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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전야


정확히 말하면 총선 당일 새벽 2-3시 경. 우원은 이제 곧 시작될 총선 결과의 예측 글을 쓰고 있었다. 자칫 뻘소리로 페친들에게 실망만 안겨주고 핀잔이나 들을지도 몰랐지만, 뭐 그 시점에는 그만큼 자신이 있었건 거다.


예측의 내용은 대략 이랬다.


 · 새누리당은 과반을 넘지 못하거나, 넘더라도 근소한 수준일 것이다.


 · 더민주도 과반을 차지하지 못하지만 선전한다.


 · 국민의 당은 약진하고 교섭단체 구성에 성공한다.


 · 야당이 힘을 합치면 여소야대를 만들 정도의 힘이 실릴 수 있다.


 · 정의당은 지역구 진출하고 비례대표도 선전한다.


 · 유승민 등 탈당파는 2/3 정도 당선되지만 쉽게 복당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페북 원문은 여기(링크) 있으니 관심 있는 분들 참고하시기 바란다. 나름 성지가 되어있다.)


실제는 이보다 더 나은 결과가 나왔지만, 총선 당일까지도 다들 패배를 기정사실화하고 있었기에 이런 예측은 누가 봐도 ‘지나치게 낙관적인’ 것이었다. 여야를 막론하고 새누리당이 180석을 넘기느냐 아니냐가 관건이었을 뿐 이긴다는 건 생각도 못 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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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원도 한동안 그랬다. 주변 사람들이 초조한 얼굴로 이번 총선에서 야권이 이길 수 있을지 물을 때 우원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이기긴 무슨. 180석, 아니 200석 안 빼앗기면 다행이지. 우리는 이길 전략이 없고 저쪽은 져줄 의사가 없는 상황에서 무슨 수로. 허나 어느 순간 그 생각에 흔들림이 생기기 시작했다. 뜻밖의 변수가 나타난 것이다.


바로 김 노인.



쌍절곤 돌리는 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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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백발의 노인은 우리와 결이 다르다. 존경할 결은 아닐지 모르되, 싸움에서는 유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비유를 들어보자. 그동안 우리는 목검으로 싸웠다. 이 목검은 장인이 섬세하게 깎아 만든 것으로 지난 수십 년 동안 검술의 달인들이 대를 이어 철학을 담은 초식을 펼쳐 왔다. 그런데 8년 전부터 이 목검술이 전혀 통하지 않는 거다. 


초식이 무뎌진 것인지 상대가 강해진 것인지 큰 전투에서 네 번 연속 패하고 만다. 실력을 가다듬고 더 훌륭한 검술을 구사해서 이기면 좋겠지만 이미 자신감은 잃은 지 오래고 이번에 지면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 절체절명의 상황에 몰리고 말았다.


이때 어디선가 이 백발 노인이 쌍절곤을 들고 등장한다. 쌍절곤의 실제 공격 방식은 후둘겨 패는 것 외에는 별로 없다. 게다가 목검과는 달리 잘못 휘두르면 자기 몸을 때릴 우려도 크다. 하지만 현란한 예비동작으로 공격이 어느 끝에서 나올지 모르게 만드는 큰 장점이 있다. 아무래도 검도에 비하면 격이 떨어지지만, 막상 상대는 이 무기에는 전혀 대비되어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물론 우원 역시 이 양반의 각종 이력과 성향, 그리고 등장 후 벌인 이런저런 사태들에서 드러난 면들이 불편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판단을 보류하고 말을 아꼈던 건 그 예측불가한 점 때문이었다. 기존의 우리 선수들과는 좋던 나쁘던 다른 인물이었고, 지금은 그 이질성 외에는 달리 변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쌍절곤 쓰는 방법은 확실히 알기에 문재인이 선봉에 세웠을 것 아닌가. 


정체성도 중요하지만 이번엔 무조건 이기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또 진다면 이제 남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우리가 믿고 희망을 가졌던 그 나라는 사라진다. 불법이 아닌 한, 이 와중에 승리의 모양새를 따지는 건 사치일 뿐이다.


하지만 쌍절곤 하나만으로 가능한 승부일까.



