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무슨 재미로 사냐는 질문에 그냥 웃거나 독서가 취미라고 말을 한다. 노동계급에게 글을 읽는 취미란 별스러운 일이다. 딱히 다르게 노는 방법도 모르고 타인과의 관계조율에 번잡해지는 시간이 피로하게 느껴진다. 노동으로 소진하는 에너지가 커서 읽는데 힘이 필요한 글들은 피하게 된다. 대중적인 언어로 서술하지 못하는 지식은 불완전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유시민의 <나의 한국 현대사>와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일본편>을 읽었다. 글을 읽다보니 쓰고 싶은 마음도 생긴다. 생각해 보니 범인(凡人)이 아니라는 누군가의 평가가 그 책들을 집어 드는데 영향을 주었던 것 같다. 자라면서 형성된 반골기질은 범인이 아니라는 잘난 사람들에게서 못난 점을 찾으려하고, 움츠러드는 못난 사람들에게서 특별함을 찾아낸다.


 glasses-1149982_960_720.jpg


정치인 유시민에 대한 감정은 기대와 실망의 반복으로 냉소에 가까운 감정으로 굳어져 있었다.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심상정의 양보에 보은하기 위해 통합진보당에 합류한 건 아닌지 생각했다.


심상정은 노무현에게 퇴임 이후에도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대한 독소조항과 실수를 인정하라며 집요하게 토론 신청을 했다. 노무현은 반복되는 요청에 정중한 거절을 하다가 끝내 “당신은 중앙 정치무대에 서보지 못해서 이해하지 못한다.”는 말로 항복 비슷한 선언을 했다. 국익을 위해 이라크에 파병할 수밖에 없는 나라였다. 특히나 고졸 대통령은 좀 만만하지 싶었다.


심상정, 이정희, 유시민이 노동자와 서민을 위한 통합진보당을 만들 때 뭔가 좀 불편했다. 노동자와 서민을 위한 정당에 서울대 라인이 연합해야 만들어져야 하는가 하는 삐딱한 시선이었다. 내심 마음을 주었던 통합진보당은 찢어졌다. 심상정, 노회찬, 유시민은 따로 정의당을 만들었다. 남은 경기동부 쪽은 이정희, 안동섭, 홍성규를 내세웠다. 다들 서울대였다. 코딱지만 한 운동권 정당은 정파싸움에 있어 적어도 얼굴마담은 서울대를 세워야하나 보다.


정치를 그만둔 유시민은 진중권, 노회찬과 함께 팟캐스트 방송을 했다. 독사같이 신랄하게 상대방의 급소를 물던 진중권은 서울대 동문선배들 앞에서 참 착했다. <나는 꼼수다>가 흥행할 때 김어준을 깎아 내리는 모습에서 저 사람도 본인이 아니면 안 되는 사람인가 보다 생각했다. 앞서 자신이 같은 주장을 하고 고초를 겪을 때에는 호응이 없던 대중들에게 섭섭했는지도 모른다.


유시민은 말과 글이 가끔 시원하고 후련하긴 하지만 상관없는 곳에서 상관없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무시 받는 노무현을 위해 서울대 출신인 자신이 숙이고 들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말이 기꺼우면서 또 다른 선민의식의 표현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있었다. 의심도 지나치면 병이 된다. 그의 위치에서는 얽혀있는 학연을 외면하고 살기가 더 어려울 수도 있겠다.


<나의 한국 현대사>를 읽고, 어쩌면 그를 행동하게 했던 동인은 선민의식이 아니라 부채의식이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막연하게 훗날 인생을 차분하게 정리할 여유가 있다면 책을 한 권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는데, 유시민의 책을 읽고 포기하기로 했다.


배열할 단어를 고르고 문장을 깎고 다듬는 문학 글쓰기와는 다르지만 군더더기 없는 문장이 담백하고 깔끔했다. 생각과 소회의 전달은 치장이 없어도 불편하지 않다. 그가 사는 위치에서 접하는 정보의 양과 질은 외곽에서 겨우 보는 시야의 좁음을 무색하게 한다. 같은 시대를 살아온 동갑내기들에게 살아온 이야기를 하고, 삶을 격려하고, 살아온 시대의 의미를 되짚어보는 형식을 취했다. 글 속을 전반적으로 관통하는, 인간을 보는 시선에 동의한다.


