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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4. 25. 수요일

김범우

 

 

 

 

4월 18일, 파카 한국총괄 사무소가 있는 양재동 캠코타워 앞에서 집회를 가졌다. 경기지역 해고노동자들이 금속노조 경기지부의 이름으로 모인 조촐한 집회였다. 각각의 자본에서 짤려나온 해고자들은 긴긴 시간 동안 자본과 권력의 부당함에 저항하던 중 하나둘씩 동료를 떠나보낸다. 처음 시작이야 억울한 마음에 욱해서 덤벼들지만 간병에 효자 없다고... 생활고에 무너지고, 철벽 같은 자본과 권력을 원망도 하긴 하지만, 오히려 저항을 종용했던 사람들을 원망하고 스스로를 비하하기도 쉬워진다.

 

 

 

 

 

 

 

 

 

 

결코 흔들리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무너지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보이는 것과는 달리 아픔과 상처를 부여잡고 소리나지 않는 신음을 흘린다. 그래도 막상 집회 자리에서 모인 해고자들은 서로를 보며 웃는다. 쉽게 겪을 수 없는 아픔을 공유한 끈끈한 유대감이 서로를 보며 웃게 만든다.

 

 

 

 

 

서울강남의 거리를 걷는 선량한 시민들은 초라하고 불쌍한 무리들을 살짝 곁눈질로 보고 피해서 지나간다. 무언가 억울하고 맺힌 사연들이 있을 거라 짐작은 하겠지만 막상 다들 살기가 바쁘고 빡빡하다. 그나마 건네주는 선전물은 외면하지 않고 받아주니 고마울 뿐이다.

 

 

 

 

 

지난 주 내내 별다른 일도 없는데 정보과 형사가 잠복근무를 하다시피 해서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더니 주말뉴스를 보고서야 이유를 알 수가 있었다. 김문수가 경기도지사를 그만두고 대권에 도전하겠다는 뉴스가 떴다. 젠장. 그래서 그렇게 담벼락 뒤에 숨어서 동정을 살폈구나.

 

 

 

 

 

 

 

 

 

 

생각해 보니 그럴 만도 하다.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장안 외투자본 전용공단 MOU체결 당사자라는 이유로, 파카자본이 2009년 장안공단에 복제공장을 가동하면서 정리해고를 단행하자마자 파카한일유압 노동자들은 경기도청 앞으로 몰려갔었다.

 

 

 

 

 

50년 간 공장부지 무상임대, 건축비 지원, 법인세 및 소득세 감면, 고용지원금지급 등의 혜택을 받는 외국기업들. 외투자본 전용공단에서 부당한 노동탄압을 행하는 외국기업들. 꼭 우리가 낸 세금으로 몽둥이를 사서 두드려맞는 듯한 억울함이 더해진다. 가타부타 해명을 듣고 도지사의 관리책임이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해주길 기대하면서 경기도청 앞에서 집회를 하고 천막을 쳤었다.

 

 

 

 

 

바로 다음 날 수십 명 가로정비 용역들이 몰려들어서 길모퉁이에 있던 천막을 뜯어가고, 40일이 넘게 비바람과 이슬을 맞으며 노숙농성을 했었다. 면담 한 번 하고 해명이라도 듣자는 요청에 어떤 대답도 없이, 도청에 외국손님이 와서 태극기 옆에 외국국기가 함께 게양될 때마다 경찰 몇 중대를 보내서 사람장벽으로 감싸둘러서 보이지 않는 구석으로 밀어보내기만 했다. 나름 합법적인 법집행이다.

 

 

 

 

 

 

 

 

 

 

백 일이 넘게 도청앞 피켓팅을 해도 소용이 없기는 매한가지였다. 김문수 도지사가 어느 날인가 무슨 모임에서 강연한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간 해고자 무리를 밀쳐내고 헬기를 타고 날라가버리기도 했다. 시흥관공호텔에서 기업인들과 신년회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는 다시 한 번 면담요구를 하러 갔으나, 호텔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경찰과 형사들에게 둘러싸였고 무전으로 방울방울 소리를 들어가며 시흥경찰서로 연행되어 갔었다.

 

 

 

 

 

'어사 박문수는 도둑을 잡고 도지사 김문수는 도둑놈 편이냐'는 선전물을 나누어주다가 지난 지방선거 때 경기선관위로부터 제지를 받고 수원역에서 선전전하던 무리들도 또 한 묶음 연행돼 갔다. 그러고도 모자랐는지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아 노조사무실과 조합원들 차량을 수색하고 공직선거법위반으로 검찰기소를 했다. 김문수 도지사 비서진에서 찔렀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듣고 욕만 내뱉었다.

 

 

 

 

 

선거사범으로 또 일 년이 넘게 조사를 받고 재판을 진행했던것 같다. 그날 뒤로도 경기도청 앞 5거리에서 매주 수요일 아침 선전전을 한다. 플랭카드를 걸고 피켓을 들고 지나가는 출근차량을 바라보면서 한 시간 가량 선전전을 한 게 벌써 2년이 넘었다. 4.11선거 전에 국회의원후보자 하나가 유세를 나왔다가 관심있는척한 것이 최근반응이다. 여전히 서민 사람들은 바쁘고 힘들다.

 

 

 

 

 

 

 

 

 

 

더 이상 탈 것도 분노할 것도 남지 않았다는 한 조합원의 말이 귀에 남아 맴돈다. 누군가는 시련과 역경을 통해 단련된 투사를 꿈꾸기도 하지만 단련될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보통의 사람들은 한 번 타버리고 나면 재가 되어버린다. 잿빛 음울한 마음과 기억으로 냉소를 띄우고 같은 기억을 공유한 사람만을 진정한 동료로 생각한다.

 

 

 

 

 

더 이상 탈 것도 분노할 것도 남아있지 않다는 자조적인 말을 하는 사람들을, 정보과형사는 숨어서 지켜본다. 그건 그 사람 직업이고 일이니까. 명단을 작성하고 체크하는 대로 분류되는 게 우리의 숙명이니까.

 

 

 

 

 

그냥 닥치고 받아들이기엔 아직 타다남은 게 남아있다. 타고 남은 잿덩어리가 묵직한 게 속에서 숯덩어리가 되어 남은 것 같다.

 

 

 

 

 

 

 

 

 

 

쌍용차 사태를 '훌륭하게' 마무리한 공로로 조현오 경찰총장을 임명한 정권에서, 쌍용차 해고자들은 22명이 죽어나갔다. 김문수 경기도지사도 쌍용차 사태에 공을 세운 경찰과 소방공무원에 표창을 지시했다. 적어도 새누리당에는 김문수보다 훌륭한 정치인이 별로 없는 것 같긴 하지만 김문수가 대통령이 된다고 해도 이명박 정권의 정책과 그리 달라질 것 같진 않다.

 

 

 

 

 

본인이야 젊은 시절 꿈꾸던 대로 빨간색이 풍성한 당에서 대권을 꿈꾸는 정치인이 되었겠지만, 한때 노동운동가의 도구로 씌여지고 버려졌을 노동자들의 삶은 누가 기억이나 해줄까 싶다. 물론 그 사람은 그 사람들의 그릇이 그것 밖에 안 된 것을 나더러 어쩌냐고 반문하겠지만 노동자의 입장에서 기분이 찝찝한 건 어쩔 수 없다.

 

 

 

 

 

 

 

 

 

 

경기도지사 김문수가 대권도전한다는 게 영 기분이 그렇다. 만에 하나 통이 되면 우리네 상황이 더 나빠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더더욱 그러하다.

 

 

 

 

 

김범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