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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4. 20. 금요일

정치부장 물뚝심송


 



 


이번 총선뿐 아니라 다른 총선에서도 항상 나왔던 얘기가 있다. 과연 선거에서 후보를 선택할 때, 정당을 보는가 개인을 보는가 하는 기준의 문제 말이다. 


 


원칙적으로 말하자면, 의회를 구성하는 의원을 선출할 때에는 정당을 기준으로 선택하는 것이 기본이다. 


 


그러나 세상일이 언제나 원칙대로 돌아가라는 법이 있는가? 


 


하여간 이번 선거에서도 역시나 제기되었던 문제가 바로 이 정당인가 개인인가 하는 질문이었다. 


 




 


정확하게 누가 한 얘기인지는 모르겠지만 한겨레 임석규 기자의 글에서 이런 문장을 본 기억이 난다. 


 



"정당이라는 레일이 깔리지 않은 곳에서 후보라는 기관차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레일 좋고 열차 좋음 얼마나 좋아.


 


참으로 동의가 가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말을 그대로 현실에 적용했을 때, 모든 고민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현재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정당 치고 맘에 드는 레일을 깔고 있는 정당 자체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정책만 놓고 본다면 오히려 새누리당이 제일 그럴싸한 정책을 설명하고 있다. 한두 번 구라를 친 게 아닌 정당이어서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집단이라 그렇지... 


 


녹색당이나 청년당 등 나름대로 쓸 만한 방향으로 깔리고 있는 레일을 가진 정당이 있긴 하지만, 그 레일은 아직 너무 허약해서 기관차가 올라타면 그대로 부서져 버릴 것만 같기도 하다. 


 


민주당의 경우, 진짜 제대로 된 레일임을 보여줘야 할 역사적인 임무가 주어졌지만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측면이 있다. 특히 민주당이라는 레일은 양쪽에서 공격을 받는 입장이다. 바로 전 정권에서 사상 최초로 152석이라는 과반 의석을 점유했던 열린우리당의 후신이기 때문이다. 그때 그렇게 힘을 몰아 줬건만 제대로 한 일이 뭐냐는 비난을 한 쪽에서 받고 있으면서 동시에 진보그룹으로부터는 당신들의 집권 기간 동안 이 사회에 신자유주의의 광풍이 불어 닥쳤으며 노동자들은 탄압받고 죽어 나갔다고, 당신들이 새누리당과 다른 게 뭐냐는 처절한 질문이 울려 퍼진다. 


 


결국 이번 총선에서 "정당을 보고 선택하자"는 주장은 "선택할 정당이 없다"라는 황당한 답변을 듣게 되었다는 얘기가 된다. 


 


잠시 얘기가 옆길로 새지만, 그렇게 갈 곳을 잃어버린 정당표들이 얼결에 통합진보당으로 상당수 몰려들 것으로 예측이 되기도 했었다. 그래서 기본 지지율 10%에 최소한 5%는 추가해서 15% 정도의 정당득표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예측을 하고 있었긴 했는데, 아직도 진보라는 이름에서 느껴지는 "공포스러운 이념의 흔적"이 살아 있는지 10% 언저리에서 멈추고 말았다. 


 


어찌되었거나 이렇게 선택할 만한 정당이 없는 상태, 새누리당이나 민주당이나 그놈이 그놈이라는 평가가 일반화 되면서 나온 발언이 바로, 정당보다는 개인을 보고 고르자 라는 주장이었다. 


 


즉, 총선 기간 동안 화제가 되었던 소설가 이외수의 새누리당 후보 지지 발언이나, 정당보다는 개인의 능력을 보고 뽑으라는 안철수 원장의 발언이 나오게 된 배경에는, 기본적으로 정당보다 개인의 능력이 더 중요하다는 주장이 깔려 있는 게 아니다. 개인보다 정당이 중요한 선택의 기준이 되는 게 맞긴 한데, 현재 우리 사회에는 선택의 대상이 될 만한 가치있는 정당이 없다는, 무겁고 암울한 현실이 바탕에 깔려 있다는 뜻이 된다. 