오만과 편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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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의 이 포스팅을 보는 순간 두 가지가 머리를 스쳤다. 하나는 이런 짓을 할 정도로 자신감에 차 있는 새누리의 노골적인 오만함이었다. 뒷목이 서늘해져 왔다. 그 오만에 걸맞는 야권 대패의 예감 때문이 아니라, 바로 그것이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반전의 가능성 때문이었다. 이런 수준의 오만방자함은 만화에나 나오는 건데 심지어 만화에서도 저런 태도를 보인 자는 십중팔구 역전패한다. 방심으로 넋을 놓은 상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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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런 장면 뒤에 대개 어떤 스토리가
전개되는지 알고 있다.


그리고 이어 보다 근본적인 질문, 과연 야권연대가 정답인가 하는 의문이 처음으로 떠올랐다. 87년 이후 현재까지 야권연대는 항상 선거의 금과옥조였다. 속성상 여당은 1이고 야당은 늘 2 이상이기 때문에, 2를 1로 만드는 연대가 성립되어야 여야의 대등한 경쟁이 가능하다는 논리에는 의심의 여지도 없었다. 


하지만 곱씹어보면 과연 지난 8년 동안 야권연대가 안 돼서 패한 거였나? 야권연대에도 ‘불구하고’ 패해 왔다. 그렇다면 이 논리에 함정이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해 보면 야권연대는 기존의 야권성향 국민들을 결속하는 힘이 있지만, 보수 쪽으로 살짝 기울어 있거나 여권을 지지했던 사람들을 끌어올 견인력은 없다. 따라서 그 한계도 명확할 수밖에 없다.


만약 국민의당이 단순히 야당의 2가 아니라 여당의 2와 야당의 2를 겸하는 존재라면, 혹은 적어도 국민들에게 그렇게 인식되어 있다면 어떨까. 실은 지난 대선부터 안철수가 보수표를 가져갈 가능성에 대해서는 자주 회자되어 왔다. 하지만 막상 총선이 다가오면서는 여야 할 것 없이 그들에게 여전히 기존 제 2 야당과 같은 의미만을 부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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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이자 동시에 야당.
슈뢰딩거의 안철수


머 사실 당연한 일이다. 우리나라 정치판은 거의 언제나 수구독재와 민주진보(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편의상. 전자는 자유당에서 현재의 새누리당까지, 후자는 한민당에서 현재의 더민주까지와 정의당 등 진보정당을 지칭한다)의 두 축으로 나누어졌기 때문이다. 굳이 ‘양당 체제’라는 형식적인 구조를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3당이나 4당 체체라고 해도 이념적 색깔은 위 두 성향으로 오랜 기간 명료하게 나눠져 있었다. 서로 다른 당의 행세를 하고 있어도 실제로는 총재라는 인물과 지역적 배경 외에는 내용상 별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국민의당도 마찬가지일까. 예컨대 80년대 말에 빗대어 이들을 김대중의 평화민주당이나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 중 하나에 대입할 수 있을까. 아무래도 그렇게 말할 수는 없다. 총선 승리를 일궈낸 현재도 기존의 더민주(혹은 소위 친노) 지지층 중에는 안철수가 여당의 ‘세작’일지 모른다는 의심을 가진 사람이 많다. 그런데 이는 바꿔 말하면 보수층 중에도 안철수가 ‘자기 편’이라고 믿는 사람이 많다는 의미다.


그래서 우원은 국민의당은 야권연대의 대상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연대하는 것보다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새누리에 불리하다. 소위 ‘친노’ 지지자들은 어차피 그들에게 표를 주지는 않기 때문에, 호남 지역을 제외하면 더민주 표보다 새누리 표를 더 가져갈 공산이 크다. 이를 통해 국민의당은 무난하게 교섭단체 요건을 충족할 것이었다.


총선 결과를 보면 그간 전인미답이었던 중간지대를 향한 안철수의 이 포지셔닝은 성공했다. 그러나 총선 전에는 야당도 여당도 양쪽의 지지층도 이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었다.



청년과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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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나라에서는 거의 모든 국민이 어떤 형태로든 소외돼 있다. 하지만 특히 심한 층이 청년과 노인이라는 건 두말할 필요도 없을 거다. 허나 지금까지 표를 통해 드러난 것은 주로 노인들의 분노였다. 


