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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4. 18. 수요일

정치부장 물뚝심송


 



 


원래 언론과 정치 사이에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는 법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언론은 사람들에게 정보를 제공하면서, 사람들의 판단에 영향을 주게 마련이다. 결국 유권자들이 정치적인 판단을 내리고 선택을 하게 되는 상황에서 언론이 제공하는 정보와 영향력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래도 언론은 어디까지나 언론의 역할이 있는 것이고, 직접 정치에 개입하는 것은 스스로 삼가하는 것이 옳다. 그러나 옳은 일은 잘 벌어지지 않는다. 영향력을 가진 집단은 그 영향력을 사용하고 싶어지기 마련이다. 문제는 그 영향력, 다른 말로 권력을 이용해서 뭘 얻으려고 하는가 하는 부분이 옳고 그름을 나누는 기준이 된다.


 



 


이번 총선은 사실상 언론끼리 벌이는 전쟁이었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그들이 맨 먼저 강력하게 추진한 일은 다름 아닌 언론 장악이었고, 그 작업은 매우 신속하게, 또 위력적으로 수행되었다. 


 


우선 종이신문계의 메이저인 조중동에게는 종편이라는 거대한 떡을 준비해서 줄듯 말듯 하면서 시간을 끌어가며 권력의 이익에 철저하게 봉사하도록 길을 들였다. 방송은 모든 법과 제도를 무시해가며 이명박의 최측근들을 사장으로 내리 꽂았고 그 사장들은 직권을 남용해가며 지상파 방송의 논조를 친정권적인 것으로 완전히 뒤집어 버렸다. 정권의 문제점을 얘기하고자 하는 언론 종사자들은 대부분 인사상 불이익을 받고 엉뚱한 곳으로 밀려 나거나 아예 직업 자체를 잃어 버리는 상황에 직면해야만 했던 것이다.  


 


실제로 이렇게 종이신문의 지면과 방송의 전파를 장악해 버린 것은 권력의 입장에서는 매우 유리한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데, 역대 어느 정권보다도 못한 정책 수행의 결과를 냈으면서도 일반 유권자들에게는 그다지 잘못한 것도 없는 그저 그런 정권 수준으로 인식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단순히 부족한 정책수행의 결과뿐 아니라, 심각한 범죄에 해당되는 권력의 실책들조차도 별 거 아닌 일로 인식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총선 정국에서 터져 나온 민간인 사찰 건도 사실은 이미 오래전에 벌어진 일이고, 검찰의 조사까지 있었던 사건이라는 점이다. 보통의 정권이라면 대통령직을 포기해야 할 수준의 심각한 범죄임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사회적 논란거리로 부상하지도 못한 것이다. 이런 일들이 단순히 검찰의 친정권적인 직무유기만으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언론의 비호가 없었다면, 아무리 정권의 시녀 역할을 하는 검찰이라 해도 그렇게 엉터리 수사를 하고 사건을 덮지는 못한다. 


 


그 밖에도 정권 차원의 수많은 범죄행위들을 덮어 버리는 데에 주류 언론은 최고의 공로를 세우며 봉사하게 된다. 그 결과 종이신문들은 일찌기 없었던 특혜를 몰아 받으며 종편 방송을 시작하게 되고, SBS를 제외한 유력 방송들이 사상 최장기간 동안 파업에 돌입하게 되는 극단적인 상황이 유발된 것이다. 


 



 


하여간, 이런 내막이 있음에도 일반 유권자들에게는 상황의 심각성이 전혀 전달되지 않았다. 이 또한 언론 장악의 지대한 공헌이기도 한데, 정권에서는 총선을 앞두고 KBS, MBC, YTN등이 파업에 돌입한 것을 오히려 즐겼던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선거 과정을 완전히 정권친화적으로 변한 언론들과 함께 치를 수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전혀 다른 곳에서 터져 나오기 시작한다. 


