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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사에서 예수의 탄생 이후 최대 사건이 무엇일까? 아마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진출이 아닐까 싶다. 알렉산더의 대제국도 징기스칸의 서양 침략도 콜럼버스의 원정만큼 인류역사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 우리가 오늘날 콜럼버스를 어떻게 평가하든 그 사실에는 거의 변함이 없다.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진출 이후 세계사는 근본적으로 변했다. 아메리카라는 거대한 대륙이 ‘발견’됨으로써 세계지도는 완성되었고, 유럽은 인류사에 제국주의적 침략과 식민지배의 서막을 열었다. 그의 ‘발견’ 이후 아메리카는 유럽 열강들의 각축장이 되었고, 수천만의 원주민들은 종족말살이라는 인류 역사상 유례가 없는 참사를 겪었다. 또한 그 ‘발견’으로 유럽은 그 세계를 유럽 대륙을 넘어 아메리카 대륙까지 확장하게 되었으며 마침내 유럽적인 가치관과 그 충실한 계승자인 미국적 가치관이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다. 여기서 아메리카 진출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순전히 우연의 산물이었다는 것은 기막히게 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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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2년 8월 3일, 산타마리아호, 핀타호, 니냐호, 이 세 척의 배가 90여 명의 승무원을 태우고 스페인의 팔로스(Palos) 항을 떠났다. 선단에는 인도로 가는 새로운 항로를 찾아 나선 야심가들이 타고 있었으며, 총책임자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였다. 당시 서양인들에게 있어 ‘지구는 둥글다’는 것은 보편적 상식이었다. 따라서 대서양을 횡단해 서쪽으로 계속 가면 꿈에 그리던 동양에 도착할 수 있다는 콜럼버스의 생각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다들 그의 무모한 항해계획을 비웃었으며 그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그를 미치광이 취급했다. 때문에 그는 살인자들과 무법자들까지 끌어 모아 간신히 선단을 꾸릴 수 있었다.


하늘의 도움이었을까? 그들은 70여 일의 항해 끝에 10월 12일 새벽 2시, 꿈에 그리던 ‘인도’를 발견했다. 육지를 맨 처음 발견한 사람은 로드리고(Rodrigo de Triana)라는 선원이었다. 그 발견으로 콜럼버스의 꿈은 실현되었다. 먼 바다에 닻을 내린 콜럼버스 일행이 보트로 갈아타고 바닷가에 닿자 호기심에 찬 벌거벗은 원주민들이 가득 모여들었다. 콜럼버스 일행은 스페인 국왕의 깃발과 십자가가 그려진 깃발을 들고 다가갔다. 그 땅이 스페인 국왕의 땅이며 기독교 하나님의 땅이라는 선언이었다.


다 아는 이야기일 터이지만 그가 첫 발을 디딘 곳은 ‘인도’도 아니고, 황금의 땅 ‘일본(콜럼버스는 쿠바 섬을 일본이라고 믿었다)’도 아닌 오늘날 카리브 해에 있는 바하마군도의 한 섬이었다. 원주민들은 그 섬을 ‘과나아니’라고 불렀지만 그는 성스러운 구원자라는 뜻의 ‘산살바도르’로 명명했다. 그가 그곳에 발을 디딘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동양으로 가는 무역로를 개척하기 위해 항해에 나섰다가 덤으로 ‘발견’한 곳이었다. 인도에 가려다 엉뚱한 데 발을 디딘 것이지만, 그는 그곳이 인도라고 굳게 믿었다. 그래서 원주민들에게 망설임 없이 ‘인도인(인디언)’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의 인도 항해는 처음부터 기만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항해가 오래 걸리더라도, 선원들이 놀라거나 낙담하지 않도록’ 항해한 거리를 매일 고의적으로 축소해 기록했다. 그는 황금을 얻고자 하는 욕망에 카리브 해 구석구석을 뒤지면서도 다른 선원들의 욕심을 질타했다. 그에겐 자신의 욕심은 하나님을 위한 것이고 다른 선원들의 욕심은 사악한 욕망이었다. 그는 또한 육지를 처음 발견하는 사람에게 주게 되어 있는 상금을 가로챘다. 거짓말은 귀환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계속되어 고의적으로 조타수들이나 선원들의 판단을 흐리게 만들었다. 오직 자신만이 ‘인디아스로 가는 이 항로에 정통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였다.