 


선택 대상이 되는 정당들이 그다지 차별성이 없는 상황에서, 그나마 나은 정당이랍시고 있는 게 어디서 동네 양아치 같은 후보를 낸 상황이라면, 그걸 어떻게 참고 찍어 주겠는가 말이다. 


 


이런 문제가 제기되면, 이 시리즈의 앞부분에서 이미 언급했던 총선맞이 공천의 문제를 다시금 생각해 봐야 한다. 과연 이번 총선을 맞아 민주당이나 통합 진보당은 제대로 된 공천을 했던 것이냐, 하는 문제제기 말이다. 


 




 


또 한 가지 문제가 더 추가된다. 


 


어떤 정당이 훌륭한지 개판인지, 혹은 어느 후보가 훌륭한 인간인지 양아치인지를 도대체 어떻게 아느냐는 거다. 


 



나도 실상은 선량한 시민이라고!


 


한 정당을 평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또한 한 사람이 제대로 된 후보인지를 평가하는 것 역시 쉬운 일은 아니다. 우리 사회의 현실은 오타까지 똑같이 복사된 체육사에서 파는 논문을 가지고 박사하고 교수하고 IOC위원까지 하는 인간이 여당의 후보로 공천을 받는 세상이며, 죽은 동생의 돈을 가로채고 제수를 성폭행하는 짐승만도 못한 인간이 스스로 자백한 육성 고백 음성파일이 알려진 상황에서도 나는 그런 적 없다고 뻔뻔히 우기면서 당선이 되는 상황이다. 이를 보면 개인에 대한 평가가 절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언론이라는 것이 제 기능을 상실하면서, 스스로의 영향력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남용하는 것이 너무 오래도록 관행화 되어 있다 보니까 언론이 주는 정보 자체에 대한 신뢰도가 바닥으로 떨어진 지가 오래다. 어떤 언론이 어떤 사실을 아무리 정의감에 넘쳐 보도를 해도, 저것들 역시 뭔가 원하는 게 있고 콩고물이 있으니까 저런 소릴 하는 거겠지 하는 불신이 만연한 사회가 되어 버린 것이다. 


 


똑같은 사안을 놓고 정반대의 보도를 하는 언론들이 수두룩하고, 체면과 염치 자체를 집어 던져 버리고 논문 복사범이지만 체육인이라는 사실을 감안하자는 소리를 뻔뻔스럽게 내뱉는 인간이 메이저 언론의 주필 행세를 하는 세상이다. 


 


결국 공식 언론들이 주는 정보는 못 믿고, 동네에서 횡행하는 루머에 더 귀를 기울이게 된다. 어떤 후보는 집이 열두 채라는 둥, 어떤 후보는 두 집 살림을 한다는 둥, 주로 아파트 부녀회를 통해서 퍼지는 이런 음해성 루머들을 근거 확인도 없이 믿어 버리기도 한다. 그러면서 결국, 정당보다는 사람을 보고 뽑아야지, 하면서 열두 번도 더 속았던 새누리당의 후보를 또 뽑으러 가게 되는 것이다. 


 


이게 바로, 정당보다는 개인을 보고 고르자는 주장이 왜 나왔으며 어쩔 수 없이 인정을 해야 하는 측면이 있는 주장이라는 점을 인정함에도 불구하고, 참 위험한 주장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된다. 


 


결국, 집권여당의 문제점을 알면서도 야당을 선택하는 것이 뭔가 부담스러웠던 사람들에게 "정당보다는 개인"이라는 말이 일종의 심리적 면죄부로 작용을 하게 된다는 얘기이다.

 


 



예나 지금이나 면죄부는 히트상품이다.


 




 


모든 주장은 주장 그 자체의 가치로 평가했을 때와 실제로 적용되었을 때의 평가가 달라지기 마련이다.