 


주류 언론의 보도 행태에 염증을 느끼고 이것은 뭔가 아니라는 생각과 느낌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기 시작한다. 이들은 언론이 주는 정보에 의존하기보다는 그 뒤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의 실체적 진실을 알고자 노력하기 시작했고, 조각조각 퍼져 있기는 하지만 완전히 숨기는 것은 불가능한 진실의 파편들이 모여들기 시작하고 재구성되기 시작한다.


 


음모론이라는 비아냥을 들어가면서까지도 이런 노력들이 지속적으로 나타났고, 그 진실의 파편들은 인터넷을 기반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움직임에 결정적으로 불을 질러 버린 것은 SNS의 유행과 김어준의 <나는 꼼수다>라는 일종의 해적방송의 등장이다.


 


SNS 그 자체는 언론이라고 보기 힘들다. 하지만 대중적인 정보 전달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광의의 언론에는 포함될 수 있다. 이미 SNS 자체를 "개인 미디어"라는 이름으로 분석하고자 하는 시도도 많이 등장했으며, 사회적으로 발생한 일이 대중에게 알려지는 속도는 기존의 어떤 언론보다도 신속하게 전달하는 능력을 다름 아닌 SNS가 갖추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또한 언론 자체가 권력에 의해 봉쇄되었을 때, SNS가 세계적으로 소식을 전파하며 언론의 역할을 대신하게 되는 경우도 등장해 버렸다. 이집트의 사례를 얘기하는 것이다.


 



 


결국 중국 같은 폐쇄적인 국가, 권력의 통제가 심한 국가에서는 트위터 등의 SNS서비스 자체를 봉쇄해 버리려고 시도하기도 했지만 인터넷이라는 매체 자체의 특성상 그리 쉬운 일은 아니라는 것이 밝혀진다. 


 


우리 사회에서도 트윗 사용자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사회적 영향력을 갖추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제 와서는 그 누구도 트윗의 사회적 정치적 영향력이 기존 언론에 비해 작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훌쩍 성장해 버린 영향력을 사회적으로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나꼼수의 등장은 새로운 언론 환경의 등장을 알리는 일종의 신호탄이 되고 말았다. 나꼼수를 한 번이라도 들어본 사람이 천만이 넘고 평균 일주일에 한 번씩 업로드 되는 나꼼수를 정기적으로 꼬박꼬박 찾아서 듣는 사람들이 수백만을 상회한다. 거기에 나꼼수의 등장에 이어 유사한 컨텐츠들이 대거 등장하게 된다. 심지어 나꼼수 자체를 폄하하려고 하는 보수쪽 인사들까지도 나꼼수와 유사한 컨텐츠를 만들어서 대항하려고 시도하기도 한다. 물론 잘 되지는 않았다.


 


거기에 정권의 언론 장악 작업의 여파로 밀려난 해직 전문 언론인들까지 나서서 <뉴스타파> 같은 컨텐츠를 제작하기 시작한다. 실제로 이 뉴스타파는 기존의 지상파 방송의 전문 뉴스 프로그램을 넘어서는 품질을 자랑하며, 많은 시청자들을 확보해 나가고 있다.


 


결국 정권의 의도에 따라, 정권의 이익에 복무하는 방향으로 기존의 주류 언론을 무리하게 뜯어 고쳐 편향성을 증가시켜버린 왜곡 작업의 반작용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이 반작용은 단순히 기존 주류 언론의 공정성을 회복시키려는 시도에 그치지 않고 "주류언론에 대항하는 대안언론"의 등장을 가속화시켜 버리면서 주류 언론의 영향력을 급속하게 저하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으며, 그 획기적인 전환점이 바로 이번 총선과정에 드러나게 되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는 점이다. 


 


결국, 이번 총선과정은 일찌기 있어본 적이 없었던, 주류 언론과 대안 언론간의 영향력 싸움이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언론들의 입장에서는 사실상 생존을 건 싸움이었다.


