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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버스 드라이버다. 대형 버스 운전기사. 이 세계에 투신하는 중생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싶어 황금 같은 비번날에 뻘짓 삼아 장문을 써 본다. 버스기사 세계에 대한 썰을 풀어보겠다.


달리 해먹고 살 게 없어서 운전대를 잡았다는 게 버스 운전기사에 대한 일반적인 통념이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나만 해도 대학에서 두 개의 전공을 한 나름 배운 사람이니까. 나는 대학 졸업 후 어찌어찌 운빨로 강남 모처의 개발 회사 디자인팀에 들어갔다. GUI 디자인 및 기타 프로그램 개발 지원 업무를 맡아 근무하며 직장 생활도 경험했고 즉석 사진 키오스크 개발 회사에서도 근무했었다. 말년엔 조그만 여행사 웹사이트 상근 직원으로 사이트관리 및 기타 디자인 지원 업무를 하며 버티다, 무슨 객기인지 지발로 뛰쳐나와 몇 년을 허송세월했었다.

 

외국에 나가 살아 보고 싶어 무작정 동남아 모국(某國)에 도망가 일 년여 동안 살아 봤고, 다시 귀국해서 허송세월... 직장 생활하며 모아놓은 통장 잔고가 앵꼬날 즈음 귓방맹이를 맞은 듯한 싸한 기분에 앞으로 호구지책 할 거리를 찾기 시작했다.

 

사실 이전 직장도 자격증이나 이젠 기본이 된 어학 실력이 있어서 시작한 것이 아니고, 담당 직무 능력이 업계에서 인정받는 실력도 아니었기 때문에 다시 예전 직종에 돌아가는 건 무리 데스였고 나이도 마흔 줄이 넘었기에 뭔가 다른 길을 찾아야 했다.

 

어느 날 지갑에 한 장 있는 오천 원짜리를 보며 이걸로 담배를 두 갑 사야 하는가 어쩔까 고민하면서 편의점을 가는데 편의점 길 건너에 버스 회사가 보였다. 나름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메고 흰장갑을 끼고 운전석에 앉아서 시동을 거는 버스기사, 괜찮게 보이더라. 듣기에 월급도 세전 400에 육박한다고 들었기에 담배 한 대를 빨며 한참을 쳐다보았다. ‘괜찮겠네..’

 

집에서 인터넷을 검색해 봤는데 시바.. 이게 그냥 이력서 들고 버스회사 사무실에 들이밀고 “써주쇼” 한다고 되는 게 아니더라능. 뭐가 이리 필요한 게 많은지, 졸라 골때렸다. 1종 대형면허는 기본에 운전정밀검사 판정표, 버스운전 자격증, 신규종사자교육증, CNG교육 수료증, 운전경력 증명서 등등 우리가 일반적으로 회사에 집어넣는 등본 초본 차원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통잔 잔고가 더는 흡연을 지속하기가 힘들겠다는 신호를 보냈기에 쫒아 다니며 위에 열거한 여러 가지 서류와 시험, 교육을 받았다. 근데, 집 앞에 그 큰 버스 회사에서는 나 같은 뉴비는 서류 접수도 불가하단다. 하긴 대형면허가 있어도 시험장에서만 몰아봤지 언제 몰아 봤기나 하던가. 일면 이해가 가긴 했지만 속내는 참... 없는 자궁이 답답하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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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발 경력 있는 사람만 뽑으면 나 같은 뉴비는 어디서 경력을 쌓으란 말이냐는 어느 개그맨의 대사처럼 졸라 열 받던 차에, “가서 마을버스 몇 년 하다 오세요.”라는 말을 들었다. 아.. 마을버스. 옛날에 직장 다닐 때 지하철 타러 가려고 타던 그 봉고 같은 초록색 미니버스. 혹은 버스 몸땡이를 댕강 잘라놓은 먼가 언발란스한 작은 버스 말하는 거였다.

 

그렇다. 버스 업계에도 그레이드가 있었다. 눈앞에 보이는 저 파란 버스가 그냥 어중이가 타고 떠중이가 모는 그런 게 아니라는 거다. 시바 모가 이래 복잡한가 싶었지만 그래도 이것저것 교육받고 시험 보고 한 게 아까워서 동네 끄트머리 구석에 있는 마을버스 회사를 찾아갔다.