 


정당보다 개인이라는 주장은 그 자체로는 어떤 면에서는 우리 사회의 현실이 나름대로 적용된 괜찮은 주장이기도 하다. 어떤 경우에는 타협을 시도하기도 한다. 당칠인삼. 당을 70% 보고, 개인을 30% 보자. 뭔가 숫자까지 들어가니까 더 신뢰가 가는 것 같기도 하지만, 판단에 있어서 70%니 30%니 하는 숫자가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단 말인가. 


 


어찌되었거나 뭐 완전히 부정해 버리기는 힘든 주장이지만, 이 주장이 누군가의 이익에 복무하기 시작하면 문제는 달라진다. 


 


즉, 정권의 실패라는 부담을 안고 있는 여당이 이 얘기, 정당보다는 개인이라는 얘기를 들이대는 순간, 그것은 옳은 주장이 아니라, 자신들의 문제점을 가리고 유권자의 선택을 흐리게 하려는 의도를 가진 주장이 되는 것이다. 


 


수도 없이 많은 지역구에서 여당 후보들이 저 얘기를 하고 다녔다. 정당 보다는 개인... 명색이 여당 후보들이 말이다. 그나마 그런 소리 하고 다니는 후보들이 개인적으로 훌륭한 사람이라면 들어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대부분 돈 주고 산 학벌에 수상한 방법으로 벌어들인 재산으로 무장한 지역 유지들이 주로 저러고 다녔다. 


 


결국 그들은 정당보다는 개인이라는 주장이 옳고 그른지를 따지기 보다는 그저 자신의 득표에 유리하니까 써먹은 주장이라는 혐의가 강해진다. 그만큼 또 자신이 속한 집권여당이 사람들에게 어떤 취급을 받고 있는 지를 잘 알아서 하는 소리이기도 하다. 


 


참으로 애처로운 일이다. 하지만 진짜로 애처로운 것은 우리들 유권자들 자신이 된다. 


 



이만큼은 애처로운


 


왜냐면 그런 애잔한 넘들이 애처로운 짓거리 하고 다니더니 덜컥 당선이 되거든. 자기 정당을 자랑하지도 못하는 인간들이 집권여당의 의원으로 당선이 되고 나서 행패를 부리기 시작하면, 누가 더 애처로운 상황에 빠지겠냐는 얘기다. 


 


선거운동 기간에는 말도 함부로 못하고 절절 매던 복사논문의 주인공은 전화 한 통 받고 싱글싱글 웃으며 탈당은 없다고 단호하게 얘기한다. 그 당선자에게 당신은 탈당이 아니라 사퇴를 해야 된다고 조르는 우리가 애처롭게 된거다. 


 


공주님에게 누가 될까봐 탈당한다는 성폭행범은 자기가 무슨 터미네이터도 아니면서 I'll be back!!을 외치면서 사라진다 


 


저들이 애처로운 입장에 놓이는 것은 십여 일 남짓한 선거운동 기간. 우리가 애처로와 지는 기간은 4년.


 




 


원칙으로 돌아가야 된다. 


 


대한민국의 의회, 즉 국회는 정당정치에 기반한 의사결정기관이다. 의원 개개인은 모두가 다 헌법에 규정된 국가기관이기는 하지만, 그들은 정당에 소속되어 정당의 당헌당규와 강령에 입각한 정치 활동을 펼쳐 나가야 할 사람들이 된다. 


 


이런 사람들을 선택하는 기준은 다른 모든 것을 제쳐두고 어느 정당에 소속된 후보인가이다. 


 


물론 어떤 후보 개인이 정상적이고 상식적인 기준에 미달하는 것으로 판명되면 그를 선택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그것은 선택 이전에 정당 차원에서 그런 후보를 낸 것을 사과하고 교체해줘야 하는 것이다. 마트에서 사는 과자 한 봉지도 상식적인 기준에 미달하는 제품이 발견되면 제조책임자가 와서 사과하고 교체하는 게 상식이다. 