살아온 시대의 명암을 그의 시선으로 그려놓았다. ‘대한민국이 섬’이라는 그의 생각이 인상적이었다. 삼면이 바다로 막히고 한 면은 지뢰와 철조망으로 막힌 섬 같은 나라라서 반체제운동은 다른 나라들처럼 무장투쟁으로 발전하지 못한다


반체제 운동이 성공하는 유일한 방법은 전국 백만 이상의 동시 다발적인 도시봉기다. 한줌의 운동권들이 묵묵히 살아가는 민중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극단적인 테러를 자행하지 못하고 소신공양하듯 스스로를 태우는 열사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지식인 계층은 신념을 위해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에게 매료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1thumb_00715981_0001.jpg


민중은 열사의 죽음보다 불시에 당한 억울한 죽음에 마음을 움직인다. 그 죽음에 대한 뒤처리가 엉망일 때, 그 일이 자신과 가족에게도 일어날 수 있음을 느낄 때 비로소 거리로 나온다. 4.19의 김주열의 죽음이 그랬고 87년 박종철과 이한열의 죽음이 그랬다. 자신의 죽음이 불쏘시개로 쓰여 사회의 부조리와 병폐를 태우기를 갈망한 학생들의 분신은 아는 이들에게나 죄책감과 부채의식을 남기고 차단되었다. 작가에게도 일정부분 부채의식이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운동권도 기득권이더라는 고백에 웃음이 나오며 동류들에게 영 환영받지 못할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지가 고정되었을 뿐 자신은 매파가 아니’라는 말은 어지간히 많은 사람들에게 시달렸나보다 하는 생각을 갖게 했다. 전태일의 분신에 대한 의견은 책 내용 전반을 호의적인 시선으로 읽게 만들었다. 이승만과 박정희에 대한 약간의 긍정적인 서술도 사실은 사실이고 누군가에게는 좋은 사람이었을 테니까 자극하지 않으려는 의도로 보였다.


조금만 비겁하면 조금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었던 약자가 자신보다 더 약한 이들을 위해 몸을 불태운 이야기는 신화가 아니라 실재하는 일이었다. 사대강 사업으로 죽어갈 다른 생명들을 위해 합장으로 분신한 문수스님에게도 경외감이 느껴지지만 전태일 만한 전율이 느껴지지 않는다. 물고기와 수생동물들과 다르게 허기에 허덕이고 폐질환으로 피를 토하는 여공들의 삶이 심리적으로 더 가까운 탓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임기가 끝나면 한이 생길 것 같다는 말을 한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는 걸 보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의 소식을 하루걸러 들었다. 대중들의 시선을 받고 동조를 받아야 해결 가능성이 열리는 노동쟁의를 수년 혹은 십 수 년 끌어오던 독한 사람들이 참 곱게도 죽는다 생각했다. 그리 죽을 바에야 제일 독한 놈 하나는 끌고 갔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다. 지나서 생각을 해보니 본능적으로 남는 사람들 생각을 했던 거다.


섬나라보다 더 섬 같은 꽉 막힌 나라에서 극단적인 무리로 낙인이 찍히면 토벌이 된다. 조선말 동학과 일제시대 남한 대토벌 빨치산 토벌이 세대별로 각인이 되었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처형대상자로 지목이 되면 곱게 고개를 숙이고 구덩이 앞에 서서 차례를 기다려 총을 맞았다. 어린 시절엔 이해가 안 갔다. 체념도 있었겠지만 남은 사람들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책의 마지막 한 장을 세월호에 할애했다. 대한민국은 세월호를 기점으로 세월호와 함께 서서히 침몰할지 다시 살아날지가 결정될 것 같다. 워낙에 가엽고 억울한 죽음이 많아서 웬만한 죽음엔 민중들의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 하루에도 스스로 삶을 포기하는 사람이 마흔 명이 넘는다. 이마저도 묻힐 나라라면 세월호와 함께 수장되는 편이 좋다. 그 뒤에 운 좋게 살아남는 사람들이 새로 그리는 나라에 희망을 거는 편이 좋을지도 모른다. 막상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나라가 망할 때 힘없고 선한 사람들이 먼저 죽는다는 생각하면 씁쓸하다.