과거 그 주제로 쓴 글도 있지만, 우원은 노인들의 절망을 이해한다. 지난 30년간의 민주화 시대가 본의 아니게 규정한 그들의 일생에는 영광이란 없었다. 너무 가난한 시절에 태어나 어려서는 제대로 먹지도 즐기지도 배우지도 못했고, 청장년 때는 독재정권과 악덕 기업주에 착취당하며 재벌들 살찌워 주는 데 이용되고, 모아놓은 돈도 없이 늙어서는 가정에서의 권위도 사라지고 사회 시스템이 보호해 주지도 않는다. 와중에 몸은 예전 같지 않으며 살 날도 길지 않다. 나라면 절망하지 않을까.


그 절망은 향수와 공감이 되어 청춘을 ‘함께 했던’ 박정희와 그의 딸에게 향하고, 분노가 되어 자신들의 젊은 날에 먹칠만 하고 정작 준 것은 없는 민주화 세력에게 향한다. 와중에 정동영 같은 이는 말 한마디 잘못해서 거기에 기름을 붓기도 했다. (관련 기사: <파토의 쿡찍어 푸욱> - 2. 그들은 왜 변절했을까(링크))


하지만 그들은 이미 10년 가까이 분노를 이어 왔고 이제 그것도 조금은 수그러들 때가 되지 않았을까. 노인들도 화가 났을 뿐 바보는 아니기에 그간 정부 여당이 잘한 게 없다는 사실은 느끼고 있다. 또 세상과 젊은 사람들에게 섭섭했던 거지, 진짜 증오가 생긴 건 아니다. 화는 낼 만큼 냈고 이제 나이도 더 들고 지쳤을 것 아닌가. 언제까지 전투 모드로 싸우고 있겠나.


반면 청년의 경우는 다르다. ‘새파랗게 젊다는 게 한 밑천’이기에 노인들보다는 여유가 있었지만 이제 그런 노랫가락을 위안 삼을 수 없을 만큼 문제가 심각해졌다. 사람이 절망하는 것은 현재의 어려움 때문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전망의 결여 때문이다. 청년에게 전망의 결여는 평생에 걸친 예견된 고난을 의미한다. 분노하지 않을 수 없으며 그 책임은 아무래도 현재의 정권에게 지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분노는 투표율 상승으로 나타날 것이다. 


나아가 이런 전반적인 상황들이 합쳐져 주로 여당 지지 기반인 장, 노년층이 투표에 비교적 열성을 보이지 않고 자녀의 부탁이나 판단에 의존하는 경향도 이전보다 높아질 것이었고, 실제로 그런 모습들이 우원 주변에서 드러났다. 이 모든 징후들이 여당 표를 갉아먹는 방향이었기에 우원은 대부분의 예측과 달리 새누리당의 패배 혹은 고전으로 결론내릴 수 있었던 거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이런 것들이 실제로 승리의 중요한 요건으로 밝혀졌다. 


무엇보다도 이 요건들은 앞으로도 계속 작동해 향후 정국과 대선까지 이어질 것이다. 



승전보


암튼 그렇게, 우리는, 이겼다. 


감히 승리 예측까지 대놓고 한 입장이라 출구조사를 기다리는 마음은 다른 이들보다 약간은 더 떨렸을 거다. 그리고 환희와 흥분도 조금은 더 했을지 모른다. 암튼 우원은 새누리의 2당 추락만으로도 ‘우리’가 ‘이겼다’라는 표현을 쓰기에 충분하다고 본다. 물론 이게 끝이라고 생각하는 분은 아무도 없을 테고.


다만 한 두 가지 짚고 넘어가자. 막상 이기고 나니 국민의당이 없었으면, 혹은 김종인이 없었으면 더민주가 도리어 과반을 넘겼을 거라는 이야기들이 있는데 이런 건 아무 의미도 없는 소리다. 확인될 수도 검증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우리 눈 앞에 실제로 일어난 객관적 사실들만으로 판단해야 하며, 그 사실이란 “국민의당과 김종인이라는 변수가 존재하는 상태에서 야권이 예상 밖의 승리를 했다”는 것 하나다. 이는 그들에 대한 개인적 감정이나 지지 여부와는 무관하다.