그는 왜 인도로 가려는 야심에 불탔을까?


당시 유럽인들에겐 동양의 향료와 비단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지만, 사실상 그 향료무역은 이탈리아가 독점하고 있었다. 거기다 지중해를 지나 인도와 중국으로 가는 육로의 길목인 중동은 적대적인 이슬람교도인 터키인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유럽의 새로운 강국으로 떠오르던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이탈리아를 제치고 동방무역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경쟁하고 있었다. 그런데 포르투갈이 선수를 쳤다. 포르투갈은 아프리카 서해안을 돌아 아시아로 가는 항로를 선점했다. 초조해진 스페인 앞에 야심만만한 선원 콜럼버스가 나타났다.


평생 선원으로 잔뼈가 굵은 콜럼버스는 일찍이 동양으로 가는 새로운 항로를 개척할 야망에 불탔다. 조국 이탈리아에서 외면당한 그는 포르투갈의 후안 2세 국왕을 설득하려 애썼지만, 이미 아프리카 항로를 개척한 왕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는 마침내 스페인에 가 이사벨라 여왕과 페르난도 왕을 설득한다. 포르투갈의 아프리카 항로 선점에 초조하던 두 국왕은 그의 말에 반신반의하다가 그가 내건 조건에 동의했다. 그가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는데 성공하면, 스페인 국왕은 새로 발견된 모든 영토의 소유권을 가지는 대신 그에게 귀족의 작위를 부여하고, 대양의 제독으로 임명하며, 새로 발견하는 모든 땅에 종신 총독의 지위를 부여하고, 그 지위를 후손들에게 세습하게 하며, 새로 발견한 땅에서 얻는 수익의 10분의 1과 모든 무역 거래에 8분의 1의 지분으로 참여할 권리를 부여한다는 조건이었다. 파격적이다. 단, 실패하면 아무것도 없다. 국왕의 입장에서는 별로 손해 볼 것 없는 거래였다.


콜럼버스는 순수한 지적 호기심에 가득 찬 모험가는 아니었다. 그를 아메리카로 끌어들인 것은 황금에 대한 욕망과 종교적 열정이다. 그의 황금을 얻으려는 세속적 욕망과 종교적 열정은 거의 구분되지 않는다. 그의 <항해록>을 따라가 보면 모든 행위는 하나님의 기획이고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봉사한다. 그가 하는 모든 일은 하나님의 사업이다. 심지어 유럽으로 가져갈 막대한 황금으로 십자군 운동을 다시 일으켜 예루살렘을 이슬람교도로부터 탈환할 야심마저 지녔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은 그의 세속적 욕망을 지켜줄 가장 든든한 후원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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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에 도착한 콜럼버스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십자가를 세우는 것이었다. 그는 발을 딛는 곳마다 거대한 십자가를 세웠다. 아메리카는 이제 새로 그림을 그려야 할 백지다. 그때까지 원주민들이 무엇을 했는지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안중에 없었다. 그곳은 오로지 그리스도교를 전파하고 그리스도교도의 황금 욕망을 충족시킬 독점적 공간이었다. 그는 그곳을 제 마음대로 스페인 국왕에게 바치고, 원주민들을 스페인 국왕의 신민으로 선포하고, 발길이 닿는 곳마다 마음대로 이름을 가져다 붙였다. 그리고 ‘식민지 건설의 가능성’을 두고 고심했다. 그가 카리브 해 섬들에 새롭게 이름을 붙이는 행위는 그 섬을 독점하려는 욕망의 표현이다. 자신이 발을 디딘 섬들에 이름을 붙임으로써 그는 그 섬의 모든 과거를 부정하고 지워버리고선 그 섬을 새롭게 ‘발견’했다. 즉, 그의 ‘명명’을 통해 그 섬들은 새로운 발견자인 유럽의 소유가 되었다.