2390071.jpg

(사진: 좌린)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일본편>은 유시민의 글을 읽은 다음이라 그런지 도입부에서 조금 거부감이 느껴졌다. 예전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읽었을 적엔 언젠가 여유가 되면 글에 쓰인 코스대로 답사탐방을 하며 글에서 표현하는 풍취를 느껴 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있었다. 그 마음이 글에 대한 몰입력을 높였다. 아끼고 성실하게 살다보면 언젠가는 나도 유한계급 흉내는 내고 살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있었다.


강준만은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가 대중적으로 성공한 이유를 두고 ‘마이카 시대에 접어들면서 여가와 차를 가진 사람들이 욕구를 발산한 테마와 방향을 제시했기 때문’이라 했다. 동의한다. 그에 반해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일본편>은 일본에 갈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인지 유려한 문체에도 불구하고 흠이 보인다. 어쩌면 언젠가 그의 글을 따라 답사여행을 하리라 모아두던 여유를 다른 곳에 소진해버렸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글에서 읽혀지는 완고한 고집스러움이 처음엔 조금 불편했다. 타협 없이 자신의 길을 살아온 사람의 자존감으로 이해하자 조금 편하게 읽혀졌다. 도입부에 삼국시대가 아니라 ‘오국시대’였다는 전제가 나온다. 민족감정이 필요했던 시기에는 아이들에게 가르쳐주지 않았던 내용이다.


일본에 건너간 도래인(渡來人)들은 일본인이 되었다. 일본의 문화재에서 전문가의 눈으로 찾아내는 미묘한 아름다움을 예찬하는 글을 읽으면서 그것들을 만들어낸 사람들의 이야기가 끌렸다. 고대사의 도래인들은 새로운 터전을 찾을 여유가 있는 계층이었다. 그들이 갖고 온 문화가 자라고, 성숙해지고, 그쪽 토양에 맞춰졌다.


L20130803.22015193210i1.jpg

백제인들이 많이 건너간 것으로 알려진 아스카의 시골.

유홍준은 '부드러운 능선의 산자락에 깃든 마을 모습이 우리나라 부여와 아주 비슷했다'고 말한다.
(사진: 창비)


임진왜란 때 건너간 혹은 끌려간 도공들의 이야기는 별반 변하지 않은 한반도의 현실을 생각하게 했다. 한국에서 천대받던 하층민이던 도공들은 일본에서 준 귀족의 대접을 받으며 도자기를 굽는다. 도자기를 만드는 흙도 사람도 조선의 것이고 오직 불만 일본의 것이던 초기의 작품에서 일본화된 도자기를 굽는 명가로 발전한다. 도자기의 유럽수출로 일본은 산업화에 필요한 재원을 축적한다. 일본인들이 임진왜란을 ‘도자기 전쟁’이라 부를만한 이유가 있다. 조선업과 다른 산업들이 몰락하는 이유도 400년 전의 이유와 별반 다르지 않다. 중국기업에 설계도를 들고 가는 기술자들과 일본군의 배를 타는 조선도공의 모습이 겹친다.


조선도공의 후예이자 태평양 전쟁의 전범으로 야스쿠니 신사에 합장된 도고 시게노리 부분에서 생각이 잠시 머물렀다. 일왕 대신 전범으로 지목될만한 역할을 했을 그의 선택이 그의 가문을 일본의 명문가로 만들었다. 그리 따지면 일본왕도 백제 왕실의 피를 이었다는 고백을 했다. 조선인을 일본화하려는 식민지 교육의 효과는 36년간 4%의 효과를 얻어 실패한 정책이라는 비난을 받았었다. 앞으로의 역사가 어디로 흘러갈지 모를 일이다.


음식점마다 고유의 자기를 내어 풍미를 더하는 일본의 문화를 본받았으면 하는 대목에서는 아니라고 하면서도 일본에서 번역되어 읽을 일본인 독자들을 의식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아니라면 한국 식당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가벼운 양산 플라스틱 접시라야 설거지와 서빙에도 팔목의 혈관이 터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몰랐을 수도 있다. 사는 곳이 다르면 보는 것이 달라진다. 보지 못하면 알지도 못한다.


