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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06.금요일

논설우원 파토


 



 


며칠 전이었다. 우원은 꺼져가는 정신을 부여잡으며 어딘가를 정처없이 헤매고 있었다. 엄습하는 극한의 혼란과 두려움… 흐릿해지는 사물들. 이것이 죽음인가. 우원은 목적지도 없이 그저 살기 위해 걷고 또 걸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미 주독(酒毒)에 노출된 뇌, 그 속에서 지금까지 살아온 기억의 편린들이 주마등(走馬燈)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놓쳐버린 사랑, 꺾여버린 야망, 배신당한 우정. 그리고 잃어버린 꿈.


 


…꿈.


 


순간, 다리에서 힘이 빠져 나가며 우원은 그만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세상이 핑핑 돌고 있었다. 마구 회전하며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었다. 뭔가 잘못되었다고 느꼈지만 아무것도 할 수없다. 나의 시간은 이제 무너져 간다. 무너져 점으로 변하고, 그 점은 어디론가 알 수 없는 공허 속으로 다시 미끄러져 떨어져 간다.


 


타임슬립…?


 


 



  


그곳에서 우원은 이십대 초반의 음악하고 글쓰는 청년이었다. 실제와 똑같이 실제와는 반대로 젊은 우원은 돈도 여친도 차도 변변한 주거 공간조차 없이 찌질한 청춘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내게도 꿈이 있었다. 음악 좋아하고 책 좋아하고 글쓰기 좋아하고 영화 좋아하는 친구들이 모여서 빈둥거리기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고 공연도 하고 영화도 보고 음악도 듣고 강연도 듣는 아지트를 갖는 것. 머 때로는 카페가, 때로는 친구네 작업실이 잠깐 그 역할을 했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내 손으로 그것을 만들고 싶어졌다. 나중에 진짜 어른이 되면, 돈이 생기면 해야지. 지하 2층 지상 5층의 건물. 지하는 연극 공연장/상영회장과 콘서트홀, 1층은 카페, 2층은 사무실, 3층은 녹음 스튜디오, 기타 등등. 다들 이런 꿈 한번씩 꾸지 않았을까…?


 


그때는 서른 살 어른이 되면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서른 살에는 마흔 살, 진짜 어른이 되면 어떻게든 실현될 줄 알았다. 하지만 세월은 화살 같고 사람은 쉬이 늙으니, 장면은 바뀌어 우원은 어느새 백발 노인이 되어 탑골공원 구석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뒤뚱거리는 닭둘기들마저 주변을 얼쩡거리며 우원의 못 이룬 꿈을 비웃고 있는 것 같았다.


 


아아, 이렇게 끝나는가. 인생은 일장춘몽이라지만 아무리 이토록 덧없이.


 



닭 둘 기


 


그때였다. 길거리에 쓰려져 있던 우원이 정신을 차리고 깨어난 것은. 어디선가 찬연한 한줄기 섬광 같은 빛이 우원의 여린 수정체로 내려 꽂히고 있었다. 손으로 눈을 가리며 깨지는 두통 속에서 나는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그때 나의 눈에 한 가득 들어온 것은…


 



 


벙커 1? 저게 뭐지…?


 


이내 서서히 기억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아마도 잃어버린 너와 나의 꿈의 표상. 저 푸른 해원(海原)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텔지어의 손수건.


 


…그래, 저곳이라면. 저기라면.


 




 


…써놓고 보니 좀 민망하다만 암튼 본론은 이제부터다.


 


그래서 이제 탄생한다. <허브 1>.


이쯤 했으면 여기가 뭐하는 곳인지 알 만할 거다. 아 물론 장소는 그냥 벙커 1이다. 간판도 따로 없다. 어쩌겠냐, 돈 드는데.


 


<허브 1>은 울나라 모든 서브컬처, 인디펜던트, 언더그라운드 문화의 허브를 표방한다. 독립영화, 독립다큐, 만화, 애니, SF, 각종 쟝르문학, 록, 재즈, 힙합… 예술이던 학문이던 뭐든지 좋다. 이 모든 쟝르가 각자 모이고 또 다른 쟝르간에도 소통하는 그런 아지트이자 허브로 키워 보자는 거다.


 


근데 머 그냥 이런 곳이라고 말만 해서는 되는게 없으니, 일단 시작하는 것은 상영회 되겠다. 그리고 분위기 봐서 음악감상회, 공연, 쟝르문학이나 문화 강연, 독서모임 등등으로 대거 이어나갈 생각이다(나꼼수 행사와는 별개로 진행).


 


그 첫빠따는 우원의 지인이기도 한 이응일 감독의 초저예산 SF영화 <불청객>.


 



 


이 영화는 2010년 9월 30일 극장개봉까지 한 엄연한 상업 영화다. 명작이나 걸작을 넘어가히 괴작(怪作)이라 불러야 마땅할 본편은 사랑과 야망을 상실하고 우정마저 파탄난 88만원 세대의고독과 좌절을 SF라는 형식에 녹여낸 문제적 작품이다.


 



 


위에서 보듯 세 히어로의 얼굴에서 이미 풍겨나오는 괴작의 범상치 않은 풍모. 이들이 본의 아니게 맞닥뜨리는 모험과 활극은 숨막히고, 자취방에서 은하계를 넘나드는 거대한 스케일과 이를 뒷받침하는 각종 최첨단 특수효과는 눈부시다.


 





 


 


또한 본작은SF 영화답게 정밀한 미니어처를 통한 씬의 사실성을 추구함은 물론, 차마 마주보기 어려울 정도로 공포스러운 몬스터로 하여 우리 내면의 잠재된 두려움을 일깨우고 있다.


 


 



 


 


특히 최근의 할리우드 영화 ‘프로메테우스’에서도 오마쥬된 아래 장면은 우리나라 영화의 국격을 드높인 예언자적 한 컷이라고 하겠다.


 




 



 


…맘 같아선 더 자세하게 이야기해 주고 싶지만 이 놀라운 영화의 가치를 스포일러로 훼손하는 것은 역사에 죄를 짓는 일일 터. 허나 위 씬들만으로도더 이상의 잔소리는 필요없다.이제 이번 상영회에 개떼같이 참여해니들 눈으로 직접 확인하면 되는 거다.


 


일시: 2012년 7월 15일 일요일 오후 4:30


장소: 대학로 벙커 1 지하 (허브 1)


참가비 : 벙커에서 커피 한잔 이상 사 마시기.


참가신청 :ddanzi.hub1@gmail.com, 트위터 @ddanzihub1


(참가인원 규모를 파악해야 하니 ‘참가’라는 제목으로


이름과 함께 메일이나 멘션 보내시라.


 


상영 후 우리시대의 거장 이응일 감독과 금세기 최고의 지성인 본 우원 간에 <SF 영화의 철학적 담론>을 주제로 한 대담과 관객 질의응답이 있을지도 모른다. 분위기 맞으면 뒤풀이도 갈 지 모른다.


 


암튼 이번 상영회와 앞으로 허브1의 활동, 기대하시라. 원하는 것, 바라는 것, 혹은 스스로 개최해 보고 싶은 행사가 있다면 지체 없이 위 주소로 메일이나 멘션 날리시라.


 


그럼 일요일날 뵙자.


 


딴지허브1 총관장 파토


 


트위터: @ddanzihub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