그는 카리브 해 일대 구석구석을 항해하며 끊임없이 황금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그에게 유일한 관심은 황금이었다. 석 달여에 걸친 아메리카 탐사는 황금을 찾기 위한 항해였다. 그는 가는 곳마다 원주민들을 납치하거나 설득해 배에 싣고 황금의 땅을 찾아 섬과 섬 사이를 끝없이 돌아다녔다. 손톱만한 금 한 조각도 결코 놓치지 않았다. 그들 일행을 하늘에서 내려온 사람들로 철석같이 믿고 있는 원주민들을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깨진 유리조각과 노끈과 구슬 같은 것으로 구슬려 그들이 갖고 있는 작은 금붙이 한 조각까지 모두 쓸어갔다. 그런 그가 동료 선원들에 대해 하는 말이 흥미롭다.


“인디오들은 매우 마음씨가 고운 반면에 우리 선원들은 지나치게 탐욕스럽다. 그들은 몰 끄트머리 하나, 심지어 깨진 유리나 도자기의 파편 조각 등 아무 쓸모없는 물건들을 인디오에게 주고 그들이 원하는 것들을 얻어낸다. 그럼에도 만족할 줄 모른다. 때로는 아무것도 주지 않고서 모든 것들을 얻으려고도 한다.”


이 구절에는 콜럼버스 자신이 지닌 황금에 대한 욕망이 교묘하게 숨겨져 있다. 그는 결코 신의 사도가 아니다. 그는 유럽 역사에 막 출현하던 부르주아 계급의 욕망을 대변한다. 그가 원한 것은 동양의 향료와 비단과 황금이었다. 선원들은 다만 그의 이런 욕망을 공유했으며 좀 더 조야하게 드러내보였을 뿐이다. 그 이후의 아메리카 침략자들도 그의 이런 욕망의 충실한 계승자들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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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와크(Arawak) 족


콜럼버스가 아메리카에 처음 도착할 당시 카리브 해 섬들에는 약 75만 명의 아라와크 족이 살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금은 조개껍질만큼이나 하찮은 물건이었다. 그러므로 콜럼버스 일행이 그 황금의 땅에서 황금을 구경하기는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원주민들이 목에 걸고 있는 장신구는 기껏 조개껍질이나 생선 뼛조각으로 만든 것들이었으며, 그 사이에 간간이 금붙이가 끼어 있었을 뿐이었다. 황금의 땅으로 알려진 인도가 조개껍질의 땅이었으니 얼마나 황당했겠는가? 그는 어느 섬에 가면 금이 산더미처럼 있다는 식의 원주민들의 뜬구름 같은 말을 믿고 신기루를 찾아 헤맸다. 그러면서도 머잖아 황금이 쏟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끝내 버리지 않았다. 그의 1차 원정은 그렇게 ‘인도’를 ‘발견’한 것 외에는 별다른 성과 없이 끝났다. 금을 찾기 위한 탐색의 항해였다고나 할까.


그는 1493년 1월 초에 아메리카의 한 해안에 나비다드(크리스마스) 요새를 만들어 39명의 선원들을 남겨두고, 아메리카 ‘발견’의 증거로 원주민들을 납치해 귀환 길에 올랐다. 3월 15일, 천신만고 끝에 출항했던 팔로스 항에 도착했다.