또 하나, 지금 야권에서 얼른 해야 할 일은 야권의 승리, 혹은 새누리당의 패배 원인을 야권 시각에서 재정리하고 확산시키는 거라는 점이다. 확실한 근거 없이 새누리당 패배의 ‘주요’ 원인을 당내 공천 관련된 자중지란에서 찾는 흐름이 존재한다. 수구언론 뿐 아니라 진보성향 언론도 그 프레임에 편승하고 있는데, 그 스토리가 반복적으로 회자되는 과정에서 지난 8년간 정부여당의 총체적 실정과 부패, 반민주 반인권 획책이라는 훨씬 큰 문제들의 무게가 옅어진다.


ㅂㄱㄴ의 불통과 오만도 마찬가지다. 그 현상이 존재했던 것은 분명하지만 정책적 실패와 후안무치한 반인권 독재성향은 ㅂㄱㄴ 개인만 드러냈던 게 아니라 여권 전체의 모습이었다. 여권 내부에서 솔솔 새어 나오는 ㅂㄱㄴ 책임론은 통쾌히 여길 일이라기보다는 비판과 불신의 타겟을 자신들에게서 벗겨내려는 술수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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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문제는 내부에서나 떠들라는 거다.
우리까지 저기 편승해서는 곤란하다.


사실 ㅂㄱㄴ는 이제 확연한 레임덕하에 지는 권력이기에 너무 큰 무게를 둘 필요가 없다. 오래 전부터 지적했지만 그녀는 바지사장일 뿐이다. ㅂㄱㄴ의 무능을 모르고 대통령으로 밀었을 리 없는 저들이 그녀를 장기집권을 위한 포석으로 이용한 거다. 따라서 지금부터 형성되는 권력이 진짜 경계의 대상이다. 모두 합심해서 ㅂㄱㄴ에게 비난을 퍼붓는 가운데 어부지리를 얻는 새누리당 내의 새로운 권력의 축 말이다.


암튼 분란이나 기타 지엽적인 문제들이 아니라 정부여당이 가진 세계관과 그들이 추구해온 독재적 정책들이 이번 총선에서 저들이 패배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임을 확실히 부각시켜야 한다. 당내 화합을 이뤄내고 소통을 잘하면 다시 지지받을 게 아니라는 점 말이다. 이제 다시는 프레임 싸움에서 밀려선 안 된다. 


그럼, 이제 진짜 중요한 앞으로에 대해 생각해 보자.



안철수의 생각


이번 총선의 최대 수혜자는 아무래도 안철수다. 물론 더민주가 훨씬 많은 의석을 차지하고 있다는 현실을 잊어선 안되지만 총선 직전에 창당하고도 순식간에 30석이 넘는 제 3당으로 올라선 저력은 무시할 수 없다. 그럼 우리는 이 안철수와 국민의당에 어떤 기대와 우려를 해야 할까.


일단 그들이 친여인지 친야인지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세작 운운하는 생각도 마찬가지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칼로 그은 듯한 기존의 대립구도는 붕괴됐기 때문에 그 관점에서 생각하면 계속 잘못된 판단을 하게 된다.


물론 세간의 우려대로 그들은 일부 사안에서 여당과 뜻을 같이할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런 현상 자체가 아니라, 민주주의나 인권 등과 관련된 핵심적이고 원칙적인 사안들에서 그들이 보편성에 기초한 상식을 견지하느냐는 거다. 우원은 이 부분에서 있어서 큰 걱정은 하지는 않는다. 안철수도 새누리와 똑같은 존재가 되기 위해서 굳이 새정치를 표방하고 또 야당에 입당까지 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국민의당이 가진 불안함은 그 내부에 있다. 창당 과정에서 모아온 인사들의 면면을 보면 의식 38석밖에 안되는 당내에 5,6 개의 계파가 존재하는 모양새다. 아직이야 조용하지만 20대 국회가 열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이 파벌들의 성향 차이와 의견 다툼이 표면화될 가능성이 크다.