 



 




 


실제로 종이신문의 영향력은 이제 거의 사라졌고, 조중동의 전성기는 오래전에 끝이 났었다. 이 점은 조중동을 반대하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조중동 자신들이 행동으로 입증하고 있다. 자신들의 영향력이 모두 사라졌고, 이제 겨우 관성에 의해, 아직도 조중동이 영향력이 있을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의 잘못된 믿음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는 점은 조중동 자신들이 가장 잘 알고 있다.


 


유료 판매부수는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으며, 자발적으로 종이 신문을 구매해서 읽는 사람들의 숫자는 줄어들고 있다. 거기에 종이신문에 실리는 광고의 효과 조차도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어서 사실상 광고주들은 광고효과를 위해 종이신문에 광고를 내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광고비 명목으로 상납을 하는 형태가 되어 버린지 오래이다.


 


그 결과 조중동 스스로 더 이상 종이신문이라는 매체를 가지고는 자신들의 영향력, 자신들의 생존에 필요한 권력을 유지해 나가기 힘들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고, 그런 이유로 인해서 그렇게 무리하게 종편에 진출하려고 노력을 한 것이고, 그렇게 힘들게 권력과 타협하여 얻어낸 종편이 아무런 성과를 못내고 애국가 방송보다 못한 시청률을 올리면서 매월 백억에 육박하는 적자를 기록하는 중이다. 종편의 광고시장은 애초에 기대한 것의 1/10도 못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종편 자체를 조중동이 유지할 수 있는 기간이 얼마 안 남았고, 이미 매각과 합병을 거쳐 종편체제가 재편될 것으로 관측하고 있기도 하다. 그 위대한 조중동이 궁지에 몰린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조중동이 가장 강력하게 누려 오던 정치적 영향력마저도 나꼼수를 선두로 하는 대안 언론들과 이를 소비하는 SNS 사용자들에 의해 심각하게 도전을 받게 된 것이다. 그러니 조중동이 이번 총선에서 배수의 진을 치고 사력을 다해 일찌기 보기 힘든 수준으로 총단결해서 대안 언론의 싹을 죽이기 위해 총동원된 것이며, 이것이 바로 그 이해하기 힘든 수준의 횡포가 벌어진 배경이유가 된다.


 


그들은 사실상 새누리당이나 이명박 정권의 이익을 위해, 박근혜의 대권도전을 위해 싸움에 참가한 것이 아니다.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자신들의 영향력이 아직 살아 있음을 이 사회에 보여주기 위해, 아직도 자신들이 주는 왜곡된 정보만을 믿고 사회적 정치적 판단을 내리는 유권자들이 많이 있음을 과시하기 위해 전쟁에 참가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싸움에는 수많은 종이신문들, 인터넷 신문들, 소위 말하는 기존의 언론들이 모두 한편이 되어 참전한다. 보수 진보 가릴 것 없이 대안 언론의 등장으로 인해 생존에 위협을 느낀, 위기의식을 공유하는 모든 기존 언론들이 참가했다는 뜻이다. 이런 관점으로 봤을 때 비로소 경향이나 한겨레, 기타 인터넷 상의 진보언론들의 행동까지도 모두 해석이 가능해진다. 


 


그 싸움의 최전방, 포탄이 날아다니는 최전선에 김용민이 서 있었다.


 



 




 


사실 감옥에 간 정봉주를 대신하여 김용민이 그의 지역구에 출마한다는 발상은 정치적으로 그리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김용민 역시 주류거나 대안이거나 언론인이며, 언론인이 언론인의 역할을 포기하고 직접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 그리 좋은 결정은 아니라는 점 역시 동일하게 적용될 수도 있다.


 


또, 지역구 정치라는 것은 어느 한 순간, 대중의 인기를 얻고 있다고 해서 쉽게 출마하고 당선되는 그런 형태의 정치는 아니다. 긴 시간 동안 지역구 유권자들과의 유대를 다져야 하고, 자신의 정치적 비전을 설명해야 하며, 그 비전을 현실화 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 왔는가를 보여줘야 하며, 그런 과거의 기억들이 유권자들에게 누적되어 있는 상황에서 선택을 받기 위해 출마하는 것이 정석이다.