문화재를 평생의 업으로 삼고 살아온 분이라 생활문화의 품격이 훗날엔 전통이 되고 문화유산이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조선시대 막사발이 국립박물관에 전시되는 것처럼 지금시대의 스텐 밥공기와 플라스틱 접시도 천 년쯤 지난 후엔 문화유산으로 남아 고대인들의 생활풍속을 추측하게 할 것이다.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거인처럼 그려진 귀족여인의 시중을 드는, 부채를 들고 작게 그려진 시비들의 모습에서 먹거리가 부족하던 시대에 하녀들은 밥을 조금 먹여서 발육이 작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예술적인 감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생각을 한다. 헤어디자이너는 머리스타일을 볼 것이고, 메이크업 아티스트는 얼굴 채색으로 화장 상태를 확인하려 하겠고, 패션업계의 종사자는 옷 주름과 소매 단 같은 것을 볼 것이다. 사는 곳에 따라 같은 것을 봐도 보이는 것이 다르다.


풍족하게 남아있고 철저하게 관리되는 일본 문화재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부러움도 들지만 그들이 그럴 수 있었던 이유도 생각해보게 된다. 섬이라서 가능했다. 바다가 벽이 되는 섬은 외부요인을 막고 내부인자를 가둔다. 변화를 더디게 한다. 일본문화에 호의적인 시선으로 쓰인 책이고 문화재와 사연이 얽힌 사람들의 이야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결국은 답사기와 여행기다 보니 깊이는 떨어진다. 일본인들을 외부인의 시선으로 묘사한 책으로는 <국화와 칼>, <축소지향의 일본인>이 있다.


ice-1208231_960_720.jpg


대한민국에서 중산층 이상의 계급은 세계인으로 살아간다. 하층민은 달아날 곳 없는 섬에 살고 있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조선말 서양인의 여행기인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에서 착취당하는 민중의 저항이 나타난다. 적극적 저항은 봉기 소요 폭동으로 표출된다. 초기에 원풀이를 하기도 하지만 진압당하고 처형당한다.


소극적 저항은 빼앗길 재산을 축적하지 않는 나태와 무기력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작가는 혐오감을 감추지 않는다. 대륙으로 달아나 착취자들이 정한 세법과 군역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진취적이고 역동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사람 사는 게 어디나 그렇다.


탈조선이니 헬조선이니 하는 자학적인 유행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대한민국 바깥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닐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전에 말했던 것처럼 비무장 지대에 평화공원이 조성되고 통일 대박이 나면, 기차로 파리를 다녀오고 북극을 지나 북아메리카를 거쳐 남아메리카 극단에서 남극을 바라보는 모험자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게 자연스러워지면 조금 다른 세상이 만들어질 것도 같다.


우주를 경험한 우주 여행사들은 환경운동가가 된다고 했다. 지구를 벗어나서 지구를 보면, 지구가 닫힌 생태계라는 인식에, 닫힌 공간에서 욕심을 부려 삶의 터전을 훼손하는 다른 사람들의 행동들이 괴로워진다. 우리나라 최초의 우주비행사는 우주비행 후 원하는 CF는 안 찍어주고 돈 안 되는 강연만 돌리니까 다른 나라로 가버렸다. 지구마저 창백한 푸른 점으로 인식한다면 인위적으로 갇힌 공간에 사는 사람들은 답답해진다.


여행을 남의 글과 사진으로 대신하는 입장이지만 가끔 일본 열도보다 더 섬 같은 이 나라를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삶의 터전에서 떠날 수 있는 사람들과 떠날 수 없는 각각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불합리의 격차가 크다. 사는 곳이 달라지고 보는 것이 달라지면 생각의 단위가 바뀐다.


백성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민주(民主)’라는 단어에 의구심이 든다. 투표와 다수결만이 민주주의는 아니다. 자신의 삶에서도 주인이 되지 못하는 사람들이 나라의 주인이 될 수 있겠는가 의문이 든다. 누구나 강자의 부당함에 저항을 선택하지 못한다. 상대적 약자에게 스스로 삶의 주인이 되는 방편은 굴종보다는 도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현실 도피를 하는 것도 능력에 비해 큰 자존감을 지키려는 것 일 수도 있겠다. 전에는 간절히 원하는 것이 있다면 다들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는 줄 알았다. 간절히 원하면 우주가 도와준다는 누군가의 말이 조금 이해가 간다.




범우


편집: 딴지일보 챙타쿠