그의 귀환은 스페인에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그는 미치광이에서 일약 영웅이 되었다. 그가 끌고 온 원주민들은 유럽인들의 호기심을 자극했고, 사람들은 연일 그들을 보기 위해 몰려들었다. 이런 뜻밖의 반향에 자극받은 그는 돌아오기 바쁘게 2차 원정을 준비했다. 스페인 국왕의 전폭적인 지지 덕분이었다. 그는 그 해 9월, 17척의 배와 1500여 명의 대군단을 이끌고 다시 아메리카로 갔다. 11월 3일에 한 섬에 도착해 도미니카(일요일)라는 이름을 붙였다. 얼마 후 그는 히스파니올라 섬에 아메리카 최초의 식민지인 이사벨라 식민지를 건설했다.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근사하게 가긴 갔는데 ‘인도’에 기대했던 금은보화는 없었다. 콜럼버스로서는 죽을 맛이었을 것이다. 그냥 돌아가면 사기꾼으로 몰려 몰매를 맞을 테고. 하여 짜낸 궁여지책이 약탈이었다.


여기서 잠시 영화로 장면을 바꿔보자. 1992년에 콜럼버스 미대륙 진출 500주년을 기념해 리들리 스코트 감독이 만든 <1492, 낙원의 정복(1492, conquest of paradise)>이다. 이 영화는 콜럼버스의 불굴의 집념과 용기를 잘 보여주지만 많은 진실을 감추고 있다. 영화에서 콜럼버스는 끝까지 도덕적 순결성을 지닌 위대한 탐험가다. 그의 일행이 2차 원정에서 금을 채굴하기 위해 벌인 잔인한 원주민 착취는 그의 대척점에 있는 인물인 목시카에게 전가되면서 슬쩍 지나간다. 그리고 어느 사이 영화는 신대륙에서 벌이는 콜럼버스의 정의와 목시카의 악 사이의 투쟁으로 변질된다.


영화에서 목시카는 신의 사도인 콜럼버스에 대항하는 사탄이다. 목시카는 하찮은 외국인 콜럼버스가 귀족의 반열에 오르고 제독이 되어 자신에게 명령을 내리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시기심에 가득 찬 오만한 귀족이다. 또한 그는 인종 편견에 사로잡혀 원주민들에게 잔학 행위를 서슴없이 가하는 냉혹한 인간이다. 콜럼버스는 목시카의 악에 대항해 원주민들을 지키고 자신이 건설한 신대륙 최초의 식민도시 이사벨라를 구하기 위해 피비린내 나는 투쟁을 한다. 그 가운데 원주민들은 콜럼버스에게 협력하는 선한 사람들과 목시카의 편에 서는 악한 사람들로 분열된다.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구도지만, 그 속에서 콜럼버스가 아메리카에서 행한 만행은 은폐되고 원주민들이 겪은 참상은 지워진다. 그리고 그는 최후까지 시대를 앞서간 고독한 영웅으로 남는다. 영화는 반쪽의 진실도 전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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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민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는 콜럼버스

(영화 <1492, 낙원의 정복> 중에서)


콜럼버스의 <항해록>에 따르면, 첫 항해에서는 원주민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기 위해 꽤나 노력했던 듯하다. 막판에 작은 충돌이 있긴 했지만 항해 내내 원주민들과 호의적인 관계를 유지했으며 그들의 선의에 깨진 유리조각으로나마 보상하는 걸 잊지 않았다. 후일 그들에게서 얻어낼 막대한 이익을 위해서 말이다.


그러나 2차 원정 때 그곳에 기대했던 황금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 그는 잔인한 인물로 표변(豹變. 마음, 행동 따위가 갑작스럽게 달라지는 것)한다. 1차 원정 때는 순수의 결정체로 비쳤던 원주민들이 이제 사악하고 탐욕스럽고 잔인하고 타락한 영혼을 지닌 존재로 보였다. 바꿔 말하자면, 콜럼버스 자신의 사악하고, 탐욕스럽고, 잔인하고, 타락한 영혼이 눈을 떴다.