 


물론 이런 기본을 더 많이 어기는 쪽은 새누리당이다. 예를 들어 평생을 관료로 살아온 김종훈을 FTA강행의 상징적 인물로 써먹기 위해 강남을에 공천을 해 버린다거나, 태권도 선수를 공천해 버린다거나, 20대 후반의 여성을 야권 대선후보의 지역구에 공천을 해 버린다는 식의 기형적인 공천을 강행하는 것이 바로 그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이 그런다 해서 김용민의 공천이 합리화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김용민의 공천, 또 김용민 본인의 출마 결심은 다른 상징으로 이해해 줄 필요가 있다.


 


나꼼수는 기존 주류 언론을 대치하는 새로운 대안 언론의 선봉에 서있었고, 그로 인해 기득권층에게 심각한 탄압을 받고 있었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물론 진작부터 이어져 온 재판이었긴 하지만 나꼼수의 멤버 중 정봉주가 가장 먼저 급작스럽게 감옥에 끌려갔고 주진우나 김어준 역시 각종 소송에 시달리고 있으며, 검찰의 조사도 다각도로 진행되고 있던 시점이었다. 


 



 


이들은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었고,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점을 깨닫고 있었다. 싸움을 빨리 끝내거나 아니면 싸움을 더 지속할 수 있도록 막아줄 수 있는 방패가 필요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김용민을 출마시켜 금뱃지를 달게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꽤 의미있는 방패가 될 수 있다. 이런 나꼼수 차원의 사적인 필요성에 의한 출마가 옳은 일은 아니지만, 그들에게는 수단으로써 의미가 있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그러나 더 중요한 점이라면, 기왕에 출마를 결심한 이상 이들의 싸움이 앞서 언급한 대로 기성 언론과 대안 언론사이에 벌어지는 전쟁의 상징이 되어 버렸다는 점을 얘기해야 한다. 


 


조중동을 비롯한 기성언론들은 다른 산적한 이슈를 모두 무시해 버리고 선거 기간 내내 김용민을 상대로 한 공격에 열중했다. 김용민을 낙선시켜서 민주당의 의석을 한 개 줄여보자는 의도가 아니었다. 자신들에게 도전하는 대안 언론의 상징을 붕괴시켜서 아직은 자신들이 건재하다는 점을 과시해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집권 세력에게 이익을 주면 더 좋고... 그건 이익의 부산물일 뿐이다. 


 


나꼼수 역시 총력을 기울여 김용민을 방어해 주기 위해 노력했다. 어느 현직 정치인이 그렇게 순식간에, 그들의 표현에 걸맞게 "우발적으로" 시청앞 광장에 수만명의 인파를 끌어 모을 힘이 있을까? 이런 행사가 선거에 이익을 줄 지 오히려 손해가 될 지는 아무도 모른다. 노원갑 지역구 유권자들도 아닌 일반 유권자들, 그것도 젊은 계층의 유권자를 시청앞 광장에 수만 명 모아 내는 것이 노원갑 지역구 선거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까? 심지어 노원갑에서 벌어진 김용민의 유세 현장에 나꼼수 팬들이 엄청나게 모였다는 것조차도 이익이 될 지 손해가 될 지 알 수는 없다. 어떤 면에서는 세를 과시하는 것일 수도 있었지만,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거부감을 불러 일으킬 수도 있는 일이다.


 


나꼼수 멤버들이 그런 식으로 김용민 주변에서 세를 과시한 더 깊은 이유는, 자신들의 싸움이 일개 지역구를 놓고 벌이는 정치싸움이 아니라는 점을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점을 얘기하고 싶다.


 


자신들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그 영향력을 이용해 사회에 해악을 끼치며 자신들의 이익을 더 긁어 모으는 데에 혈안이 된 조중동과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기존 언론들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이들의 수명을 단축시켜서 더 이상 이 사회에 그들이 끼치는 해악이 뿌려지지 않도록 노력한 것이다. 