 

그 조그만 녹색 버스가 몇 대 서있고 한눈에 봐도 졸라 영세한 이런 데서 차량 정비나 제대로 할까 싶은 그런 환경. 한쪽에 녹슬어가는 허름한 회색 컨테이너가 회사 사무실인 듯 보였다.

 

쭈뼛거리면서 들어선 사무실엔 초로의 한 남자가 앉아서 티비를 보고 있었는데 버스에 기사 모집 보고 왔다니까 버스나 대형트럭 몰아본 경력은 있는지 물어봤다. “뉴비인데요.” 하니, 연락 주겠다고 일단 이력서만 놓고 가라고 했다. 시발 여기서도 경력을 찾는 건가, 진짜 욕지기가 나왔지만 나름 표정 관리하면서 '잘 부탁드린다'고 굽실대고 있는 자신이 더 병신 같았다고 할까. 그만큼 절박했으니까.

 

물론 연락은 오지 않았다. 시발 이게 세상이구나를 나이 마흔 먹고 알아가는 중이었다. 그동안 내가 살았던 세상은 영화 속 평화로운 세상이었구나. 좀 과장하자면 온실 속 화초 같은 인생, 그런 느낌이었다. 졸라 허접하다 무시했던, 어렴풋이 기억하는 출근길 아침에 버스를 타면 때가 타보이는 짙은 남색 잠바에 마스크를 한 피곤에 쩔어 보이는 마을버스 기사의 얼굴이 새삼 떠올랐다.

 

결국 버스 인력 소개 대행업체를 찾아갔다. 없는 돈에 소개비조로 금 오십만 원을 주고 연수랍시고 폐기용도 된 35인승 버스로 3일간 교육을 받았다. 경기도 어디의 마을버스 회사에 나를 데려간 인력회사 과장이라는 자는 소장과 몇 마디 말을 하고는 "그럼 잘하세요"하는 말과 함께 회사 주차장에 나를 남겨두고 휙 가버렸고, 회사 소장이라는 자는 당장 내일 새벽 4시에 나오라고 퉁명스럽게 한마디 하고는 컨테이너 건물로 들어가 버렸다. 내가 생각했던 근로계약서 작성이나 근무 환경 설명, 급여 등의 설명은 가볍게 스킵하고 나의 마을버스 생활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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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동료 선배 기사에게 들은 마을버스 기사의 처우는 정말이지 처참한 수준이었다. 2015년 대한민국에서 알바도 아니고 이런 처우에 이런 노동 강도의 일을 아무 말 없이 한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 아니, 나의 꿈은 파란 버스였기에 이미 한 발을 들인 나는 그들과 같이 고통을 참기로 했다.

 

참고로 대다수 마을버스는 하루 2교대 주말 휴무 없이 근무하며 회사에 따라 하루 휴무를 주는데 그럴 경우 반대조 기사가 종일 근무를 하게 된다. 우린 이걸 풀(Full)탄다고 불렀는데 간혹 이 풀근무를 일주일 동안 하는 독종 기사도 있었다. 결국 사고로 인해 승객 치료비로 번 것도 없이 몸만 까졌던 거로 기억한다.

 

월 급여는 대개 150만 원을 넘지 못하며 아파서 쉬는 날이라도 있거나 접촉사고나 차내 안전사고 등 불미한 일이 생기면 개인이 책임지는 쪽으로 유도한다. 혹 보험처리 이런 거 생각한다면 그날로 배차가 빠지는 즉, 퇴사라고 보면 되는 거다. 이 글을 쓰는 나도 견습할 때 차내 안전사고(승객이 넘어지는)로 첫 월급 받기도 전에 60만 원이 날아갔다.

 

진짜!!! 여러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마을버스를 탈 때는 될 수 있으면 앉아서 가고 완전히 정차 후에 승하차를 하시라는 거다. 대개 마을버스로 쓰는 차종은 현대 카운티나 35인승 준대형 버스인데 특히 카운티의 경우는 댐퍼나 스프링이 완전 쌈마이라 충격 흡수가 쒯이고 좀만 높은 방지턱이나 포트홀에도 그 충격이 승차자에게 그대로 전달되므로 부상의 위험이 크다. 특히 작은 차체로 골목길까지 접근하므로 회전 시나 정지 시 차내 사고가 많다. 될 수 있으면 카운티는 타지 마시라고 부모님들께 꼭 주지시켜드리기 바라마지 않는다. 어머니 허리 아파서 통증 크리닉 가려고 마을버스 탔다가 더 심하게 다치실 수 있다능.