그는 1496년까지 아메리카에 진을 치고 앉아 원주민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 유럽으로 보내 노예로 팔고 반항하는 사람들은 가차 없이 죽였다. <기독교죄악사>에 따르면 도미니카 섬에서 자신들의 배가 좌초되었을 때 혼신의 힘으로 도와준 원주민 부족들을 기습해 살해하기도 했다. 또한 곤경에 처했을 때 호의를 베풀어준 그 섬 주민들에게 은혜를 갚는다는 명목으로 수백 명을 천막집에 모아놓고 불을 질렀다. 밖으로 탈출하는 사람들은 남자고 여자고, 어른이고 아이고 할 것 없이 학살했다.


하워드 진의 <미국민중사>에 따르면, 1495년부터 콜럼버스 일행은 히스파니올라 섬의 아라와크 족을 닥치는 대로 잡아 유럽으로 보내 노예로 팔고, 금광과 농장을 개발하기 위해 노예로 부렸다. 여자들은 성적으로 착취했다. 원주민들을 얼마나 가혹하게 착취했던지 1497년까지 히스파니올라 섬에 거주하던 25만 명 가량의 아라와크 족 절반이 죽었다. 원주민들은 그들에 대항해 무기를 들고 싸웠지만 역부족이었다. 콜럼버스 일행은 저항하는 원주민들의 공포심을 극대화하기 위해 그들을 잡아서 손발을 자르고 교수형에 처하고 산 채로 불태웠다. 아메리카는 이렇게 만신창이가 된 모습으로 인류역사에 등장한다.


콜럼버스는 이후로도 1498년에 3차 원정, 1502년에 4차 원정까지 아메리카에 들락거리며 탐험과 식민지 개척을 했다. 그의 뒤를 이은 에르난 코르테스는 중미의 아스텍 문명을, 프란시스코 피사로는 남미의 잉카문명을 무너뜨렸다. 그 후 중남미에서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북미에서는 영국과 프랑스가 식민지 쟁탈을 위한 주도권 다툼을 벌였다. 그 가운데 오늘날의 ‘미합중국’이 태어날 토양이 마련되고 있었다.


다만 아이러니한 것은 콜럼버스가 백인으로서 첫 발을 디딘 그 대륙이 콜럼버스 대륙이 아니라 ‘아메리카’ 대륙이 되고 말았다는 사실이다. 콜럼버스는 얼마나 원통했을까. 하지만 죽을 때까지 자신이 들락거린 대륙을 ‘인도’라고 믿었던 콜럼버스니 당연한 결과다. 그나마 오늘날 세계 최강의 나라인 미국의 수도에 그의 이름이 붙은 것으로나마 위안을 찾아야 할까? ‘워싱턴, 컬럼비아 특별구’ 말이다.


오늘날 콜럼버스의 진정한 계승자는 누구일까? 바로 미국인들이다. 세계를 지배하려는 욕망이나 지구를 벗어나 우주를 향해 줄달음질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영락없는 콜럼버스를 본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탐험의 욕망과 그곳에서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욕망은 고스란히 미국인의 욕망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콜럼버스는 아메리카 대륙에 첫발을 디딘 백인이 아니다. 그보다 훨씬 이전에도 다른 백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건너간 기록이 있고, 그곳에 백인이 정착해 산 유적지도 발굴되었다. 다만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를 유럽에 소개한 덕분에 이후 유럽인들이 아메리카로 몰려가 수천만의 원주민을 학살하고 약탈한 것을 생각하면, 아메리카를 유럽의 식민대륙으로 만든 것을 생각하면, 그리고 오늘날 세계 유일의 패권국가인 ‘미합중국’이 태어난 것을 생각하면, 1492년은 기억할 만한 해다. 백인들에게는 영광의 해로,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는 악몽의 해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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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두 얼굴을 가졌다. 백인들에게는 위대한 발견자겠지만, 원주민들에게 있어서는 인간백정, 살인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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