그런 가운데 본의 아니게 호남당마저 된 현실 속에서 막상 맹주 안철수는 호남 출신도 아니고 호남과 아무런 역사적, 정치적인 관계도 없다. 그 자신의 정체성이나 지향점과 호남 의원들의 정체성 및 요구, 그리고 그 외 구성원들 간의 갈등과 충돌이 어떻게 해소될 것인지, 만약 해소되지 못한다면 또 다시 헤쳐모여가 이뤄질 것인지 등이 향후 대선 정국과 관련되어 그들 앞에 놓일 숙제들이다. 대선 후보로서의 안철수의 힘은 그 모든 것을 묶어낼 구심력으로 작용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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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이몽이라면 대선 전에 잠에서 확 깨 버릴지도 모른다


우원은 국민의당이 공중분해되지 않고 대선까지 건재하길 바란다. 만약 다시 흩어져서 더민주에 흡수된다면 보수표를 새누리당에서 빼내 오는 역할이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물론 총선과는 달리 대선에서는 더민주와 국민의당 양쪽에서 대선 후보가 나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단일화는 필요하다고 본다. 단, 양쪽의 지지자를 온전히 합하는 최선의 방법은 합당이 아니라 후보 단일화에 이은 연정 형태일 것이다(결선투표제도 의미 있으나 개헌이 필요할 가능성이 커서 현실적으로 여렵다).


이렇듯 앞으로도 안철수의 역할은 이번 총선과 마찬가지로 그간 선택이 궁하던 합리적 보수층의 지지를 새누리에서 뺏어오는 일이며, 이것에 다시 성공한다면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와는 별개로 역사에 본인이 원하는 ‘흔적’을 남길 수 있을 것이다.



전국 to the 민주당


더민주는 호남을 잃은 대신 본의 아니게 전국정당이 되었다. 아래 카토그램은 전국 지역구 당선 현황을 면적이 아닌 선거구 수 기준으로 환산하여 그린 것이다. 서울, 수도권을 중심으로 충청 일원은 물론 부산 경남까지도 푸른 색이 꽤나 뻗쳐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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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가 승리를 부른다고, 총선 직후 진행된 리얼미터의 여론조사에서 더민주의 지지도는 더욱 높아졌다. 19대 국회 들어 처음으로 전국 정당 지지도에서 30.4%로 새누리당의 27.5%보다 높아졌지만,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부산,경남,울산에서조차 34.1%로 31.9%의 새누리당을 눌렀다는 점이다. 부산,경남이 이렇게 야권성향을 드러낸 것은 26년 전 김영삼의 민자당 합당 이후 처음이다. 


그외 ㅂㄱㄴ의 지지도가 전국적으로 폭락하고 문재인이 폭등하는 등 여러 흥미로운 현상들이 벌어지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이곳을 참조(링크))


특히 수도권과 부산경남은 우리나라에서 인구와 돈이 가장 많은 곳이니, 더민주는 그야말로 거대한 지역적 기반을 새로 얻은 셈이다. 의석수 자체보다도 바로 이런 점들이 정통 야당으로서 거둔 쾌거이자 역사적 의미를 찾을 수 있는 부분이다.


허나 숙제도 많다. 일단 호남과의 관계 재정리가 간단치 않다. 문재인이 김홍걸을 대동하고 광주를 찾기까지 했음에도 단 한석도 얻어내지 못했다는 점은 부담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다행히도) 위 총선 직후 여론조사 결과 호남에서 대선 주자로 높은 지지를 얻고 있기 때문에 정계 은퇴를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 문제또한 대선에서 국민의당과 단일화하고 승리한 후 연정을 꾀한다면 자연스럽게 풀려나갈 흐름이 생긴다. 서로 바탕도 이념도 다른 DJP 연합도 성사된 적이 있으니 꼭 어려운 일만은 아니다.


또 하나 풀어야 할 거리는 물론 쌍절곤 노인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이래저래 말이 많지만 간단하게 비유를 들어 볼란다. 총선에서 자기 역할은 분명히 했다. 허나 용병의 역할은 거기까지다. 전투가 아닌 통치까지 용병에게 맡기는 경우는 세상에 없다. 또 공천 등의 복잡한 과정이 없는(대선후보 경선은 성격이 다르다) 내년의 큰 전투에 그의 방식이 꼭 필요한지는 의심스럽다. 경제민주화 전문가이자 비례대표 의원으로서 20대 국회에 역할이 있을 것이고, 대선 후 경제수장이 되어 본인의 꿈을 한번 펼쳐보는 것은 어떤가 한다. 