 

안전사고가 발생하면 일단 승객도 피해가 있지만 운전하는 기사도 그날 근무는 물론 경우에 따라 한 달 치 급여가 그냥 날아가고 실직도 할 수 있다. 살아보겠다고 거지 같은 처우에 박봉을 참고 새벽에 나와서 배차 쫒겨가며 개고생하는 마을버스 기사의 고충을 조금만 알아주십사 부탁드린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지옥 같은 마을버스를 어떻게 1년이 넘게 했는지, 다시 하라면 차라리 군대를 다시 가는 게 나은 듯싶다.

 

다시 버스로 돌아와서, 이번엔 정비 이야기이다. 모든 마을버스 회사가 그런 것은 아닐 테지만, 내가 근무한 곳의 정비 실태는 뜨악한 수준이었다. 본인이 근무하던 마을버스 회사는 총 20대가 안 되는 카운티 차량을 운행하던 회사였는데 처음 입사했을 때 있던 정비반장이 몇 달 후 다른 회사로 이직해 버렸다. 월급 차이가 있었거나 지인에 의해 스카웃 된 것 같다.

 

그분이 떠나신 후 내가 퇴사할 때까지 우리 회사의 정비 반장은 공석이었는데, 심각한 고장이 있으면 먼저 있던 그 정비사가 잠시 와서 수리를 해주고 가는 식이었다. 대개는 소장과 과장이라는 자가 같이 수리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들이 정비 자격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노코멘트.

 

마을버스의 경우 계절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새벽 5시에 첫차가 떠나고, 저녁 12시 전에 막차가 출발한다. 기름을 보충하고 차고지로 들어오면 1시~2시 사이인데 다시 새벽 5시에 시동이 걸리니까 차량은 하루에 5시간을 채 쉬지 못하는 셈이다. 저 파리 다카르랠리(*편집자 주: 사하라 사막을 헤치면서 약 3주일간 12,000∼14,000km를 달리는 장거리 자동차 경주)를 찜 쩌 먹는 가혹한 운행 조건인데, 내구성이 좋지 않은 국내 모 회사의 차량이므로 고장이 잦다. 하루 2교대로 운행하는 기사가 바뀌는데 사람마다 운전 스타일이 다르고 기어 변속 습관, 클러치 조작이 다르니 거기서 차량이 받는 스트레스도 적지 않다.

 

한참 더웠던 작년 여름, 에어컨을 틀어도 뜨끈한 바람만 나오는 날이었다. 그날은 특히 더운 바람의 정도가 심했다. 승객들이 에어컨을 꺼달라고 항의할 정도였으니까. 급히 종점에서 차고에 연락 후 차고지로 들어갔는데 소장은 마땅한 정비 방법이 없었는지 차량엔진룸을 열고 라지에이터에 물을 쏘기 시작했다. 참고로 카운티는 엔진룸이 실내에서 열리고 운전석 바로 옆에 커버가 있다. 한 십여 분을 물을 뿌리고 엔진이 식었으니 나보고 다시 나가서 운행하란다. 이런 식이다. 회사 입장에서는 차량 한대가 고장으로 휴차하면 하루 손해가 만만찮기에 무리해서라도 이렇게 돌리는 것이겠지만, 안전 문제는 물론이거니와 과열로 뜨거운 엔진 옆에서 운행하는 기사는 말할 수 없이 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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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출근하면 기본적으로 엔진오일 냉각수 타이어 상태 등을 기사가 점검하게 되어있고 차트에 체크를 하게 되어있는데, 대개 형식적으로 기재하고 확인하지 않는 게 다반사이다. 새벽잠 설치고 나와서 해도 없는 어두운 차고지에서 일일히 점검을 하기가 쉽지도 않거니와 기본적인 오일 냉각수 보충 외에 문제가 있어도 기사가 손볼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나마 입사한 지 얼마 안 되는 신입 기사들은 신경을 써서 확인한다고 하는데, 이유는 신입일수록 차량 배차를 노후된 차나 성능이 떨어지는 차량을 배차하므로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또 한 가지 배차 시간. 이게 정말 사람 잡는다. 대개 한 노선에 많으면 6대에서 7대 정도 돌리는데 1시간에서 2시간 안쪽 운행에 배차 간격은 노선에 따라 다르지만 15분에서 20분 정도이다. 그런데 이렇게 정해 놓았다고 재대로 돌아갈 리가 없다. 교통 상황(사고, 백화점 세일, 출퇴근 정체 등)에 따라 차량이 붙고 떨어지고 하는데 경우에 따라 종점에 들어가자마자 차를 돌려 다시 나가야 하는 경우도 많다.

