에 경찰서에 도착하였을때 그날 당직을 섰다고 하던 경찰은 술이 만취상태였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김성곤을 잡아야 한다며 김원빈을 수갑도 채우지 않고 오토바이 뒤에 태워 김성곤 와이프가 살고 있는 마카티 집으로 수색하러 갔습니다. 그리고 돌아와서는 저희에게 김성곤이 도망갔으니 김원빈은 보석되기 어려울 것이라며 자기들에게 무조건 협조하라고 하였습니다... 무엇보다 김성곤이 도망갔다는 사실을 함구할 것을 강력히 요구하였습니다.


(후략)




 



 


 


마지막으로 홍석동씨 어머니에게 건네 받은 납치범과의 전화 통화 내용 중 일부를 공개한다. 


 



 


 


<홍석동 납치 사건>은 홍석동씨 가족에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최세용 일당은 한국에서는 강도살인을, 필리핀 현지에서는 납치 및 권총강도 등의 범죄를 저질렀다. 필리핀 현지 교민은 물론, 한국인 관광객을 공포에 떨게 하고 있다. 그들은 필리핀에서 한국이라는 나라 및 현지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대다수의 교민에 대한 나쁜 선입견을 심어주는 악질 범죄자들이다. 필리핀의 고위 간부들조차 한국인 관광객 납치 사건이 필리핀인에 의한 범죄가 아니라 한국인들에 의한 문제임을 강조하고 있다.


 


필리핀 교민들은 신고를 해도 경찰이나 영사 측과 통화 연결이 잘 되지 않는 데다 무성의한 처리를 한다는 불신을 가지고 있다. 외교통상부가 지금보다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일이며, 외교통상부를 움직이기 위해서는 정치인들이 압력을 넣을 필요가 있다. 안타깝지만 해외에서 일어나는 이런 일들은 힘있는 정치인들이 압력을 넣었을 때 가장 빨리 해결되었다. 좌와 우가 없고, 진보와 보수의 구분이 무의미한 일이다.


 


채널뷰의 <추적르포 사라진 가족> 팀과 홍석동씨의 가족이 필리핀 현지에서 전단지를 붙이고 수소문한 이후에 바로 제보가 들어왔다. 그 제보를 바탕으로, 일당 중 일부가 잡힌 것을 보면 외교통상부나 현지 경찰들이 얼마나 의지를 갖고 이 사건에 접근하느냐에 따라 보다 많은 가능성이 열려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독자 여러분께서 자신이 알고 있는 정치인 트위터로 이 사건을 알려주었으면 한다. 다가오는 총선 때문에 다들 바쁘겠지만 '국가'나 '외교'라는 문제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해 본 정치인이라면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믿는다.


 



 


불편한 몸을 이끌고 미친 사람처럼 아들을 찾기 위해 사방을 뛰어다닌 홍석동씨의 아버지, 인터뷰 도중 4번이나 눈물을 훔친 홍석동씨의 어머니, 기사를 쓰는 내내 두 사람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추신 : 검거되었다 탈옥한 김성곤과 현재 교도소에 수감 중인 김원빈은 ‘아마 홍석동씨가 살아 있을 것’이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그들의 말이 진실이길 바라며 독자 여러분과 필리핀 교민 여러분의 적극적인 제보와 관심을 부탁 드립니다.


 


추신2 : 납치범과의 통화내용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함께 밤을 새며 동영상 작업을 해주신 AJ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홍석동 납치 사건



강도살인, 납치 용의자 최세용, 김종석, 김성곤 사건 관련 제보


 


 


부산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


(051)899-2577


 


 


안양동안경찰서


(031)478-7370


 


 


딴지일보 기획취재부


kimchangkyu1201@gmail.com


 




 


 


취재 : 기획취재부 팀장, 죽지 않는 돌고래


동영상 : 밤을 새워가며 함께 작업한 AJ


트위터 : @kimchangkyu


Profile
딴지일보 편집장. 홍석동 납치사건, 김규열 선장사건, 도박 묵시록 등을 취재했습니다. 밤낮없이 시달린 필진들에게 밤길 조심하라는 말을 듣습니다. 가족과 함께 북극(혹은 남극)에 사는 것이 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