 


사실상 그들의 영향력이 없음을 보여주고, 그들이 아무런 영향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영향력을 발휘하는 이유가 사람들의 오해, 그들이 아직도 위력적일 것이라 믿고 지레 쫄아서 발생하는 오해라는 점을 보여주고자 했던 것이다. 


 



 


결국 그 싸움은 아쉽지만 실패로 판결이 났다. 


 




 


기존의 관습을 뜯어 고치려는 모든 시도는 단번에 성공하지 못한다. 


 


김용민으로 상징되는 이번 싸움 역시 단번에 성공하지는 못했다. 아직은 그들의 영향력이 더 셌다. 그리고 너무나 성급했던 싸움이고, 준비도 부족했다. 중장년 층에서는 그런 변화를 초래하는 세력들을 백안시하고, 권위주의적인 입장에서 품격을 비판하고 하는 사람들도 많이 존재하며, 그들의 거부감도 무시 못할 수준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근래 수십 년 간 기성 언론들, 특히 그들을 대표하는 조중동과 이렇게 전면전을 벌였던 사례는 없다. 물론 안티조선 운동의 뿌리는 무척 깊고,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그들과 싸움을 벌여 왔지만, 이렇게 사회적인 규모로 전방위적인 전선을 형성하고, 본격적으로 충돌한 사례는 없었다.


 


조중동 역시 자신들에 대한 공격에 대해 이렇게 전면적으로 총출동해서 총력전을 벌인 기억이 없을 것이다. 이번 싸움이 진행되었다는 점 자체만으로도, 결과와 상관없이 그들의 위기의식은 더 강해졌을 것이다. 이번은 어찌어찌 겨우 막아냈지만, 다음 번에는 어떨지 모른다.


 


조중동이 기사 두어 개만 긁어 버려도 지역구 의원 후보 따위는 한 방에 보낼 수 있던 것이 불과 십 년도 안 되는 사이에 벌어졌던 일들이다. 정치 한다는 사람들, 정치 하려고 마음이라도 먹은 사람들이라면 조선일보 기자 앞에서 말도 함부로 못하고 벌벌 떨었던 것이 여태까지의 당연한 상식이었다.


 


그런 조선일보에 대고, 조선일보 기자의 전화기에다 대고 개새끼 소새끼 소리를 외치고, 전화를 끊어 버리고, 그 과정을 나꼼수에서 떠들어 대던 것이 정봉주였고, 조중동 따위 화장실 휴지로도 못 쓴다고 하면서 군소언론 취급하고 조중동의 기자들을 군소언론의 종업원 취급하는 것이 나꼼수였고, 딴지일보를 이끌면서 전기요금도 못내 빌빌거리는 딴지일보를 유일한 민족정론지라고 외치는 것이 김어준이었다.


 


이런 멤버들이 조선일보 유료 구독자 숫자의 열 배가 넘는 정기 청취자를 가지고 있는 나꼼수를 만들어 낸 것이고, 나꼼수 이후에 수두룩하게 생긴 각종 컨텐츠들이 모여 대안 언론의 가능성을 보여주게 된 것이고, 그 대안 언론을 퍼트리고 소모하는 곳이 바로 SNS공간이 된다.


 



 


그리고 이들이 거대한 싸움을 벌였고, 결과적으로 패배했지만 그런 싸움을 벌였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의미로 남게 되었다는 것이 내가 이번 총선의 진행과정을 보면서 짜릿하게 느꼈던 측면 중의 하나가 되었다는 점이다.


 




 


나꼼수와 김용민이 이번 총선에 미친 영향? 새누리당이 겨우 과반을 넘기고, 야권연대는 예상보다 못하지만 나름대로 약진을 하게 된 것에 과연 이들이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막판 초박빙 상황에서 터져나온 김용민의 막말 파문이 야권연대에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은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초박빙 상황, 이길 수도 있다는 희망 자체를 누가 줬는지는 왜 생각들을 못하나 궁금하다.