변수


이제부터 대선까지 정국에서의 중요한 변수 중 하나는 레임덕 상황에서 ㅂㄱㄴ와 친박의 행보다. 우리는 그들이 이번 총선 결과 지리멸렬 무너졌을 거라고 여기고 싶지만 그건 섣부른 생각이다. ㅂㄱㄴ는 정치가가 아니라 왕족의 마인드로 사는 사람이다. 반성과 성찰은커녕 협상전략을 구사할 의지도 능력도 없어 끝까지 지금과 크게 다른 모습을 보이지 않을 거다. 다시 말하면 대통령의 권력을 마지막날까지 최대한 발휘하려 들 거라는 뜻이다. 따라서 노무현처럼 임기 말기 탈당하는 등의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물론 명령이 이전처럼 잘 먹히진 않겠지만.


더 눈여겨봐야 할 것은 ㅂㄱㄴ 퇴임 후에도 정치를 계속해야 할 친박계의 승부수다. 이들은 과거 엠비 가카와 친이계가 사용했던 방법을 역으로 이용할 가능성이 높다. 다들 눈치채고 있다시피 엠비 가카가 그 많은 문제와 의혹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멀쩡한 것은 정권이 비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비호 행위가 이뤄지는 이유는 가카가 ㅂㄱㄴ 쪽의 약점을 쥐고 있기 때문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반대로, 비호하고 있다는 것은 ㅂㄱㄴ 역시 엠비 가카의 약점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알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으로 하여 ㅂㄱㄴ와 엠비 가카는 서로 비리와 사생활이라는 약점을 틀어쥔 관계가 된다. 이 속에서 친박은 괴멸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들려 할 거다. 바로 친박과 친이의 적대적 공생 관계다. 

어차피 정점의 권력자들 외 나머지는 국회의원으로서 정치생명을 유지하는 게 지상과제다. 그렇게 한동안 살아남고 나면 어느 시점 이후로는 한때의 보스들이 어떤 꼴이 되던 상관없다. 김대중이 세상을 떠난 후 얼마 지나지도 않아 당시 한나라당에 투항한 한화갑과 한광옥, 김경재도 있었다.


다만 정권이 정말 넘어갈 것 같은 상황이 되면 이들은 그 적대적 공생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뭉칠 가능성이 크다. 저들 특유의 단결력을 생각해 보면 이 상황은 더민주-국민의당 연합팀이 반드시 넘어야 할 장벽이 될 거다.



국민은 옳았다


이번에 입은 저들의 데미지는 단지 의석을 잃은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영구집권을 획책했음에도 이리 허망하게 패할 수 있다는 것, 승리의 기대와 예측이 완전히 어긋났다는 데서 온 심리적 타격이 더욱 치명적일 것이다. 


이런 모습이 이 모든 상황에 참여하고 또 지켜본 국민 모두에게 미치는 영향은 그야말로 지대하다. 새누리당이 천년만년 집권할 태세로 온갖 반민주적 전횡을 부리는 모습을 보며, 야권 성향의 국민들조차 이제 다시 기회는 없을 지 모른다고 여겼었다. 하지만 아니었던 거다! 


저들은 저들대로 아무리 공고해 보여도 언제든 뒤집힐 수 있다는 가능성을, 우리는 우리 대로 아무리 절망적으로 보여도 언제든 역전할 수 있다는 희망을 봤다. 이렇게 되면 이제 저들도 마구잡이로 권력을 휘두르기 어렵다. 침묵하는 다수가 실은 자기들이 휘두른 권력의 칼날을 예민하게 지켜보고 있다는 두려움을 갖기 때문이다. 국회선진화법의 블랙코메디에서 보듯 내가 부린 억지가 언제 내게 부메랑으로 돌아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방송과 언론을 휘어잡는들, 종편이 그토록 날뛰도록 조장한들 국민의 귀와 눈까지 멀게 만들 수 없다는 게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렇게 위정자들은 국민을 두려워하게 되고, 그러면서 민주주의는 조금씩 중심을 잡아가는 게 아닐까.


물론 그런 감회에 너무 깊이 젖어들기에는 아직 이르다. 대선 종료의 휘슬이 울리는 그 시간까지 한 순간도 긴장을 놓을 수 없다. 하지만 이번 총선으로 우리는 분명히 한 가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세상이 아무리 어두워 보여도 역사는 진보한다는 것을. 한동안 암울한 그늘 속을 더듬거렸을망정, 우리는 그 장엄한 대로에서 결코 벗어나지 않았었다는 사실을. 


이번 승리의 진짜 의미는 바로 이 믿음을 다시 찾은 것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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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딴지일보 coco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