 


하물며 국가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에 들어갈 후보의 경우에야 말을 더 해서 뭐하겠는가? 


 


아무리 정당이 맘에 안 들고 밉더라도 몇 안 되는 정당은 상대평가의 대상이라는 점을 잊지 말자. 복잡한 정치공학을 적용할 필요도 없다. 특히나 이번 총선에서는 죽이 되거나 밥이 되거나 무려 "야권 연대"까지 성사되었던 선거판이었다. 


 



이때만 해도


 


집권여당이 잘못을 했다면 야당에서 고르면 되는 거다. 그 야당이 직전에 개판쳤던 여당이라고? 개판 쳤으니까 표를 잃고 야당 된 거 아닌가? 이번 여당이 잘못했으면 또 바꿔주고, 바꿨는데 이놈들 역시 또 잘못하면 또 바꾸는 거고. 그거 서너 차례 반복해야 정신 차리고 좀 제대로 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하려고 인생살이 바빠 죽겠는데 4년마다 한 번씩 공휴일까지 지정해가며 전국이 이 난리를 치면서 선거라는 한바탕의 소동을 벌이는 거 아닌가 말이다. 


 


선거? 별 거 없다. 


 


여당 찍는다고 꼴통 되는 거 아니고, 야당 찍는다고 빨갱이 세상 오는 것도 아니다. 


 


고인 물은 썩듯이 고정된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이고, 그러지 말라고 수시로 물을 갈아 주려고 만든 것이 임기제이고 선거인 것이다. 자주 바꿔주면 된다. 


 


여당이고 야당이고 다 똑같은 넘이라고 생각되면 그렇게 생각해도 된다. 똑같은 이유로 여당 후보나 야당 후보나 다 똑같은 놈들이거든. 


 


믿을 만한 언론이 없으면 믿지 말자. 그런다고 동네 아줌마들의 루머를 믿는 건 더 처량하잖은가? 


 


그냥 한 가지... 현 집권세력이 잘못했으면 바꿔주면 되는 거잖아.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는 이 쉽고 단순한 스토리가 안 먹혔다. 


 


안 먹힌 이유중 의 하나가 바로 정당보다는 개인이라는 논리였고, 그 미명 하에 수많은 사람들이 좀더 나은 후보를 뽑는 척 하면서 자신에게 콩고물을 조금이라도 더 줄 후보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사실은 그 후보들이 절대 콩고물을 더 줄 리도 없고, 그냥 줄 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가 있을 뿐인데도 말이다. 그냥 그렇게 느껴지니까 고른 거겠지. 


 


그냥 인정을 할 때가 된 것 같다. 


 


설득이 부족했던 거다. 아무리 쉽고 단순한 논리라도 4년마다 돌아오는 선거 때 한 번 반짝 설명해서는 절대 설득할 수도 없고 설득 되지도 않는다. 


 



 


평소 선거에 관심 없다가 선거날 마지못해 투표하러 가는 부동층이 양대 정당의 고정 지지자들을 다 합친 숫자보다 더 많다. 이들을 평소에 미리미리 설득해놓지 않는다면, 선거운동기간에 아무리 투표 권유를 해봐야 별무소용이다. 


 


정치는 그런 게 아니다. 


 


정치라는 것이 바로 우리 모두의 삶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는 무서운 존재이며, 그 정치에 대해 바르게 알고 제대로 선택하지 않는다면 당신의 삶이 결코 행복해지지 않는다는 사실. 당신이 겪는 사회적 고통의 상당 부분이 바로 잘못된 정치로부터 나온 것이라는 점을 깨닫고, 제대로 된 정치만이 그 문제점들을 해결해 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항상 머리 속에 넣어두고 떠들고 다녀야 된다. 


 


제대로 하기만 하면 정치만큼 재미있는 게 없다니까. 


 


8개월 후에 또 이번처럼 집단 멘붕 사태를 겪기는 싫을 것이다. 나부터도 싫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시작하자.


 



 


정치부장 물뚝심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