 

이걸 우린 벽치기 한다고 불렀다.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이면 빈도는 떨어진다고 하는데 그래 봐야 들어와서 10분 정도 쉬면 많이 쉬는 거다. 특히 식사시간이 따로 있지가 않고 보통 3번째~4번째 사이에 거래 식당이나 기사 자율로 끼니를 해결해야 하는데 10분이 채 안남았다면 그냥 건너뛰거나 우유 정도로 넘어가야 한다.

 

그러다 보니 조금만 공간이 있으면 무리하게 끼어들게 되고 기사에 따라 과속도 하게 되어 재수 없으면 가끔 뉴스에서 보는 그런 일이 벌어지게 되는 것. 종점에 들어왔는데 출발시간이 2-3분 남으면 화장실을 가기도 애매하고 난감하다. 대변은 그냥 참고 나가거나 소변은 그냥 길가 어디 대충 처리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본인은 소변을 많이 참다 보니 전립선이 많이 안 좋아졌다. 운전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의 직업병이 바로 이 비뇨기 질환이라 하니 참고하시기 바란다. 소변 때문에 물도 가급적 안 마시게 되고 매연 때문에 퇴근 후 세수를 하면 코 안이 세까만데, 이게 풀어도 풀어도 계속 나온다. 환장한다. 머 대충 이렇게 하루에 6탕(바퀴)을 돌게 되면 2시나 3경 퇴근하게 된다.

 

그리고.. 2교대 근무. 이거 사람 잡는 근무 형태이다. 일주일은 새벽반, 일주일은 오후반 이렇게 돌아가는데 아무리 경력이 쌓이고 시간이 흘러도 몸이 적응을 못 한다. 적응을 한다고 착각하는 것일 뿐, 나중에 보면 건강이 무척 나빠진 걸 체감하게 된다. 운행 중 졸음이나 주의력이 확연히 산만해짐을 알 수 있다. 이로 인한 사고는 바로 퇴사로 이어지거나 기사에게 책임이 돌아간다. 서울시나 각 지자체에서는 실제 마을버스 운전기사들의 처우나 근무시간들에 대해 실태 파악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건 대중교통 안전을 위해 꼭 체크해야 할 사안이다. 머 아무리 얘기해봐야 개 짖는 소리겠지만..

 

또 한 가지. 버스기사를 해서 먹고 살고자 맘을 먹었거든 일단 결혼부터 하시라. 마을버스는 그렇지 않지만 대다수 큰 시내버스 회사는 미혼자를 반기지 않는다. 이유는 여러 가지인데 심리적으로 안정적이지 않고 사생활이 문란하며 책임감이 떨어진다는 여러 이유를 들어 채용을 하지 않는다(취직을 해야 결혼도 하지 시발). 서울 시내버스도 그렇고 특히 경기권의 경우 거의 독점하고 있는 K모 메이져 회사의 경우 죽었다 깨어나도 못 들어간다. 듣기로는 회장님 지시사항이라서 그렇다고 하는데 사실 진위는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경찰서 민원실에 가면 운전 경력 증명서라는 게 있다. 창구에 가서 운전경력 증명서를 떼는데 꼭 전체 기간으로 발급받아서 보았을 때 아래 칸에 사고 이력이 중상2 사망1 머 이런 식이면 그냥 다른 거 알아보는 게 여러모로 시간도 절약하구 정신 건강에 좋겠다. 기껏 조빠지게 시험보구 정밀검사도 받구 교육도 받았는데 마을버스밖에 못 하면 빡치자나.

 

뭐 일단 이렇게 마을버스와 기사의 근무여건에 대해 겆껍질이나마 핥아 보았는데 내가 놓친 부분이 있는 것 같다든지 궁금한 것이 있으면 댓글 달아주시라. 진심을 담아 아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알려드리도록 하겠다.

 

내일 새벽차 배차라 이만 줄이고 언제 시간이 되면 현재 근무하고 있는 일반 시내버스 기사의 취업과 처우에 대해 썰을 풀어보겠다. 그럼 이만 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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