 


오세훈의 무상급식 선거를 무산 시키고, 나경원의 서울시장 등극을 한 방에 날려버리고 불가능해 보였던 야권연대를 성사시킨 공로가 누구에게 있었는가 말이다.


 


이명박은 국가를 상대로 수익을 챙기는 데에 여념이 없었고, 야당은 박지원 혼자서 몇 마디 하고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무기력한 상황에 빠져 있었었고, 진보 언론들은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 몰라 입만 벌리고 있었고, 사람들은 파헤쳐지는 강바닥을 바라보면서 절망에 빠져 있던 그 끈적거리는 교착상태를 일거에 깨트려 버리고 젊은 계층의 정치적 관심을 최첨단 유행의 수준으로 끌어냈던 공로는 누구에게 있었을까?


 


노원갑 지역구 한 개 날려 먹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서울시 유권자중 20대 유권자의 투표율을 60% 이상으로 끌어올린 공로는 누구에게 있었을까?


 



출처 : P&C리포트


 


역사에는 가정이 무의미한 법이긴 하지만, 나꼼수가 이렇게 획기적으로 판을 갈아 엎지 않았다면 이번 총선 투표율은 50%도 안 나왔을 가능성이 크다. 이거 부인할 자신 있는가?  


 


물론 이 모든 상황, 나꼼수가 혼자서 만들어 낸 것이 아니다. 그 기원을 찾아 보자면 김어준이 그렇게 목이 메이도록 찬양하는 가카의 덕분이다. 가카의 실정으로 인해 사람들에게 뭔가 결핍이 발생했고, 그 결핍의 공간을 눈치 빠른 김어준이 메워준 것뿐이다.


 


그러나 이번 총선과 관련해서 따져 본다면, 단지 국회의 의석비율을 바꾸어낸 수준의 의미가 아닌, 이 사회를 뒤덮고 있는 썩어빠진 기성언론들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수많은 소비자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만들어지는 전혀 새로운 형태의 대안 언론이 등장하게 되는 역사적인 전환기, 그 전환기의 문 손잡이를 돌렸다는 공로에서 나꼼수의 존재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 첫 번째 전면전에서 나꼼수는 패배했다. 


 


만약 이번 총선에서 김용민이 당선되었더라면, 조중동은 그날로 무덤에 묻히는 신세가 되었을 것이다. 까봤더니 힘도 조또 없는 놈들이 그 동안 설쳤구나, 하는 깨달음이 사회 전반에 퍼져 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그렇지 못했던 것뿐이다.


 


난 그 점이 이번 총선에서 제일 아까웠고, 아쉬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싸워봤더니 싸워볼 만하네~' 라는 느낌이 들었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수확이다. 이제 쟤들이 총연합해서 한 지역구 후보를 까도, 쟤들 자신이 조마조마할 정도로 쟤들의 힘이 약해진 것을 발견한 것 자체가 수확이라는 것이다. 


 



 


다음 번에는? 조중동 자신들이 두려워서 이런 전면전에 나서지 못하게 될 것이다. 아니 그 이전에 저들 사이에서도 균열이 생기기 시작할 것이다. 여차 잘못해서 전면전에 붙었다가 깨져 버리면 생매장 당할 지도 모른다는 공포심이 저들 사이에서도 펼쳐지기 시작할 것이라는 얘기다.


 


그리고 그들 역시 새로운 대안 언론이 어떤 형태로 나타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될 것이다.


 


이제 겨우 시작일 뿐이다.


 


봄은 얼어붙은 시냇물의 얼음짱 밑으로 물이 흐르는 작은 소리에서부터 오는 법이다.


 


그리고 지금은 목련꽃, 개나리, 진달래가 활짝 핀 봄이다.


 



 


 


이 글을, 사상 최장기 파업에 힘겨워 하면서도 정권에 장악된 방송사를 구하기 위해,

가카의 하수인들로부터 방송을 구하기 위해 투쟁하고 있는 언론사 파업 노조원들에게 바친다. 부디 승리하시라.


 


 


 



 


정치부장 물뚝심송


twitter: @murutuk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